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5/12/12 22:47:21
Name phoneK
Subject [공모] Fly High -9화- '수현'
"주혁은 늘, 자신의 승리가 당연하다고 여겼어요. 병든 어머니를 위해 게임을 하는 자신의 승리가, 즐겁게 게임을 하는 다른 이들의 승리보다 귀중하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어요. 그런 일그러진 마음으로 그 대회의 결승을 치룬 건 크나큰 잘못이었습니다."

피시방 주인의 아들은 어디론가 향해 걸어가면서,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상대는 아주 어렸지만, 나름대로 진지했어요. 승승장구하던 주혁이를 2-2까지 몰아붙이고 우승의 문턱에 도달해있었죠. 하지만 주혁은 질 수가 없었어요. 그리 큰 상금이 걸린 대회가 아니었지만, 자존심이 용서치 않았던 것도 있었겠지요. 그래서 주혁은 한가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4경기가 끝나고 나서, 상대의 마우스패드에 몰래 약품을 칠했지요."

"베오드린(beodrine)같은 건가보군요."

"마찰열에 의해 점성을 갖는 화학약품이죠. 5경기가 중반전에 접어들자 주혁의 상대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지만 의심같은 건 하지 않았어요. 정말 그는 주혁과는 달리 순수한 아이였죠."

사내는 쓴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그 아이는 건강한 아이가 아니었어요. 불쌍하게도 '횡문근육종'이란 병을 앓는 아이였죠. 게다가 자세한 건 모르지만, 그 아이는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누군가와 어떤 약속을 한 모양이더군요."

사내는 걸음을 멈추고 눈 앞에 서있는 작은 2층집을 가리켰다.

"들어가보시겠습니까? 저는 더이상 다가갈 자격이 없네요, 저 집에는. 주혁이의 친구니까요.“

"아뇨, 데려다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뒷이야기는 그 아이의 부모님께 여쭈여보겠습니다."

기욤은 사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뒤로 한 채, 2층을 올려다 보았다.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한 그 집은, 사내의 뒷모습만큼이나 쓸쓸한 느낌을 주고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한 야윈 여성이 2층 베란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기욤은 간단히 자신의 소개를 한 뒤, 단지 그 아이를 돕고싶어서 찾아온 거라 했다. 그녀는, 이상한 일이었지만 별 거부감없이 기욤을 안으로 들여보내었다.( 나중에야 안 일이었지만, 소아협회에서 기부금을 걷어오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우리 아이를 보러오신 거군요. 하지만 당신 얼굴은 처음 보는데, 어떻게 찾아오신건가요?"

아이의 어머니는 무척이나 자상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가의 주름살은 그런 미소로도 숨길 수가 없었다. 기욤은 그녀가 무척이나 마음고생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최근,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우선 이걸 봐주시겠습니까?"

기욤이 꺼낸 것은, 바로 그 채팅메세지였다. 기욤은 그 메세지를 복사한 종이를 그녀에게 보여주며, 글자체를 강조했다.

"이 글자체, 그 아이의 글자체가 맞는지 확인을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것은!"

그녀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놀라면서도 슬퍼하는 듯한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기욤은 차마 그녀의 얼굴을 마주볼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려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한 장식이 많아서 마치 아기들이 사는 방같은 분위기였다. 방은 3개가 있었는데, 유독 하나의 문만이 굳게 닫혀있었다.
기욤은 천천히 그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기욤은 그게 티비에서 나는 소리임을 곧 알아차렸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보다, 이 글자체는 어떻게 된건가요? 우리 아이가 어딘가에 살아있기라도 한 거란 말인가요?"

그녀는 정말로 많이 놀란 듯했다. 눈을 크게 떠서인지 잔주름살 하나하나가 가느다랗게 펼쳐져있었다.

"대답해줘요, 우리 아인 어떻게 된건가요!"

"미안하지만, 저도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것은 이 방을 들어가 봐야 알 것 같은데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기욤은 천천히 그 문을 열어젖혔다.



"정신이 드나, 주혁군?"

주혁은 천천히 눈을 떴다. 하얀색이었다. 무척 깨끗한 하얀색. 그리고 흰 옷을 입은 두 명이 눈 앞에 서있다. 한 명은 의사였고, 다른 한 명은 의장인 것같았다. 다시 주위를 살펴보니 온통 하얀색 벽과 천장뿐이었고, 조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살아있는건가요, 나?"

"운이 무척 좋았다.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알아. 그 본체가 행여나 주혁군의 머리를 덮쳤다면..."

"그런데 손에.. 감각이..."

"놀라지 마라, 주혁군. 네 양손은 아직 제대로 어깨에 붙어있으니. 하지만 뼈가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너와 함께 떨어진 본체에 눌린 탓이야. 마우스 줄이 본체에 연결된 채로 주혁군의 손목에 엉켜있었다더군.“

의장의 말을 의사가 받아서 부연설명했다.

"심한 분쇄골절이라서 치료하는데 시간이 걸릴거야. 당분간 이 손으로 게임을 하는 건 무리다. 마음 단단히 먹고 치료받도록 하게나."

"하하, 그런건가요..."

주혁은 그 말을 듣고 왼 손을 움직여보았다. 왼 손은 그나마 잘 움직여지는 듯 했다. 주혁은 왼 손을 들어올려 천천히 눈가로 가져갔다. 언제가부터 고여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주혁은 한 손만으론 자신의 눈물을 숨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그 본체에 들어있던 하드디스크는 복구불능이다. 주혁군의 후배들 말에 의하면 무척이나 중요한 파일들이 들어있었다는데.”

“괜찮습니다. 그런 중요한 자료들을 백업해두지 않는 바보가 어디있나요.”

의장의 말에 주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지갑을 꺼내었다. 그 지갑을 반대로 뒤집은 채로 살짝 흔들자, 그 곳에서 주혁을 닮은 한 여인의 사진이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의장은 주혁 대신 그 사진을 집어들었다. 사진 뒷 면에는 아주 작은 글씨가 새겨져있었다.

‘For You, Mother'


"마치 꿈을 꾸고있는 것같군요."

한 열살쯤 되보이는 아이가 침대에 고이 누워있었다. 한 손으로 로보트 프라모델을 쥔 채, 다른 한 손은 주먹을 꼭 말아쥔, 무척이나 이쁘장한 아이였다. 기욤이 멍하니 서있는 사이, 그녀가 다가와 아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순간 아이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는 듯했지만, 그 뿐이었다. 아이는 아주 기나긴 꿈을 꾸고 있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수현이랍니다. 오래전부터 이런 상태로 잠을 자고 있었지요. 어떤 치료를 받아보아도 결코 깨어나지 않았답니다."

"그럼 '횡문근육종'이란 병은?"

"누구에게 이야기를 듣고오신 모양이군요. 그 병은 이렇게 잠이 든 이후, 점차 치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깨어나지 못한대서야 병이 치료되어도 아무 소용이 없지요."

기욤은 그녀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이는 걸 느꼈다. 하지만 이야기를 더 듣지 않고서는 실마리를 풀어낼 수 없었다. 기욤은 아이가 쥐고있는 로보트를 만지며 물었다.

"수현이가,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했나요?"

"네. 수현이가 좋아한 것은 단 세 가지뿐이었지요. 스타크래프트인가 하는 게임과 저 로보트, 그리고 ‘꿈’을 꾸는 것이었죠."

"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죠? 수현이가 이렇게 잠이 든 것은 비슷한 시기였나요?"

기욤이 아픈 기억을 이끌어낸 듯, 그녀는 양 손으로 가슴팍을 껴안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네... 수현이는 마지막 경기에서 진 직후,  키보드와 마우스를 손에 쥔 채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답니다. 그 때는 애 아버지가 같이 갔었는데, 전해 듣기로는 전혀 이유가 될 만한 것이 없었다는군요. 다만 의사의 말로는, 지나친 승부의식이 스트레스를 가져다준 것이 아닌가 하는... 하지만 그런 아이는 전혀 아닌걸요 수현이는!"

"네. 아마 그 말이 맞을겁니다. 수현이는 단지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한 거였겠지요."

기욤은 많이 흔들리는 듯한 그녀를 안아주며 어깨 너머로 켜져있는 티비화면을 보았다. 비디오를 넣어두었는지 아까부터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많이 보는, 로봇만화였다. 그리고 그 화면에 등장하는 로봇은, 수현이가 손에 쥔 로봇과 같은 것이었다.

‘흐음, 킹라이거라...’

"이렇게 수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모아두었는데, 왜 일어나지 못하는거죠? 왜?"

흐느끼는 그녀의 어깨 뒤로 두 로봇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착한 로봇은 양쪽에 낫이 달린 커다란 봉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마치 금속을 자르는 듯 날카로왔다. 하지만 그런 로봇들의 호쾌한 격투도 지금은 그녀의 울음소리에 묻혀 슬프게만 보일 뿐이었다.

기욤은 최대한 수현이 어머니를 진정시킨 다음, 다시 찾아오겠노라 약속을 하고 집을
나섰다. 그 때 마침 걸려온 전화는, 기욤이 기다리던 바로 그 전화였다.

"강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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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5/12/12 23:18
수정 아이콘
후덜덜한 속도! 마감까지는 약 40분! (……;;)
어린아이일 것이라고는 생각했습니다만, 설마 깨어나지 않는 아이일 줄이야. 결말이 정말 기대되네요.
미이:3
05/12/13 00:05
수정 아이콘
으앗, 깨어나지 않는 아이인가요...
강민의 전화+_+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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