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09/11 00:56:45
Name 스톰 샤~워
Subject 박아제 님에게...
즐거운 휴석 날 PGR 에 들어왔다가 님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님의 상황을 잘 모른 채 섣불리 짐작을 하는 것이어서 부담스럽긴 합니다만 그냥 지나가고 넘어가기가 쉽지가 않더군요.

프로게이머에 올인하시겠다구요?

포커를 치다보면 가끔 올인을 하게 되죠. 포커를 잘 못치는 사람일수록 너무도 쉽게 올인을 합니다. 하지만 잘 치는 사람은 쉽게 올인을 하지 않죠.

승부사들이 올인을 하는 경우는 승리를 확신할 수 있을 때입니다. 될지 안될지 모르면서 '못먹어도 고' 하는 식으로 올인을 하는 사람들은 승리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올인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내 모든 것을 걸고 승리하도록 노력하겠다"의 의미가 아닙니다. "내 모든 것을 걸고 승리를 확신한다"라는 이야기죠. 그 판단이 틀렸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이 끝난다는 의미이구요.

박아제님은 승리를 확신하십니까?
모든 것을 걸고 프로게이머의 길에 들어섰을때 반드시 임요환과 같은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확신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은 필요치 않습니다. 이미 올인을 선언한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면 그 땐 모든 것이 끝장나 버리는 것입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다"라고 에디슨은 얘기했지만 저는 다르게 해석합니다. "1%의 영감이 천재와 보통사람을 결정짓는다"라구요. 99%의 노력은 천재도 보통사람도 바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의 영감이 없다면 보통사람은 영원히 보통사람이고 바보는 영원히 바보일 뿐 천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죠. 바둑의 조훈현 국수는 여섯살 때 한판의 바둑을 복기할 수 있을 정도록 뛰어난 천재성이 있었기에 바둑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단순히 노력했기 때문에 황제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아니죠.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저는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이런 특별한 재주를 타고 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님께서 정말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났다고 확신하신다면 올인하셔도 괜찮겠지만 노력만으로 모든 것들을 극복하려 하신다면 저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제 생각으로는 박아제님이 그런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났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올인하지 않으시는 쪽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1%의 영감이 있더라도 99%의 노력이 없다면 그것은 꽃피우지 못할 거니까요. 아무리 뛰어난 자질이 있다 하더라도 혼신의 힘을 다한 노력이 없다면 님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젊은 시기의 그 뜨거운 열정과 넘치는 힘을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하는 게임에 쏟는 것보다 더 좋은 방향이 많이 있을 듯 합니다. 프로게이머의 삶은 길어봐야 3년 안팎이겠지만 님에게는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날이 있기 때문이죠.

물론 앞으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증가하여 전세계 각국에 프로리그가 생겨나고 스타 강습학원, 스타 특기생 등이 생겨날 정도가 된다면 그 일을 평생 직업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리는 없겠지요. 오히려 님께서 한참 실력을 쌓아서 본선 무대에 진출할 만한 상황에서 메이저 대회들이 사라지고 방송경기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런 불확실한 미래에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시기를 올인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런 위험요소들을 감안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모두 던져야 할 만큼 스타크래프트라는 것이 그렇게 심오하고 그렇게 가치있는 것인지, 저는 쉽게 동의하기가 힘드네요.

박아제님.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좀 더 넓고 멀리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박아제님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아직 세상을 제대로 보기에는 많이 어린 나이입니다. 그러나 지금 내리려는 결정은 앞으로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버릴 중대한 사안입니다.

만약 프로게이머의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하시더라도 고등학교는 진학하십시오. 만약 님께서 프로게이머로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지셨다면 고등학교 다니면서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성적은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하여 정말 확신이 든다면, 이제 학교라는 것이 마지막 걸림돌이 되어 이 때문에 더 이상의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그 때 올인하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승부사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올인부터 하고보는 것은 승부가 뭔지도 모르는 철부지의 치기어린 행동이거나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의 오기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쉽게 넘기기 힘든 문제여서 주제 넘은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만 글 속에 담긴 제 마음을 읽어주시고 혜량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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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포유
03/09/11 01:14
수정 아이콘
동감하는 바입니다.. 샤워님께서 제가 박아제님께 해드리고 싶었던 말씀을 죄다 해주셨네요^^ 하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자기인생에대해 고민할수있다는 것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박아제님께는 큰 축복이 될수도 있습니다. 지금 고민하시는거 정말 혼이 쏙빠질정도로 지독스럽게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되면 박아제님 자신도 모르게 훌쩍커버린 아제님을 문득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03/09/11 01:20
수정 아이콘
저도 동감합니다. 예전 박아제님에 대한 제 글을 읽어보셨다면 제가 박아제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아실 겁니다.. 스톰샤워님이 이미 다 말해주셨으니 제가 일일이 말할 필요는 없겠죠.. 마치 친동생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선택은 박아제님의 몫이지만 많은 사람들의 충고를 그냥 지나치진 말아 주세요..
03/09/11 01:21
수정 아이콘
GAMENEWS란에K-TEC의..조용성 선수의 케이스를 참고 하였으면 좋겠군요,,
그랜드슬램
03/09/11 01:24
수정 아이콘
우와 -_-제게도 이런 , 글이 올라왔으면 좋겠군요.;
이은규
03/09/11 01:37
수정 아이콘
참 좋은 글이네요.
샤워님의 글 속에 담긴 마을은 저도 잘 알겠고
샤워님의 말씀도 충분히 옳은 판단이라 생각 됩니다.
그러나 아제님꼐서도 아주 깊히 생각 하시고
결정하신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제님에게 아주 큰 도움을 드릴
입장은 아니지만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진학을 하라고 말씀드리진 못 하겠네요.
물론 진학을 하고 학교만 나가서 출석만 체크하고
3년 지내면 졸업장은 나오죠. 그렇지만 연습할 시간이
너무나 줄어든다고 생각 합니다. 노력=연습 인데..
학업과 연습을 병행하기엔 너무나 힘들겠죠.
보충수업을 빠지고 한다 하더라도 인문계 고등학교
평균 5시에 끝이 날 것이고, 그후에 연습을 한다고 해도
하루종일 연습한는 시간에 비하면 꽤나 시간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시간낭비란 표현이 좀 잘못 된 표현일수도 있겠지만
최정상이 되기 위해선 연습벌레가 되는수밖에 없죠.
물빛노을
03/09/11 02:54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입니다.
03/09/11 03:57
수정 아이콘
프로게이머를 매우좋아하긴하지만 제주위에서 만약 프로게이머를 하겠다고 하면 제가 머라고말해야할지......마냥 후원해줄수많은 없을꺼같습니다....
신유하
03/09/11 10:31
수정 아이콘
저 역시도 김민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저 역시도 프로게이머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프로게이머를 한다면 100% 밀어주고 그럴것 같진 않습니다.
게다가 박아제님도 저랑 나이가 비슷하신것 같은데(현재 제가 중3)입니다.
프로게이머 분들 중에서도 대학 들어가시고(혹은 고등학교 졸업 후에) 게임을 시작한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10대에는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상태인데다가 더불어 학업에 가장 열중해야할 시기입니다.
게다가 shine님께서 조용성 선수와 같은 케이스가 있으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솔직히 극소수입니다.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요.
지금 아제님께서는 조금더, 아주 조금더 다시한번 생각해보시는게 어떨지...
세츠나
03/09/11 12:24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면 타짜 만화를 봐도, 완벽하게 시작 전부터 한판을 다 짜놓고 전부 조작하고 바꿔치기하고 "올인!" 하죠. 근데 그래도 가끔 패배하죠[...]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거나 -ㅅ-;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말라~ 라고 하는 얘기가 있지만, 결국 삶은. 인간을 속인다는 얘기겠죠.
03/09/12 18:19
수정 아이콘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글이군요. 저는 이 글에 올인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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