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08/06/26 11:35:01
Name 윤여광
Subject Fallen Road. Part 1 -1장 7화- [-자비의 탈을 쓴 망각-]
Fallen Road.
[윤여광 作]

Part 1.
1장 7화.
[-자비의 탈을 쓴 망각-]

#
“야 이 찢어 구워먹을 놈아. 말해봐라. 아앙? 미안해서 우리 뒤를 따라오기라도 한 거냐?”
“어푸푸. 아그르르르르르르르.”
“사람 죽겠어. 그만 좀 해!”
“............”

  한 사람의 침묵. 한 사람의 고통. 또 다른 한 사람의 다급함. 그리고 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방도가 없는 정도가 심하다 싶을 정도의 가학 행위를 즐기는 듯 한 음흉한 웃음. 아이고, 내 머리야.

“형! 계속 그렇게 두면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잖아!”
“상관없어.”
“뭐?”
“어차피 들을 말도 없는데 뭐. 버티면 사는 거고 아니면 죽는 거고. 어디보자아아. 한 30초 남았나?”
“아거로르르르르. 주그르르르르르.”
“뭐? 어이 요르. 얘, 지금 뭐라는 거냐.”

  아마도 죽여 버리겠다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지.

“아유. 그만 좀 해!”

  내가 억지로 녀석의 머리를 잡아당기지 않았으면 진짜로 숨이 끊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크는 그대로 분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비죽 내밀었고 건져낸 지 꽤 시간이 지난 마냥 붕어처럼 숨을 헐떡이는 이 녀석은 아직도 그 눈만은 아크를 쳐다보며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어이. 이제 말 좀 해보시지. 우리 뒤를 밟은 이유가 뭐야?”
“켁켁. 우웩. 그...그러니까 푸후웹! 안 밟았다고! 페헹!”

  그의 말이 아주 거짓말은 아닌 것이 애초에 우리의 뒤를 밟았다면 대련중인 아크와 나를 못 알아본 채 그대로 접근했을 리는 없었다. 자길 발견하면 어떤 식으로 반응을 보일지 대강은 예상하고 있었을 그의 양심을 근거로 추측하건데 뒤를 밟은 것은 아니다. 근데 그게 아니면 여긴 왜 온 거냐고!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진 마라. 그래도 죽이진 않았잖아. 사기 한 번 친 것 치곤 꽤 험한 벌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길 찾느라 이리저리 고생한 걸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약한 거야.”
“차라리…….차라리 날 죽여라. 이 개자식. 생겨먹은 것도 누구 하나 잡아 죽여도 이상하지 않게 생긴 놈이.”

............

“죽어! 죽어! 이 망할 사기꾼 자식! 내가 이렇게 생겼는데 보태준 거 있냐! 이 닭대가리야!”

  이번에 말리는 쪽은 아크였다. 물론 보다 못한 유나 역시 합류했다. 평소 외모에 대해 대담한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컨트롤 해오던 나는 그의 말 한 마디에 완전히 이성을 잃어 그 머리통을 물에 담그다 못해 집어넣고 바닥에 비벼대고 있었다. 음. 아직 수련이 부족한 건가.

#
“그러니까 지도 때문에 이 놈이고 저 놈이고 달려와서 사기꾼이라고 난리를 치는 통에 직접 검증에 나서셨다 이거야?”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이 꼴통아.”
“크아악! 이 닭대가리가!”

  아까부터 조롱과 모욕을 일삼는 이 망할 사기꾼 덕분에 집 나간 내 이성은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 없이 끝없는 방황의 길을 걷고 있었다. 덕분에 같이 화를 내면서도 차마 그것을 분출할 수 없는 아크와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유나만 고생이었다.

“네가 무슨 능력자라도 돼? 산 한 번 오르는 걸로 지도를 수정하게?”
“고치겠다고 한 적 없어. 이 지도가 맞는 지도라는 걸 증명해보이려는 것뿐이었지. 그리고 그 증명은 이미 끝냈어. 마을로 향하는 지도상의 경로대로 이동해서 당신들과 만났잖아. 당신들이 나와 만났던 그 날부터 시간상으로 계산해보자면 이 지도가 틀린 게 아니라는 걸 더욱 잘 알 텐데.”
“그러니까 뭐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은 그냥 우리가 덜 떨어진 꼴통들이라 길을 헤맨 것뿐이다?”
“알아서 정리해주시니 고맙구먼.”

퍽!

  결국 그들은 날 막지 못했다. 날렵하게…….는 아니고 그의 말이 내 판단력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을 인식하자마자 날아간 주먹에 그 얍실한 콧잔등이 둔한 소리를 내며 벌겋게 부어올랐다.

“아우! 그만 좀 때려! 맞은 데만 골라서 때리고 난리야! 변태냐!”
“네놈 다리몽둥이를 튀겨서 뜯어 먹고 말겠어. 이리 왓!”

  조금 더 격렬하게 그 녀석을 손봐주기 위해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달려들 태세를 취하자 결국 집주인께서 화가 나고 말았다.

“두 사람 모두 닥치지 못하겠어요!!!”
“아니 난 맞기만 했는데…….우이씨.”
“죄송합니다.”

  잘 정리된 깔끔한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일보 직전 날카롭게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집 나간 내 이성을 힘겹게나마 제 자리에 되돌려 놓았고 맞기만 했다며 억울한 얼굴의 그는 더 투덜거렸다간 이젠 뺨을 맞을 지도 모를 것 같다고 겁을 먹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자세를 고쳐 잡고 바닥에 앉았다. 한심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는 아크는 유나가 잠시 시선을 돌린 사이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켈모리안씨라고 하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이 마을의 주민인 유나 베리얼이라고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그 지도에 대한 증명을 제가 도와드리고 싶군요. 좀 보여주시겠어요?”
“얼마든지.”

  그는 내가 아무렇게나 집어 던져둔 짐꾸러미에서 구겨진 종이 하나를 꺼내 들더니 유나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아들고 찬찬히 살피던 유나는 미간을 살짝 구기며 입을 열었다.

“이거 참…….곤란하군요.”
“에? 무슨 말씀이신지…….”
“이 지도.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본의 아니게 제가 여러분께 폐를 끼친 꼴이 됐군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지도 자체는 사기가 맞습니다.”
“네? 아 저기…….”

  유나의 대답에 따라 켈모리안에게 한 방 더 먹일 준비를 하고 있던 나와 그것을 막으려 나를 주목하고 있던 아크 그리고 맞은 자리가 아직도 아픈지 손으로 계속 만지작거리는 켈모리안 이 세 남자는 동시에 똑같이 어벙한 얼굴로 그녀의 남은 대답을 기다렸다.

“실은. 1년 전. 제가 이 산길에 장난을 좀 쳤습니다.”
“네?”
“마을이 이방인들에게서 완전히 고립되기를 원했던 주민들의 뜻에 따라 마을을 통해 산을 넘어가는 경로에 미러mirror를 걸어뒀습니다.”
“아 저…….그러니까. 그게 마법의 일종 맞죠?”
“네. 자꾸 알아듣기 힘든 말만 해서 미안하군요. 미러는 주변의 풍경이나 특정한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서 특정한 경로를 통해 지나가야 하는 행인들에게 혼란을 주는 용도로 자주 쓰는 마법입니다. 특히 이런 산길 같은 경우는 그 길이 갈래가 적고 주변 풍경이 비슷하기 때문에 사용하기 더 쉽지요.”
“그러니까…….유나씨가 마을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이 지도상의 경로에 마법을 걸어두었다?”
“네. 하지만 그건 벌써 1년 전의 일입니다.”
“그럼 그 지도는…….?”
“지도를 제작하는 과정을 알고 계신가요…….?”
“아뇨.”

  그녀는 잠시 호흡을 조절하는 듯 싶더니 뭔가 길게 이야기 할 듯이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란스러웠던 그녀의 집은 잠시 침묵을 맞이했다. 켈모리안의 거칠게 식식대는 소리만 아니라면 그대로 누워 자도 아무 상관 없을만치 고요했다.

“그럼 거기서부터 설명을 드려야 겠군요. 이 곳 연합국의 지도 제작 방식은 대륙의 지역구를 나눠 마법사 1인을 동반한 지도제작자들이 함께 만들게 됩니다. 지도제작자들이 큰 바탕의 지형을 그리면 마법사는 공기 중의 마나의 흐름을 느껴서 구체적인 지형의 구조나 가장 효율적인 이동 경로를 적게 되는 것이죠.”
“네? 그게..마나를 느끼는 것과 지도를 만드는 게 어떤 관계가…….”
“사람의 눈이 아무리 정확하다고 해도 실제적인 지형 구조를 기록하기는 무리가 있어요. 하지만 마나라면 다르죠. 마나의 양과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마법사라면 그 지형의 구조나 모양새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어요. 거기에 지도 제작자들이 계측한 자료를 더해 최종적으로 지도를 그려내는 겁니다.”
“아아. 네에.”
“그렇게 최종적으로 만들어 낸 지도에는 연합국의 공인된 지도라는 표기로 지도 제작자들의 소속 단체의 이름 혹은 엠블럼을 그려 넣고 마법사 측에서는 지도를 제작한 년도를 룬어로 기록하게 되어있습니다.”
“룬어로 년도를요?”
“네. 서로의 기여도를 지도에 기록해두기 위한 방식이죠.”
“그냥 숫자로 년도를 써두면 될 것을 왜 알기 힘들게 룬어로…….”
“마법사들은 마나를 느끼고 룬어를 읽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답니다. 그것에 대한 생색내기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되겠네요.”
“그렇군요. 근데 그 지도가 결과적으로 사기라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래도 사기라는 말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을 팔았던 켈모리안 본인일 수밖에 없었다. 대답 여부에 따라 사기를 친 주체가 누가 되느냐가 중요했다. 당장 눈앞에 죽일 듯이 으르렁 거리는 내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연합국의 지도 제작 방식에 따르면 대륙 전체의 지도 제작은 2년 주기로 이뤄지고 제작된 지도에 대해 수정 요구가 들어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은 반 년 단위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제작된 지도는 다음 지도가 만들어지기까지 총 3번의 공식적인 수정을 받게 되는 거죠. 이 지도는 제가 미러를 걸어두기 1년 전. 그러니까 2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입니다. 이미 두 번의 수정을 받은 제작본이군요”
“그…….그럼! 그 지도의 제작 년도가 유나씨께서 이 지도 상의 경로에 마법을 걸어두시기 그 이전에 만들어진 말씀이신가요?”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네 그래요. 지도를 제작한 단체의 이름은 별 상관이 없지만 이 제작 년도는 제가 미러를 걸어둔 시점보다 조금 더 이전이군요. 원래 기록된 룬어 위에 조잡하지만 마나에 대해 모르는 분이라면 전혀 알 수 없도록 덮어씌워놨습니다.”
“그…….그렇지만. 그렇게나 오래된 지도가 여태까지 팔리고 있는 이유가 뭡니까? 이미 사라지고 없어져야 하는 물건 아닌가요?”

  확실히 룬어로 기록된 제작년도가 그렇게 조작되어 있다면 나같이 마법이라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만들어진 지 오래된 것이라고 알 수 있는 방도는 전혀 없다. 그렇지만 그렇게나 시간이 지난 지도의 남은 량이 아직도 비록 엉터리라고는 하나 길드 원들에게서 팔리고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든 점이었다.

“2년 전. 코르사크Corsak와의 전쟁이 벌어질 뻔 한 일을 기억하시나요.”
“아…….그 때라면 알고 있지요. 저희도 전장으로 차출되어 불려가는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했습니다.”
“네. 원래 이렇게 만들어지는 지도는 일반 시민들이나 모험가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판매되거나 배포된답니다. 국가에서 직접 사용할 지도는 따로 만들어지지요. 그런데 이 2년 전. 그러니까 이 지도의 두 번째 수정본이 발매가 되기 시작한 시점에서 코르사크와의 분쟁으로 이 연합국 내의 여행객이나 모험가 혹은 상인들의 이동이 급격히 줄어버렸어요. 선전포고를 내리기 직전까지 시국이 급박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그 만큼 팔려야 했을 지도의 양이 남아버렸다?”
“네. 보통 지도를 만들어내는 양은 그 전 해의 발행된 양에 맞춰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웃 국가와의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 판매량이 엄청나게 줄어들어 버렸고 결국 이 지도는 엄청나게 재고가 남아버린 것이죠.”
“그럼. 그 남은 재고는 전부 폐기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네. 원칙대로라면 그랬어야 했을 물건인데. 아무래도 제가 생각했을 땐 이 지도를 만든 쪽에서 그 만큼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 제작년도를 조작해서 그대로 다시 판매한 것 같습니다. 켈모리안씨. 이 지도들을 구입한 게 언제였죠?”
“아아. 그러니까. 이번 해에 새로 만들어진 지도가 발매되기 시작했을 때죠. 가장 최근의 지도가 제일 잘 팔리니까요.”
“그렇군요. 그럼 그 때 남았던 이 폐기 분을 올 해 새로 발매되는 지도에 섞어 팔았다는 말이 되는군요. 이 폐기분이 남은 양 만큼 이번 발행 부수를 줄이면 되는 일이니까요. 저는 운이 좋게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지도를 사게 되어서 그랬는지 이 지도에 대해선 전혀 몰랐군요. 여기 이걸 보세요. 켈모리안씨가 갖고 있던 지도와는 다른 지도입니다.”

  그녀가 책장에서 꺼낸 새로운 지도는 켈모리안의 그것과 많은 부분이 비슷했지만 인케이닝을 넘어가는 경로는 완전히 달랐다. 켈모리안의 것은 산을 관통하여 그대로 대륙 중앙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유나의 지도는 인케이닝을 넘어가는 길이 아닌 산 밑을 따라 옆으로 돌아 대륙 중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유나가 걸어뒀던 미러를 반영했다는 말이다.

“저기 근데 유나씨.”
“네?”
“지도를 제작하게 될 때 마법사도 함께 온다고 하셨죠?”
“네. 그렇죠.”
“그럼 유나씨가 걸어둔 마법을 다른 마법사가 알 수도 있었을 텐데.”
“아. 미러는 주변의 풍경에 대한 혼란만 야기시킬 뿐이지 마나의 흐름 자체를 차단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산에 오른 마법사는 일정한 위치에서 그 곳을 기점으로 주변의 흐름을 느끼기 때문에 실제적인 미러의 작용은 산을 완전히 통과하려 하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지 못하죠. 하지만 계측자들은 산길을 모두 걷기 때문에 당연히 미러에 의해서 길을 헤맬 수밖에 없고 마나를 측정한 마법사와의 의견 조율 끝에 산세가 험하고 산을 넘어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겁니다.”
“아하! 그럼 결과적으로 지도가 사기라고 하셨던 것은 이 지도의 제작년도를 조작한 것 때문이 그렇게 말씀하신 거군요?”

  이 쯤 되니 켈모리안이 제일 흥이 나 보인다. 무죄인 것을 객관적인 위치에서 자세히 설명한 유나에 의해서 증명이 되었으니 신이 날 법도 하다. 그래 실컷 좋아해라. 제발 내가 때린 걸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역시. 내가 잘못된 게 아니었어! 젠장. 그 망할 근육덩어리 놈. 당장 찾아내고 싶은데 말이지.”

  아. 왜 이리 가슴 한편이 저리는 것일까. 더불어 내 주먹과 얼굴도 같이 화끈거린다. 제발 날 쳐다보지 말아주오. 오오 부디. 관용을 베푸시어.

“좋아! 수도로 간다!”

  응?

“유나씨.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무슨…….”
“이 지도 말입니다. 이것의 제작년도를 룬어 말고 나 같은 마법이라곤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알아볼 수 있도록 드러나게 하는 방법은 없나요? 내 당장 찾아가서 그 동안 이 망할 지도 덕에 당한 설움을 보상 받아야 겠습니다. “
“맺힌 게 많으신 모양이군요.”

  어이 유나씨. 당신 그렇게 말하면서 왜 날 쳐다보는 거야. 보지 마. 저 자식 지금 내가 때린 건 완전히 잊고 있다고. 그냥 지금처럼 쭉 기억하지 못하는, 아니 없던 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부디 도와줘.

“네. 좋습니다. 마법사로서 마나가 이런 식으로 경박한 용도로 사용되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 없군요. 그렇게 해드리겠습니다. 잠시 제게 그 지도를.”
“네! 여기!”
“디스 클로즈disclosed"

  유나는 지도에 손을 대고 작은 목소리로 캐스팅에 들어갔다. 낡은 종잇장이 짧은 시간 빛을 발하더니 곧 이어 방금 전까진 보이지 않았던 숫자가 나타났다.

“자. 됐습니다. 임의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룬어를 마법을 통해서 읽을 수 있게끔 변환한 것이니 그 쪽에서도 아니라고 발뺌하진 못할 겁니다.”
“으하하! 감사합니다! 후후. 이 자식들. 다 죽었어. 내가 당한 수모를 몇 배로 되갚아주지! 더불어서 손해 본 금액도 배로 받아내야겠어!”
“저어. 켈모리안씨.”
“네? 뭡니까. 유나. 혹시 이 마법에 대한 보수가 필요한 겁니까? 아니 그럴 거면 애초에 말을 하셨어야.”
“아니 그게 아니라…….”

  맨 처음 지도를 건네받았을 때와 같이 유나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켈모리안의 뻔뻔한 다그침에 기분이 상한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뭔가 다른 문제가 있는 것인지 나로선 알 수 없었다.

“아. 뭐냐니까요. 말을 해야 알죠.”
“그러라고 도와드린 게 아닌데요.”
“네? 뭐요?”
“켈모리안씨가 그 지도를 통해 부적절한 수입을 얻도록 도와드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완전히 굳은 얼굴로 정색하며 말하는 유나의 기세에 눌려 켈모리안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방금 전 나와 켈모리안을 다그칠 때 보다 더욱 화가 난 듯이 굳어있었다. 그러게 좀 앵간히 좋아하지 그랬냐.

“으음. 이거 미안하게 됐소이다.”

  난데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아크 덕에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왜 갑자기 사과를…….아 참…….

“미…….미안합니다!”
“응? 뭡니까?”

  괜히 사과 했나. 이 망할…….

“지도 때문에 오해를 했습니다. 부디 관용을.”

  어이 어이. 무슨 관용까지 나오고 그래. 완전히 나 잡아잡수 하는 식으로 고개를 숙인 채 사과를 하는 아크 덕에 나는 같이 고개를 숙이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용서를 해야 할 본인은 정작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사과를 하는지 아직도 잘 모르는 눈치인데다가 슬쩍 넘겨본 아크의 눈은 아예 눈물까지 흘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낄낄. 거 참. 그러게 좀 사람 말 좀 듣고 그러시라니까. 됐소. 됐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뭐 서로 맘에 깊게 담아두진 맙시다.”

  어이. 야, 임마. 그렇게 쉽게 납득할 거라면 애당초 나한테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욕은 왜 한 거야. 아니. 지도 때문에 그렇게 억울했던 게 맞긴 한 거야? 이거 뭐 아크 이상으로 단순한 놈일세.

  두 남자의 진심어린 사과와 다른 한 남자의 관대한 마음에 힘입어 유나의 집 안에는 다시 평화로운 공기가 흘렀다. 굳은 얼굴로 켈모리안을 노려보던 유나는 박수라도 쳐주고 싶다는 듯 흐뭇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그녀의 얼굴은 그것 나름대로 곤란하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거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낀 건데. 유나씨. 당신은 눈앞의 상황을 받아들이는데 지나치게 망설임이 없어요. 이런 건 좀 황당한 얼굴로 봐줘야 한 단 말입니다.
* 박진호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8-16 16:46)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8/08/16 21:38
수정 아이콘
와아- 마법을 통해서 지도를 만드는군요. 편리해라.
08/08/17 08:05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46 Fallen Road. Part 1 -1장 10화- [-조우#1-] [3] 윤여광4984 08/06/26 4984
45 Fallen Road. Part 1 -1장 9화- [-도움이 안되는 놈'들'-] 윤여광4569 08/06/26 4569
44 Fallen Road. Part 1 -1장 8화- [-Main Stream-] [1] 윤여광4900 08/06/26 4900
43 Fallen Road. Part 1 -1장 7화- [-자비의 탈을 쓴 망각-] [2] 윤여광5190 08/06/26 5190
42 Fallen Road. Part 1 -1장 6화- [-헛걸음-] [1] 윤여광5265 08/06/26 5265
41 Fallen Road. Part 1 -1장 5화- [-an indelible stain-] [3] 윤여광4712 08/06/26 4712
40 Fallen Road. Part 1 -1장 4화- [-굶주린 야만인의 상쾌한 아침- ] [3] 윤여광5104 08/06/26 5104
39 Fallen Road. Part 1 -1장 3화- [-빼앗긴 보물에 소녀는 운다.- ] [3] 윤여광5267 08/06/26 5267
38 Fallen Road. Part 1 -1장 2화- [-마녀와 검사의 화해-] [5] 윤여광5347 08/06/26 5347
37 Fallen Road. Part 1 -1장 1화- [-마녀의 안내-] [9] 윤여광7008 08/06/26 7008
36 Fallen Road. -연재에 앞서 드리는 인사글.- [14] 윤여광6480 08/06/26 6480
35 [소설] 잊어버리기 전에 하는 이야기 - "창공의 별" [6] kikira7100 08/06/26 7100
34 [소설] 9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신의 물건 [5] kikira6505 08/06/23 6505
33 [소설] 8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종이가 필요한 이유 [1] kikira6072 08/06/14 6072
32 [소설] 7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비극과 희극 [5] kikira5812 08/06/11 5812
31 [소설] 6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진리의 빛 [4] kikira5847 08/06/06 5847
30 [소설] 5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50억의 망상 [2] kikira6442 08/06/04 6442
29 [소설] 4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헤겔은 잔소리꾼 [4] kikira6575 08/06/03 6575
28 [소설] 3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클라인박사, 뫼비우스띠에서 길을 잃다 [5] kikira6847 08/06/03 6847
26 [소설] 2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외눈박이와 두눈박이 [6] kikira7148 08/06/02 7148
24 [소설] 1회 :『녀소 는리달 을간시』- 토끼 굴에 떨어지다 [10] kikira9209 08/06/02 9209
23 [소설] 시작 전에 하는 이야기 - "창공의 별" [3] kikira10244 08/06/04 10244
22 [만화] 모텔 넥서스 17편 [188] 바흐35691 08/04/10 3569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