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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07/02 00:50:29
Name OrBef
Subject 평등하지 못한 재능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모든 시대 모든 사회에서는 언제나 지배 이데올로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지배 이데올로기에서 굉장히 중시되는 분야는 그 사회의 소득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입니다.

진시황은 낚시를 즐기지 않았다고 하죠. 신하들이 재미삼아 한번 해보라고 하니, '낚시는 저 호수에 있는 물고기를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저 호수는 본래 내것이다. 이 천하 모두가 내것인데 왜 굳이 저 물고기를 다시 내것으로 삼아야 하는가?' 라고 말했다고 하죠.

지금 보면 유치하기 짝이없는 말이지만, 저정도로 어이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아직도 많을 뿐더러, 우리가 믿고있는 현재의 이데올로기도 기반을 파고들어가보면 취약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오늘 제 발제는, 현대 민주사회의 신화인 '공정한 경쟁'이란 것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이 다릅니다. 누구는 현명한 부모에게서 좋은 조기교육을 받고, 누구는 고아로 자라납니다. 누구는 부자로 살면서 좌절이라고는 겪어보지도 않지만, 누구는 점심 한끼 사먹을 때에도 손이 떨리죠.

이런 모든 태생적 불평등은 언제나 지적되어왔고 개선해야 할 것으로 당연시 되고 있지만, 사실 이 모든 불평등 중의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타고난 재능의 불평등'은 의외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굳이 이것을 으뜸이라고 놓은 이유라면.. 재능 분포의 스펙트럼이 기타 모든 스펙트럼의 넓이를 상쇄할만 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를 구하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재능의 불평등이 인생이 모든 단계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다는 점만 동의해주시면 이후 토론에는 아무 지장이 없겠습니다.

현대의 분배 철학자로서 양대 산맥은 아무래도 롤즈와 노직이라고 봅니다. 두분 다 계약론에서 출발하여 정의로운 분배방식을 추론해 냈지만, 두분의 결론은 완전히 반대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지요. 롤즈교수는 거의 중국의 수정 사회주의(물론 자기들이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입니다)에 가까운 결론인 반면, 노직은 완벽한 자유 방임주의를 도출해 냈습니다.

이 두분이 가지고 있는 전제의 가장 큰 차이는, 개인의 타고난 재능을 그 개인의 것으로 보느냐 아니면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의 일부로 보느냐라고 생각합니다. 롤즈는 자신의 계약론을 전개하면서 '정의로운 분배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태어날 지 모른다는 전제하에서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라는 주장을 폈습니다. 똑똑한 사람일지, 부자의 자식일지, 재능도 없고 연고도 없는 천애고아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정하는 룰이야 말로 포커룰처럼 공평한 것이라고 본 것이죠. 반면에 노직은 재능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인성의 일부를 형성한다고 보았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인간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개체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공격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당연히 가장 농구 잘하는 마이클 조단이 경기 재미있게 본 100만관중에게서 막대한 돈을 벌여들이는게 맞는거죠.

분명,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시간 뿐입니다. 그 시간을 잘 활용하고 싶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그렇지 못합니다. 아니 극소수의 인간이 압도적으로 잘 활용한다고 보아도 무방하죠. 이러한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불러오는 결과의 차이.. 이것은 하늘이 선택한 사람들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몫일까요 아니면 거액의 유산을 받을 때 상속세를 물리는 것처럼 사회에 어느정도 환원해야 하는 것일까요? 여기까지가 제 발제입니다.

ps. 단순하게 생각하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많은 소득을 올릴 것이고, 소득 누진세법이 잘 집행된다고 전제하면, 이미 그런 재능의 결과물은 일정부분 사회에 환원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러한 환원이 정당한지 그른지에 대해서 원론적인 토의만을 하고싶습니다.

ps2. 스타 비관련 토론물이지만, 한페이지에 한두개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해서 올립니다.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면 자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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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추억
05/07/02 01:57
수정 아이콘
음..일단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은, 기회의 균등의 이야기가 아닐까합니다. 링 위에서 1:1로 맞붙는 복싱처럼, 외부요인을 배제하고 너네둘의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싸워라..가 맞는 말일 겝니다.

그리고...상속세라는 것은, 부모의 재산도 사회시스템안에서, 시스템덕분에 이루어 낼수 있었던 것이므로, 어느 정도의 몫은 사회시스템의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걷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가 있으나 없으나 유전이 가능한 재능들에게서, 상속세를 받아내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재능들이 유전되는데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말이지요. 다만, 후천적 재능들이라는 것들은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나..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사회가 있으므로 해서 얻을수 있었던 이득은, 사회가 그 이득에 공헌한 만큼의 환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먹고살기힘들
05/07/02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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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타고난 재능이란 것은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니라 쉬운 길을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지도란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좋은 지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찾을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 됩니다.
이와 반대로 아무리 알아보기 힘든 지도라도 찾아보고 지도를 수정하면서 지도에 나온 목적지를 찾아간다면 분명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재능이란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똑같은 노력을 한다면 분명 재능이 높은 쪽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다른 두 지도라도 지도에서의 목적지가 같듯이 최종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쉽고 어렵고의, 혹은 시간이 덜걸리고 더걸리고의 차이일 뿐...
라구요
05/07/02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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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네요..

평등은.... 절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것입니다..
전인류의 머리속이 포맷되더라도... 또 다시 악순환의 연속일뿐..
브릴리언스
05/07/02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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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생각나네요.

여러분 능력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것을 뭐라고했죠~~~

"공산주의요~"

이게 중요한게 아니라...
진짜 재능은 천재성이 아니라 인내와 끈기죠.
세상에 천재는 많아도 노력가는 적죠.
카탈리
05/07/02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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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란건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평등이 존재하는 척 할 뿐이죠
05/07/02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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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기회의 균등를 시키는거쥐.. 사람들을 똑같이 만들어버리는게 아니죠?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가정까지 들어간다면 돈이라는건 바로 그 기회의 대상입니다.. 쉽게 말해서 민주주의+자본주의란 돈을 가질 기회를 균등하게 준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기회의 균등의 정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100미터를 빨리 달리는 경기를 한다면 여기서 기회의 균등이란 무엇일까요? 개인의 능력차나 훈련을 획일화하는게 100미터를 빨리 달릴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걸까요? 100미터를 빨리 달릴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건 출발선을 같게 하는겁니다... 돈을 가질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곳에서 돈을 미리 준다는건 100미터 경주로 얘기하자면 몇 10미터를 미리 줘서 출발선을 앞당긴것과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왜 돈에 대한 페널티와 능력에 대한 페널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얘기가 될 것이고 밑의 내용은 이와 관계없이 능력별로 페널티를 주는 좋은 예가 있어서 하나 들어봅니다.. 혹시나 제 주장의 논지와 혼선을 빚을수도 있어 밑에 따로 두니까 제 주장과 상관없이 읽어보세요^^


능력별로 페널티를 주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이것 역시 재밌는 주제입니다.. 위에서 예를 들었던 100미터를 빨리 달리는 경주에서도 능력별로 페널티를 줄 수도 있죠? 바로 경마가 그 예입니다...(비록 100미터는 아니고 1000미터쯤 뛰긴 하지만요^^) 말의 능력에 따라서 다른 페널티를 줍니다.. 이런 페널티가 사회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아마도... 그 사회에서 경쟁자가 없을만큼 너무 뛰어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경쟁에 흥미를 잃고 능력 향상에 노력을 안 할지도 모릅니다... 이럴때 페널티가 효과가 있을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경쟁을 다시 하게 만들어서 노력하게 하여 훨씬 더 능력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사회에 더 도움이 될수 있겠지요? 그밖의 어떤 장점들이 있을까요? 저는 이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Ms. Anscombe
05/07/02 11:09
수정 아이콘
간단히 첫머리를 달면, '낚시는 저 호수에 있는 물고기를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저 호수는 본래 내것이다. 이 천하 모두가 내것인데 왜 굳이 저 물고기를 다시 내것으로 삼아야 하는가?' 를 보고, '오, 꽤 생각이 있군'이라고 봤는데, 글쓴님의 평가와 진시황이라는 맥락을 보니 의미가 확 달라지는군요.

뭐, 저같은 경우는 이 말을 보고 맹자의 '오십보백보 일화'가 떠올라서 그랬습니다. 소유라는 게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말이죠.(물론, 소유란 하나의 '제도'입니다.)

롤즈나 노직의 이론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그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선, '재능'이 무엇인지가 분명히 밝혀져야합니다. 매우 좋은 신체적 조건을 말하는 것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모차르트의 음악적 감각을 말하는 것인지(이것조차 약간은 신화가 덧붙여져 있죠), 폰 노이만 같은 이의 말도 안 되는 기억력을 말하는 것인지, 등등.

3살때, 무시무시한 질문으로 부모를 놀라게했고, 학위 하나 없이도 대학 교수가 된 솔 크립키 같은 경우는 '천재가 있긴 있네'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역사상 그런 예들은 많죠.

그렇긴 하더라도, 그런 천재란 전체적인 견지에서 볼 때는 매우 소수이기 때문에 '천재로서' 대접을 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또한 그 사람들의 업적을 단지 '타고난 재능'으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죠. 예컨대, '외계인'이라 불리는 페드로 마르티네즈(다들 아시겠죠)는 기자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할 뿐, 그렇게 되기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능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사후적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님의 의도와 생각에 대해서는 동감합니다. 다만, 평등을 재능(보통 타고난다 표현하는)과 관련지어 말하기 위해서는 재능의 개념이 분명히 해명되어야 한다는 점을 우선 지적했을 뿐입니다. 재능의 타고남이라는 개념은 논란을 일으킬 수 밖에 없죠. 재능의 불평등이 보통 논외의 대상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합니다.

1. 가시적인 사회 구조의 영향력 밖에 있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요즘에야 유전자니, 뭐니 해서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을 전부 파악할 수 있고, 혹은 특정한 능력을 지닌 인간을 생산할 수도 있다는 믿음도 생겨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제대로 검증되었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연구가 있기 전까지는, 유전에 의한 재능이라는 것은 밝혀지기도 어렵고, 특히나 신체적인 유전이 아닌 경우에는 명백히 '유전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반면, 좋은 환경이나 높은 소득과 같은 사회적인 환경의 경우엔 단지 운이라고 넘기기엔 인간들의 사회 구조와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죠. 그것은 단지 우연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이 집에서' 태어난 거는 우연이지만, 이 집에서 태어나서 '이러한 조건에서' 생활해야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겠죠.

그렇기 때문에, 재능의 불평등보다는 환경의 불평등, 조건(재능이 아닌)의 불평등이 좀 더 강조되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2. 앞서 언급한 바대로, '재능'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합니다. 어쩌면 '난 A를 하는데는 타고나지 않아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A를 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그것을 하기 싫다는 것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정말로' 재능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 그런 사람을 '젬병이다'라고 하죠. 문제는 아주 가시적인 경우, 예컨대 제가 체조 선수가 될 수 없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구분선이 분명치 않다는 점입니다.

이는 두 가지 문제의 해명을 필요로 합니다.

1. 재능이 인간 삶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재능(사회적 조건 말고)이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면, 우연적 요소로서의 재능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이고, 결국 인간들의 삶은 '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가 됩니다. 문제는 앞서 지적한 바대로, 이것이 어느 정도는 입증되거나 해명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본래성의 문제와 관련한 복잡한 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겠죠.

2. 1에서 지적한 바대로, 우리가 재능이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의 우연성에 대해 운에 맡기기로 '합의'할 수도 있습니다. 즉, 그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 것이죠. 소위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조작되지 않는 '순수한 조건'이라면 말입니다.

글쓴님의 말에서 '재능'이라는 말은 사회적인 조건과 타고난 성질이 혼합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견지하는데,

1. 사회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분명히 평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히 똑같은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합니다.(어렵다는 것은 압니다) 공장과 같다, 인간적이지 않다며 몸서리칠 분들이 계실지 모르나, 저는 그것이 진정 '공평'하다고 봅니다.(궁극적으로는 양육 활동도 가족의 터울에서 벗어나야겠죠) 제 모델이 급진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조건이 공평해야 한다는 것은 평등의 제1조건입니다.('평등'이란 단순히 '같은 조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평등을 하나의 조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평등'을 우리가 괜찮다고 합의한 것으로 본다면, 같은 조건이어야만 평등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2. 소위 타고난 재능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가시적인 부분이 아니라면 논란을 삼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1에 언급한 사회적인 조건 말고도 불평등이 있다면 그것은 신체적인 차이일 수 밖에 없습니다. 특정한 신체적인 결함이 일반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불리한 조건을 형성한다면, 그것에 대해 다른 출발점을 주는 것은 옳다고 봅니다.('일반적으로' 라는 말을 쓴 이유는, 키가 작은 사람도 농구할 권리가 있으니, 평균 신장이 작은 팀에게 '10점'을 주고 시작하라, 라는 황당한 주장이 있을까 해서입니다. 키가 작은 사람은 '농구를 안 하면' 되겠죠. 중요한 것은 대체적인 기회입니다) 재능이라는 것은 입증되기 어려운 부분이죠. 만약 유전자 같은 것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냥 '동일한 유전자를 갖는 것은 어떠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논의를 정리하면,

1. 글쓴님께서는 '타고남'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주어짐'과 신체적으로(육체적이 아니라) '주어짐'을 혼합해서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회적인 것과 신체적인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고 보며, 전자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더 중요함'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더 분명함'의 차원에 놓여 있습니다. 재능의 개념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이죠.

2. 앞서 언급했듯이, 재능의 불평등을 말하기 위해서는 재능의 개념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사회적인 조건의 불평등에 비해 재능의 불평등은 그 의미가 모호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조건이 재능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재능이 사회적인 조건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는 것이지요.(물론, 여기에서 '재능'이 얼마나 모호한 의미인지가 드러나지만) 재능의 개념이 분명해지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이야기하는 것 또한 의미가 없습니다. 가시적인 의미에서의 재능(앞서 말한 '신체적인 다름으로 인한 일상적인 기회의 박탈 혹은 결핍)의 경우에는 충분히 평등의 차원으로 포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상이 제 의견이었고,

한 마디 드리자면, Discussion 란을 따로 마련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 글을 써서 리플을 다는 것이라면 모르되, 댓글을 통한 의견 나눔이라면, (특히나 이런 복잡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단순한 단상을 적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그런 느낌을 적는 것, 용인할 수는 있는데, 그런 한 마디로 불필요하게 댓글이 쌓이는 것이 싫기 때문에.(걸러내기가 귀찮아지죠)
05/07/0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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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추억님/'재능의 상속에는 사회로부터 빚진 것이 없기 때문에 환원할 필요가 없다' 대단히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껏 한번도 그런 방향으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좀 더 생각해 봐야 커멘트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땀

먹고살기힘들다님/그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뭐라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긴 합니다만, 쉽게 볼 수 있는 예로서.. 모든 종류의 프로스포츠를 보면 1군과 2군 선수들 간에는 분명히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선이 존재하죠. 일반 사회생활에서는 성공의 루트가 보다 다양하고 우연성에 많이 영향받기 때문에 그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또하나의 필요조건으로 돌파력과 인내심이 중요하긴 하지만, 재능 역시 그렇다는 거죠.
05/07/0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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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구요님/평등하지 않으면 반드시 '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평등 또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다만 현존하는 불평등의 모습이 어때야만 가장 올바른 불평등일까 하는 질문은 항상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브릴리언스님, 카탈리님/ 대체로 동의합니다. 다만 근대 이후 전반적인 인류사회의 흐름이 비교적 꾸준하게 평등의 확대로 향해왔다는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그래야 올바른 것이냐에 대한 것은 위에 적었듯이 아직 저도 결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해보려던 것도 같은 맥락의 일부이구요.
05/07/0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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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une님/민주주의는 기회의 균등을 부여하죠. 다만 제가 굳이 신화라고 말씀드렸던 것은, 기회 균등이라는 캐치프레이즈 뒤에 숨어있는 '기회가 균등하니 너도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어' 라는 말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맞지 않을 뿐 너도 다른 분야에 재능이 있을거야' 라던가, '노력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래' 같은 말들을 믿느냐 안믿느냐의 차이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능력에 따른 페널티라는 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어하고, 경쟁에서 이기고 싶어합니다. 물론 경기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승리의 맛이 짜릿한 것이죠. 능력(이렇게 되면 제가 이야기하는 선천적 재능보다 좀 광범위해지는군요)에 따른 페널티보다는, 능력으로 얻어낸 성과물을 조금 더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라고 (내심) 생각합니다만, 확실하지 못하기에 여기서 발제했습니다 ^^
05/07/0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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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Anscombe/우와 너무나도 긴 리플이군요. 시작하기 전에 반 농담의 질문입니다만, 아이디를 미즈 앙콤으로 읽으면 되는건가요? 갑자기 궁금해졌습니다.

최종적으로 의견을 달아주셨다기 보다는 제 발제의 불명확한 부분들을 지적하신 것으로 보이기에 그에 대한 답변을 우선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재능은 굳이 천재적 재능을 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힘들기에 2가지의 예를 들겠습니다. 농구할 때 183센티의 키가 181센티의 키보다 약간 더 유리한 것도 하나의 재능이고, 수학 공부할 때 초당 2200 플롭의 계산능력을 지닌 학생이 초당 1900 플롭의 계산능력을 지닌 학생보다 유리한 것도 재능이라고 봅니다. 물론 동등하게 태어난 개인이 노력을 통해서 성취한 (신장이든 계산능력이든) 것은 제외합니다. 같은 노력을 해도 차이가 나타나는, 선천적인 경우에 한합니다.

선천적 재능이 논외가 되는 이유로 2가지를 들어주셨는데요, 첫번째의 글을 보면 앙콤님께서는 신체적이라는 단어를 약간 저와 다른 의미로 사용하시는 듯 합니다. 신체적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주어진 것을 제외한, 개인에게 내재한 것을 의미하는지요? (그렇다면 제가 말하는 선천적이라는 단어와 같은 셈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고 정신/신체에서 말하는 신체라면..앙콤님께서는 신체적인 차이는 명백하다고 보시지만, 지적인 재능차이라던가 감성적인 재능차이는 비교적 덜 인정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체적 재능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이유는 사실 그것이 스포츠라는 '승부'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 재능의 차이가 비교적 불분명한 것은 저런 극단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발현 기회가 적기 때문이지, 그 차이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바둑을 예로 들죠. 굳이 천재기사와 일반인의 차이를 들지 않더라도, 같은 조건에서 배운 두 사람의 바둑 실력은 정확히 자기 한계까지만 늡니다. 같은 책, 같은 선생, 같은 기원에서 배워도 한달 내로 차이가 나타나고, 그 차이는 극복되지 않습니다. 다만, 앙콤님 말씀처럼 재능이 정확히 인간 능력의 몇%까지 영향을 끼치는지 논증할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재능에 대한 두번째 언급에 대한 대답은 대부분 맨 위 문단(인사말빼고)에서 드린 셈이 되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빠진 부분을 보충하자면,

>>재능이 인간 삶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 이것이 어느 정도는 입증되거나 해명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본래성의 문제와 관련한 복잡한 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겠죠.<<
-> 동의합니다. 저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정량적 데이터 없이 발제를 한 것에 대해서 인정합니다. 변명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를 많이 보면서 살아왔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분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 당연히 동의해 주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굳이 이것에 대한 백업 자료를 마련하지 않은 것은 그때문입니다. 제게 다행이었던 것은, 앙콤님 이외의 분들께서는 대체로 그 부분에 대하여 동의하시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제대로 토론하려면 그 부분에 대한 추가 논증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겠습니다. (근데 지금으로서는 마련이 불가능할 듯 하네요. 고민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라서요)

>>1에서 지적한 바대로, 우리가 재능이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의 우연성에 대해 운에 맡기기로 '합의'할 수도 있습니다. 즉, 그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 것이죠. 소위 타고난 재능이라는 것이 인위적으로 조작되지 않는 '순수한 조건'이라면 말입니다.<<
-> 이 부분이 제가 논의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위 말씀은 결국 어떤 주류세력이 비주류세력을 압박해서 나온 결과가 아닌 이상, 완전한 우연성에 의한 것이라면 이런 불평등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앙콤님 주장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저도 개인적으로는 약간 저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만, 우연의 결과라서는 아니라 결국 그 재능이라는 것이 제 실존의 일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미래소설류에서 흔히 나오는 두가지 사회가 있죠. '멋진신세계'에 나오는 것처럼 능력에 따라 완전히 불평등한 사회(및 그것을 합리화시키는 끊임없는 세뇌), 반대로 '제목까먹음 ㅠ.ㅠ'에 나오는 것처럼 평균치를 웃도는 개인들에게 수술을 통한 능력의 평준화를 행하는 사회. 둘 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질문을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1. 사회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분명히 평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완전히 똑같은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합니다.~~~~'평등'이란 단순히 '같은 조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평등을 하나의 조건으로 보는 것입니다. '평등'을 우리가 괜찮다고 합의한 것으로 본다면, 같은 조건이어야만 평등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왜 우리는 '평등함'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도덕적 근거를 제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간 사회는.. 대단히 엄격하게 제어하지 않으면 불평등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공평한 조건이 잘 갖추어지는 사회는 그만큼 개인의 자유가 제한된다는 뜻이죠. 앙콤님은 자유와 평등(공평이라고 해도 좋습니다)에서 상당히 평등쪽으로 기울어진 분이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 앙콤님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2. 소위 타고난 재능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가시적인 부분이 아니라면 논란을 삼기가 어렵다고 봅니다. ~~~~ 만약 유전자 같은 것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분이 계시다면, 그냥 '동일한 유전자를 갖는 것은 어떠냐'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 동일한 유전자는 일란성 쌍동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부류의 인간이 선천/후천의 여러 성질에 대한 연구자료로 종종 인용되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제가 선천적 재능과 유전자를 동일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발제 글에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는 표현을 굳이 한 것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얻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지, 재능이 유전자에 써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요즘 좀 유행하는 'DNA 에 다 써있지'류의 명제를 신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원래 여기까지 쓸 생각이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끝에 앙콤님의 주장이 있더군요. 온라인으로 쓰는거라서(노트패드에서 이쪽으로 카피가 안돼요ㅠ.ㅠ 도대체 왜!) 바로 덧붙이겠습니다.

>>1. 글쓴님께서는 '타고남'의 개념을 사회적으로 '주어짐'과 신체적으로(육체적이 아니라) '주어짐'을 혼합해서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회적인 것과 신체적인 부분을 구분해야 한다고 보며, 전자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더 중요함'의 차원이라기 보다는, '더 분명함'의 차원에 놓여 있습니다. 재능의 개념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것이죠.<<
->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재능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건 보다 광범위하게 그냥 능력이라는 범주로 분류되어야겠지요. 이부분이 불명확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2. 앞서 언급했듯이, 재능의 불평등을 말하기 위해서는 재능의 개념이 분명해져야 합니다. ~~~ 가시적인 의미에서의 재능(앞서 말한 '신체적인 다름으로 인한 일상적인 기회의 박탈 혹은 결핍)의 경우에는 충분히 평등의 차원으로 포괄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 네 분명히 '선천적 재능'이라는 단어는 불명확하기 짝이 없습니다. 고로 그것에 대해 어떤 법적 제도를 마련한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겠지요. 때문에 그냥 원론적인 토론.. 나쁘게 말하자면 토론을 가장한 수다(?)를 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한 마디 드리자면, Discussion 란을 따로 마련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새로 글을 써서 리플을 다는 것이라면 모르되, 댓글을 통한 의견 나눔이라면, (특히나 이런 복잡한 문제와 관련해서는) 단순한 단상을 적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그런 느낌을 적는 것, 용인할 수는 있는데, 그런 한 마디로 불필요하게 댓글이 쌓이는 것이 싫기 때문에.(걸러내기가 귀찮아지죠)<<
-> 제게 하는 말씀이시라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Ms. Anscombe
05/07/02 16:15
수정 아이콘
글이 기니, 그냥 눈에 보이는 것대로 언급하겠습니다. 제 닉은 그냥 복사하셔서 'Ms. Anscombe'라고 붙여 넣으시면 됩니다.

우선, '신체'라는 말은 정신과 육체를 통합한 하나의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데 개입되는 여러 조건들(예컨대, 그를 '대통령이게 하는' 제도의 개입)을 제외한 순수한 인간 존재로서의 '신체'를 뜻합니다. 육체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정신 / 육체' 이분법의 한 측면을 뜻할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서 지적인 재능을 제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체'라고 했을 때 그런 재능이 빠진 것으로 이해하실까 싶어 신체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나름대로 신중히 고른 말입니다.(선천적과 같은 의미로 보시면 됩니다)

재능이 몇%까지 논증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냥 '쟤 재능있다'고 하지, 저 사람의 성과가 어느 정도는 노력이고, 어느 정도는 재능이다라고 하지는 않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평등에 대해서, 평등의 제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느낌에 의해 손쉽게 재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물론, '이곳 커뮤니티에서 얘기하는 것'까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굳이 '가시적'이라는 말을 쓴 것은 '진짜로 눈에 보이는' 의미에서의 가시적이라기 보다는 객관적인 평가와 구분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쓴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재능 개념이 분명해져야 한다고 한 것이죠. 재능 개념까지 포괄하는 평등의 제도가 마련되려면 어느 정도의 기준이 필요합니다. 제도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나아가니까요.(물론, '특정한 시공간'에 적용되지만)

예를 하나 봅시다.

바둑을 두는데 있어서 필요한 재능 A가 있다고 합시다. 비현실적 가정이지만, A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형태로 몸 속에 존재한다고 합시다. a 와 b 라는 사람이 있는데 a는 A가 많고(많을 수록 바둑을 잘 둠), b는 a보다 A가 적습니다. 자, '같은 노력'(이것도 기준이 필요하지만)을 들였을 때 a가 b에게 승리할 가능성은 높아질 것입니다.(사실은 그러한 A의 존재를 상정하는 것도 모순을 안고 있기는 합니다) 자, 여기에 '불평등'이 있나요?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한) A의 존재를 가정했습니다만, 어쨌든 여기에 재능의 차이가 있다고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평등으로 나아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해명이 필요합니다. 즉, "때 183센티의 키가 181센티의 키보다 약간 더 유리한 것도 하나의 재능이고, 수학 공부할 때 초당 2200 플롭의 계산능력을 지닌 학생이 초당 1900 플롭의 계산능력을 지닌 학생보다 유리한 것도 재능이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불평등하네'라고 평가하려면 좀 더 근거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재능은 순수하게 보존된 상태로 있지도 않고, 사라지거나 더 나아지는 경우도 있다는 점 또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노력의 결과이고, 어디까지가 재능의 결과인지가 불분명하죠. 모차르트나 크립키처럼 대단히 눈에 띄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그 구분은 불분명합니다. 해명되어야 할 것은 노력과 재능의 개념이겠죠.

다른 예를 봅시다. 저는 스타크래프트 잘 못합니다. 스타를 잘 하는데 필요한 성분 A가 부족해서 그렇죠. 그리고 저기 A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이윤열 선수가 있습니다. 둘 모두 노력은 똑같이(어떤 의미에서 똑같은가를 말하기란 쉽지 않지만) 했다고 합시다. 자, 이제 어떻게 하죠?

저는 키가 작습니다. 야오밍 선수는 저보다 몇십cm는 키가 큽니다. 1:1 농구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이 경우도 노력은 '똑같이' 했습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이렇게 질문을 던진 이유는 글쓴님의 글에서 '사람마다 재능의 차이가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느 정도 보이는데, 그 주장과 평등에 대한 생각이 잘 접합되어 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단정적인 문장이 이럴 때 필요하죠.. 무지 길고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어떤 주류세력이 비주류세력을 압박해서 나온 결과가 아닌 이상, 완전한 우연성에 의한 것이라면 이런 불평등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이부분에 대해 좀 더 언급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쓴님께서 논의하고 싶으신 부분이라면요. 잘 나와있지 않은 듯 하니, 아직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질문들에 대해서는,

제가 평등의 도덕적 근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글쓴님께서 재능에 따른 평등을 주장하시는 것 같아서 평등 자체는 이미 전제한 것인데요.. 흐흐.. 보통 자유와 평등을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저는 (많이 물러서서 말하면) 평등은 자유가 발현되기 위한 동등한 조건의 형성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봅니다.

'평등해야 하는' 도덕적 근거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자유나 평등의 가치를 믿고, 그것에 합의하고 있기에 전제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지금이 독재 군주의 시대라면야 근거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그렇지는 않잖아요..^^ 제가 평등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 뿐입니다. 저는 단순히 평등을 말하는 게 아니라, 평등해야 한다면 '사회적인 조건이 동등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글쓴님이 유전자를 가지고 설명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것으로 근거를 제시하는 분이 계시다면"이라고 했죠..^^ 이에 대해서는 더 말씀드릴 것이 없네요.

사회적 조건과 선천적 재능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우선 대체 선천적 재능이 어떤 것인지 밝혀주는 문장이 없다는 것이고, 어느 정도 실마리가 되어 보이는 롤즈에 대한 설명에서,

"사람일지, 부자의 자식일지, 재능도 없고 연고도 없는 천애고아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정하는 룰"

사람, 부자의 자식, 연고, 같은 부분은 결코 재능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면 평등의 제도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고, 부자와 연고는 언급한 바, 사회적 조건에 해당되기 때문이죠.

글쓴님의 마음, 잘 압니다. 사람들을 보면 가끔 번뜩이는 재능을 가진 것 같은 사람도 있고, 유난히 이해력이 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불평등의 수준으로 확대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근거들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재능'이라는 말은 사람들은 보고 느끼는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몇 %' 이런 거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핵심적인 개념인만큼 좀 더 정교화 될 필요가 있습니다.

불명확한 것은 맞지만, 사과드리지는 않으셔도 됩니다..^^

흐흐.. 토론을 가장한 수다라면.. 대체 제 지적은 이제 어찌되는 것인가요..--;;

마지막 말은, '물론' 글쓴님에게 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 꼭 집어서 말하기가 싫어서 둘러서 말한거죠."댓글을 통한 의견 나눔이라면"이라는 부분을 지나치지 않으셨다면 좋았을텐데요..^^
항즐이
05/07/0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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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자산론이라는 주제로 후배들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가졌던 생각을 좀 정리해 보겠습니다.

우선, 160cm의 점프력 스피드 보통인 사람이
"왜 나는 농구선수가 될 수 없나요!! 마이클 조던이 되고 싶어요 흐흑"
하는 상황입니다. <상황 1>

또 하나는
개발도상국에서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난 사람이
"왜 난 직업을 가질 수 없습니까?"
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상황 2>

누가 봐도 <상황 1>은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이 <상황 2>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신체적 조건 역시 재능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두 상황의 비교는 한 가지 의미를 줍니다.

바로 "재능 혹은 주어진 자산에 의한 불평등을 조정해야 하는 최소 수준"입니다.

즉, 먹고 산다던가, 기본적인 인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라면 재능에 의한 기회 불평등을 반드시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다운증후군인 사람들에게도 가능하다면 교육과 보건이 제공되어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그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회제공은 모두가 박지성이 되거나 로저클레멘스가 되게끔 해 줄 필요는 없습니다.


자, 이제 문제는 그 "수위"의 조절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조정의 정도를 상당히 높게 잡으면 점점 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가깝게 되고, 그 정도를 자꾸 낮추면 완전 정글에 가까워 집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이 재능인가?"하는 질문보다는
"어느 수준에서 재능(혹은 기타 주어진 기본 자산)에 의한 기회 불평등을 사회가 간섭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많은 의견 교환 있었으면 합니다.
Ms. Anscombe
05/07/02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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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항즐이 님의 좋은 정리입니다.

"특정한 신체적인 결함이 일반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불리한 조건을 형성한다면, 그것에 대해 다른 출발점을 주는 것은 옳다고 봅니다." 요 부분이 상황 2의 부분, "야오밍 선수는 저보다 몇십cm는 키가 큽니다. 1:1 농구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가 상황 1의 부분에 해당되겠죠.

제가 언급한 "일반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불리한"이 항즐이 님의 표현대로라면 "기본적인 인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어느 수준에서 재능(혹은 기타 주어진 기본 자산)에 의한 기회 불평등을 사회가 간섭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은 재능이 무엇인지 분명히 한 다음에 질문될 수 있습니다. 가끔씩 개념의 불분명함 때문에 논의 자체가 흐려지는 경우가 많지요.(사실 제 논의에서는 재능의 개념에 이미 '사회적으로 간섭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긴 합니다만)

어쨌든 좋은 정리입니다.
05/07/03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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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scombe님/들어보셨을 것 같습니다만,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이론 체계에서는 소립자의 정확한 위치&운동량의 동시파악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원칙입니다. 이건 양자역학의 이론을 받아들일 경우, 아주 간단하게 증명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후에 이론이 확장되어 나가면서 철학에도 영향을 끼칠 여지가 좀 있는 명제가 되었는데요, '현실세계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또한 파악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 '파악이 가능하다면 이러쿵저러쿵'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이 가진 재능이 어디까지 선천적 재능이고 어디서부터 사회적 영향력 하에 놓여있는지 파악이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에서, 선천적 재능의 존재를 상정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상당히 취약해질 수 밖에 없다는 앙콤님의 말씀도 어느정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메커니즘으로 생겨나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최종적으로 생겨나는 능력의 차이'만을 대상으로 이야기 해야겠네요.

항즐이님/님 말씀이 보다 바람직한 발제였을 것 같습니다. 지금와서 이야기를 바꾸긴 어려울 듯하니, 나중에 적절한 기회에 다시 발제해 보도록 하지요 ^^ 말씀 감사했습니다.
Ms. Anscombe
05/07/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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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하이젠베르크겠죠..^^
05/07/03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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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정도는 봐주시지
김테란
05/07/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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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겠습니다.
계산능력만 매우 탁월한 자가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그 재능으로 1년에 1억씩 벌다가
더 많이벌고 싶은 욕심에 타임머신을 타고 20세기중반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시대에는 계산능력이란 아무런 돈벌이가 되질 않고,
다른 재능은 없기에 사회로부터 구제를 받습니다.
먹고살수 있을 만큼의 지원뿐아니라
경쟁능력향상을 위한 무료교육등의 지원등도 받습니다.
이사람이 19세기중반에 자신의 선천적재능에 의한 소득을
사회로 환원하지 아니했다면 그것이 타당한 것일지요?
키가 크건, 계산능력이 탁월하건, 100퍼센트 선천적재능이라 구분지을 수 있는
어느 재능을 갖고 있건간에 사회와 무관한 재능은 없습니다.
사회가 그 재능이 능력으로 구현될 무대를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며,
또한 어떠한재능을 요구하는가에 따라
어느 한사람이 매우 유능한 사람이 될수도, 그 반대가 될수도 있는 것이죠.
소득등에 미치는 다른요인들이 재능과 완전히 구분될 수 있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완전히 구분해서 앞서 언급한 타임머신을 탄 사람이
19세기중반에는 사회가 제공한 무대에 대한 최소한의 값만
다른사람들과 큰차이없이 부과하다가
20세기중반에 사회로부터 그 수십,수백배의 보상을 받는것이 타당한것일런지요.

좀 다른 예를 하나 더 들어보죠.
1년에 10억씩 벌며 떵떵거리고 살던 두명의 부자가 있었습니다.
A는 재능에 의해 돈을 벌었기에 세금을 10만원씩 냈으며,
B는 자산증식으로 돈을 벌었기에 1000만원씩 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둘은 모든 자산을 날려버리게 되고,
빈털털이가 되었습니다.
이경우 사회는 둘을 차별해야 합니까?
첫번째로 A는 B보다 세금을 덜 내왔었기에
두번째로 A는 다시 성공할 만한 재능이 있기에
A에겐 먹고살만큼의 최소한만,
B에게는 그이상을 지원해줘야하는것인지요?
재능이란것은 다른요인들과 완전히 구분된다 할지라도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 본성을 자극해서 생산성을 높여야겠죠.
그러나 실물자본역시 생산성과 시장확대에 기여하고 있으며,
경쟁동기부여라는것이 재능만에 한정될 이유는 없는것입니다.
Ms. Anscombe
05/07/04 10:52
수정 아이콘
생산성과 시장확대 같은 문제는 논점이 아닌 것 같고,

예는 옳은데, 그 예를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시는 것인지는 조금 불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재능'이라는 것이 특정한 상황에서 발휘될 때에만 확인 가능한 것이라는 지적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수리 능력'이라는 재능은 '다른 계산 체계를 갖고 있는 사회'에서는 전혀 쓸모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컴퓨터 전문가가 7세기로 날아가면 완전한 무능력자가 되겠죠. 한 마디로, 우리가 '갖고 있는' 재능 같은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오히려 신체에 새겨져 있는(이 표현은 싫지만, 여기서는 적절한 것 같네요) 어떤 특성들이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재능'이 될 수 있을 뿐이죠.
05/07/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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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테란님/ 지적 감사합니다. 그 방식이 바로 제가 첫번째로 언급했던 롤즈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반면에 제가 좀 더 기울어있는 방향은 이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김테란님과 제가 사회생활을 하는데, 김테란님께서는 성공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저는 오손도손한 가정생활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김테란님께서는 고소득자가 되고 전 중산층에 머물렀습니다. 이 경우에 김테란님의 추가 소득을 제 복지를 위해서 사용해야 할까요? 적어도 전 아니라고 봅니다.
일견 관련없어 보이는 예를 굳이 든 이유는, 자신이 타고나는 재능은 자신이 타고나는 성격과 다를 것이 없이, 그 개인의 '존재방식 자체를 형성하는 하나의 요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즉, 항즐이님 말씀처럼 재능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산'으로 볼 것인지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 사람이 가지고있는 '영혼의 일부'로 볼 것인지의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저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타고난 재능(앙콤님께서는 이 개념의 불명확성을 지적하셨습니다만)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각 개인을 정의내릴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혹시 추가 리플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05/07/0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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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Anscombe님/다시 온 김에 차분히 본문과 리플을 읽다보니 추가하고 싶은 부분이 서너부분 생겼습니다.

Anscombe 님 리플 중에서
>>다른 예를 봅시다. 저는 스타크래프트 잘 못합니다. 스타를 잘 하는데 필요한 성분 A가 부족해서 그렇죠. 그리고 저기 A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이윤열 선수가 있습니다. 둘 모두 노력은 똑같이(어떤 의미에서 똑같은가를 말하기란 쉽지 않지만) 했다고 합시다. 자, 이제 어떻게 하죠?

저는 키가 작습니다. 야오밍 선수는 저보다 몇십cm는 키가 큽니다. 1:1 농구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물론, 이 경우도 노력은 '똑같이' 했습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이렇게 질문을 던진 이유는 글쓴님의 글에서 '사람마다 재능의 차이가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어느 정도 보이는데, 그 주장과 평등에 대한 생각이 잘 접합되어 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단정적인 문장이 이럴 때 필요하죠.. 무지 길고 이상해지지 않습니까?)<<

이런 예를 제가 미리 들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저런 질문이 제가 드리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저 문장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런 상황에 대한 도덕적/법적인 명문화된 룰이 가능하다면 어떤 모습일지가 매우 궁금하게 느껴졌고, 그게 애초 발제의 이유 되겠습니다.

>>"어떤 주류세력이 비주류세력을 압박해서 나온 결과가 아닌 이상, 완전한 우연성에 의한 것이라면 이런 불평등을 감수할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보입니다." 이부분에 대해 좀 더 언급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쓴님께서 논의하고 싶으신 부분이라면요. 잘 나와있지 않은 듯 하니, 아직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부분이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선천적 재능이라는 말에서 Anscombe 님 말씀처럼 사회에서 간섭받지 않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즉 우연의 산물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Anscombe 님께서 저런 우연의 산물을 불평등이라고 말하려면 좀 더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위에서 들어주신 예와 같은 상황이 전 충분히 불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등과 불평등의 완벽한 정의를 내릴 수 있다면 아주 깔끔하겠는데, 제 논리력이 딸리는지 정리가 잘 안되네요. 저 상황을 불평등 타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정의내린다면, 기존에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거의 일치합니다. (불평등하지만, 어떻게 할 여지는 없다. 이것은 논의가 지속되면 좀 가다듬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습니다만, 왠지 재능에 대한 논의로 바뀌어서 아직 얘기할 기회가 없었네요.^^)

마지막으로
>>사회적 조건과 선천적 재능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것은, 우선 대체 선천적 재능이 어떤 것인지 밝혀주는 문장이 없다는 것이고, 어느 정도 실마리가 되어 보이는 롤즈에 대한 설명에서,

"사람일지, 부자의 자식일지, 재능도 없고 연고도 없는 천애고아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정하는 룰"

사람, 부자의 자식, 연고, 같은 부분은 결코 재능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니라면 평등의 제도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고, 부자와 연고는 언급한 바, 사회적 조건에 해당되기 때문이죠.<<
네 언급이 처음에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롤즈의 문장에서 첫 구문은 '사람' 이 아니라 '똑똑한 사람'입니다. 재능을 지닌 사람의 한 예를 든 것이구요, 다른 사회적 조건과 함께 써놓은 이유는 이후 노직에 대한 언급에서 '노직은 재능을 예외로 본다'고 언급함으로써 설명이 완결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변 주신데서 다시 생긴 질문입니다. Anscombe 님께서는 평등을 개인의 자유를 발현하기 위한 조건 정도로 생각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완벽한 평등의 구현을 위해서는 양육에 관해서는 가족의 해체도 감수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생식과 양육을 하고 싶어하는 본성을 (마치 살인본능처럼) 올바른 사회를 위해 타도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평등의 구현을 위해서는 자유가 제약된다고 말씀드린 것은, 바로 저런 경우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질문드립니다.
김테란
05/07/04 11:44
수정 아이콘
Ms. Anscombe님,OrBef님//일단 그 예로서 무슨말을 하려하는것인가에 대해서는 충분한 결론은 짓지 아니하였습니다^^. 단지 재능을 구분할 수 있다면, 그부분만큼만은 환원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서 든 예이며, 각자 더 깊이 생각해볼 여지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롤즈등의 사회주의적관점에 한정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재능을 다른요인들과 차별화 하려는 자본주의적관점에 대한 자본주의논리로의 반론으로 생산성등 또한 언급했습니다. 어려운 문제라서 그냥 보고만 있을까 하다가 토론이 한동안 더이상 진전이 없기에 몇마디 던졌는데, 다시 활성화 되는듯 하여 기분좋습니다. 아 그리고 다시 재개된 논의들에 대한 추가리플은 논의가 다시 식어갈때쯤에 달겠습니다.^^
Ms. Anscombe
05/07/0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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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테란 님 // 다른 논의 없으면 전 그냥 문 닫으려고 했는데..^^

OrBef 님에 대해서 쓴 거, explorer 오류로 날아가서 다시 쓰면,

사소한 부분에 대해 언급해 봅니다.

1. 롤즈 관련 인용문에서 '사람'이라고 된 건 드래그 실수 때문입니다. 하고 나서 알았는데 귀찮아서 그냥..--;;

2. 문장이 이상하다는 부분은 단정적이지 않게 쓰다보니 생겨나는 문장의 형태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내용이 아니라) "잘 접합되어 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입니다"보다, '잘 접합되어 있지 않아서입니다'가 훨씬 좋죠?? ^^

3. 관심있는 논의에 대한 글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그 문장 이후에 미래 소설 이야기 외에 분명한 언급이 없었기 떄문입니다.

이 정도고.

부족한 부분은 불평등(더불어 평등)의 개념입니다. 둘 중 하나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1. 불평등이 되는 근거를 제시하거나

2. 새로운 평등-불평등의 개념을 제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 충분히 불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지만, 그것이 왜 불평등인지는 나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야오밍보다 키가 작지만, 그리고 그것이 '농구를 하는데 있어서는' 불리하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것은 '똑같지 않다'이지, '불평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평등이라고 할 때는 어떤 도덕적인 의미를 포함시킵니다. 예컨대, 나는 머리가 보라색인데, 저 사람은 녹색이라고 해서 '불평등'은 아니죠. 제가 보기에는 OrBef 님의 불평등 개념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노력과는 무관하게 불리한 조건을 갖는 것'인 듯 합니다. 불평등 개념이 단지 '불평등해'가 아니라, '불평등하므로 평등해져야 한다'는 함의를 갖는 한, 위의 명제는 좀 더 근거를 필요로 합니다.

제가 든 예에서, 야오밍은 저보다 분명 '유리'하고, 어쩌면 '불평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불평등의 의미가 '평등해져야 함'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면, 제가 질문한 바대로,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허, 제가 '자유의 발현을 위한' 같은 표현을 썼었네요. 제가 다 낯설군요. 그리고 가족 해체의 '감수'는 제 생각은 아닙니다. '감수'하는게 아니라, 사회적 조건을 동등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라고 언급한 것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도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동의하는데, 공장식 양육 모델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더군요. 뭐, 타도해야 한다거나 그렇다고는 보지 않습니다.(전 별로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다만, 좀 더 나은 평등의 조건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죠. 주로, 합리성, 경쟁, 시장원리 좋아하는 분들께 한 말씀 드릴 때 사용하는 논리죠.

안타깝게도 생식과 양육을 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저는 이제 '인간이 아닌' 건가요..ㅠ.ㅠ 본성, 본능과 같은 말은 은유적인 표현으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그 이상을 벗어나면 무의미하거나 혼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살인 본능이 있다고 하신다면, 저는 살인하지 않으려는 본능이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생식의 본능이 있다면, 생식 안 하려는 본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양육의 본능이 있다면, 양육을 싫어하는 본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여기에서 본성이나 본능 같은 개념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성이나 본능은 우리가 규명해 '낸' 하나의 성질이라기 보다는, 더 이상의 '설명의 여지가 없는 것'에 대해 우리가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공장식 사회가 더 '올바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좀 더 동등한 조건을 갖춘 사회라고 볼 뿐이죠.

평등의 구현을 위해 자유가 '제약'된다는 것은 어쩌면 평등과 자유의 개념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한, 필연적입니다. 그 개념들 자체가 갈등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다만, 언급할 것은 자유는 어디까지나 일정한 구속을 필요로하며, 그러한 구속 없이는 '자유'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자유'란 오로지 일정한 조건 속에서의 자유이지, '모든 것이 가능한' 의미에서의 자유가 아닙니다.(예컨대, 우리 인간은 '개'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개일 자유'가 제약되어 있다고 말한다면 조금 우습겠죠)
김테란
05/07/0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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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더 얘기하고 싶은것들을 계속 해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른댓글들과 관련하여 하고픈 말일뿐,
두분의 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18세기경의 근대사회에선 중세로부터 이어져오던 봉건제도에 대한 저항으로서
자본주의는 '균등한기회''공정한경쟁'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수 있었습니다.
당시로선 신분적차별타파를 위해 '누구에게나'가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죠.
허나 현대적 관점에서도 균등한기회,공정한경쟁이
진정 자본주의의 모토인가에 대해선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누구나 경주에 참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균등한기회,공정한경쟁이라 할수 있을까요?
말,사자,토끼,여우 모두 경주에 참가합니다. 그냥 냅둬선 경주가 되지 않겠죠.
현재 예상할수 있는 범위에서 규정등을 두어야 하며 이것이 사회의 개입이자 특히 법에 가깝습니다.
사실 자본주의는 자연,인간의 본성에 기대어 생산성,효율성등을 극대화 시키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자본주의의 혼용형태로서 일견 비슷해보이는 수정자본주의와 사민주의간의
큰 차이도 바로 이점이라 볼 수 있죠.
생산성을 위해 필요한 사회의 개입을 허용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어긋나지 않는다는것이 수정자본주의이며,
함께 잘살자는 원칙하에 경제적으로도 보다 질높은 평등사회를 추구하기에
자본주의의 요소를 도입하는것이 사민주의입니다.

jjune님의 물음에 대해서는 수정자본주의논리만으로도 가능합니다.
일단 경주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들이 굶어죽어선 안되겠죠.
최소한의 사회보장은 그래서 필요하다는데에는 이견이 없을것입니다.
그걸 충족시키고도, 페널티가 필요한 중요한 이유는
경주에서 상위 입상할 가능성이 없다 판단되면 좌절하고 열심히 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리되면 경주가 커갈수가, 즉 시장이 확대되어 갈 수가 없게되죠.
상위권상금을 줄이고, 중하위권상금을 대폭늘려
순위간 격차를 크게두면 되지 않겠느냐 할 수 있지만,
그역시 시장에 직접 손을대는 또다른 페널티일 뿐입니다.
사회구성원들이 순위에 집착하는가 상금에 집착하는가에 따라
개입의 방법이 달라질 뿐입니다.
자유주의에 근거한 자본주의이긴 하지만 자유주의만으로는 공황등을 극복할 수가 없었기에
생산성과 시장확대라는 논리를 앞세워
국가의 투자및 유효수요증대를 위한 사회의 개입등을 허용하는것은
자본주의논리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허나 최근들어 다시 신자유주의가 고개를 들며
자꾸 우측을 강조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느선까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듯 하던 자본주의의
근본적 한계를 드러내는것이라 볼수 있죠.
이점에 대해 제 생각을 정리하자면,
자본주의라는 것은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위한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임에도
이념전쟁의 승리에 도취되어 스스로의 한정된 논리만으로
모든것을 극복하려는 저급한 굴레에서 헤매고 있다 봅니다.
반면 사회주의는 독재라는 부작용을 간과하고,
평등사회가 생산성이 오히려 더 높아진다는 착오에 의해 빚어진
과거의 혹독한 경험을 발판으로 한층더 성숙된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이념이라는 것은
모순을 항상 스스로 인정하며 그 모순이 근본적 결함에 있는 것이라면
과감히 재구성할 수 있는 이념인 것이지
부분적 수정에 의해 극복해보려 몸부림 치는것은 결단코 아닌것입니다.
따라서 이런논의를 할때,
자본주의이기에 자유주의이기에 라는 논거는 의미가 없으며
그 이념이 포함하고 있는 가치들의 합리성을 먼저 논증한 연후에
논증된 가치를 논거로 들고 나와야 하겠죠.
Ms. Anscombe
05/07/0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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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초점이 분명하고, 글이 좀 더 정리가 된다면 좋은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김테란
05/07/0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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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에 대한 감상및 서두가 너무 길었나요?^^
초점을 좀 들고나와 보겠습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합의 할 수 있는 것은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이지
자유,평등의 사회로 국한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와 평등이 어느선에서 조화되어야 하는가,
자유주의에선 자유를 더 강조하고 사회주의에선 평등을 더 강조합니다.
논의는 항상 서로가 보기엔 비약투성이며,
원점에서 맴돌 수 밖에 없습니다.
이글의 댓글들도 그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상대의 관점및 논리로도 충분히 반론을 제기해 주어야하며
보다 문제의 근본에 충실하게 접근하면서 논지를 전개해 나가야 합니다.

이문제를 자유와 평등간의 평행선상에서의 논의에서 어느정도는 벗어나
인간과 사회라는 보다 근본적 관점에서 접근하며 생각해 볼 수 있기에
먼저의 예를 든 것입니다.
또한 자유를 우선시하는 분들이 자유를 앞세워 이문제를 결론지으려 하시기에
두번째 글을 적었지만, 이는 그분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평등을 앞세우는 분이나 자유및 평등의 적절한 조화를 주장하시며
(솔직히 Ms. Anscombe님께선 어느쪽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이문제를 결론지으려 하시는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의 지적을 하고픈 것입니다.
재능자체를 명확히 구분짓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다로 시작한 논지전개가
갑자기 자유,평등 사회일반문제로 붕 떠버렸습니다.
좀더 재능에 대해 인간에 대해 사회에 대해 그외의 여러 요인들에 대해
또한 그것들의 관계에 대해 원론적이며 근본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이문제에 대해 자유와 평등이 개입되며 인정될 수 있는
결론의 한방향은 구체적으로 이리이리 따져보니
이문제에 대해서는 자유와 평등은 이정도 선에서 조절되어야 한다입니다.
한마디로 현재의 논의는 논거와 논의의 결론들이 혼선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재능은 다른요인들과 명확히 구분되기 힘듭니다.
그러나 구분되기 힘들다 해도 불가능하다는 검증이 없다면,
구분되는 재능에 대한 사회의 환원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합니다.
이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가 우선시되야하는 논점이 아니라
명확히 구분되는 재능이 다른요인들과 차별화 될 이유가 있는가등을
다각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이정도면 일단의 초점은 어느정도 분명해 진것인가요?^^
Ms. Anscombe
05/07/04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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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나쁜' 사회를 지향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보통 그런 사람을 비합리적이라 부르겠죠)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것이 더 나은 사회인가'에 대해서 논쟁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최소한 '현 시점에서는' 자유나 평등 등의 가치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심 없이' 그 가치를 받아들일 뿐이죠. 만약 자유나 평등으로 국한될 필요가 없다면(그건 당연하지만), 다른 가치가 무엇인지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우선적으로, 최초에 제기된 문제가 재능과 불평등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기에, 그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고,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사용된 개념들의 불분명한 측면을 좀 더 분명히 할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뭐,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그 이상은 무리고, 그저 '제기된 문제'에 대해서만 얘기할 따름이죠.

제가 보기엔 평등이니, 재능이니, 하는 주요한 개념들을 어느 정도 분명히 하면 간단히 풀릴 수 있는 문제 같은데, 별다른 해명없이 쓰이고 있다는 게 혼동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자유-평등의 관계 문제는 논점을 벗어나 있는 것 같고(다만, OrBef 님의 댓글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 답변하고자 적었을 뿐), "구분되는 재능에 대한 사회의 환원"이라는 말을 좀 더 분명하게 서술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밑에 어느 정도 서술된 것 같기도 하지만)
김테란
05/07/0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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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혹시 기분나쁘신건 아니신지-.-
논의가 본질로 돌아갔으면 하는 기대에서 두글을 적었는데,
제 논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생각의 여지만을 많이 남긴지라
초점이 분명치 않다는 Ms. Anscombe님의 지적이 타당하다 여겨
글 쓴 이유등을 그냥 솔직하게 분명히 밝힌것입니다.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재미있는 주제이긴하지만 어려운 주제라서 저역시 선뜻 개입하지 아니했고,
몇몇분들의 긴 글들을 읽으며 저역시 여러모로 생각해 왔습니다.
재능은 다른요인들과 구분되기 힘들다라 출발한 상태에서
구체적으로 좀더 논리전개를 이어가주셨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갑자기 그부분이 단절되고 자유,평등의 논쟁으로 빗나가기에
좀 아쉽더군요.
재능,자유,평등등의 개념자체에는 별 이견이 없는 듯 합니다.
넓은 의미로 쓰일수 있는 용어들이긴 하지만 그 의미의 폭등도
이미 많이 공유된 상태라 봅니다.
다만 그 가치들이 이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이문제에 대해선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어느가치를 더 강조하게되면 각각 어떤 결과가 예상되는지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 등등이 빠져버린 상태에서
자유,평등또는 그둘의 조화등
이런 단어들이 가지는 사회적 권위랄까
그것만으로 결론내려지는게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Ms. Anscombe
05/07/0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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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창작자보다는 비평가에 가까워서, 다른 글에 대해 교정을 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 글을 쓸만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에 대해 OrBef 님의 글에 대해 덧붙였던 것이고.

제 논지가 재능이 다른 것과 구분되기 힘들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우리가 말하는 '재능'이라는 건(대단히 다른 의미로 쓰이지 않는한) OrBef 님이 제기하신 것과 같은 '불평등'과는 별로 관계가 없어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재능'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거나 불명확해서 경계 긋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따라서 올바른 문제제기, 혹은 분명한 문제제기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 개념을 분명히 하거나, 불평등 개념을 분명히 하거나, 둘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하거나, 혹은 이들 중 둘이나 셋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이런 부분들은 논의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논의 자체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제기한 질문을 분명히 하는 것은 논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선행 조건이지만, 결국 모든 논의는 자신의 질문을 분명히 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자유-평등의 관계 문제는 OrBef 님이 짧게 질문하신 부분을 답변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것이고, 큰 줄기에서 중심적인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저 자신도 그런 문제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습니다.(예컨대, 구조-행위 같은 대립 관계처럼)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고, 약간 초점이 다른 것 같은데 그 부분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지 않은 듯 싶어 말씀 드렸습니다.
Ms. Anscombe
05/07/04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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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밥 먹어야 되는데.. 다만, '환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물론, 대충 알지만), 그리고 '왜 환원되어야 하는지'가 분명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만 덧붙입니다.
김테란
05/07/0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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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은 문제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함께 논의해보고픈 욕심이 앞서니
의도와는 달리 꽤나 주제넘는 지적들로 비쳐지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됩니다.
지켜보면서 이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먼저 밝히는게 더 나은 순서가 아녔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이글에 댓글이 거의 없을때 본문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재능이란게 사회와 완전 떼어놓고는 규정될 수 있는것이 아니고,
다른요인들과 구분된다는것도 매우 힘들다 라는 것였습니다.
결국 재능자체로는 개인별로 다름만을 인정할 수 있고,
사회와 또한 다른요인들과 결부되어서 비로소 불평등으로 표출된다 이리 생각했습니다.
Ms. Anscombe님께서 말씀하신것과 거의 같죠.
그러나 그렇게 생각을 이어나가다보니 불평등하면 불평등을 해소해야지..
재능자체 말고 능력으로 구현되어 얻는 이득을 놓고 적당히 사회로 적당히 환원하면 되겠군..
이런식으로 대략 결론이 지어질뿐, OrBef님께서 제기하신 문제에 대한 답은 얻기 힘들더군요.
단지 재능의 사회환원 운운한다는 그 자체가 좀 무의미한거 아닌가?
이런 생각만 들뿐 그에대한 결론도 나질 않구요^^.
그래서 좀 다른각도로 이문제를 다시 봤습니다.
명확히 구분되는 재능이 있다 치고,
그것은 다른요인들과 어떤 차별성을 갖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죠.
환원되어야 한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으로 보이는 초록추억님의 의견,
사회로부터 빚진게 아니면 갚을 필요가 없다. 이점을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나 상속세라는 것도 사회에 대해 빚진만큼 갚는 것일까요?
일단 상속하면서 사회에게 도움받는것은 없습니다.
또한 재산자체의 사회에 빚진부분을 갚는다는 관점으로 보는것도
무리가 있는 것이, 같은 재산에 대해서 상속이나 증여를 수십번 연달아 한다해도
사회에 갚아야 할것은 끝이 없습니다.
다만 무상이전에 대한 조세이며, 부의 세습을 막기위한 조세일 뿐이죠.
즉 일종의 소득세라 볼 수 있으며, 불로소득으로 보기에 세율이 높고
불로소득과 부의 세습등을 인정하게 되면
자본주의의 경주에서 활력성이 떨어지기에 그점을 보완하기 위한
사회구성원들간의 약속인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때 재능이란것은 상속재산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죠.
재능이 사회로 인해 능력으로 구현되어 얻는 이득에 대한 환원외에도
상속재산과 같은 이유에서 또 일부 환원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말하고 싶네요.
따라서 재능,노력이 완벽히 구분될시 환원되어야 할 것은 재능이며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자유주의에 기초한다는 자본주의의 룰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꽤나 길어졌으니 일단 여기서 일단락하죠^^.

약간 수정하느라 글순서가 Ms. Anscombe님과 뒤바뀌었네요.
Ms. Anscombe
05/07/04 18:44
수정 아이콘
수정한 부분을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네요..(찾았습니다~) 흐흐
김테란
05/07/04 18:56
수정 아이콘
하하 ㅠ.ㅜ ...헌데 이곳댓글들은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없나요? 좁은 곳에 줄줄이 적고나서 막상 등록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수정할곳이 한두군데가 아닌데도 방법을 모르겠네요. 매번 복사 삭제 붙이기 수정 재등록.. 이렇게 한답니다. 컴맹의 비애인가 -.-
Ms. Anscombe
05/07/04 19:20
수정 아이콘
댓글까지 수정 기능 달다가 게시판 만드시는 분들 머리 빠집니다..--;;

농담이고.. 그냥 한 번에 '쓰시면' 되는데..^^ 제 사전엔 수정이란 없습니다.. 오타만이 있을 뿐..
05/07/05 01:15
수정 아이콘
여기가 미국이다보니 제일 논의하기 좋은 시간대에는 항상 잠을 자고 있어요 ㅠ.ㅠ 애로사항이 좀 되는군요.

김테란/초록추억님 의견에서 출발하셔서 내린 결론의 도출까지 대체로 정확한 것 같습니다. 다만, 현대사회의 이데올로기라는 틀 속에서만 정당화되는 논리라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 물론 그러면 안된다는 뜻이 아닌건 아시죠? ^^ )

Anscombe님/님과 자유&평등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긴 한데, 논의에서 많이 벗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다지 흥미 없으신 분야라고 하시니 다음 기회를 이용하겠습니다. 다만, 그동안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한 부분을 하나 찾았네요. 제 개인적으로 '불평등'이라고 할 때, 평등한 상태로 개선되어야 하는 악한 상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Anscombe 님께서는 그냥 조건이 같지 않은 상태(이게 제가 생각하는 그냥 불평등이고)와 불평등(이건 제 맥락에서 개선되어야 하는 불평등)한 상태는 의미가 다른 것이고, 불평등이란 단어를 사용하면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것으로 보시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처음부터 깔끔하게 정리하고 시작했었으면 좀 더 매끄러운 논의가 가능했었을텐데 많이 아쉽네요.역시 님 지적처럼, 개념의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빠르고 부드러운 토의가 가능한 듯 합니다 ㅠ.ㅠ
김테란
05/07/05 01:29
수정 아이콘
하하..그러면 안된다는 뜻이 아니시란것 물론 압니다. 아울러 그러면 안된다는것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다각적 검토를 위함였으며 자본주의논리가 현재 저의 주된 관점은 아닙니다. OrBef님의 발제대로 현실보다는 원론적으로 좀더 생각해보고자 하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정리해서 올리려 합니다.
Ms. Anscombe
05/07/0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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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흥미없다 함은, 두 개념 갖다놓고 너무 큰 얘기만 늘어놓는 것이 싫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불평등해'라고 할 때는 분명한 가치 평가를 함축하죠. 위에 언급했던 것 같지만, 만약 '그런 의미가 아니라면' 다른 의미로 쓴다는 점을 분명히 했어야겠죠. 이건 제가 불평등 개념을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불평등이라는 말의 일반적인 사용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불평등이 단순히 동일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면, 평등이란 동일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모든 조건'이 동일한 경우를 말하게 되겠죠.(보통 우리는 '평등'이란 말을 이런 식으로는 쓰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의 평등은 그냥 '똑같은'입니다)

따라서 분명해져야 할 것은, '어떤 조건'을 평등-불평등의 개념으로 포괄할 수 있느냐입니다. 빙빙 도는 이야기가 되겠지만, 저는 그 과정이 쳇바퀴도는 과정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05/07/0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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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의 개념도 개념이지만 성공의 개념도 정의하셔야 겠군요. 위에서 읽은 성공의 개념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물질적인 부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음... 일단 발제자님이 말씀하신 성공의 개념을 기본으로 두고 말한다면 일반적인 재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소위학창시절이라는 시기가 공통적으로 주어지니까요. 솔직히 안되면 공부라도 해야죠. 뭐... 너무 간단히 얘기했나요?
다름아니라 실은 제가 멘사 회원입니다만 (1997, 5차테스트) 어처구니 없게도 상위 1%임에도 불구하고 공부는 안 해서 초등학교 시절 제가 나머지 공부를 가르치던 친구보다도 돈은 더 못벌고 있습니다. 크... 지금도 또 쉬고 있습니다. 쩝...... 발제자님이 말씀하신 글에 담긴 성공이라는 개념대로라면 그야말로 재능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네, 그런데 전 그렇게 위에서 보여지는 성공은 하지 않았지만 봉사활동은 하고 있습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복지시설 같은 곳에 후원금도 보내고 지금은 사정상 못 가고 있지만 직접 가서 도와주기도 하고요. 옛날에 배우던 수화도 다시금 배우고 있습니다. 냠...(잘난 체 하려는 것 아니니까 너무 재수없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런 저의 입장에서 본다면 발제자님의 글은 사실 쉽게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재능 = 성공, 성공 = 환원, 재능 = 화원 이 세가지의 경우 어느 쪽도 절대적인 공식은 아니다 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제가 특이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05/07/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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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위에 개인적인 생각으로 일반적인 경우에 한해서 얘를 든 것입니다. (참고로 저는 고3 졸업때까지 산동네 전세금 60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4식구 살았답니다. 냠... 그래서 위의 얘기는 저를 기준으로 볼 때 어떤 특정한 이유로 평등한 교육의 기회조차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예외로 한 얘기랍니다.)
환원과 관한 부분은 제가 느끼기에 요즘은 상대적인 빈곤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못산다 못산다해도 저 어릴 때보단 잘 사는 것 같거든요. 물론 너무 심해서 끼니 조차 못 해결하는 극빈층은 누가됐든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재능이나 성공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음... 똑 같은 얘기를 또 했군요. 죄송... (물론 제가 특이할 수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되네요.)
05/07/0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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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테란님 및 Anscombe 님의 의견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의 정리가 필요해서 잠시 쉬고 있으므로, 파란님 덧글에 대해서만 의견 남기겠습니다.

물론 재능있다고 성공하지 않죠. 뭐 저도 잘 압니다. 제 친구중에 가장 눈부신 센스를 가지고 있던 놈이 지금 백수죠. 재능있고 노력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죠. 인생은 운칠기삼이니까요. 다만, 전 전반적인 경향성에 대해서 논하고 싶었습니다.

극빈층에 대한 복지는 일반적인 사회 환원의 수준과 따로 논의해야 하는 이야기라고 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제 발제는 :
상대적인 소득격차가 발생하고, 그 소득격차의 상당부분이 재능의 차이에서 기인했으며, 그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면, 그 격차분을 어느정도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한정지어서 이야기해야할 듯 합니다.
Ms. Anscombe
05/07/0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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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짜증나시겠지만 한 말씀 덧붙이면..

재능이라는 말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결과를 보지 않고 평가할 수 있는 재능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흔히 보는 예가, '쟤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성적이 안 좋아'라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머리는 좋은데'가 재능에 해당되겠죠. 그런데 문제는 '머리는 좋은데'를 어떻게 알아내느냐는 것입니다. '멘사 회원'이라는 점이 재능을 입증해 준다면 오죽 좋겠습니까만(일반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모든 멘사 회원들이 측정 테스트에서 상위 1%의 성적을 거두고, 그 외의 일에 대해서는 젬병이라면, 우리는 아마도 멘사회원들은 '멘사 회원 자격 테스트를 푸는데에 재능이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 모로 혼란스러워 보입니다. 재능이라는 말은. 노력과 구분해서 쓰이고 있는 것 같지만, 가령 이런 사용도 가능함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는 매우 게으른 사람인데, 이것을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게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의지가 근본적으로 부족한(그런 점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어떤 학생은 문제를 잘 풀고, 다른 학생은 못 푸는데, 이것이 집중하려는 노력의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집중력(집중할 수 있는 재능의 차이)에 기인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재능이라는 것을 측정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을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미 재능의 개념을 바꾼 것이겠지만) 그것을 '미리'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은 재능 개념에 속해 있습니다.

자, 좀 더 분명해졌군요. 이제는 소득이 재능의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말의 의미와 그 정도를 측정한다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그런 후에야 '얼마나 환원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논할 수 있을 것 같네요.
05/07/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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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제가 깜빡했군요. 선천적 재능이라는 부분에 대한 제 의견은 이미 철회했습니다. 물론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측정 불가능하다는 Anscombe 님 의견에 동의하기 때문이죠. 고로 발제했던 내용은 '어떤 경제활동에 대해서 동등한 수준의 노력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수준의 성과가 발생할 경우(이것이 능력 - 재능과 사회적 조건의 조합 - 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부분이라고 할 때), 그 차이분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가 아닌가' 정도로 바꾸어야 겠지만, 이렇게 바꾸고 나니 오히려 질문이 더 불분명해지더군요. 해서 내심 이 발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려는 참입니다만, 그동안 논의한 것이 아쉽기도 하고해서 좀 더 생각하는 중이었습니다.

게으름에 대한 Anscombe 님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게으름은 뭔가 극적인 계기가 생길경우 거의 전적으로 극복이 가능하지만(성실해진단 뜻이죠), 멘사문제를 푸는 능력의 상당부분은 자기관리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봅니다.(당장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쏴죽이겠어! 라고 말하면 공부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멘사문제를 다 맞추지 못하면 쏴죽이겠어! 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없죠)
김테란
05/07/0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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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만큼(노력한만큼)가져간다'는 분배원칙이 있습니다.
이 방식이 바람직한 것입니까?
현실화될 수 있겠습니까?
이 두질문은 분명 다른 것입니다.
어떤 원칙의 현실화를 따지고 들자면,
법철학상의, 그리고 각국의 헌법조항들의 많은 부분들이
그자체로는 현실화가 매우 어려운 애매한 것들이 많습니다.
허나 그것들이 왜 의미를 가지게 되냐면,
그것이 바람직하다는 합의 하에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죠.
이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등개념도 계속 문제가 되니 함께 논할 필요가 있겠네요.
위의 분배방식은 사회주의의 그것이며,
개인적으로는 저 방식이 바람직하며,
그 안에 내포된 평등의 의미또한 매우 적절하다 생각합니다.
현 사회주의자(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 사회자유주의라고도 하죠.)들의
평등을 보는 관점또한 님들과 크게 다르지 아니합니다.
현실적으로 적용하기 매우 어려운 원칙을 세우고 있으니,
사회적 평등이란것은 현실에 유동적으로 점진적인 발전을 시켜나가자는 것입니다.
야오밍과의 농구,이윤열과의 스타 대결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문제는 한인간이 가질수 있는 여러가지 재능들을
타인들과 동등한 수준으로 맞춰줄 수 있는 방편들을 모색하자는 것이 아니라,
단지 분배문제일 뿐이기 때문이죠.
대결에서 진것은 분하긴 하지만, 대결을 펼친건 양자의 자유에 의해서입니다.
평등이 이런 자유를 구속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대결로 관중수익이 만원이 생겼다면,
원칙적으로 함께 열심히 뛰었다는 전제하에 5천원씩 나눠가지자는 것이고,
그걸 기준으로 적정선등을 모색해보자는 것이죠.
둘간의 몰아주기내기가 합의되었다면 그것역시 자유이므로 개입할 이유가 없습니다.
현 자본주의에선 어떻습니까? 이정도 능력차이라면 9900:100 혹은 그이상이 아닐지요?
둘간에 이정도 몰아주기가 합의된것입니까?
자본주의라는 허울아래 암묵적합의가 강요되고 있는건 아닌지요?
일단 여기까지^^.
Nada-in PQ
05/07/0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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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 들어와서 리플 읽다가 벌써 지쳤습니다. 꽤나 재밌는 주제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달기도 전에 눈이 아픕니다.ㅜ.ㅜ

역사적으로 타고난 재능에 대해서 분배에 대해서 논의가 되지 않은 이유는 누구도 인간의 재능을 계량화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먼저, 재능이라는 단어는 본문의 취지상 당연히 선천적인 재능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조건에 의해, 즉 교육 등에 의해 조정된 능력은 재주라고 함이 용어법상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평등과 다름은 명백히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면, 여성과 남성은 다릅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의 지위에 선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전자는 재능(선천성 이하 동(同)의미)을 의미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회적 조건 내지 사회적 영향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불평등과 다름의 의미도 비슷하게 이해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다름=불평등 인 것은 아닙니다.
재능의 차이를 이야기 하시지만, 저는 위의 논의에서 많은 경우, 재능을 단편적으로 비교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일례로 저는 야오밍 선수보다 작습니다. 그러나 작은 대신 빠를 수도 있죠. 또, 야오밍 선수만큼 농구를 잘 하지는 않습니다만, 대신 공부를 잘한다던지, 컴퓨터를 잘 다룬다던지 할 수 있는 겁니다.
[사실, 키가 큰 사실에서 농구하기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회 다수자들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에 의한 바가 큽니다. 물론, 리바운드 등 측면에서 키 큰 사람이 유리하지만, 키가 작은 사람도 가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며, 가드라고 해서 농구를 못 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인데 말이죠.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즉, 개인의 재능이 설사 다르다고 하더라도, 또한 그 재능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계량화 해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 재능의 종류가 지나치게 많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둘째, 한 개인이 A라는 재능에서 우위라고 하여도, 그 외 B, C, D등의 여타의 재능에서까지 우위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며, 셋째, 설사 한 부분의 재능의 차이를 개량화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재능의 부분(B, C, D)과의 재능의 차이를 계량화 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택시운전사 아저씨의 운전 능력도 재능이고, 타자속도도 재능이며, 청소를 잘 하는 것도 재능입니다.

사회적 조건은 수정이 가능하며, 가능한 한 평등을 향해서 수정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만, 제 생각으로는 평등이라는 것에 얽매여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Ms. Anscombe님의 리플 중에서 교육도 양육시설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부분을 보았는데, 저는 반대입니다. 그런 부분은 개인적인 자유의 영역에 맡겨져야 하며, 평등이라는 명목 하에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는 없기 때문이죠. 다만, 양육의 여건이 안 되는 이들에게 혹은 맞벌이 가정에게 그런 혜택을 주는 정도의 차원이라면 저도 찬성합니다.
평등은 그것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일정의 조건이나 전제로서 기능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조건으로 작용할 때에도 자유의 영역을 부단히 과하게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결국, 재능이라는 것은 계량화하기 어렵고 상기의 세 가지 이유를 통해서 이를 논증했습니다. 따라서 재능에 의해서 사회적 부의 재분배를 한다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라고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논리 필연적으로 우리가 재분배를 할 수 있는 기준은 결국 결과적인 부의 현(現)분배 상황일 뿐이며, 이를 통해서 현재 우리의 사회적 분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런 상황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군요.
본문을 보면 태생적 불평등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극복되어야 할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인간이 주어진 대로 살아감에 불편이 있고 불만이 있다는 것은 사회적 조건내지는 영향이 인간에 개입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상기의 논의에서 본 것처럼 재능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과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능의 차이(이러한 시각은 상당히 단편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를 극복해야 할 대상 내지는 인간의 삶에 큰 불리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애인의 신체적, 정신적 장애처럼 실제로 현실에서 큰 불리함이 있는 경우에는 장애 자체의 불리는 어쩔 수 없지만, 사회적 조건이나 시각으로 인해서 그 불리함이 커지는 것이므로 이것의 수정을 통해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개인적인 말을 덧붙이면, 객관적 공평 공정 등의 단어에 모두들 홀리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모두들 사회 내지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런 것이 없다손 치더라도 개인의 마인드는 기본적으로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누구도 객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글쓴 분의 토론 태도가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위 리플의 여러 분들의 의견이 모두 일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이 횡설수설이군요.^^;;
Ms. Anscombe
05/07/0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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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in PQ 님이 좋은 정리를 해 주셨네요. 별로 이의를 달지 않으렵니다. 다만, 농구와 관련해서는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은 인정하셔야겠죠? ^^

둘째.. 라고 언급하신 것에 대해서는,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에서 불리함을 갖는 사람의 경우(예컨대 신체적으로 현 사회에서 생존해 나가기에 불리함을 갖는 경우)에 대해서 다른 대우가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첫 댓글에서, "특정한 신체적인 결함이 일반적으로 삶을 살아가는데 불리한 조건을 형성한다면, 그것에 대해 다른 출발점을 주는 것은 옳다고 봅니다."라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교육을 양육 시설에서 행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찬성하는 분, 한 명도 못 봤습니다..^^ 합리성에 대해 반냉소적으로 세워 놓은 모델입니다. 저도 그게 '좋다'거나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완전히 동등한 조건으로서의 하나의 이념형일 따름이죠. 그렇지만 그것이 '자유를 침해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유가 발현되기 위한 조건일 뿐이죠.(이 문제를 여기서 논의하면 안 되겠지만, 한 마디로 말해 '자유는 개인의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주어진 대로 살아감에 불편이 있고 불만이 있다는 것은 사회적 조건내지는 영향이 인간에 개입함으로써 형성되는 것"이라는 주장은 대단히 탁월한 주장입니다. 예컨대, 손이 하나인 존재들로 이루어진, 그들 중심으로 짜여진 사회에서 손이 둘인 존재는 살아감에 있어 대단히 불편함을 느낄 것입니다.(때때로 손이 둘이라는 게 유용할 때도 있겠지만) 그러나 존재하는 현실에서 어떠한 차이가 불리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탁월한 지적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이론적인 토대에 머물러야 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객관성이나 공정성, 공평함이란 우리가 별 무리없이 쓰는 낱말들이고, 그 말들이 의미 없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데올로기라는 말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외적인 개념들의 영향력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관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조건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주관성'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객관적일 수 없다'는 말을, 저는 그저 우리 모두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객관적인 실체(예컨대 고전적 의미에서의 진리나 이데아, 실체 등등)는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네요.
05/07/0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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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테란님/일단 제가 사회주의쪽으로 기울어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전 오히려 국가주도형 자본주의를 지지하는데에 가깝습니다.
일한만큼 나눠갖는다는 표현은 매우 멋지게 사회주의 이념을 표현합니다만, 밑에서 말씀하신 야오밍선수의 예와 조화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천적 재능이던 사회적 조건으로 형성이 되었건 야오밍선수의 농구에 대한 능력은 상대 선수를 크게 앞지릅니다. 관중수입도 사실 야오밍 선수가 경기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 상대선수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럼 야오밍 혼자 농구를 하느냐?'라고까지 파고 들어가면 논의가 엄청나게 본질적인데부터 다시 진행해야할것 같아서 피하겠습니다. ) 따라서 50:50으로 일한시간 대비 동등한 분배는 아무리 생각해도 좀 이상합니다. 적어도 제 생각에는요. 물론 논의를 승자:패자 100:100 에서 출발하는 것보다는 참가자:참가자 50:50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점은 동의합니다.
05/07/0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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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0 -> 100:0 ㅠ.ㅠ
김테란
05/07/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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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하겠습니다^^.
일단 제 논지는 일한시간대비로 나누자는 것이 아닙니다.
노력한만큼씩 나누자는 것이며,
이것이 어느정도 현실화 가능한지 미래에는 어떨지는 다소 별개의 문제입니다.
사실 생산물을 물질적의미로 한정짓지 않고 생산효과전체를 포괄하게되면,
생산물이란것도 현실적으로 계량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하물며, 생산에 기여한 요소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분배문제를 끊임없이 논하고 있고
논해야 함에는 이견이 별로 없으실듯 합니다.
분배원칙이 없다면 재분배 역시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습니다.
다만 동정심에 기대는 한계에 머물수 밖에 없으며,
아직까지도 재분배에 대해서, 많이 번 사람에게 조금씩 거둬서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정도로 생각하는분이 많으며,
그것은 결과적 평등(평등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및
가족과 같은 사회를 지향점으로 삼는 것입니다.
가족사회가 평등하다 보시는지요?
아버지는 뼈빠지게 일하시고, 아들은 놀고먹어도 무방한..
이념전쟁을 겪으며 평등이란 개념은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대한민국및 미국영향권국가들 사이에선 다수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세기 중반및 그이전에 보편적으로 인식되던 평등의 개념을 놓고
이문제를 논하기엔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롤즈 역시 자유주의자이며 그가 말하는 평등은 자유를 구속하는 평등이 아니기 때문이죠.
다만 일하지 않고 마음껏 가져가는 자유는 보장될 필요가 있는 자유가 아니며,
노력한만큼 가져가는 자유를 억압하는 요소들은
적극 제거되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실현하기 위한 평등이란 것이죠.
적어도 평등의 개념에 대한 폭은 어느정도 공유하고 있으며,
원론적으로 이문제를 논하다보면,
적절히 이문제에 맞게 개념설정이 되리라는 제 생각이 틀렸나봅니다.
여전히 평등및 자유에 대한 인식차이가 원론적 논의를 너무 크게 방해하고 있군요.
05/07/05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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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니고 있는 분배에 대한 개념이 자본주의에서 출발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정이라던가 가족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관점을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노력에 비례해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기여도에 비례해서 나누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재분배 또한 '직접적인 생산자가 A 라고 보더라도 실제 A 가 그 생산활동을 행하기까지 직/간접적으로 사회의 영향력하에 있었으므로 사회에게 그 영향력만큼을 환원한다'의 개념입니다. 철회한다고 이미 말씀드렸지만, 애초에 재능에 대해 발제한 이유가 바로 '재능이란 것은 내 의지로 얻어낸 영역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로부터 받은 부분도 아니라는 점'이 제가 갖고있는 사고체계에서 벗어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었구요.
비록 돌아가게 될지 모르지만,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개념 설정을 한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05/07/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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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 조금 이해가 됩니다만, 제가 생각하는 분배방식이 김테란님께서 말씀하시는 결과론적 평등 개념과 이어지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자유를 제약하는 평등 개념일테구요. 만약 그렇다면, 노력과 기여도라는 두 단어가 의미하는 근본적인 차이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김테란
05/07/0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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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Bef님께서 말씀하신 존재방식, 영혼등에 대해선 일정부분 공감합니다.
허나 그런 이유가 소득분배에서 재능이 논의되어선 안되는 이유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논하고자 하는 바는 재능의 영향에 의한 소득에 관한것이며
그것의 분배문제를 논할때 존재방식,인성등을 제어하거나 억압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자본주의및 자유주의를 완전 부정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계량가능한 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어떤 요인에 대해서도 전액 환원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요인이던간에 발현하려는 의지및 자유마저 꺾고자 하지는 않는다는 뜻이죠.
평등의 개념을 결과적으로 놓고 우린 평등을 추구하고 있어 하며
위안을 삼는동안,
재분배라는 명목하에 많은 노력의 결과들마저 부당하게 함께 환원되고 있음에도
재능에 의한 소득은 환원대상에서 빼야한다 하는것은 그자체로 모순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부당함,모순등은 지향점을 달리하지 않는이상 해결되지 못합니다.
이정도는 합의한 상태에서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합니다.
합의가능하겠는지요?^^
05/07/05 18:31
수정 아이콘
네~ 라고 말하고 얼른 다음 논의를 들어보고 싶지만, 일단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평등의 개념을 결과적으로 놓고 우린 평등을 추구하고 있어 하며
위안을 삼는동안,<<
이 부분이 의미하는 것이 이후 진행되는 평등에 관한 논의가 결과론적 평등이라는 뜻인지요? 결과론적 평등은 님께서 말씀하시고 제가 동의했다시피 그다지 탄탄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합의가능할 듯 합니다. 추가로 생기는 의문점은 이후에 다시 달겠습니다. 물론 지금 합의한 사항은 제외하구요 ^^
Ms. Anscombe
05/07/0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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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기 전에 한 마디 드리면, '분배'가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가 조금 불명확합니다.
김테란
05/07/0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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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란 개념을 좀더 발전시켜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일단 결과적으로 맞춰주려는 평등은 평등이라 보기 힘들다
이미 언급한바 있습니다.
롤즈가 말하는 평등이, 현 유럽의 사민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이
개념이 어떤것인지 모르면서
시민혁명이후 20세기초반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인식되던 평등,
과거의 공산주의에서의 평등,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던
낮은수준의 공산주의로서의 사회주의라는 개념의 틀안에서
이문제를 원론적으로 논하기는 힘들 듯 합니다.
굳이 사회주의및 그들이 말하는 평등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역시 전혀 그러지 않고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넓게 보던 개념의 폭 안에 있는 것이며,
단지 방해하던 개념의 틀만 깨고 더 생각해보면 되는 것이죠.
그정도만 합의되면 다시 이문제를 원론적으로 논할 수 있을듯 합니다.
김테란
05/07/05 19:24
수정 아이콘
Ms. Anscombe님 너무 개념정의에만 매달리시는건 아닌지요.토론이 개념정의만 하다 지쳐 끝나겠습니다^^.
분배방식이란 함께 일한 소득을 나누는 방식이라 하면 될까요?
굳이 서로 개념을 따로이 한정시키지 않고 일단 넓게 인식하면서 토론하다보면,
토론중에 그 의미가 몇줄의 정의보다 더 적합하게 설정 되는것이죠.
하긴 자본주의의 틀안에선 분배란게 개념상으론 꽤나 생소한 것이라 봅니다.
그러기에 또다른 지향점과 날개를 달기 위한 노력들이 있는 것이죠.
OrBef님께서 생각하시는 분배방식중 기여도란 개인별 성과에 가깝겠죠.
과연 성과대로 분배되고 있는지에 대해 일단 묻고 싶습니다.
1차적으론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죠.
자본으로 노동을 사는 방식으로 일단 성과와 전혀 관계없이 분배됩니다.
인사고과, 노사대화가 성과에 따른 분배를 위한 방편이긴 하지만
그들만의 또다른 합의중 또한 많은 이해관계가 얽힙니다.
또한 지향점을 성과에 따른 분배로 잡는다면,
노력에 따른 분배로 설정하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현 자본주의의 분배의 원칙은 따로이 존재하지 않는다 봅니다.
다만 시장이라는 큰 원칙하에 모든것이 지배되고 있는 실정이죠.
그러다보니 모순을 극복해보려는 어떠한 노력들도,
항상 시장이라는 너무큰 상대와 버거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원하는만큼 개선되기 힘든것이라 봅니다.
자본주의,시장등을 절대적인 가치라 보는데서 오는 한계죠.
Ms. Anscombe
05/07/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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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토론 자체는 자신의 입장과 상대의 입장을 명확히 하고, 그 과정에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둘은 서로 같은 언어(명목상)를 사용하지만, 문제는 그 언어가 같은 방식으로 쓰이지 않는 데에서 생깁니다. 따라서 자신이 그 언어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토론에서의 발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말하는 개념 정의는 사전에서 하듯, 그런 정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Nada-in PQ
05/07/05 21:01
수정 아이콘
철학자들은 자기만의 언어 세계가 있다고 하죠. 어디서 주워들었는데, 철학자들이 죽고나면 그들의 용어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정리된다고 하더군요. 개인마다 용어법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 토론을 하기에 앞서 항상 전제가 명확하고 서로간에 오해의 여지가 없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개인적인 용어법 보다는 기존의 용어들을 활용해야만 하겠죠. 재능과 재주 라는 단어만도 어감이 다르니까요.

Ms. Anscombe님의 말씀도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저의 생각처럼 "평등은 현실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전제"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런 평등의 개념은 인간의 존엄성 개념과 맞물리면서 실질적 평등을 창조해낸다고 봅니다. 그런 식의 논리의 연관관계에 따르면 태생적 재능 혹은 물리적 장애에 대한 보호와 보장의 차원에서의 상이한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함은 당연한 귀결일 것입니다.
아울러 더 나아가, 태생적 재능의 차이의 인과율적 결과로의 현실적 생활의 불리 뿐만이 아니라, 태생적 재능이 설사 뛰어나다손 치더라도(단편적 비교구조에서) 그가 현실에서 불우하다면 그를 돕는 것이 위의 최대한의 자유보장의 이상에 부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이라는 말을 언급한 것은 많은 경우 사람들이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되려 논의의 전개를 방해하거나 혹은 자신의 논의를 제대로 견지해내지 못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테란님이나 글쓴 분, Ms. Anscombe님은 아니구요.^^) 사실, 또 인간이라는 사회적존재가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의 시공간과 이념을 초월하여 존재한다고도 믿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인간의 이념론까지 들어가면 너무 길어질 듯..여하튼 그냥 그 말을 꼭 해보고 싶어서...^^:

탁월한 해석이라니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거 절 작게 보는 제 친구놈에게 자랑해야 겠습니다. ^^;
Nada-in PQ
05/07/05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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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김테란님과 Orbef 님의 논의에 끼고 싶기도 하지만, 위 리플들 다 읽으려니 너무 힘들어요.ㅜ.ㅜ
05/07/05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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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테란/개인별 성과라.. 김테란님께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간의 성과별 격차라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지급된다는 면을 말씀하시는듯 합니다. 제가 기여도별 지급이라고 한 것은(성과별 지급이라고 해도 됩니다) 그런 개인간의 세세한 성과 추적보다는 직업별 차이, 직급별 차이에 가까운 것입니다. 제가 이공계에 있다보니 결국 세계관도 그쪽 분야에 치중될 수밖에 없는데, 경쟁력 있는 분야의 연구인력/보다 높은 레벨에서 일하는 연구인력/현재까지의 연구성과가 탁월한 연구인력 에게 분배가 집중되는 것이 올바르다고 보고요, 어느정도 그렇게 집행되고 있다고 봅니다. ( 사회가 부패하고 탄력이 없어서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얘기는 일단 접어두죠. )

노력에 의한 분배라는 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법적 구성은 더 일관되게 할 수 있을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굳이 기여도별 분배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1. 이솝우화에 나오는 '성실한 원숭이'류의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고, 2. 실질적으로 노동활동을 행할 경우 확연히 눈에 보이는 개개인의 기여도의 차이를 무시할 경우,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재능을 인간의 실존의 일부로 보느냐 아니냐'와 상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Ms. Anscombe
05/07/05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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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김테란 님 논의가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Nada-in PQ 님의 해석에 '탁월하다'라는(칭찬에 인색한 저 같은 사람이 그 정도로 수식어를 갖다붙인) 것은 저랑 같은 생각이어서였습니다.. 하하.. 사실이긴하지만 농담이구요..^^
김테란
05/07/0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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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인의 기여도의 차이를 무시하지 않는다면 어떨지요?
현재 자본주의를 채택하지 않는 사회주의는 없습니다.
(그들만의 또다른 사회주의는 배제하구요^^)
OrBef님께서 발제하신 것은 재능에 의한 소득이 환원되어야 하는가
환원되지 말아야 하는가일뿐, 완벽히 환원되어야 하는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노력에 의한 대가를 완벽히 채워주려면 다른요인들에 의한 소득부분은
완벽히 환원되어야 함이 맞습니다.
그러나 OrBef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누구나 함께 인식하고 있기에
분배문제에 있어서 최종목적지를 규정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듯이 모든것들을 고려하며,
원칙에 점점 접근해 갈뿐이며, 최종목적지는 있을수도 없을수도
또 생각보다 많이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개개인의 기여도및 경쟁력이란,
비단 재능뿐 아니라 모든요인들이 포괄되는 것이겠죠.
제가 이런저런 이념들의 논리로서 이문제를 논한 이유는
그어떤 다른요인들도 노력과 등가로 보기는 힘들며,
최소한 노력에 따른 대가는 충분히 보장해주는 쪽으로 나아가자.
라는 것에 대한 반론은 신자유주의의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보기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많은 비판들이 있지만,
적어도 사회의 지나친 개입에 의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우측날개로서의 이념적 가치는 있다 봅니다.
허나 본문에서의 롤즈,노직의 예에서 보듯이
상대의 심장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입니다.
신자유주의가 절대적 이념이거나, 사회주의가 폐기되어야 할 이념이기 때문일까요?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어느 한쪽이 절대적가치란 것을 상정해놓기에 발생하는 필연적 충돌이란 것입니다.
김테란
05/07/0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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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완벽히 구현해야 할 그 무언가,
고전적 자본주의가 완벽히 지켜야 할 그 무언가 등 때문에
타이념상의 분배에 대한 논의들은 전면 부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노력외의 요인들에 대해서는 조금씩..
이정도만 합의되어도 이문제에 대한 결론은 나게 됩니다.
허나 이 두이념간에 합의가 불가능한 이유가
단지 재능이란것이 다른요인들과 차별화될 중대한 이유가 있어서일까요?
재능이건 뭐건 생산력에 영향을 미치는 그 어떤것도 부분적으로나마 양보할 수 없기에
분배에 대한 타이념의 논의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것이 아닌지요.
OrBef님께서의 관점이 신자유주의자들의 그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라면
경쟁력,기여도,생산성등을 절대 무시하고 있지 않다 는 한마디로 위의 OrBef님의 글에 대한 답변이 될 듯 합니다.
05/07/06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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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I apologize for using English typing. ( My computer has gone crazy again and doesn't support hangul. I don't want to postpone my reply because it means losing a chance to see your reply today. )
1. All right. I agree that there is no reason to treat natural talent as an exceptional case during discussing about distribution.
2. But I am still worried a little bit about your reasoning, because it seems like that 'partial & jukjulhan redistrubution of a wealth which didn't originate from effort' does not have a logical integrity. ( On the contrary, that phrase seems to have originated from a sympathy, which is a negative way to build a social law. )
3. Even though I worry a little bit as I've said above, I agree to your point as a whole. I will greatly appreciate if you explain why your reasoning is logically sound, especially how that is free from simple sympathy or paternalism.

ps: Ms.Anscombe/I see you are interested in clarifying basic words & ideas to discuss more thoroughly. But please understand this change about point of discussion. After all, meaning of this discussion is to broaden our viewpoint, not to have a strict conclusion.
Nada-in PQ
05/07/06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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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리플이라 멋집니다..하하
저도 써보고 싶긴 합니다만...읽으면서 저의 점점 더 부족해지는 영어실력에 한숨만 나온답니다...ㅠ.ㅠ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외고를 가는 건데 말입니다...^^:
김테란
05/07/06 01:37
수정 아이콘
답변을 독촉하시다니 OrBef님답지 않으십니다^^.
이문제는 노력한만큼 가져갈 자유및 권리와
재능등의 다른요인들에 의해 벌고 쓸 자유및 권리에 대해
어느것을 더 보장해 주어야 하는가로 다시 쓸수 있다 봅니다.
사회약자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만으로 분배문제를 해결했다 할 수 없는게
이것이야말로 결과적평등, 가족사회를 지향점으로 삼는 것이며
일종의 동정심,연대심의 발로이기 때문이죠.
물론 사회유지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반면, 노력한만큼의 댓가를 적극 보장해준다는 것은
롤즈의 말처럼 일종의 보험차원일수도 있겠고,
현실적으로 결국 약자에게의 혜택일 수도 있겠지만,
일하지 아니한 자에게도 돌아가는 사회보장제도로서의 혜택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일할 자유, 노력할 자유등은 있어도
재능이 있을 자유, 많은 재산을 상속받을 자유, 복권에 당첨될 자유등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들이 아니며
결국 다른요인들을 억누르지 않는 범위하에서
노력에 대한 댓가가 최대한 보장되는 것이
생산력증대라는 측면에서도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노력자체가 존중되어야할 숭고한 무언가.. 왠지 이런 인식도 지울수는 없지만,
이점에 대해서는 간단히 생각해서 논증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듯 합니다.
아뭏든 공정한 경쟁을 가정하여 노력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보장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사회정의등의 측면도 있겠고 노동,노력의 숭고함 등도 있겠지만
비교적 쉽게 타당하다 여길수 있는 이유는 노동의욕고취가 아닐까 합니다.
05/07/06 01:44
수정 아이콘
김테란님/
Hehehe, gam sa hab ni da ^^
It is clear to me now. I agree for the most part, but I'll think about that with enough time. Jo eun bam doe se yo ^^
Nada-in PQ님/
Thank you, I feel flirted ;) But I still have a severe difficulty in conversation with those damn Americans T.T
Ms. Anscombe
05/07/06 01:50
수정 아이콘
hhh, Ok.. I've got it..^^
김테란
05/07/06 01:54
수정 아이콘
OrBef님 역시 좋은... 흠..현지 시각이?^^
막상 질문을 접하고 나니,
막연히 노력을 더 우선시 해왔더군요.
그래서 답변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고,
이점 죄송합니다.
그나마 부족하긴 하지만 가시기 전에 답변을 올릴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뭔가 더 정리할 필요를 느끼기에
논의는 좀 더 치열하게 계속 되었으면 합니다.
대신 답변을 독촉하시면 곤란합니다.^^
게다 논리적으로 까지 요구하시면 부담되어서
생각이 턱턱 막히거든요.-.-
앞서도 말한 바 있듯이
전 천천히 논의하기를 원합니다!! 흐흐...
Nada-in PQ
05/07/06 02:20
수정 아이콘
Ms. Anscombe님 "I've got it"의 센스라니...hh
It's intereting. hh
김테란
05/07/06 02:29
수정 아이콘
Nada-in PQ님/ 함께 논의하시고 싶으시면 그리 하셔야지, 뭘 망설이시는지요?^^
다 읽어 보신후에 참여하실 필요 없으며,
현재 진행중인 부분에 대한 자신의 생각등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어차피 필요하다면 좀 더 정리된 형태로 다시 언급될 것입니다.
내일 저녁엔 함께 논의하는 Nada-in PQ님으로 만나고 싶군요.^^
전 이만~
wingfoot
05/07/0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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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봤네요. ㅠ.ㅠ 오늘 저녁 기대하겠습니다. ^^
Ms. Anscombe
05/07/0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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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 wingfoot 님도 오셨네..^^
Nada-in PQ
05/07/06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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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다들 아시는 분인가 보군요..
전 김테란님의 논의가 살짝 무겁답니다...범위가 방대하고...^^;
그리고 어머니가 오늘은 컴터하지 말고 공부 좀 하랍니다...
나중에 할 수 있을런지...다른 분들이 오늘 저녁을 빛내주시길..^^
wingfoot
05/07/0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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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를 구하고 잠시 OrBef님과 김테란님의 논의에 끼어들겠습니다. 한가지 의문이 있는데요, 시장경제 하에서 노력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이부분이 좀 막연하게 이야기되고 있어서 의문이 듭니다.

예를 들어 어떤 노동자가 튼튼한 의자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아니면 튼튼한 의자 만드는 사업을 한다고 합시다. 일은 무지하게 힘듭니다.) 그리고 저기에 다이아몬드를 10분정도 건드려주어 아름답게 커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 두 사람에 대한 사회적 분배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노력에 따른 분배를 할라치면 난감해집니다. 왜냐하면 의자만드는 일보다 다이아몬드 커팅이 훨씬 큰 교환가치(부가가치라고 해도 좋습니다)를 가지기 때문에, 다이아장이(?)는 자신이 사회의 부를 증대시키는데 비해 돌아오는 몫이 불공평하다는 비난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사회의 부를 늘리는데 필요한 기여에 따라 분배할 경우, 다이아몬드쟁이 쪽의 몫이 훨씬 커집니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는 의자장이(?)는 다이아몬드 커팅보다 의자 만드는 것이 (사용가치면에서) 훨씬 사회에 생산적이고 일도 몇배 힘들다라고 주장하면서 불평할 수 있겠지요.

같은 의자장이들 사이에서도 차이는 벌어집니다. 시장경제 하에서는 얼마나 오래 열심히 일하느냐에 관계없이, 힘세고 빨리 만드는 재주를 가진 의자장이가 더 소득이 많습니다. 재능의 차이죠.

요컨대 우리는 도덕적으로는 노력에 따른 보상이 옳다고 느끼지만, 일반적인 시장경제 하에서는 산출물에 따른 결과적 보상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만약 어떤 사회가 사회적 기여가치라는 것을 순전히 교환가치에 놓을 경우, 환투기에 능한 사람이 그 사회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기타등등 이른바 '생산성'을 직접적으로 높이지 않는 방향에서 재능을 꽆피우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몫이 돌아갈 가능성이 생기겠지요. 이렇게 한계수익 생산물(기여가치)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지면, 노동력의 실질적 희생과 노력은 종종 무시됩니다. 그렇다고 노력과 희생에만 근거해서 분배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요. 어떤 노동이 얼마나 사회적 비용이 들고, 사회에 편익을 주는가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불평등한 재능도 주요한 변수입니다. 불평등한 재능(육체적지적능력)과 불평등한 양육및 교육환경에 의해 벌어지는 타인과의 격차는 그 사람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될 경우, 더욱 큰 격차로 벌어질 겁니다. 자본주의의 역사로 미루어짐작해보면 그 재능과 한계수익생산물에 걸맞는 보상이라고 정당화하기엔 너무 큰 차이로 벌어져 가게 될 겁니다.

노력에 대한 대가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사회가 결코 (시장경제에서) 효율적인 사회는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아니, 이말보다는 노력에 대한 최대한의 보상을 하는 사회는 시장경제에 존재하기 어렵다는 게 더 맞을 듯 합니다.
05/07/06 14:20
수정 아이콘
김테란님/김테란님의 현재 접근 방향은, 분배에 대한 기본 원칙에 합의가 이루어져야 재능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저도 그것에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동의를 계속 미룬 까닭에 대해(결국은 김테란님의 분배원칙에 합의를 미룬 셈인데요) 일단 명시해둘 필요를 느낍니다.

리플들을 주욱 돌이켜보면서 알게된 사실입니다. 분배 정의에 관한 논리를 폄에 있어서, 전 최대한 단순하고 최소한도로 적은 수의 기본 전제만 가지고 연역적으로 펼쳐지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더군요. 에티카류의 방식이기도 하고 롤즈 정의론의 방식이기도 하죠. 물론 김테란님 말씀처럼 신자유주의가 상당히 극단적인 사고방식이라는 면에서는 동의합니다. 사회라는 이미 주어진 실체에 대해서, 한가지 이론체계로 그것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어거지 일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저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를 일단 적어두겠습니다. : 저런 방식의 대칭점에 있는.. '상황봐서 적절히' 라는 접근은(김테란님께서 가지고 계신 분배에 대한 개념이 저한테는 이같은 면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굉장히 애매모호합니다. 물론 사회주의도 저렇게 시작하지는 않았죠. 그리고 님의 말씀처럼 혹독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저런 유연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애초에 유연하다는 것은 원칙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도 있는거죠. 때문에 일반인에게 '우리 사회는 이런 원칙을 가지고 운영된다' 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일견 굉장히 헝클어진 이론 체계가 될것 같다는 우려가 듭니다.

저러한 제 성향에도 불구하고, 김테란님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와닿았습니다. 단순한 전제조건에서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사회이론은 근본적으로 인간성의 다양함 중에서 일부만을 근거로 삼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진짜로 세상에 살고있는 인간에게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습니다.

저도 일단 여기까지.
05/07/0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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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foot님/식구가 늘었네요. 반갑습니다 ^^
지적해주신 부분이 실제로 본 논의에서 한동안 붕 떠있던 부분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문제는 실로 복잡하다. 일단은 사회의 건전한 기능을 위해서 노력이라는 면과 기여도라는 면을 둘 다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분배방식이어야 한다.' 정도에 대한 합의만 된 상태입니다. 김테란님께서는 노력쪽에 약간 더 비중을 두시고, 저는 기여도쪽에 약간 더 비중을 두고있지만 다른 한쪽의 순기능에 대해 공감하고 있구요. 아마 저녁에 김테란님께서 유리알처럼 투명한(!) 글을 올려주실 것으로 보입니다. 흐흐
wingfoot
05/07/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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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앤스컴님이 말씀했던 집단 탁아소 쪽(교육을 양육시설에서 행해야 한다에 저는 찬성입니다 하하)에 관심이 더 있지만, 일단은 논의가 멀리 나가버려서, 그건 기회가 되면 또 논했으면 합니다. 일단 김테란 님과 OrBef님은 너무 멀리, 안드로메다로(^^) 나가버리신 상태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더이상 사회철학이 아니라 사회공학에 가까워진 듯 하네요. 일단 늦게 온 벌로 최대한 진도를 따라잡아 보겠습니다.^^
wingfoot
05/07/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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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Bef님/ 네, 반갑습니다. ^^ 미국 계신 분과 원거리 쪽글 대화는 2년 전엔 거의 일상이었는데, 오랜만이군요. 하하..
05/07/0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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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foot님,NADA 님/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는 위 수많은 리플들은 대충 이런 흐름입니다.

제가 본문에서 '사회적 영향력 바깥에 있는 선천적 재능이 있다. 이러한 재능에 의해 탁월한 성과를 거두는 사람의 경우, 평균을 상회하는 초과분에 대해 사회로 환원해야하는거 아닌가' 라는 발제를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Anscombe 님께서 '선천적 재능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명확하고, 측정하기도 힘들며, 최종 결과물이 정말로 그 재능에서 유래했는지를 증명할 수도 없고 등등등.. 불투명한 부분이 너무 많을 수 있다.' 라는 의견을 달아주셨고, 제가 이에 동의하여 '선천적 재능'이라는 부분을 '본인의 의지의 산물이 아닌 외적요인'정도로 바꿀까 말까 하고있는 찰나에,

김테란님께서 '향후에라도 체계적인 계량원칙이 나올 수 있고,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원론적인 토의정도는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포괄적인 분배원칙에 대한 토의와 병행해야지 의미가 있는 것이고, 재능 하나에 대해서만 토의하는 것은 너무 좁을 뿐더라 무의미해질 소지가 다분하다' 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제가 다시 이쪽에 동의했구요. ( 제가 좀 줏대가 없습니다. 흐흐 )

이정도면 대충 흐름을 적은 것 같은데.. 맞나요?
wingfoot
05/07/06 14:44
수정 아이콘
음, 저도 잘 모르겠지만, 대충 맞는 것 같습니다. 줏대가 없으시긴요. ^^;
재능을 계량화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에는 당연히 동의하구요. 다만, 재능이란 것을 '사회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외부효과를 배제한 상태에서 같은 노력을 했을 경우, 같은 재료를 가지고 좀더 빨리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것 또는 같은 시간에 더 나은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약하게' 정의했을 때, 그런 부분은 포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단 재능이라는 것은 결과로 구현되지 않았을 때는 비가시적이고, 노력과 환경이라는 양대변수를 같이 계량화해야하는 지난하디 지난한 개념이기에 지금 상황에서는 대충 '인간들 사이에는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 재능의 차이가 있다' 정도로 느슨하게 이해해놓으면 될 듯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분배의 문제로 나아가지 못할 테니까요.^^ 지금 김테란님과 논의하고 계신건 그러므로 일단 재능의 개념에 대한 문제를 일단 제껴두고, '사회의 분배체계를 디자인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습니다.
Ms. Anscombe
05/07/06 14:48
수정 아이콘
네.. 줏대 없으십니다..흐흐..^^

재능 개념을 강조했던 것은, 그것이 최초의 '주제'였기 때문이고 다른 뜻은 없습니다. 지금의 이야기들은 처음의 문제제기에서는 많이 멀어져 있는 다른 논의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신자유주의, 다 좋은 얘긴데, 이들의 초점은 '아주 큰 틀에서는' 본래의 문제제기와 통할지는 몰라도 맥락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지 말자'라는 뜻이 아니라, 논의 주제를 어느 정도 정리해 주시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 가지 언급하자면, 저는 '단순한 노력'에 의한 보상이라는 말(이라기 보다는 그래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허점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생산성'이 전부..라는 식의 주장과는 다른 이유에서)
Ms. Anscombe
05/07/06 14:56
수정 아이콘
wingfoot 님의 의견과 제 의견이 대략 일치하고, 특히 '사회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외부효과를 배제한 상태에서 같은 노력을 했을 경우, 같은 재료를 가지고 좀더 빨리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것 또는 같은 시간에 더 나은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정의는 대부분 동의합니다.('생산물'이라는 말 때문에 '전부'가 아니었음) 그런데 재능의 불평등을 문제삼으려면 그런 외적 환경이 어느 정도 유사하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만약 외적 환경의 불평등이 재능의 불평등보다 압도적이라면, 재능의 불평등을 논의하는 것은 사실 큰 의미가 없겠죠. 반면 외적 환경의 불평등이 별 영향력이 없다면, 마찬가지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외적 환경의 불평등이 훨씬 가시적이고, 재능에 비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재능의 불평등'을 논의하는 것이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최소한 모든 불평등 중의 으뜸은 아니라는 거죠.

어쨌든, 그건 그런 거고. 이제는 방향과 흐름이 바뀐 듯 합니다.
wingfoot
05/07/06 15:03
수정 아이콘
Anscombe님/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와버렸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앤스컴님 말씀 중 "외적 환경의 불평등이 훨씬 가시적이고, 재능에 비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재능의 불평등'을 논의하는 것이 그다지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는 것은 제 견해와 거의 일치합니다. 사실 제가 주로 관심을 갖는 주제는 재능이 아니라 외부환경의 불평등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쪽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네요. 근데 저녁 때 약속이 생겨버려서 논의를 못 따라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음..-_-
05/07/06 15:20
수정 아이콘
으음.. 사실 논의가 너무 커져버린 느낌이 들긴 합니다. 김테란님의 애초 취지는 분배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면 이후 재능에 대해 논할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분배라는 큰 틀에 대한 논의가 끝나면 재능에 대해 따로 논할 것은 없어보입니다. 2개랑 2개랑 2개를 더하면 6개냐 7개냐를 선생님한테 여쭤봤다가 구구단을 다 공부하게 된 7살의 심정이 이럴까요 ㅠ.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전 즐겁습니다. ^^

말씀하신 대로, 논의 주제를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이미 어느정도 다들 생각하고 계시겠지만요.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생산활동을 통해서 창출해낸 소득을 개개인에게 분배하는 방식을 정의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 무엇인가 하는 큰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일단 각 개개인의 소득 창출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3가지로 분류합니다.

1. 개인의 소득 창출에 대한 의지 내지는 노력
2. 사회적으로 그 개인에게 주어진 소득 창출에 유용한 도구 - 적절한 교육, 좋은 생산 시스템, 훌륭한 팀메이트
3. 개인의 의지 및 사회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운'이라고 보아야 하는 부분 - 선천적 재능, 그날의 날씨, 입학할때는 삼류학과가 졸업할때는 유망학과로 변했다던지 하는 예측불가능한 행/불행.

아시다시피 애초에 제가 하고싶었던 논의부분은 3번항목, 그중에서도 재능이라는 부분이었습니다만.. 이 리플 아래로부터 제안하고 싶은 논의는, 기존의 재능에 대한 논의에서 떠나서,

'1번 항목, 즉 가치를 창출하고자 했던 의지를, 실제로는 1,2,3번 항목의 조합체인 최종 교환가치를 분배하는데 있어 어느정도 중시해야하는가'
'현실적 제약때문에 2번항목의 완전히 공평한 사전 세팅이 불가능할 경우, 2번항목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의 2가지 논의로 바꾸는거죠. 3번항목은 논의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논의하기 너무 난해하기 때문에 빼는거구요. ( Anscombe 님, wingfoot 님과는 달리 전 인생 운칠기삼을 확신하는 쪽이거든요. 두분은 공부하시는 분, 전 제품개발해서 약팔러 다시는 사람이라서 생기는 차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사실 이렇게 다시 정의해보아도 여전히 2번항목과 3번항목은 경계선이 애매모호합니다. 엄밀히 보면 1번항목도 마찬가지죠. 자신은 노력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말로 너무나 쓸데없는 짓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부족하나마 일단 가능한 논의 주제라고 생각해서 올려봅니다. 세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Ms. Anscombe
05/07/06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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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시는 분"이라는 말은 섣부른 추측이 아닐런지..^^ '세 분'이라고 해버리시면 다른 분들이 이야기에 끼어들기가 그렇겠어요..흐흐.. 농담만하고 나갑니다..
05/07/0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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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렇군요. wingfoot 님이 공부하시는 분이라고 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두분이 잘 아시는 듯해서 도매급으로 팔아볼라고 했습니다 허허.
물론 세분(저까지 합해서 4명이군요)에 논의를 한정할 생각은 1그람도 없습니다. 다른분들도 잘 아시겠죠 뭐.
05/07/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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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러다가 대여섯명이서 리플 100을 넘기는 진귀한 현상이 발생하겠습니다. 남들이 보면 리플놀이하는 줄 알겠네요. 어떤 의미에서는 '놀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요.
wingfoot
05/07/0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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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현재 공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에 그쪽 사람이 절반, 기자가 절반입니다..... .
OrBef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새로 토론글을 걸어보시는게 어떨지 조심스럽게 재안해봅니다. 일테면 '우리사회가 지향해가야할 분배방식' 정도의 주제로요. 처음에 글쓴님께서 의도하신바와는 동떨어져버린 감이 있지만, 뭐 어떻습니까. 이문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니까요. 토론꺼리로는 나름대로 괜찮다고 봅니다만... 일단 이렇게 댓글이 어마어마하게 길어져버려선 다른 분들이 선뜻 참여하기도 좀 두려울 것 같고 말이죠^^;;

이제 나가봐야하는데, 밤는게나 돌아올 것 같습니다. 그것도 술에 잔뜩 취한 채 말입니다. 흐흐흐... 그래도 꼭 들어와 볼게요.
Ms. Anscombe
05/07/0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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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사적인 짧은 담화들이 오고가기 때문이죠.. 리플 수는 1위인데, 조회수는 아직 1000도 안 되네요..
wingfoot
05/07/06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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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안->제안
이놈의 습관성 오타는 정말...-_-;;
항즐이
05/07/0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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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 정말 재미있습니다. +0+b 계속하도록 하죠!!
김테란
05/07/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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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계량불가에 가깝다는 말씀들에 대해 한마디 올립니다.
새리플들을 대충대충 읽었기에
무슨논의가 오갔는지 제대로 모릅니다^^.
적절한 댓글일지는 잘 모르겠네요.

여러 이론서등에는 그것이 실질적으로 계량불가능함에도
A가 B에 미치는 영향 2, C에 미치는 영향 3 .. 등의 예가 종종 등장합니다.
더욱이, 계량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인문학상에서의 이러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는
이리 간단하게 A,B,C로 구분되지도 않고
어떠한 인간의 언어로도 어떠한 수학적 수식으로도
사실상 완벽하게 표현할 수가 없을만큼 복잡미묘합니다.
많은 학생들이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물리학의 공식들마저
사실상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 모든것들이 근사식일 뿐이며, 그 모든것들을 총 동원한다해도
특이한 양자의 성질및 불확정성 원리등의 원인과는 별도로
그자체의 근사식및 근사표현이라는 한계때문에
완벽한예측은 되질 못합니다.
또다른 근사 혹은 더 가까운 근사예측만 얻어질 뿐이죠.
그럼에도 이러한 단순화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관계의 원인및 본질규명등의 가능성과 단서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분석들이 위에서도 언급한바 있듯
원칙및 방향성등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계량불가능이 판명되더라도 구체적적용자체가 가로막히는 것도 아니죠.
자주 보고 들을수 있는 예로 정신적 피해보상, 일하지 못한 금전적 피해보상등이 있습니다.
전자는 계량자체가 불가능하며, 후자는 대상자체는 계량가능이라 볼 수는 있지만,
일 했다 가정할때, 예측되는 또한 예측 불가능한 수많은 변수들및 미치는 영향등은 계량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즉, 그것들의 평균치도 되질 않는 것이죠.
김테란
05/07/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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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빨랑 다읽고,
100번째 댓글은 제가 찜하겠습니다^^.
05/07/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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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분이서 토론하시는데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 Ms.Anscombe님 답변 잘 읽었습니다. 근데 멘사 회원님들 중에는 저처럼 머리만 믿고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 반면 제가 말한 일반적인 형태의 사회적 성공을 거둔 분도 많이 있답니다. ...멘사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의 재능은 좀 논리적인 비약이 있으신 듯 냠...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최소한 기억력이든 공간지각력이든 이해력이든 분석력이든 연산력이든 보통 사람들에 비해선 확실히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네, 적어도 저는 감히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얘기는 사회적인 성공을 결과물로 놓고 본 경우, 과연 이 지능지수라고 하는 것이 과연 성공의 가장 직접적인 재능이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을 놓고 봤을 땐 상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수치화 돼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재능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와 관련 되어서는 7/6 14:34:01 에 올려진 OrBef님의 글부터 7/6 15:03:26 에 올려진 wingfoot님의 글에 정리돼 있는 것 같네요.)
어쩌다가 제가 하고자 했던 말과는 좀 정반대적인 말을 한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제가 하고 원래 싶었던 말은 (김테란님 살짝 언급... 혹은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수치화(계랑화) 할 수 있는 재능들이 가지는 효과나 결과가 과연 일반적인 성공이라는 개념에 과연 얼마나 주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에 대해서 얘기해 볼 때 Anscombe님이 말씀하신 측정불가능한 재능 (개인적으로 너무 공감합니다만 의지라던가 끈기 등의...) 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저는 그 역시 재능이라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일반적인 성공의 논하고자 할 때엔, 발제자님께는 조금 죄송하지만 선천적(무형의) 재능이 가진 불평등에서 오는 차이보다는 wingfoot님의 말씀처럼 외적환경의 불평등에서 가져올 수 있는 차이가 더 클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답니다.

1. 개인의 소득 창출에 대한 의지 내지는 노력
2. 사회적으로 그 개인에게 주어진 소득 창출에 유용한 도구 - 적절한 교육, 좋은 생산 시스템, 훌륭한 팀메이트
3. 개인의 의지 및 사회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운'이라고 보아야 하는 부분 - 선천적 재능, ------ Anscombe님의 말씀에도 잠깐 있었고 개인적으로 제가 특히 공감하기에 글에 언급했지만 1번 항목 역시 재능의 범주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끝난 얘기를 다시 꺼내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
ps. 단순하게 생각하면..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많은 소득을 올릴 것이고, 소득 누진세법이 잘 집행된다고 전제하면, 이미 그런 재능의 결과물은 일정부분 사회에 환원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러한 환원이 정당한지 그른지에 대해서 원론적인 토의만을 하고싶습니다.----재능의 개념에 대한 얘기가 나오다 어느정도 결론 지어지면서 환원...즉 분배에 관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줄 알았답니다. 에고... (wingfoot님 글 적극지지)...
......
OrBef님이 끝에 말씀하신 2번 항목은 재능과는 별도로 wingfoot님이나 살짝 언급한 바 있던 '외적환경의 불평등'에서 얘기한 그 외적환경의 범주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재능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 같은데... 발제자님께 죄송하지만 자연스럽게 분배쪽으로 넘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
발제자 OrBef님, Ms.Anscombe님, wingfoot님, NaDa-in PQ님 김테란님, 중간에 끼어들어서 정말 죄송하고요. 의미있고 알찬 토의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럼 전 이만...
좋은 하루 되세요. 꾸뻑~
Ms. Anscombe
05/07/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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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만 덧붙이면, 제가 재능 개념으로 어쩌고, 저쩌고, 할 때, 그것의 '계량화 불가능성'을 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부지불식간에 실증주의자로 돌변하고 말아버린 나..--;;) 개념적인 구분만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소위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이 계량화가 어렵다는 점에서 한 수 낮은 과학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의 필연적인 속성이고, 높고 낮고의 문제를 따질 필요는 없겠죠. 뭐, 요즘에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냥 한 마디 해 봤습니다.
Ms. Anscombe
05/07/0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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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어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보통 게시물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하다가 결국 몇 명 남아서 서로 댓글 주고 받다가 마지막에 한 두명 정리(좋고 나쁨을 떠나서)하고 문닫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글의 경우엔 정반대네요. 좋은 현상입니다..^^
05/07/06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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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님/죄송하실 이유는 전혀 네버 없습니다. 제가 다 죄송해지네요 괜히 폐쇄적인 분위기가 된거 같아서.
높은 멘사스코어가 멘사문제 푸는 재능이 뛰어남만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Anscombe 님의 지적은, 선천적 재능과 실질적인 사회적 성공이란 것이 함수관계를 갖기는 커녕 낮은 수준의 개연성 정도밖에 가지지 못한다는 비유적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능지수라는 수치도 그것이 태어날 때 정해진 것인지, 이후 학업과정을 거치면서 향상/혹은 퇴보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결론같은 것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이것을 곧바로 선천적 재능이라고 단정짓지 않고있는 중입니다. ( 개인적으로는 이런 종류의 재능의 반절 이상은 선천적이라고 생각하지만요 )

개인에게 내재한 재능의 차이보다는 외적환경의 불평등에서 일어나는 차이가 더 크다는 말씀에는 크게 동의하거나 반대할 필요를 느끼진 않습니다. 그 두가지가 각자 존재한다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 1:99999 정도의 비율이 아닌 이상에는 각자가 논의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말씀드렸듯이 이번 논의에서는 제외할 생각도 조금 있지만, 좀 전에 김테란님께서 정신적 피해보상의 예를 들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주신 관계로 조금 더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1/2/3 번 항목의 경계는 파란님의 지적처럼 사실 상당히 불명확합니다. 하지만 선천적 의지박약증같은 정신병이라도 걸린 사람을 제외하면, 인간의 의지력은 시시각각 변합니다. 오늘은 투지만땅으로 21시간 공부하고 내일은 하루종일 리니지만 하기도 하죠. 반면에 (컨디션의 변화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능력이나 지적능력이 그정도의 변화폭을 가진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차이점이 의지나 노력, 집중력 같은것은 인간이 선택하는 대상이고, 재능은 그냥 부여받는 대상이라고 제가 생각하는 근거라고 해도 될 듯 합니다.

파란님 말씀처럼 애초 의도와는 달리 지금은 전반적인 분배문제에 보다 논의의 중심이 맞춰져있습니다. 제 의도와는 달라졌지만, 변하는 과정 자체가 전반적으로 제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죄송하게 생각하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추가 의견 있으시면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 ^^
Ms. Anscombe
05/07/06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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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사 문제에 대해서만 말씀 드립니다. 사실은 저도 그런 희한한 문제들을 잘도 풀어내시는 분들이 신기합니다. 저같은 경우엔 공간 지각력이 거의 최악의 수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지요.(역대 최고의 길치) 다만,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사람들이 갖고 있다는 '재능'이 정말 재능이 되려면 그 재능이 발현될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요구된다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그 재능들이 일정한 성과물로 연결되어야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그 재능들이 7세기에서는 '쓸데없는 능력'일지도 모르겠죠. 제가 언급한 바, '멘사 입회 문제를 잘 푸는 능력'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런 분들이 7세기에 태어나셨다면 분명 잘 해내셨으리라 믿습니다만..

즉, 우리가 어떤 것을 재능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단순한 속성을 통해서는 추론할 수 없고, 어떠한 속성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데 효과를 보이는가의 문제를 통해 경험적으로 입증된 것입니다. 구현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없는 한 재능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컨대, 수학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면 수학적 능력은 전혀 재능이 아니겠죠. 그 점을 지적했을 뿐입니다. 저도 (그 신뢰성은 일반적인 기대에 비해 낮다고 보지만) 지능 지수 등과 같은 테스트들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사람들이 낮은 점수를 받는 사람들에 비해 어떤 능력이 출중하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그 출중함이 '현 사회'이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을 뿐입니다.

자, 100번째를 향해 갑니다. 얍삽이를 써 볼까요? ^^
Ms. Anscombe
05/07/06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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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쉽게도 '매일' 리니지만 하는 그런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런 게으름이 '도덕적으로는'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예컨대, '인성' 같은 것이 그런 예가 되겠죠) 저는 '의지'의 문제도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는 않습니다.('원칙상' 가능하지만) 예컨대 아무리 노력해도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우리는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혹은 '너는 수학적인 재능이 없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저는 이들의 차이가 결코 그가 수학적인 재능을 갖고 있거나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의 기술'의 문제에 있지 않다고 봅니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그에게 하나의 비난을 하는 것이고, 재능이 없다는 말은 그에게 더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물론, 의도는 다를 수 있겠지만)

물론, 의지도 변화 가능하겠죠. 그러나 소위 재능이라 불리는 것도 변화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물리적인 불가능성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제가 야오밍처럼 덩크 슛을 하는 것은 '99.99999%' 불가능할 것입니다. 아무리 연습을 한다고 해도 말입니다.

어쩌면 '선천적 의지박약증' 같은 것이 있다면, 저도 지적 능력, 혹은 신체적 능력에서의 박약증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분명 그런 사람들은 존재하고, 사실 저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본래 주제였던) 재능과 평등의 문제가 연결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이었죠.

옳고 그름을 가릴 생각도 없고, 이젠 논의의 중심도 아닌 듯 합니다. 다만, 입장만 분명히 하면 될 듯. 저 같은 경우는 의지의 차이가 존재하고, 의지력이 '매우 약한'(그 자신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돌릴 수 없다고 우리가 인정하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차이는 문제삼을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보며, 이는 소위 재능의 문제에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반면, OrBef 님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의지의 문제는 개인이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재능의 문제는 개인이 어찌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예로 드신, 총을 들이대고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는 경우)라는 입장을 견지하시는 것 같습니다. 모두 일리있고, 장단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Ms. Anscombe
05/07/06 17:55
수정 아이콘
100번째 댓글은 제가 찜'했고', 제가 달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김테란 님은 '찜하겠'다고 하셨지 '찜하신' 바는 없기 때문에 제가 댓글을 단다고 해도 할 말이 없으실 겁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1000 번 가까운 조회수를 보면(물론 중복이 많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신기하군요. 가끔씩은 영양가 있지만 얼마 읽는 이도 없는 글보다 영양가는 떨어져도 많은 이가 읽는 글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Nada-in PQ
05/07/06 17:58
수정 아이콘
함부로 참여하지 않은 것은, 그 논의의 전제에 대한 이해가 채 되지 않고서는 논의를 이상한 방식으로 하거나 같은 대립선상에서 말싸움만 반복하게 되는 경우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Orbef님의 정리를 바탕으로 말을 건넵니다.

계량화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제가 지적했듯이, 단편적인 일 재능에 대한 계량화도 불가하고, 사회적 인간내지는 복합적 재능의 측면에서 재능의 계량화 역시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여기에 사회 구조나 체제의 영향력을 뺀 순수한 재능의 결과에 대한 영향력 내지 기여도를 측정해내는 것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세계 60억 인구 모두의 계량화를 해내는 작업은 생산성 및 각종 차원에서 불리 내지는 어려운 작업이며, 현실성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결국 계량화를 통해서 새로운 분배 방식을 도입내지는 도출하려는 시도는 적어도 저의 생각으로는 실익이 없습니다. 또한, 세계 시민들이 이 방식의 분배 형태를 찬성할지도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 가령, 누구나 내 재능은 내가 타고난 것인데, 왜 간섭하는가? 등의 항변이 가능할 것입니다.

또 생각해 볼 것은 분배의 문제와 관련하여, 노력에 따른 분배의 측면은 시기를 지나버린 측면이 존재합니다. 즉, 지금에 와서 노력에 따른 분배를 주장하는 것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죠. 제가 알기로 마르크스주의자들조차 그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습니다. 여하튼 노력에 의한 분배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기회비용과 수요-공급의 관계입니다. 이건 일천한 저의 생각이라, 현대 사회에서는 부가가치가 각 상품마다 다 다릅니다. 탄력성 내지 risk감수 정도 역시 상품마다 상이하구요. 유통 시스템 및 시장 구조에 의해서도 부가가치는 변합니다. 어떤 것은 부가가치가 엄청 큼에도 또 어떤 것은 부가가치가 상당히 낮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노력을 분배의 기준으로 잡는 것은 불가하다고 봅니다.
기여도에 의한 분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능의 평가와 같은 방식으로 기여도에 대한 평가도 거의 대부분 모호하며 어려운 과제입니다. 또한, 기여도 평가에 투입될 자본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기회비용과 관련되겠죠) 게다가 기여도에 의한 분배를 각 개인이 합의를 통해 수용할 수 있을지도 다분히 의문스럽습니다.

적어도 제가 생각하는 분배 방식은 현실 사회에 대한 고려와 이상적인 분배 방식이라는 측면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서 이뤄집니다. 전자의 경우, 현실에서의 부가가치와 시장 구조 및 체계, 위험부담, 희소성 및 기대비용, 기회비용을 포함하는 것이고, 후자의 것은 사회 필요적 상품(가령, 농업이 부가가치가 낮다고 농업을 포기할 수는 없겠죠?)에 대한 국가 정책적 필요 및 분배에 대한 국민적 열망, 분배 정의의 실현, 왜곡된 이익 구조의 탈피 등의 요소입니다.

김테란님//정신적 피해보상과 일을 못함으로 인한 금전적 피해보상에 대해서 전자는 계량 불가, 후자는 계량 가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피해보상과 같은 법적 판단은 규범적 판단이기 때문에, 굳이 정확한 계량가능성 및 정확성을 요구하지는 않죠. 오히려 민사의 경우이기 때문에, 공평의 원칙이 작용하여, 규범적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사실적 판단은 적어도 피해 환산 부분에서는 유무죄와는 달리 많이 떨어지죠.
05/07/0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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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 문제든 재능 문제든 실제로는 디지털회로처럼 1 아니면 0 으로 나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양극단 사이의 중간지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포하겠죠. 하지만 그 모든 케이스를 각자 다뤄줄 수는 없는 것이니,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납득할만한 극단적인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실제로는 존재하는 유불리를 '유불리가 그다지 크지않다'라고 말해버리는 셈이 되는거죠.

이점을 제외하고 나면, 의지와 재능에 관한 제 입장에 대한 Anscombe 님의 시각은 거의 맞습니다.

그럼 이제 분배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할 차례인가요? 일단 저는 2시간 정도 자줘야 할 듯 합니다. 모레 세미나에서 발표를 해야하는데 6시간 통털어서 아티클 하나 읽었네요. 모두 미워 ㅠ.ㅠ
Ms. Anscombe
05/07/0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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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에 따른 분배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냥 '노력'이라고 해 버리면 그 의미가 불투명하기 때문이죠. 예컨대, 저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노력을 통해 스타를 잘 하려고 했습니다.(결과는 형편없습니다) 아마 우리는 그것은 노력이 아니라고 할 겁니다. 왜냐하면 모니터 쳐다보기와 스타를 잘하는 것은 관계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관계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요컨대 '노력한다'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일을 '열심히 함'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나저나.. 첫 경기부터 박성준 - 변길섭이라.. 이거나 보러가야겠네요..^^
김테란
05/07/0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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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in PQ님/ 맑스는 사회주의를 추구하지 않았으며, 고전적 사회주의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에도 유럽의 주요 이념이구요.
앞서언급했듯이 현 자본주의의 분배원칙이란 따로 없습니다.
시장원리에 의해 지배될 뿐이죠. 성과,기여가치에 따른..이라는
작은원칙도 일종의 시장원리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채택한 이상,
생산물에 대한 분배에 대해서는 현 자본주의건, 사민주의건
사회가 거의 개입할 수가 없습니다.
생산수단을 공유화하지 않는 이상 어떤 다른방법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죠.
따라서 사회주의에선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상으로 봅니다.
이 극복이란것이 과거 공산주의처럼 지구상에서 소멸시키고자 함이 아니라
사회주의와 혼용될 더 좋은 체제를 찾아가고 만들어간다는 것이고,
재분배로 적극 부의 집중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이 재분배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분배의 원칙이 있고 없고가 큰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재분배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고, 어떻게 인식되고 있습니까.
사회약자,빈민층구제는 재분배의 전부가 아닙니다.
일할 자유및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일한만큼 가져갈 자유및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은 그들에게의 온정차원이 아닌 사회가 생산력만 추구함으로써
가장 중요한 것을 보장해주지 못한 부분에 대한 보상차원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입니다.
정당하게 분배되지 못함을 재분배로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지만,
노동환경에 대해선 국가가 관리한다던지.. 하는등 해소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는 있는것입니다.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된 국가와 그렇지 못한국가는 잘살고,못사는 국가의 차이가 아닙니다.
김테란
05/07/0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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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Anscombe님/ 분배방식의 구현문제는 왜 일단 논외로 하자 했는지,
왜 원론적으로 타당,정당성만 생각해보자 했는지,
윗글에 그 이유를 적었습니다.
사민주의건 다른 이념이건 시장경제를 버리지 않는이상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분배든, 가장 정의로운 분배든
끼어들 자리는 없습니다.
만일 이후 큰 변혁이 있고
그것이 만일 생산수단의 국유화라면
그리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현사회에서 일 잘하거나 빽있거나..등등의 사람 승진시키고, 월급올라가듯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 월급 올려주면 되는 것입니다.
또다른 변혁이 있다면, 혹은 점진적 변화가 있다면
그상황에 맞게 또 원칙은 구현됩니다.
현사회에서도 기여가치,성과라는것이 투명한 의미를 갖기에,
혹은 계량가능하기에 봉급으로 환산되는것이 아닙니다.
김테란
05/07/0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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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Anscombe님/ 글을 적었다가 Ms. Anscombe님의 기분을 나쁘게 할 충분한 소지가 있고,
또한 제가 저기압으로 적었다 보일 소지등이 있어서 지웠습니다.
죄송하단 말씀 드리며, 안보셨길 바랍니다. 흐흐..
솔직한 심정을 표현하자면 ' 흐~또~으~제발~약간 답답` 이정도입니다.
허나 논의의 흐름중 Ms. Anscombe님께서 가장 관심있는 부분이 그부분이라면,
논외로 하자 양해를 구해도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하시기 이전엔,
아니 납득한다해도 하고싶은건 해야죠^^.
솔직히 저도 그리 말이 된다 생각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인 분배방식적용문제에 있어서는..
허나 현행방식도 마찬가지로 말이 되지 않는다 봅니다.
그렇다면 말되는 것을 찾던가,
그것이 어렵다면 보다 정당한것을 선택하거나 등등.. 의 길이 있겠죠.
전자는 너무 어렵고, 또한 위에 언급한 이유등이 있기에
저는 후자의 논의를 바라는 것입니다.
김테란
05/07/0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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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foot님은 저와 생각이 매우 비슷하다 보이네요.
'노력에 대한 대가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사회가 결코 (시장경제에서) 효율적인 사회는 아니라는 것'
일단 이부분에 있어서 좀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완벽히 보장해주면, 재능및 다른요인들로 생산에 참여할 의지를
꺾기에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매우 떨어질 뿐 아니라
자유및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겠죠.
최대한이라는것이 여러 요인들간의 조율점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사회구성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차이에 기인한다 봅니다.
분배원칙이 합의된 사회인가 아닌가, 그사회의 보수성에 대해 어느정도 속도로 변화해가는가..등
그리고, '노력,재능외의 외적환경에 의한 차이가 더 심하다'는 것은
원론적으로 그러한게 아니라
그 사회가 분배문제에 있어서 모순해결의지가 얼마나 있고,
얼마나 분배정의를 구현하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wingfoot
05/07/0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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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왔습니다. 술이 오릅니다.알딸딸~-_-; 자게에 가서 일본 응원한 청소년에 대한 글에 답글 달고 다시 이곳으로 왔어요.(에휴, 논쟁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니 머리가 아픕니다...)

자자, 선수들 입장하세요~^^
wingfoot
05/07/0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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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테란님/ 흠. 사실 제가 김테란님과 생각이 비슷한 것 같지는 않은데, 뭐 일단 그 문제는 좀더 진도가 나간 후의 일이구요. 제가 노력에 대한 대가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사회가 시장경제에서 효율적인 사회는 아니다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시장경제 하에서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판단되는 분배방식이 채택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즉 시장경제에서의 분배방식은 시장경제의 특성상 비도덕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여기서 시장경제는 현재의 자본주의를 말합니다.

제가 분배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미래의 사회를 그려보고자하는 의도였고, 아직 그부분은 백지상태나 다름없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기도 하고, 도움이 될만한 말씀도 귀동냥해보려구요.^^
wingfoot
05/07/0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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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다들 뻗어버리신 건가요?^^ 그럼 저도 사양하지 않고 자겠습니다. 술이 올라서리...
김테란
05/07/06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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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foot님 주무시러 가셨나요?
생각이 비슷한것 같다는건 단지 wingfoot님께서 쓰신 3개의 글이
제생각과 거의 같기에^^
그외의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다르다면 대화하면서 더 많은것을 배울수 있겠네요. 오히려 좋습니다^^.
Ms. Anscombe
05/07/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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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테란 님 // 저는 사실 김테란 님 글에 대해서는 논의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분배 얘기는 한 적이 없는 듯 한데, 위에 '노력' 부분에 대해서라면, '노력'과 '열심히 무엇인가를 함'을 구분하려 한 것이지 '분배'에 대해서 말한 것은 아닙니다.(그러고보니 분배라는 말 엄청 쓰였네요.. 저는 위에서 딱 한 번 썼는데)
김테란
05/07/0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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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력'과 '열심히 무엇인가를 했는데 사실 그일과는 관련이 거의 없는'을 구분해서 적용하는 쪽으로 생각해보면 되겠군요^^.
헌데 현재 소득에 기여하는 요인들을 논하고 있으니,
후자는 가치를 크게 둘 필요는 없겠네요.
열심히 잠자두면 맑은정신에 시험잘보겠지 하고 열심히 잠자고 시험못본사람에겐 어떤 보상도 필요없겠죠?
05/07/0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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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열심히 무엇인가를 했는데 사실 그일과는 관련이 거의 없는'을 구분해서 적용하는<<
이건 기존의 제가 얘기하고자 했던 '재능'에 대한 논의와 마찬가지로, 그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쓸모있었는지를 계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논의로서 부적절해보입니다. 더구나, 그 노력이 얼마나 유효했는가는 개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 그 개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그게 재능이던 운이던 사회적 조건이던)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더 타당해 보입니다.

누군가가 무엇을 성취하고자 노력을 하지만, 실제 성취의 정도는 노력*(재능+운) 정도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런 초 단순화된 도식에서, 말씀하신 사항은 어느정도 '노력'이라는 개념의 본질적 문제라고 봅니다.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없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뭔가 되는건 아니니까요.

고로 제 요지는, '노력이 가치창출에 전혀 기여하지 못할 수 있는 속성이 있다'는 점을 배제하지 않고 논의를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고품질의 노력, 저품질의 노력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게 아니라는거죠.
Nada-in PQ
05/07/0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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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테란님// 님과 Orbef님의 논의에서 지칭된 '분배'라는 개념은 정확히 재분배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분배를 의미하는 것입니까? 저는 그 논의에 쓰인 분배라는 것이 재분배를 포함하는 사회적 부의 분배과정에서 파악되는 광의의(?) 분배 개념을 사용하여 논의를 했던 것인데..당연히 현 시장 구조하에서 노력에 따른 분배(재분배를 제외한 개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 글에서의 분배 개념을 광의의 분배 개념으로 보시든 아니면 단순한 재분배 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시던지 하면 이해가 쉬울 겝니다.

아울러 위의 리플 중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앞 부분은 다 아는 내용이고, 사실이므로 언급하지 않겠고, 뒤를 언급하면..
물론, 재분배라는 과정이 사회 전체의 부를 사회 구성원에게 분배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결코 사회 약자에 대한 보장이나 지원만이 전부가 아니겠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능력 있는 자 내지는 원래부터 가진 자등의 경우는 이미 자기 능력 혹은 그 이상을 가지고 있는고로(물론, 능력 있는 자의 외연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이 부분에 동의, 부정이 가능하겠지만 합리적 인식의 차원에서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재분배가 가지지 못한 자 혹은 기회가 없었던 자, 시장 구조에 적합성이 떨어지는 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입니다.

약간 아쉬운 점은 제가 전부터 참여를 주저했던 것이, 논의를 하면서 논의 당사자 간에 설정되는 개념의 외연이나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논의를 함에 지장을 가져오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05/07/0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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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정말 열심히 했는데 어쩌다보니 결과가 안좋은 경우'와 '열심히 하는 척만 했지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겉보기에는 분간이 힘들겠지만, 김테란님 말씀처럼 뭐가 더 바람직할까의 선에서 토의하는 것이라면 저런 경우에 대해서 잠정적으로 무시하고 진행해도 전 괜찮습니다.
05/07/07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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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님/'개념의 외연이나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 동의합니다. Anscombe 님께서도 이부분을 계속 지적하시는 것이구요. 하지만 분배라는 단어든 평등이라는 단어든 결국 가치판단을 내포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시작부터 정의하기가 그다지 쉽지 않고, 포괄적으로 논의해가면서 천천히 합의해나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김테란님의 생각이자 제 생각입니다.
05/07/07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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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지금까지의 논의는 광의의 분배 개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바램은, Nada 님께서 답답함을 느끼시는 주요 개념에 대하여 '이러이러하게 정의하고 쓰자'라고 제안해주시는 것입니다.
Nada-in PQ
05/07/0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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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bef님//미진한 제게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Nada라고 불리는 것도 기분이 묘하군요..^^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위에서 거의 다 말했습니다. 지금부터는 보고 생각하다가 반대하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경우에나 참여할 수 있을까요..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대충 정리되지 않았는가 싶기도 하구요.
아, 뒤늦게나마 좋은 발제에 감사드립니다..
Nada-in PQ
05/07/07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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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딴지는 아닙니다만, '바람'이 맞는 말인듯 한데요..^^:
김테란
05/07/0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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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in PQ님/ 이미 그리 이해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토론하다보면 상대가 무슨뜻으로 말하고 있는지는 파악이 가능합니다.
다만 Nada-in PQ님께서는 뒤늦게, 망설이다?^^참여하셨으니
어느정도는 이전부터 이어지는 논의에 대해 오해는 하실 수 있다 이정도는
염두하고 있으니, 논의중 오해에 대한 걱정은 그리 크게 안하셔도 될듯합니다.
헌데, 이번문제는 제 착각에서 빚어졌네요.
서로 생각이나 개념등이 다른건 아니며 저역시 OrBef님의 이번글과 똑같은 생각을
이전부터 갖고 있었습니다.
단지, 능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등과는 다소 별개로
생산에서의 노력은 이미 방향정도는 설정되어 있다 간주한게 잘못인듯 합니다.
동일노동에 의한 공동생산뿐 아니라,
임무분담에 의한 공동생산역시 판단력등의 재능이 떨어지는자를
니알아서 임무만 완수해, 이것역시 사회의 책임으로 봤거든요.
그러나 분배문제에 대해선, 이정도는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됐을지는 몰라도
재분배로 옮겨가게 되면, 수많은 프리렌서가 존재하는 자본주의에선
그역시 고려하지 않을수가 없겠군요.
좀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김테란
05/07/07 01:16
수정 아이콘
그리고 분배개념에 대해서는 OrBef님말씀대로 포괄하는 의미로,
그리고 논의자체도 원론적인 분배정의,원칙등으로만 진행되었는데
이게 어느순간부터 현실과의 접목으로까지 발전하다보니
재분배란 단어도 필요하게 되고,
분배를 협의로 써야할 경우도 생기더군요.
가급적 문맥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게 쓰겠습니다.^^
김테란
05/07/07 02:01
수정 아이콘
질문하나를 던져놓고 자겠습니다.
논의를 하면서 제가 설정한 분배원칙에 대한 일종의 패러독스일수도 있겠네요.
재능은 떨어지고 재산도 없는 엄청난 노력가인 A가
단지 노력만으로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법니다.
그러나 그가 공평한 출발선에서 경쟁을 했다 가정한다면,
분명 그는 더 벌 수 있었습니다.
토론에 참여하시는 분들 자신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배하라 한다면,
A에게 더 주겠습니까? 아니면 A의 소득중 일부를 거둬들이겠습니까?
Ms. Anscombe
05/07/07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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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써놓고 지웠는데, 여러모로 답답하군요. 그냥 아무렇게나 말하겠습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안 나온 사람이나 놀고 먹어서 성적이 안 나온 사람이나 (다른 조건이 같다면) 이들 사이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놀고 먹고 성적이 잘 나온 사람이나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이 잘 나온 사람이나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요컨대, 저는 노력이라는 게 계량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게 아니라, 노력이라는 것을 계량화하려는 시도가 불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속성이나 조건들 중에서, 어떤 조건들에 대해서 관여하고, 어떤 조건들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물론, 이런 생각이 일정한 전제를 갖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바람직함'의 문제는 제가 논의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 있습니다. 재능이나 노력 등의 문제는 이것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네요.(어디에서 차이가 있는지가 분명한 듯 하니)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면, 개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외연을 분명히 하거나 예컨대, '평등은 A다' 식의 사전식의 정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것이 놓여 있는 맥락을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할 따름이죠.
Ms. Anscombe
05/07/07 02:40
수정 아이콘
질문에만 답변하도록 하죠.

여기서 분배가 뭘 뜻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컨대, '여기 3명의 사람이 모여 100만큼의 결과를 얻어냈을 때, 각각에게 얼마만큼의 결과물을 분배할 것인가'와 같은 의미에서의 분배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그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소득을 올린 것이 아니라면 A는 소득만큼 세금을 내면 됩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규칙이죠.

재미있는 방식으로 답변하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모두가 만족하는 방식'으로 분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좋은 방식이라고 보지만, 다른 분들이 좀 더 진지한 답변을 주시길.
05/07/07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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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반대지만, Anscombe님에 대한 의견부터:
Anscombe님께서 사회적 조건의 불평등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반면에 사회에서 관여할 수 없는(적어도 지금의 사회에서는) 재능의 불균일, 노력의 불균일에 대해서는 '어차피 관여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해 뭐하러 논의하느냐'라는 입장이시죠. 또한, 노력과 재능의 관계에 대해서는 '어차피 두가지 요소의(사실은 좀 더 많은 요소의) 조합 속에서만 가치창출이 가능한 것이고, 그 두가지 사이의 경계선또한 불명확하니 억지로 이걸 나눌 이유가 없다' 정도의 입장이시라고 봅니다. 사실 처음에는 개념의 불명확성이나 계량의 불가능성에 대해 더 강조하셨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논지를 펴기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김테란님이나 제가 위 의견에서 벗어나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감성적인 부분인지도 모릅니다. '논의가 꼭 필요하다'라기보다는 '논의를 하고싶다'에 가까운 거죠. 머리나쁜 학생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5등한거랑, 머리좋은 학생이 발로 시험봐서 5등한거랑 뭔진 모르지만 다르게 취급하고 싶고, 2명한테 일시켜놨더니 재주좋은 놈이 실제 일은 다 했고 어버버한놈은 쓸데없는 짓만 하느라 오히려 방해만 된 경우에, 월급 똑같이 주기 싫은.. 그런 맥락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Anscombe님은 사회적 조건의 최대한의 평등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의 기능이라고 보시는거죠? (그게 더 평등하다는거지,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말씀하시면 뭐 할 말은 없지만) 사실 이런 시각은 돌고 돌아 결국은 신자유주의 철학으로 귀결된다고 봅니다. '룰이 공정했으니 결과에 대해서는 각자 알아서.' 저도 기본적으로 그런 방향에 서있긴 합니다만, 사회적 조건이 평등하면(님 말씀에서 '다른 조건이 같다면') 그것으로 된걸까요? 그렇다면 어느 요인들까지 평등의 대상으로 놓아야 할까요? 예를 들어서, 50년쯤 지나서 근육의 체적당 출력파워를 결정하는 유전자 배열을 알아냈다고 칩시다. 어떤 극단적 평등주의자가, '이제 이것도 사회에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아야 합니다. 앞으로 모든 신생아는 같은 수준의 단련을 할 경우 같은 근력을 지니도록 이 유전자 배열을 일괄적으로 지니게 합시다' 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겁니다. 또는 Anscombe님 말씀처럼 의지력이라는 것에 강하게 영향을 끼치는 화학물질이 있고 이것의 시간당 분비량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발견되어(사실 이건 어느정도 알려진 물질이 있습니다), 의지력에 대한 같은 주장이 나올수도 있겠죠. 전자가 재능에 대한 사회적 관여일 수 있고, 후자가 노력에 대한 사회적 관여일 수 있겠습니다. 보다 평등한 조건의 제공이 되겠죠. 사실 현재의 평준화 교육은 (평균 학생을 위해, 영재급의 학생과 좀 떨어지는 학생은 철저히 손해보고 있죠) 이런 면을 가지고 있다고 저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요.

극단적인 예이지만, 지난번에 공장형 양육시설을 (냉소적 모델이나마) 평등의 한 조건으로 제시하신 만큼, Anscombe님의 주장을 밀고나가면 저런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이 리플의 요지는,
노력과 재능에 대한 논의가 Anscombe님께서는 지금 상황에서 불필요한(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논쟁이라 하시지만,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해 질때까지는 논의해 보고 싶은 주제라는 점.
조건의 평등을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 모델로 제공하셨지만, 재능이나 노력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사회가 관여할 수 있다는 점(현재도 약간이나마 하고있고). 그리고 그런 모습에 대해 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점.

정도입니다.
Ms. Anscombe
05/07/07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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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주셨으니 반응을 보이는 게 도리겠지요.

그 마음, 잘 압니다. 그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렵니다.

사회의 '기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OrBef 님께서 가정하시는 그런 사회가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의지력이라는 것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이 존재한다면 아마 '의지'라는 말이 대단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우리가 논하기에는 대단히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네요. 그리고, 저는 그런 사회를 긍정적으로 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으로 대하지도 않습니다.(사실 그런 부분은 별로 '논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느 요인들까지 평등의 대상으로 놓을 것이냐는 제가 처음부터 지적했던 부분입니다. 이에 대한 차이는 분명하게 나타난 듯 싶습니다.(50년 후의 미래에 대해서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그런 사회의 경우 평등, 의지, 책임 등과 같은 많은 말들이 굉장히 다르게 쓰이거나 무의미해진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이 부분은 읽는 분들 모두 '감상'하고 넘어가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머리 좋은'과 '머리 나쁜'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고 보고,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우리의 일상언어들을 모두 파괴하는 과학이 아니라면) 그렇지만 어찌됐든 '순전히 운에 따라' 머리가 좋고 나쁜 사람들이 존재하는게 '문제가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머리가 좋아야 한다' 혹은 '그런 차이를 어떤 식으로든 무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특정한 지향입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은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첫 리플에 언급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운의 가능성'에 대해 합의하고 있다면 운에 의해 머리 좋은 사람, 운에 의해 머리 나쁜 사람이 존재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에 대해 인정하고, 합의하고 넘어가느냐입니다. 그것이 판단의 잣대이기 때문이죠. '평등한 상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등하다고 인정하는 상태'가 존재할 뿐입니다.

p. s. 마무리 지으며, 글 '이외의'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정치적인 입장을 말씀드리면, 신자유주의(이런 말 안 쓰려고 했는데 결국은 쓰게 되네요)적 지향과는 꽤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건의 평등을 강조하는 것은 현존하는 기회의 평등이나 경쟁, 시장의 논리가 사실상 기대만큼 잘 적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합리성, 기회의 평등을 말하고자 한다면(OrBef 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게 아니라) 이런 평등을 성취하라는 요구를 한 것입니다.(좋다, 나쁘다는 게 아니라) 이상사회를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현존하는 사회에 바탕해서 일정한 주장을 편 것입니다. 저는 무엇이 좋다, 나쁘다에 대해서는 말한 바가 없고, 말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런 태도 차이가 논의의 차이로 이끌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당장 실현은 불가능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제가 말하는 식의 평등 개념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제발 기회의 평등이나 경쟁 논리 등은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이게 제가 바라는 점입니다.(여기 계신 분들은 그런 지향에 반대하시는 듯 하니 제가 바랄 것 없습니다)

그리고 재능이나 노력 등의 부분과 관련해서는 '이미 결정되어 있는'이라는 개념에 대한 고민 때문에 이런저런 논의들을 전개해 보았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철학자의 논지에 시사받은 바 큽니다.
05/07/07 08:04
수정 아이콘
솔직한 의견 감사합니다.

지금의 논의가 분배문제쪽으로 많이 바뀐 만큼, 오히려 이 부분이 낯설어졌지만, '사회에서 개개인의 경쟁조건에 어느정도 관여하는 것을 평등하다고 합의할 것이냐'라는 것이 Anscombe 님이 바라셨던 논의의 모습이었다는 점은 대충 느끼고는 있었고, 지금은 확실히 알겠네요. 지금 느끼시는 답답함은, 그런 평등에 대한 논의없이 분배문제쪽을 논의하고 있는 현 상황이 겉돌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인 듯 합니다.

김테란님은 본인께서 말씀하시듯이 어느정도 사회주의적 색깔을 가지신 분이고, 저는 죄송하지만 자유주의자입니다. 제 논점이 불분명했던 것은 제 논리력이 딸려서인 것이지, 제가 자유주의자가 아니어서가 아닙니다.

'평등하다고 인정하는 상태'에 대한 제 의견을 설명하는 대신, 제가 80%정도 동의하고 있는 롤즈식 평등개념을 마지막으로 능력이 닫는 한 간단히 설명드리고 가겠습니다. 계약론에 기반한 연역법의 일종으로, 이제부터 사회에 태어날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합의할 수 있는 사회의 모습이 실제로 사회가 지향해야할 방향으로 보는 방식입니다.

'자신이 어떤 조건을 지닌 사람으로 태어날 지 모른다는 전제하에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원할 것이다.'
'완전히 평등한 상태를 깨뜨려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경우들이 있다. 예컨대 천재의 존재같은 경우이다. 천재가 존재하고, 그가 자신의 개인적 성취를 위해서 행하는 일들이 나머지 사회구성원들에게도 이익을 가져다 줄 경우, 사람들은 그 천재에 대해 '특혜'를 인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 논리로, 모두가 공유하기에는 모자란 유용한 사회적 도구가 있을 경우(엘리트 교육정도 될까요), 그것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는 성원들에게 집중해 지급하고, 대신 그 활용의 결과가 나머지 구성원들에게도 이득이 되도록 사회가 감독한다.'

나름대로 일관되지 않나요? 이 경우 사회는 반드시 완벽히 평등한 조건을 지향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발생하는 불평등함이 사회구성원에게 해가되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는 것이죠.

왠지 Anscombe님께서 많이 답답&지쳐보입니다. 님 특유의 산파술이랄까.. 본인의 논지를 주장하기보다는 '니가 말하고자하는게 이거 같은데 그건 이런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이러이러하게 귀결될 여지가 많고' 식으로 말씀하시는 화법은 저로서는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만, 본인은 많이 지치시나보네요. 푹 주무시고 내일 뵙지요.
김테란
05/07/0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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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Anscombe님/
'그렇지만 어찌됐든 '순전히 운에 따라' 머리가 좋고 나쁜 사람들이 존재하는게 '문제가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머리가 좋아야 한다' 혹은 '그런 차이를 어떤 식으로든 무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런것을 전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OrBef님과의 논의에서 초기에 진전이 더뎠던 이유도 이 문제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런 오해가 있었다 느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분배문제, 즉 사회구성원들간의 합의문제에
국한되는 것이지, 자연적 차이를 없애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사회의 잉여가치,이윤을 어떻게 나눌것인가는 자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사회의 합의가 있어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이에 필요한 기준, 중심가치등에 그어떤것들을 놓더라도
Ms. Anscombe님께서 제기하는 여러가지 문제점의 논란들을 피해갈 수는 없는것입니다.
일단 후자의 문제는 배제한채로,
재능의 다름은 사회의 요구에 따라 큰 의미있는 능력으로 구현될 수도,
별의미없는 능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불평등은 여기서 기인되는것이 아니기에 이차이을 해소하려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회가 분배에서의 중심가치를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꽤나 포괄적 의미입니다.제 어휘력의 한계이므로 문맥적으로 파악하시길^^)
으로 놓았을 시,
공산사회가 아닌이상 소득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바로 이 소득의 차이가 사회의 룰에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기에
시장원리라는 룰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에 따른이란 분배방식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가?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라는 가치가 노력이라고 합의된다면 어떠한가?
혹은 이와는 다른 기준, 중심가치등으로 분배할수는 없겠는가?그것은 어느정도의 정당성등을 가지겠는가?
등을 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wingfoot
05/07/0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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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의 흐름이 끊긴듯한 기분이네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Ms.Anscombe님께서 더이상 논의를 이어갈 뜻은 없어 보입니다.

제 입장을 잠시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제가 분배 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한 것은 순전히 가치중립적인 어떤 구조물을 디자인하겠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평등을 어떻게 구현하는가의 문제가 가치중립적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만약 논의가 진행되어간다면 좀더 제 입장이 첨예하게 노출되겠지만, 저는 자유주의자가 아니며 신자유주의에는 명백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하루에도 수백번 씩 생각이 바뀌는 사람이라 단언하긴 뭐하지만, 일단 좌파라고 넓게 정의해두면 될 것 같구요. 다만 지금까지 좌우를 막론하고 공히 동의해온 이념이라 할 '생산력중심주의'에 대해 점차 회의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좌파이지요. 소위 red-greens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일단 제 이념을 커밍아웃한 다음에 분배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게 좀더 효율적인 것 같아서 일단 적어보았구요. (물론 논의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만...)
분배의 문제를 논하게 되더라도 중간중간, '평등'이 어느 정도 수위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민감한 부분이 될 것 같네요. 또한 저처럼 무조건적인 생산력 향상에 회의적인 시각까지 더해진다면 논의는 더더욱 미궁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차라리 정통적인 의미에서의 좌파는 생산력 향상을 진보의 선결조건으로 보기 때문에 우파와 더 대화하기 편하지요.

사실 현대자본주의라는 체제는 경제인류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정말 찰나에 지나지않을정도로 짧은 기간 동안 전성기를 누려오고 있는 이념이기 때문에, 현실자본주의, 혹은 시장경제라는 것을 불변의 전제조건으로 두고 논의를 진행해나간다면 자칫 논의의 폭이 좁아질 우려가 있습니다. 또한 더 우려되는 것은 토론과정에서 우리가 사용하게 될 갖가지 경제용어들(예컨대 이자율, 자본가치, 효용 등)부터가 전혀 가치중립적이거나 과학적인 용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자율이라는 주류경제학의 핵심중의 핵심개념이 '자기모순'적 개념이라는 것이 캠브리지 논쟁 때 밝혀졌듯 말이죠.

가치론은 분배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가치론'에는 이와 같은 지뢰밭들이 수두룩합니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하는듯...흐흐흐
뭐, 그래도 일단 누군가가 물꼬를 터주면 어떻게든 토론이 진행될 수 있다고 봅니다. 어차피 우리가 학술포럼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자, 에이스결정전의 강민같은, 구세주가 논의를 명확히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05/07/07 12:48
수정 아이콘
OrBef 님은 롤즈의 이론이 마음에 드시는 가봐요.. 롤즈는 대체로 "최소극대화 원칙"으로 잘 알려져있지만,
그 이유가 이 원칙이 롤즈의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서라기 보다는 꽤나 독특하고 참신한 내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보는게 맞죠. 오히려 중요한 것은 OrBef 님의 `천재`의 예시로 설명되는..
"적재적소의 원칙" 이겠죠??
이 두가지 측면의 이론 때문에 롤즈를 자유주의 진영에 포함시켜야 할지, 평등주의 진영에 포함시켜야 할지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롤즈를 대체로 자유주의(아니면, 자유주의에 좀더 가까운)자로 보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롤즈를(또는 롤즈의 이론을) 자유주의자도, 평등주의자도.. 모두다 탐탁히 여기지 않는
다는 것이에요. 양쪽 모두에게 비판과 비난을 받았지요. 이념의 스펙트럼상에서 중간자적인 존재가 양쪽 모두의
지지가 아닌 비판을 받는 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뜻할까요?

누군가가 한정되어 있으며 또한 희소한 사회의 자산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그것이 소득이건, 사회적 지위이건..)를
획득하고 실현시키는데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대한 평등이란, 결국은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 같아요.
이때 그 정도를 결정하는 기준은.. 정말이지 `엿장수 마음대로`이더군요. 그 기준이란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신념에서 나온 경우가 많은데, 이런 종류의 논의에서 문제가 되는 것(논의가 쉽사리 정리되지 못하고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측면에서)은 `주장`의 근거가 다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으로 회귀한다는 것이지요.
(그건 엄밀히 말해 주장을 타당하게 만드는 근거는 아니죠.) 하지만 이것은 주장하는 사람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도의 문제, 사안의 경중을 헤아리는 것과 관련된 주장이 가지는 본래의 성질이 그렇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예컨데 앤스컴님께서 잠깐 언급하신 공동양육제만 해도 그래요.. 그것은 분명 현재의 제도에 비해 제법 평등한 제도임에
틀림 없지만.. 평등에 대해 좀더 강한 욕구나 가치관을 가진 A 라는 사람에게는 여전이 불만스런 제도일 수도 있어요.
가령 우리가 우리의 인생에서 `스승`의 영향력을 인정한다면, 공동양육이라도 누군가는 씨쓰 로드에게, 또 다른 누군가는
오비완 케노비에게 수학을 하는 것은 굉장한 불평등으로 볼 수 있겠죠. 그렇다고 모든 아이이들의 스승을 동일한
인격체와 교수법을 가진 단 한명으로 설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이념형으로도 꽤나 우스꽝스러운 거 같아요.

요는 이런 논의와 관련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누구든지 A 가 될수도 있고, 또 반대로 A에게 비판적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는 거에요. 평등의 정도에 대해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하다면 A의 극단적인 주장 또한 그 상상력의 끝 어딘가에 있겠죠.
따라서 이 문제는 "다양한 가치관과 신념들 중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것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동의하는 가"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이 비슷한 표현이 앤스컴님의 리플라이에서도 나왔었는데.. 마치 "OO놀이 할 사람 여기 붙어라~~" 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내밀고 애들이 많이 붙은 놀이를 하는 것 처럼 말이에요.. 여기에 무슨 계량화니 인과관계니 하는 근거는
필요치 않아요.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놀이를 고르는 것처럼, 자신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평등의 수위를 선택하는 거죠.
자신이 가진 가치관과 신념을 바탕으로 해서 말이에요..

이와는 별개로 앞에서 언급한 `권리`의 획득, 그 자체에 대해서라면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왜냐면 이것은 이전의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분(allocation)과 분배(distribution)은 확실히 다르죠. 누구는 어느 정도 일해서
어떤 생산물을 산출해 내고 그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부여받느냐.. 하는 생각만 해도 복잡한 이 물음은 제 아무리 똑똑하고 선의를
가진 사람이라도 쉽사리 해결할 수 없지만, 우리가 시장논리를 인정한다면 이 문제에 대해 죽을 때까지 고민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이것은 가치관이나 신념에서 발현된 `주장`이 아니라...(물론 엄격한 가정의 기초위에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논리체계 라고 봐야겠지요. 이것은 맞다 틀리다, 아니면... 한다 하지 않는다의 여부의 문제이지 높은 수준의
시장논리 내지는 낮은 수준의 시장논리와 같은 정도의 문제가 아니에요. 시장논리가 배척된다면, 가치관이나 신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논리를 형해화 시킬 수 있는 또다른 논리체계에 의하는 것이 맞다고 봐요. 대체로 이 시장논리라는 것은 이미 몇가지 증명이
존재하므로 그의 논리체계를 거부하기 보다는 그것의 기초가 되는 가정을 공격(예컨데 가정이 현실과 다르다는..)하는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은 전혀 다른 얘기지요..

요컨데, 시장논리의 이러한 특성과 평등과의 차이점을 인식한다면... 자신이 적절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정 수준의 평등이
실현되거나 그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시장논리를 배척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는.. 뭐랄까 서로 무관한 대상을 볼모로 잡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왜냐면, 그 주장을 받아들여 우리가 좀더 높은 수준의 평등을 보장한 상태에서 시장논리를 적용한다 한들, 앞서 언급한
A와 같은 사람이 같은 논조로 시장논리를 배척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김테란
05/07/07 12:51
수정 아이콘
즉, 사회구성원들이 참여하는 경쟁이라는 게임에서
경쟁조건에 관여하는것이 분배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경쟁을 하고, 합의된 원칙에 따라 이윤을 나누고,
또 경쟁을 하고..
오히려 현 자본주의에서 합의된 그것이 따로이 없기에
시장의 활력성을 위해서 경쟁조건에 페널티를 주기도 하고,
2라운드 돌입전에 땄으면 좀 내놔보라느니,
따놓고 패널티때문에 더이상 안하겠다느니, 딴놈이 배짱부린다느니..
등의 잡음이 끊이질 않는 것이라 봅니다.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을 모순이 발생한 논리안에서 찾아 부분적,일시적으로 해결하는 것들이 반복되다보니
결국 다시, '시장원리에 따라 아무것도 건들지 말고 무한경쟁하라'는
공황이전의 이념으로 돌아가 이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역시 여전히 이념문제로 분단국가인
또한 미국의 엄청난 영향권 하에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이기에
사회주의라는 것이 자본주의만큼 친근하지는 않습니다.
막연히 이런 논의를 부정적으로 볼 때도,
별 의미가 없다 느낄때도 물론 있었고 그런 시간이 훨씬 길었습니다.
너무 길어질것 같으니,
이부분에 대해선 좀더 넓은 시각으로 해결해보려는 유럽과
굴레안에서 맴돌며 세계대전,대공황이전으로 이념회귀하는 미국.
역사적으로 돌고도는게 인류의 필연일지라도, 좀더 나은삶을 위해
틀을 깨고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느낀다 정도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단지 막연함으로는 나아짐을 기대하긴 힘듭니다.
만일, 진보라는것 역시 그자체가 막연하고,
그것들이 포함하는 가치들의 개념또한 막연하기에
무의미한 방향제시와는 무관하게
악순환의 굴레의 극복은 우연에 의한 선의 길을 찾음과
악순환경험에 의한 동의들에 의해 이뤄진다로 한정하시는 견해를 갖으신 것이라면,(그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더이상 논의자체가 불가능할 듯합니다.
제 생각은, 지금 논하고 있는 분배문제건
Ms. Anscombe님께서 말씀하시는 공장식 양육이건간에
왜?라는 질문에 충실히 답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다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등하니까, 그러나 평등이란게 절대적 개념은 아니니 더이상 설명하는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각자 막연히 생각하는 바에 의해 동의하면 좋고 아니면 그만인것이지.
이런 관점은 인문학자체를 부정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학자들은, 사상가들은 대상이
구체화자체가 불가능한,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몰라서
연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합의를 이끌어낼 필요등, 사회에 있어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기에
구체화 되기 힘든, 언어유희로 대부분이 부정될수도 있는
어려운 연구를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토론이나 대화는 일단 자신의 인식의 틀을 깨고자 하는 노력이 전제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 어떤것도 다르게 보일수 있기에 다르게 보는 그 관점들 사이에서
무언가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함이 토론의 근본적 취지가 아닌가 합니다.
덧붙이자면 전 Ms. Anscombe님께서 제기하시는 문제들에 대해 대부분 공감합니다.
그럼에도 또 제나름대로의 생각이 있기에 말이 안되는 부분이 많다
이미 알고 있음에도 논의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며,
이런점을 부정하시는 Ms. Anscombe님의 경직된 자세에 많은 아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역으로 논의가 완벽히 말이 안되는 것이고, 완벽히 불필요한것이다를 논증해 달라고 하면,
저와 OrBef님이 느끼는 곤란함을 이해해 주실수 있으실런지요.
김테란
05/07/07 14:38
수정 아이콘
하지만..님/ 권리보장이라는 원칙적용에 관해서는 저역시 막연하게나마 비슷하게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님께선 결론을 내려주셨네요^^.
다만 제가 의문이 드는것은,
1.이문제에 있어서 권리보장을 구체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은 시장논리근간을 건드리는 것이기에
자본주의를 채택했다는 전제하에선 불가능하다해도
완전 다른 논리및 이념확립이 아닌
기존을 바탕으로 한 접목시도와 함께 점진적으로 신시장논리를 만들어갈 수는 없는것인가.
2.구체적 적용은 포기하더라도 취지만은 적극 살려나갈 방편들은 있지 않겠는가.
이 두가지에 대해서 하지만..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테란
05/07/0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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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foot님/ 제가 어제올린 질문과 방금올린 질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물꼬는 억지로 나와서 노래해라는 식으로 트는것보다,
그냥 이런식으로 얘기하다보면 하고싶은 얘기와 묻고싶은것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뭔가 하고싶은 말씀을 품고 계시고, 그것을 풀어낼 시기를 기다리시는 것이라면
그냥 말씀하셔도 무방할듯 합니다. 어차피 논의의 흐름은 이미 안드로메다까지 갔으며 범위는 우주전체입니다^^.
어차피 해봐야 별볼일 없지만 저도 커밍아웃하자면,
좌측,우측모든방향에 무한히 열어두려 노력하고,
다만 분배문제에 있어서는 사고분포곡선의 중심이 사회주의쪽에 가깝다 하겠네요.
또한 아무리 회의적이라 해도 가능성마저 포기하거나 닫아두지는 않기에
제입장은 그리 첨예하게 노출될 일은 그리 많지 않을듯 합니다.
그리고 토론자분들의 스타일상 wingfoot님께서 왠지 강민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05/07/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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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테란님/지금에서야 리플을 다네요.

잠시 쉬어가는 의미로 그 어제 올리셨던 질문에 대해서만 리플 답니다.

>>재능은 떨어지고 재산도 없는 엄청난 노력가인 A가
단지 노력만으로 남들보다 많은 돈을 법니다.
그러나 그가 공평한 출발선에서 경쟁을 했다 가정한다면,
분명 그는 더 벌 수 있었습니다.
토론에 참여하시는 분들 자신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분배하라 한다면,
A에게 더 주겠습니까? 아니면 A의 소득중 일부를 거둬들이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재능도 없고 빽도없는 사람이 오로지 노력만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학생때 어버버였던 놈인데 자수성가했지'라는 소문의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공부에 재능이 없었던' 사람들일 뿐이죠. 뭐 제 주변에도 시부모님한테 돈빌려서 홍대앞에 옷가게 내더니 2년만에 몇억재산 모은 친구도 있기도 하네요.

그러니.. 재능이든 사회적 조건이든 '약간 떨어지는'정도의 사람이 '상당히 더 노력해서' 제법 많은 소득을 거두었다고만 가정하겠습니다. ( 실제 사회에서 이런 경우는, 소득은 거두어가되 사회적 존경&질시의 대상이 되는 것 같네요. '좀 배워라' 라든가 '저런 독한놈들 때문에 우리가 살기 힘든거야' 같은.. ) 또한 소득이 제로셈 분야에서 발생했는지, 그사람의 노동으로 인해 전체 가치창출이 증가했는지 등등도 고려해야 결론이 날 것도 같고.. 그러나 다 관두고, 김테란님 의도를 지레짐작해서 말씀드리자면, '더 줘야할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

제 생각은 여기서 막히더군요. 처음 발제할 무렵만 해도, 틀리면 틀리는대로 뭔가 아이디어가 있었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영 그동안 나왔던 개념들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지라 허허. 일단 리플을 못보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십사 하는 의미에서 댓글답니다. ㅠ.ㅠ
wingfoot
05/07/07 15:36
수정 아이콘
김테란님/ 제가 강민 좋아하는 거 어찌 아시고..ㅜ.ㅜ
현재까지는 일단 제가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안보여서 관망중입니다.^^
맥락없이 말할 수도 없고, 완결되고 정제된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냥 조용히 눈치보고 있는 거죠.히히히...

OrBef님/ '저런 독한 놈들 떄문에 우리가 살기 힘든거야' 라는 부분에서 웃었습니다. 맞아요. 세상에는 저보다 독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보여요. 하하.

질문에 대해서 언급하자면요, 저같으면 A가 사회에 어떤 사용가치를 돌려줬는가를 볼 것 같습니다. A가 고리대업에 노력을 투자했는지, 부동산투기에 노력을 경주했는지, 경마적중률을 높여서 돈을 벌었는지, 그런 사항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사회가 부를 분배하는 기준이 설령 '노력'이라 할지라도, 어떤 부분에 투자된 노력인가, 그리고 그는 어떤 가치를 만들었는가를 알아야지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테란
05/07/07 15:38
수정 아이콘
OrBef님/ 오셨군요^^.
님글에 대한 답변을 남길까 하다가 늦게 오신다면 묻혀버릴까봐 기다렸습니다.
일단, 논리력때문은 아니며
님께선 문열고 기다리고 계시는 시간동안
저는 좀더 생각할 기회를 갖고 들어오면서
좀 다른관점에서 불쑥 얘기를 꺼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님께서 제시한 사회모델 저 역시 공감합니다.
일단 사고실험이 복잡한 실험장치를 구성해놓고도 또 문제가 생기고 보완하고 하는 실제적용과 같을 필요는 없으며,
마찬가지로 단순화된 모델로서 일관성있어 보입니다.
헌데 자유주의와는 별 상관없어보이네요.
엘리트들의 재능을 발현할 자유보장을 극대화 하려는것이 아니라
사회및 인류공영측면에서 발전에 기여할만한 새로운 가치창출이
인간의 재능과 노력이라는 요인에 의하기 때문에 지원이 필요한 것이라 봅니다.
앞서 이문제의 원론적논의에서는 재능이 다른요인들과 구분되지 않는다 하였지만
이런면에서는 구분되며, 결국 재능에 의한 소득은 환원되지만 다시 재능을 가진자에게 지원된다.
제가 생각하는 사회모델과 완전히 같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그질문을 던진건
간단하면서도 별것아닌 예이긴 한데,
제스스로도 패러독스고 딜레마이기 때문에
다른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였기 때문입니다.^^
김테란
05/07/07 16:15
수정 아이콘
이런,
재능,노력,재산,평등.. 등으로 발제되어
안드로메다까지 왔는데, 안드로메다의 법을 따르지 못했군요.
범위가 넓혀졌는데도, 처음 논의되었던 요소들만 고려하다보니
어느순간부터 선의의 인간이 전제되었네요^^.
무엇에 따른 분배인가..
저역시 앞에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라는 표현을 했듯이
많은것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선의의 노력은 그중 일부겠죠.
헌데, 그 기준에 생산의 효율성측면까지 개입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리고 정당한분배란 잘사는녀석에게 더 보태준다는 것도 합의될 수 있을 만큼 이유가 있는것인지도 고민이구요.
05/07/07 16:22
수정 아이콘
너무 유치한 예가 될 수는 있지만,
꼭 '악의의 노력'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회를 초 단순화시켜서 100명의 사람이 있다치고,
1st case :
빵집이 2개 있는데,
삼순이는 4시간 잠자는 것 외에는 하루종일 빵만 만드는 반면,
삼식이는 7시간은 자주고, 주말에는 영화도 보느라,
두 집간에 빵의 품질이 달라져서,
1년전만해도 50개씩 팔던걸,
지금은 삼순이네가 80개를 점유한 상황

2nd case :
빵집이 2개 있는데,
삼순이는 4시간 잠자고 8시간 빵만드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전단지만 돌리는 한편,
삼식이는 8시간 빵만든 다음에는 집에가서 여가를 즐기느라,
두 집간에 빵의 인지도가 달라져서,
1년전만해도 50개씩 팔던걸,
지금은 삼순이네가 80개, 삼식이네가 20개를 점유한 상황

3rd case :
삼순&삼식이네 빵집이 있는데,
삼순이는 4시간 잠자는 것 외에는 하루종일 빵만 만드는 반면,
삼식이는 7시간은 자주고, 주말에는 영화도 보느라,
지난 1년간의 맛있는 빵 개발은 삼순이가 거의 다 했다치고,
매출이 1년새에 50개에서 80개로 늘어난 상황

이 세가지 상황이 동일해 보이지는 않아요. '노력'이라는 양이 동일하고, 30개의 추가 매출을 올린 결과가 동일하지만요.
김테란
05/07/07 16:51
수정 아이콘
일단, 제가 단편적으로 선의의 노력이라 한건 아니고..
노력의 질과 양 모두를 고려해야한다 생각합니다.
흠.. 그럼 이문제는 해결되는건지요?
유치하다며 드신 예가 저에겐 꽤나 복잡한지라^^
05/07/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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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각각
1. 일반적인 제로섬 상황
2. 제로섬인데다가 노력에 의해서 실질적인 추가 가치창출은 없었던 상황,
3. 추가적인 가치창출이 있었고 그에 대한 기여를 주인공이 행한 상황(가장 긍정적인 상황이겠죠). 더구나 자기가 속한(삼순&삼식이네빵집) 사회전체에 이득을 안겨주는 상황.

의 상황을 가정해서, 삼순이의 노력의 양이 동일했고 삼순이가 속한 집단이 결과적으로 얻은 소득도 동일하지만, 삼순이의 노력이 실제로 사회에 기여한 정도는 다른 경우를 예시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찬찬히 보니 허점들이 좀 보이네요.
05/07/0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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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wingfoot님께서 언젠가 '논의의 초점이 많이 달라진데다, 새로운 논제도 상당히 재미있는 주제이니 다시 발제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신적이 있죠?
다시 발제할 경우, 지금 토의에 참여한 분들과 새로 참여하실 분들간의 인식차이가 너무 심하게 발생할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 하는데까지 하고 마무리하는 편이 더 적당하다고 느껴지네요. 다음 발제는.. 좀 더 선정적인(?) 주제로 해보고자 합니다.
wingfoot
05/07/0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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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우, 오늘 날씨 정말 꿉꿉하고 덥네요. 일도 잘 안되고..불쾌지수 만땅입니다.-_-;

OrBef님의 제안에 찬성합니다.^^ 저도 이제 좀 흥미가 반감되어가던차라... 다음 발제를 눈빠져라 기다리겠습니다. 선정적인 거, 좋아요!!^^
05/07/0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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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느정도 정리하는데 동의하시는 듯 합니다.

어떤 종류의 합의된 결론도 없었지만, 서로간에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 적어도 저한테는요 ^^ )

모두들 좋은 하루 좋은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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