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출처 :
https://www.nytimes.com/2025/02/21/world/middleeast/egypt-tomb-archaeologists.html
기사제목 : 투탕카멘 왕의 무덤 발굴 이후 파라오 (왕)의 무덤을 최초로 발견하다.
기사내용
1)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투트모세 2세 (Thutmose II)의 무덤을 발굴했으며, 1922년 투탕카멘 무덤 이후 왕가의 계곡 근처에서 발굴된 최초의 왕릉으로 밝혔다.
위 사진은 이집트 관광유물부가 공개한 투트모세 2세의 무덤 출입구이다.
2) 새로 확인된 무덤은 투트모세 II세의 것으로, 기원전 1480년경에 통치했다고 여겨진다. 이집트 관광유물부는 성명서에서 해당 무덤이 “제18왕조의 마지막까지 발견되지 않은 무덤”이라고 했다.
3) 2022년 왕릉의 입구와
[주회랑이*] 발견된 뒤부터 이집트와 영국 연구팀들이 합동으로 발굴을 시작했다.
* main corridor (주회랑) : 건물과 건물 사이를 이으며 지붕을 씌운 길, 또는 건물 내부의 통로. 복도와 차이점은 좁고 긴 통로를 의미한다. 또한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인 상징이 부여되는 장소의 통로를 의미하기도 한다.
4) 고고학자들은 무덤이 왕족의 배우자나 하트셉수트 매장지 근처에 있어, 왕비의 것으로 생각했다. 하트셉수트는 투트모세 II세의 아내로, 그가 죽은 뒤 왕좌를 차지했다.
5) 한편, 수십년 전부터 고고학자들은 1940년 타니스와 2014년 아비도스에서 파라오의 무덤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단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에 바로 답변하지 못했다.
6) “제 생각에는 이집트 정부와 연구팀이 제18 왕조나 왕가의 계곡에서 첫 왕릉 발견으로 말한 것 같습니다.”, “왕릉이 발견된 사례들이 있습니다.” 펜실베니아 대학 이집트 고고학자이자 2014년 아비도스의 발굴팀장 ‘Josef Wegner’ 씨가 말했다.
7) 하지만 그는 새로 발견된 무덤이 하트셉투스가 “실제로 핵심 통치자”인 증거를 제공하는 점에서 “중요하고, 흥미로운 발견”이라고 말했다.
8) 해당 발굴은 하트셉투스가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이자 이복동생 투트모세 II세의 매장지를 지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또한 그녀는 나중에 두 무덤을 새로 지은 곳으로 이장했다.
9) “하트셉투스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명을 함께 핵심적인 무덤 (왕가의 계곡)에 묻었습니다.”, “앞으로 왕가의 계곡에서 하트셉투스가 핵심적인 (연구) 대상으로 중요성을 더욱 확고하게 합니다.” ‘Wegner’ 씨가 말했다. 그는 필라델피아의 펜실베니아 대학교 고고학 및 인류학 박물관 큐레이터 이기도 하다.
10) “사망한 왕”에 투트모세 2세의 이름이 적혀 있는 설화석고 항아리 조각과 하트셉투스가 새겨진 비석 등이 있었다. 또한, 보존된 천장의 일부는 푸른색 바탕에 노란색 별이 있었다고 고고학자가 말했다.
11) ‘Wegner’ 씨는 발굴팀이 찾은 가장 중요한 것은 암투아트의 요소가 포함된 조각으로 “파라오나 소수의 왕족에만 한정된 사후세계에 관한 책으로 해당 시기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2) “발견이 종종 일어나지만, 진정한 중요성은 추가적인 탐사와 함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납니다.” 발굴에 참여하지 않은 하버드대 이집트학 교수 ‘Peter Der Manuelian’가 말했다.
13) 그는 비슷한 사례로, 수십년 전 왕가의 계곡에 있던 무덤이 “이전까지 알고 있었던 것 보다 더 크고 이례적”인 것으로 밝혀진 것을 언급했다. 해당 무덤은 람세스 2세의 여러 아들을 위해 건설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람세스 2세는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권력이 강했던 파라오였다.
14) ‘Manuelian’ 씨가 말하기를, 투트모세 2세는 “이집트 역사에서 흥미로운 시기인 제국주의 적이고 국제적인 제18 왕조 시대에 살았다.”고 말했다. 그의 지배 기간은 아버지, 아들, 아내에 의해 가려졌을 것이며 아내인 하트셉투스는 약 20년 동안 이집트를 다스리고 수요 신전과 자신의 무덤을 건설했다.
15) “우리는 여전히 해당 시대의 세부적인 사항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무덤은 우리에게 추가적인 단서들을 줄 것이 확실합니다.” ‘Manuelian’ 씨가 말했다.
16) 하지만 1922년 발굴에서 유물과 함께 발견된 투탕카멘의 무덤과 달리, 투트모세 2세의 무덤은 거의 비어 있었다.
17) (현재보다) 훨씬 습했던 기원전 15세기 동안 무덤은 폭포 바닥에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투트모세 2세의 죽음 이후 얼마 안 되 침수되어 내부 부장품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여겨진다.
18) “수해는 기존 부장품 중 대부분을 잃어버리는 심각한 손상을 일으켰으며, 해당 유물들은 고대 시기에 다른 곳에서 이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 측 고고학 파견단장 ‘Mohamed Abdel Badie’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