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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3/08/17 21:37:12
Name Daydreamer
Subject [펌] 우김질
펌 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군요. ...신영복 교수님의 옥중서한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에
서 발췌했습니다. 논쟁에 대한 태도인데,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정말 시사하는 바
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전략) 우김질도 찬찬히 관찰해보면 자기 주장을 우기는 방법도 각인각색인데, 대개 다
음의 대여섯 범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작정 큰소리 하나로 자기 주장을 관철
하려는 방법입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고함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반론이 묻혀버리는 이른
바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우격다짐입니다.

둘째는, 그 주장에 날카로운 신경질이 가득 담겨 있어서 자칫 싸움이 될까봐 말상대를 꺼
리기 때문에 제대로의 시비나 쟁점에의 접근이 기피됨으로써 일견 부전승(不戰勝)의 외형
을 띠는 경우입니다.

셋째는, 최고급의 형용사, 푸짐한 양사(量詞), 과장과 다변(多辯)으로 자기 주장의 거죽
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방법인데, 이것은 가히 물량시대(物量時代)와 상업광고의 아류라
할 만 합니다.

넷째는, 누구누구가 그렇게 말했다는 둥, 무슨 책에 그렇게 씌어 있다는 둥...... 자체의 조
리나 이론적 귀결로써 자기 주장을 입증하려 하지 않고 유명인, 특히 외국의 것에 편승, 기
술제휴(?)함으로써 '촌놈 겁주려는' 매판적 방법입니다.

다섯째는, a1+a2+a3+……+an 등으로 자기 주장에 +가 되는 요인을 병렬적으로 나열하
는 '+α'의 방법입니다. 결국 - 요인에 대한 + 요인의 우세로써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
하는 방법인데 이는 소위 '헤겔'의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필연성의 일종이긴 하나 필연성
그 자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자연과학에 흔히 나타나는 기계적 사고의 전형입니다.

여섯째는, (자기의 주장을 편의상 '그것' 이라고 한다면) 우선 '그것'과의 반대물을 대비
하고, 전체 속에서의 '그것'의 위치를 밝힘으로써 그것의 객관적 의의를 규정하며,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시계열상(時係列上)의 변화/발전의 형태를 제시하는 등의 방법인데 이
것은 한마디로 다른 것들과의 관계와 상호연관 속에서 '그것'을 동태적으로 규정하는 방법
입니다.

이들 가운데서 여섯번째의 방법이 가장 지성적인 것임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여
섯번째의 방법이 난삽한 논리와 경직된 개념으로 표현되지 않고 생활 주변의 일상적인 사
례와 서민적인 언어로 나타나는 소위 예술적 형상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가히 최고의 형태
로 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오진을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주고 끈
기 있게 기다려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는 주장과 주장의 대립
이 논쟁의 형식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잘 아는 친구가 서로 만나서 친구 따라 함께
강남 가듯, 춘풍대아(春風大雅) 한 감화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군자성인지미(君子成人之美), 군자는 타인의 아름다움을 이루어주며, 상선약수(上善若
水), 최고의 선은 흡사 물과 같다는 까닭도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를 일입니
다. (후략)


끝에서 두 번째 문단, '상대방이 자신의 오진을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주고 끈기 있게 기다려주는' 자세를 갖췄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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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as Pain
03/08/17 21:54
수정 아이콘
'난삽한 논리와 경직된 개념으로 표현되지 않고 생활 주변의 일상적인 사례와 서민적인 언어로 나타내는'

우김질을 스타보다 좋아하는 논객으로서의 내 자신이 가장 어려워 했던, 하는, 할 부분
2000HP마린
03/08/17 22:11
수정 아이콘
같은 길을 가다보면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는듯...
Judas Pain
03/08/17 22:55
수정 아이콘
첫째- 치즈러쉬

둘째- 초반 칼타이밍러쉬

셋째-패스트 멀티후 물량 러쉬

넷째-패스트,전진,몰래 전략시리즈

다섯번째-초중후반 전신 압박형(리치식) 플레이

여섯번째-대략 GG

아직까지 여섯번째 경지에 다다름을 견식할 기회가 없었음, 다만 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 경지를 얼핏 엿볼수 있으니,

-집중력을 발휘할때의 '한량' 이재훈 프로의 대테란전 -
03/08/17 23:09
수정 아이콘
여섯번째.. '생활주변의 사례, 서민적인 언어.'
.... 너무 어렵습니다.

.... 이게 안 되서 여기서도 아직 덧글 외의 글을 거의(하나;;)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붕어가시
03/08/18 00:20
수정 아이콘
훌륭한 글입니다. 마침 다음 주에 할 컨설팅의 흐름을 잡지 못해 고전하고 있었는데 PGR에서 번쩍하는 영감을 주는 군요. Daydreamer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김대선
03/08/18 03:36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에는 이상적인 형태의 토론이란 존재하기 힘든것 같습니다.
토론은 우호적인 관계가 전제가 되야 하는데... 실제 그런 상황이 좀 드물죠. 논쟁의 방법에 대해서 라고 말한다면 사실 위의 우김질의 대부분의 형태는 논쟁의 정석적인 빌드들이고, 이걸 우김질이라고 우기는게 오히려 이상한것 같습니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 논쟁의 기술중 하나인 "상대를 비웃음거리로 만들기" 를 추가해주고 싶군요.
6번쨰를 예술적으로 승화한다는것은 선문답의 형태를 염두에 둔듯 한데, 이걸 우김질의 범주에 넣었다는것은 칭찬해주고 싶은 점입니다.
하지만 옥중에서 군자가 되고자 하는 필자의 소망이 배부른 부르주아의 유희처럼 보인다는건.....저의 개인적인 견해일까요.
Judas Pain
03/08/18 05:33
수정 아이콘
이상적인 토론의 형태라는 것은 수많은 미디어에서 변주되는 '완벽한(또는 행복한) 가정' 이라는 허구와 무척이나 닮은 데가 있습니다

토론이라는것 그리고 그 방법론으로서의 논쟁이라는것

아니 논쟁의 기술은, 그냥 단순하게 말해서 말싸움의 기술입니다

(논쟁의 방법들을 우김질이라고 한것이 아니라 논쟁자체를 우김질로 회화한 글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게임에서는 이쪽편이 세상에 얼마되지 않는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것은 무척이나 강력하며 위험부담이 없는 전략인 것은 사실일겁니다

선문답이라는것은 기만적인 우김의 고급기술입니다

하지만 굳이 이 기만의 기술을 멋지게 소화해 낼수 있다면

그래서 우호적인 토론을 전제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우호적인 토론을 이끌어 낼 줄기를 머리속에 확실히 그릴수 있다면

뭐 굳이 신영복 교수의 옥중의 군자도 나름의 멋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이 '기만'은 치열한 자기검증의 무한한 반복에서 얻어지는 것일테니 말입니다
러블리제로스
03/08/18 12:57
수정 아이콘
정말 마음에 와 닿는 글입니다. 그리고 첫번째로 댓글을 다신 유다스 페인님의 (죄송합니다..영타치는걸 싫어해요. 발음 맞나요?) 말에 공감합니다 쉬운말을 잘쓰는 사람이 정말 말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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