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5/11/05 19:15:03
Name redtea
Subject [팬픽-공모]PGM <1>


이 소설은 '픽션' 이므로 현존 인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


"삐익, 삐익, 삐......"


미친 듯이 삑삑대던 컴퓨터 소리가 뚝 멎었다. 지훈은 손에 들고 있던 컴퓨터 전원 코드를 옆에다 던져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20번은 훨씬 넘었다.


"거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주영이 의아한 얼굴로 전원이 나간 컴퓨터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분명 10분 전만 해도 잘만 돌아가던 컴퓨터였다. 그런데 지훈이 연습을 하기 위해 스타크래프트를 실행시키자마자 컴퓨터가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말하자면, 지훈이 손을 대기만 하면 멀쩡하던 스타크래프트 소프트웨어가 박살나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조차 없었다.


"형, 어떡해요?"


"됐어. 그냥 놔둬."


지훈은 재윤을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터벅터벅 연습실을 나갔다. 어두컴컴한 거실로 들어선 지훈은 조용히 소파에 걸터 앉았다.


연습을 하지 못하기 시작한 것은 '지훈의 기억으로' 이미 2주일 전의 일이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돌아가던 일상의 수레바퀴가 2주전 갑자기 어디론가 빠져버렸던 것이었다. 스타크래프트를 실행시키기만 하면 박살나는 컴퓨터, 매일매일 인터뷰하러 오던 잡지사 기자들의 갑작스런 연락불통, 그리고...... 열리지 않는 현관.


지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현관쪽으로 나갔다. 주황빛 불이 저절로 켜진 현관 아래, 지훈은 살며시 현관의 손잡이를 잡았다. 손바닥을 통해 전해오는 싸늘함에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딸깍"


분명히 끝까지 다 돌렸다. 지훈은 얼른 손잡이를 앞으로 밀었다. 그러나, 문은 마치 벽인 것 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훈은 다시 힘껏 밀었다. 열리지 않는다. 안다. 지훈은 잘 알고 있었다. 이 문은, 2주일전부터 더이상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 없는 문일 것이다.


"... 그만해. 열리지 않는 다는 거 지훈이 너도 알잖아."


어두운 거실 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재훈이었다. 지훈과 함께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다른 한 사람, 재훈.


---------------------------------------------------------------------------------


-2주전-


"우와~ 감독님이 한 턱 내시는 거에요?"


재윤이 뛸 듯이 좋아하며 1층으로 뛰어 내려왔다. 1주일 전부터 감독님이 약속하셨던 일이었다. 물론 지훈도 가고 싶었다. 단지 가고 싶기만 하면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다른 팀원들도 천천히 1층으로 내려왔다. 워낙이나 경기 때 긴장을 잘 하는 탓에 어머니께서 주셨다는 부적을 꼭 어디서나 가지고 다니는 재윤과 거울이 없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주영, 팬이 보내 준 모자를 꾹 눌러쓰고 나가는 형태...... 지훈은 그들 사이의 한 평범한 프로게이머였다. 적어도 그 전까지는.


"얼른 나와요~ 먹으러 가자구요~"


"얼른 빨리 나와. 안 그럼 마음 변할 지도 모른다."


재윤이 말하자마자 감독님의 말소리가 크게 울렸고,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선수들이 우루루 빠져나왔다. 지훈도 그 사이에 섞여 현관문을 나서려고 했다. 지훈이 현관문 턱을 넘으려는 순간, 벽에 달려든 사람과 같이 현관 안쪽으로 팅기고 말았다. 그와 거의 동시에 현관문이 닫혔다. 그 때, 그는 얼떨떨하기만 했을 뿐 다시 나가지 못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누가 민 거야? 쳇..... 아무리 먼저 가고 싶어도 그렇지......"


지훈은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러다가, 방안 거실에 홀로 앉아있는 재훈과 눈이 마주쳤다.


"아, 재훈 형? 안 가요?"


"못 가."


짧게 대답한 재훈은 다시  TV쪽으로 눈을 돌렸다. '못 가'? 지금 재훈은 전혀 바빠보이지 않았다. 왜 못 간다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지훈은 다시 현관문을 열었다. 아니, 열리지 않는다? 지훈은 동료들을 놓쳐버릴까봐 다급하게 다시 밀어보았다. 열리지 않는다. 문은 본드로 붙여놓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분명 손잡이를 다 돌렸는데, 문도 잠겨 있지 않은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뭐야? 밖에서 문을 잠궜나?"


주영이나 형태라면 물론 가능한 장난이었다. 지훈은 문을 세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야, 문 열어! 재미 하나도 없어!"


그러나 밖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다시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을 데리러 오겠지, 지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 턱에 잠시 앉아 있었다. 그러나 10분이 지나도록, 20분이 지나도록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또한 밖에서 들렸어야 할 키득키득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훈은 다시 현관으로 달려가 손잡이를 꽉 잡고 밀었다.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도, 잠금 장치를 모두 확인해 보고 열어 놓아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갔는데 어째서 지훈만 나갈 수 없는 걸까.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망연자실해 있는 지훈 쪽을 묵묵히 쳐다보고 있던 재훈이 말을 걸었다.


"지훈아. 너 혹시 태민이 기억하니?"


"...... 박태민 선수요?"


재훈은 지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니가 못 나가는 이유를 알겠다. 앉아. 아무리 애써봐야 못 나갈 테니까."


재훈은 뭔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지훈이 물어봐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지훈의 연습은 중단되었다. 스타크래프트만 실행하면 오류가 나, 더 이상 손 쓸 수 없어지는 상황. 지훈은 속이 답답하기만 했다.


---------------------------------------------------------------------------------


재훈이 거기에 앉아 있다는 것을 일찍 몰랐던 것은 아마 어두웠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훈은 가만히 문을 쳐다보다가 힘없이 돌아서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재훈 형. 예전에 누구였지? 그...... 그 사람도 이랬다고 했었죠?"


"태민이 말이야?"


"맞다...... 박태민... 어떻게 집을 나갔던 거에요?"


"너, 태민이에 대해서는 안다고 했었지. 얼굴은 기억나냐?"


지훈은 멍하니 생각해 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물론 이름은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태민을 직접 봤었나?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 같은 팀이었다는 것은 재방송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박태민' 이라는 프로게이머가 GO의 프로리그 경기에 출전한 것을. 그러나 지훈은 태민을 직접 숙소에서 본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본 적이 없어요. 알고 있기야 하지만. 어쨌든 어떻게 박태민 선수가 나갔는지, 그거부터 이야기 해 봐요."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연습도 못하고 있지? 태민이도 이랬어. 나보다도 훨씬 일찍. 예전부터 - 언제부터인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 나는 연습만 계속 해왔었어. 그런데 어느 날, 내 눈에 주위모습이 들어왔어. 그와 동시에 연습도 외출도 끝나버렸지.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쓰던 날 기다리고 있던 건 태민이었어."


---------------------------------------------------------------------------------


"형. 앉아요. 그래봤자 아무 소용 없을 걸요."


태민은 재훈을 향해 살짝 미소지었다. 그러나 바로 평소의 무표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재훈은 태민에게 이유를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왜 못 나가는 거야? 연습은 왜 못하는 거고?"


"질문이 너무 많은데요. 음...... 저도 사실 잘 몰라요. 하지만...... 1주일만 있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찾는 중이거든요."


태민은 뭔가 할 일이 있다는 듯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을 하려는 건가? 재훈은 고개를 흔들었다. 태민도 연습이 불가능했다. 컴퓨터의 의심스러운 고장때문에. 그럼...... 인터넷에서 뭔가 찾을 게 있나?


---------------------------------------------------------------------------------


"그런데, 몇일 후에 갑자기 연습실에서 태민이가 쿵쾅쿵쾅 뛰어 내려왔었어."


재훈은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 천장을 초점없이 쳐다보았다.


---------------------------------------------------------------------------------


"형! 형!"


거실에 할 일 없이 앉아 있던 재훈이 계단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민이 얼굴이 상기된 채로 서 있었다.


"왜 그래?"


"...... 알아냈어요. 모든 이유를 다. 그리고......"


"그리고?"


"......"


태민은 뭔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다물었다.


"아직...... 아직은 안 되요. 나중에 이야기 해 줄께요. 먼저 '그들'과 이야기를 해 봐야 겠어요."


"'그들'?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들'은 또 뭐야?"


"......"


재훈의 질문들이 속사포처럼 떨어졌지만 태민은 난감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리고 태민은 다시 연습실로 조용히 올라갔다.


---------------------------------------------------------------------------------


"'그들' 이라니요?"


지훈이 궁금하다는 듯 재훈에게 질문했다. 그러나 재훈은 고개를 저었다.


"태민이는 끝까지 이야기 해 주지 않았어. 그리고...... 몇일 후 사라졌지."


"예?"


"여기에 있으면 위험해서 어디에 숨었다가 돌아온댔어. 그러면서 나한테 그러더라. 혹시라도 자기가 돌아오지 않으면 이 집 어디엔가 숨겨놓은 '키'를 찾으라고."


"키? 열쇠인가요?"


"아니. 플로피 디스켓이야."


---------------------------------------------------------------------------------


"어떻게 나가려고 그래? 너 못 나가잖아."


태민은 뭔가 알고 있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새하얀 플로피 디스켓을 들어보였다.


"이게 바로 '키'에요.  아니, 키의 복사본이긴 하지만. 가지고 다니면 위험하거든요."


"키? 이게 뭐 어쨌는데."


태민은 왼손에 들고 있던 플로피 디스켓을 꼭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현관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이 살며시 현관 손잡이를 돌렸다. 그리고, 재훈의 눈 앞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현관문이...... 열렸다. 눈부신 빛. 밖은 온통 하얗게 보였다. 적어도 재훈의 눈에는.


"금방 다녀올께요. 제가 돌아오지 않거든...... 키를 찾아요. 아니, 찾지 않아도 돼요. 필요가 없다면요."


태민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져갔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봐서였을까? 재훈은 눈부심에 살짝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다시 눈을 뜬 후의 세상은 평소와도 같았다. 굳게 닫혀 있는 문. 약간 다른 점이라면 누군가 지나간 듯 주황색 등이 켜져 있는 점과, 거실에 늘상 앉아 있던 태민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


지훈은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다시 질문했다.


"그럼...... 박태민 선수는......"


"......돌아오지 않았어. 다시는. 그리고, 그 녀석에 대한 기억 모두. 아무도 태민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 재윤이도, 주영이도, 형태도. 너와 나 뿐이야."


--------------------------------------------------------------------------


1주일이 지나도록, 2주일이 지나도록 태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재훈은 불안감에 휩싸였고, 팀원들에게 혹시 태민의 소식을 들었나고 물어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무도 태민을 기억하지 못했다.


"얘들아. 혹시 태민이한테 연락 없었어?"


"그 사람이 누군데요?"


주영에 이어 환중이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몰라요."


"박태민? 모르는데요."


재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이들 말고도 모든 다른 팀원들도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 때, 지훈은 모른다고 대답했었다.


--------------------------------------------------------------------------


이상했다. 분명 지훈의 기억에도 그 때는 태민에 대해 몰랐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알고 있지? 지금 생각해 보니, 지훈은 재훈의 질문을 받기 전에 이미 태민의 경기 모습을 재방송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는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었다. 왜지? 왜......?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죠? 그 디스켓을 찾아야 할까요?"


"......난 이미 찾고 있어. 그런데, 온 연습실을 다 뒤져봐도 없어. 하지만 분명 어딘가 있을거야. 그게 있으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야. 이 이상함의 정체를."


말을 마친 듯 재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훈은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재훈은 지훈을 슬쩍 한 번 보더니 연습실로 올라갔다.


"어째서, 난 박태민을 숙소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


기억이 마구 엉키고 있다. 지훈은 고개를 크게 저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고장나버리는 컴퓨터도, 열리지 않는 문도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이었다.


--------------------------------------------------------------------------------

[공모]타이틀은 1편과 완결작에만 달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5/11/05 19:41
수정 아이콘
오 재밌습니다.. 빨린빨리 연재 부탁드립니다..^^
05/11/06 22:02
수정 아이콘
기대됩니다 ^^
노란당근
05/11/08 00:10
수정 아이콘
저두요 뒤늦게 읽었는데 재미있네요 빨리 올려주세요~
미이:3
05/12/07 00:56
수정 아이콘
저도 뒤늦게 읽었는데 굉장히 재미있네요-
소재가 참 독특한 것 같습니다^^ 건필하세요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3 [팬픽] 용호상박 - 1. 기다림 [3] 라이포겐7454 05/11/13 7454
12 [팬픽공모]The Ring Finger 1부.. [8] Vocalist7914 05/11/11 7914
11 [공모] 다시 미친다는 것 [4] 부루마우스7259 05/11/10 7259
10 [팬픽 - 공모] 테란을 쓰다듬다... [3] Love.of.Tears.7844 05/11/09 7844
9 [펜픽 공모] Color Of Love_YellOw [2] [NC]...TesTER8054 05/11/09 8054
8 [공모-장편소설] 제 1화 - 프롤로그 [4] EzMura6572 05/11/07 6572
7 [공모-단편]아이우의 하늘 ver.2 [4] legend6734 05/11/07 6734
6 [공모-꽁트] 마우스 셋팅하던 노인 [15] SEIJI8669 05/11/07 8669
5 [공모-단편] Honesty [3] Point of No Return6767 05/11/07 6767
4 [공모] 마루 - 1 [3] Talli6989 05/11/06 6989
3 [팬픽-공모]PGM <1> [4] redtea7518 05/11/05 7518
2 [팬픽-공모] 윤무(輪舞) [15] kama8324 05/11/04 832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