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1/09/26 06:41:29
Name 눈시BB
Subject 그 때 그 날 - 과거 (4) 아버지 아버지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보다가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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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년, 영조 33년의 두 명의 대비가 세상을 떠납니다. 영조의 비 정성왕후와 숙종의 비 인원왕후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얘기를 시작해 보도록 하죠.

1. 어머니의 죽음
정성왕후에 대한 영조의 반응은 정말 건조했습니다. 이미 십사년 전에 그녀의 병이 위중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죽기 직전까지 문병 한 번 오지 않다가 예의상 왔다고 하죠. 처음에 그녀와 혼인한 후 손이 예쁘다 이런 말을 하자 "귀하게 자라서 그랬다"는 말을 들었고, 그게 자기 출신(무수리의 아들)을 비꼬는 거라 생각했다는 말이 있더군요. 한 나라의 국모였지만, 그녀는 궁 안에 박혀 사는 존재 이상도 아니었습니다.

반면 세자는 달랐습니다. 일단 호적상으로 그녀의 어머니기도 했지만, 그녀에 대한 정성이 정말 지극했던 모양입니다. 한중록에서는 이 때의 에피소드를 또 다루고 있는데... 이쯤 되면 어이 없네요.

그 때 세자는 정성왕후 옆에서 간호하면서 토한 피를 보고 울고, 의관들에게 하소연하면서 정말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정성왕후가 계속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갔는데, 새벽에 의식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또 달려가니 이미 대답도 하지 못 할 정도였다고 하죠. 세자는 "소신(小臣) 왔소, 소신 왔소" 하면서 계속 불렀지만... 이미 늦었죠. 그런데 그 때 영조가 옵니다. 세자는 슬픈 와중에도 당황했다고 하네요. 한중록은 이 장면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버님이 무서우셔도 두려움을 무릎쓰고 울고, 전처럼 인삼차를 연거푸 모후의 입에 떠넣어드리며 (중략) 조금 나으실텐데, 도리어 다급한 가운데 좁은 방 한 구석에서 황송하여 움츠러들어 엎드려 계시니"

"영조께서는 그 정황 중에도 경모궁 옷 입으신 것까지 걱정을 하시며 (걱정? 풋)"
"모후 병환이 이러한데, 몸을 어이 저리 가지리" 꾸짖으시니라.

좋게 좋게 적은 모양인데, 마누라 신경 안 쓰다가 죽기 직전에야 찾아 와 놓고 슬퍼하는 아들내미 옷 입은 거 가지고 뭐라고 한 겁니다. -_-; 뭐 이거야 한중록에만 적힌 거니까 과장이 있다손 칠 수 있지만... 이 때 화완 옹주의 남편 정치달이 죽었는데 오히려 그녀를 위로한다며 그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이건 실록에도 적혀 있죠. -_-;; 한중록은 여기에 더 해서 영조가 정성왕후 처음 만났을 때부터의 얘기를 기일게 해서 장례 절차도 시작하지 못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례식 시작도 못 하게 질질 끌다가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까 딸내미 찾으러 간 거죠.
... 하아... -_- 다음 달에는 인원왕후가 죽습니다. 이 때는 영조도 정말 진심으로 슬퍼하죠. 피가 섞이지 않았다 하나 인원왕후는 그녀의 어머니나 다름 없는 존재였거든요. 뭐... 더 길게 쓰진 않겠습니다.

+) 하나만 더 짚고 가자면, 영조는 정성왕후를 싫어해서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정말 싫어한다면 세자에게도 이랬겠죠. 하지만 영조는 세자를 싫어해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싫은 아들이라는 감정과 유일한 아들이자 자기를 이을 사람이라는 애정, 이 둘이 섞인 게 비극을 낳았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2. 세자의 적들
이 즈음 한중록에서 신나게 적고 있는 게 세자의 적들입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문녀, 숙빈 문씨죠. 그녀는 영조의 총애를 받자 자기 자식을 왕에 앉히려고 온갖 궁리를 했다고 합니다. 아들을 못 낳으면 다른 자식이라도 들이려 했다고 하죠. 그녀와 함께한 것이 그녀의 오빠 문성국입니다. 그 둘은 정조 즉위 후 첫타로 찍혀서 죽습니다.

그 다음 나오는 것이 김상로입니다. 영조가 늙어서 아파 가자 그가 국정을 마음대로 움직였다고 하죠. 처음에는 세자도 은인으로 여겼는데, 날이 갈수록 둘 사이를 이간질 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언급되는 것이 바로 정순왕후입니다. 물론 한중록에는 그녀를 욕 하는 말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그녀 주변의 사람들, 특히 김귀주를 욕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조선시대 언제나 쓰이던 방식이죠. 왕이 잘못이 아니라 왕을 현혹한 신하의 잘못, 김귀주를 욕 하고 있지만 그 화살은 정순왕후였습니다. 이 때가 1759년이었습니다.

한중록의 경우 이들의 활약은 그리 크게 적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현재 통설은 별 무리 없던 부자를 이들이 갈랐다고 하고 있죠. 한중록에서 나오는, 단지 아버지와 아들 간의 성격이 맞지 않은 것 때문이다는 것에 대한 반발일 겁니다. 글쎄요... 이들의 활약이 없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제갈량이라도 살아 돌아오지 않는 이상 멀쩡했던 것을 그리 쉽게 부술 순 없습니다. 지금까지 봐 왔듯 부자 사이의 관계는 갈 때까지 갔습니다. 세자가 아직 세자인 이유는, 그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였죠. 그 즈음에는 세자의 병도 이리저리 알려졌을 겁니다. 작은 원인일 순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을 무시한 거죠. 마지막 편쯤 가서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하나 더 짚어볼 것은 그들의 힘이 세자의 위치를 뒤흔들 정도가 되었냐는 것입니다. 홍봉한은 외척으로 최고의 힘을 가지다시피 했죠. 문녀부터 김귀주까지, 그들에게 도전할 정도는 되었겠지만 발언권이라는 면에서 그것을 넘을 수 있었을 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홍봉한이 계속 세자를 비호했다면 그 비극이 일어났을지도 의문이구요.

뭐... 다른 에피소드들을 더 찾아 보죠.

3. 조금 심한 비행
정성왕후가 죽기 전, 세자는 천연두로 죽다 살아났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와 다름 없는 사람을 잃었으니,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안 그래도 정신이 불안정하던 그였습니다.

혜경궁은 그에게 의대증이 생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옷에 민감하긴 했는데, 이 때부터 확실히 드러났다고 하죠. 영조한테 욕 먹은 후에 말이죠. 영조도 세자가 정성왕후의 빈소에 가면 뭘 꼬투리 잡아서 꾸중했고, 인원왕후의 빈소에는 오지도 못 하게 했다고 합니다. 세자도 화를 풀지 못 해서 내관들을 때렸다고 하죠. 그리고 "옷을 잘 못 입으시는 병"이 생겼다고 적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후술해야겠네요. 사실 이건 별 거 아닐지도 모르거든요.

영조 33년 6월, 정성왕후가 죽던 그 해 내관 김한채를 죽입니다. 그 머리를 들고 와서 내인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비행의 시작입니다. 그 후 여기저기 내인(궁녀-_-a)들을 가까이 했는데, 이 때의 모습도 참 보기 좋습니다.

"내인들이 순종하지 않으면 치고 때려서 피가 철철 흐른 다음에라도 가까이 하시니 뉘 좋아하리요"

혜경궁은 이렇게 담담하게 적고 있습니다만... 좀 바꿔 생각해보면 결론이 좀 끔찍해집니다. 왕은 아직 안 됐다 하나 세자와 같이 잔다는 건 승은을 입는 것, 곧 영광입니다. 그런데 "세자가 치고 때려서 피를 철철 흘리게 할 정도의" 무언가가 있었다는 거죠. 세자가 가학적으로 했거나 내인들이 반항을 했다는 거겠죠.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습니다. 승은의 영광을 피해야 할 정도로 세자의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거죠. 뭐... 이런 덕분인지 세자가 자식은 참 많았습니다.

그 해 9월에는 침방(바느질하는 곳) 내인 빙애 (귀인 박씨)를 데려옵니다. 그녀는 인원왕후를 모시던 몸, 곧 세자보다 윗사람을 모시던 여자였습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가 없죠. 영조 모르게 방을 꾸몄는데 신혼집 같았다고 합니다.

이 일은 11월에 영조의 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실록에서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일이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4. 최복 시위
"동궁이 7월 이후로는 진현한 일이 없다." (11월 8일)

조선은 유교의 나라.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아버지에게 문안 드리는 건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7월 이후 세자는 그걸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 김상로는 "내가 밖에 있어서 몰랐습니다. 세자께 확실히 말해야 됩니다"라면서 눈물을 보였다고 하죠. 진짜 몰랐을 리는 없죠. -_-; 하지만, 눈물을 보여야 될 정도로 큰 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이 일은 세자에게 알려집니다.

김상로와 신만이 앞으로 나아가 부복하여 말하기를,
“어제 대조의 하교를 받았는데, 이러이러하였습니다. 무슨 까닭으로 이러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니, 왕세자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하기를,
“이것이 모두 불충 불효한 죄이다. 성상께서 비록 7월 후로 하교하셨으나 사실은 6월 이후에는 나아가 뵙지 못하였다. 품은 바를 말하고자 하였으나 좌우가 번거로워 할 수가 없었다.”

세자가 말한 건 6월 후... 그 동안 세자는 아팠다 해도 계속 정사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 날도 이런저런 안건을 처리한 후에 나온 말이었죠. 집에서야 어떻든 조선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게 영조의 폭탄 발언이었죠.

세자는 곧바로 반성문을 올립니다. 이틀 후 영조는 그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죠.
"기특하고 기특하다. 조선이 흥하겠구나! 비록 태갑(굳이 설명 안 할게요)이 허물을 뉘우쳤다 하여도 여기에 지나칠 수는 없겠고, 내가 동짓날 반포한 윤음보다 낫다"
이 때 영조는 이게 누구의 힘이냐면서 대신들이 세자를 잘 가르쳐서 그렇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 합니다.
"원량을 불러서 하유할 일이 있으니, 시임 대신·원임 대신과 유신 및 간원들을 입시하게 하라"

그리고...

"초경에 임금이 최복을 입고 걸어서 숭화문 밖에 나와 노지(땅바닥)에 엎드려 곡을 하고 동궁도 역시 최복을 입고 뒤에 엎드려 있었으니"
신하들이 이를 말리려 하자 하는 말,
"승지가 동궁의 하령을 가지고 와서 아뢴 데에 뉘우쳐 깨달았다는 말이있으므로 얼른 지나쳐 보고는 놀라고 기쁨을 금치 못하여 장차 경 등을 불러 자랑하고 칭찬하려고 하였는데, 자세히 보니 정신을 쏟은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동궁을 불러 묻기를, ‘옛날부터 허물을 뉘우치는 임금은 반드시 자기가 잘못한 곳을 나타나게 하기를 (또 옛날 얘기) 백성이 모두 믿을 것인데, 지금 네가 뉘우친 것은 어떤 일이냐?’고 하였으나, 동궁이 대략만 말하고 끝내 시원하게 진달하지 못하였다"
"네가 이미 후회 막급하다고 일렀는데, 그 뉘우치는 내용을 말하지 않으니, 남의 이목만 가린 것에 불과하다"

... 최복은 간단히 상복입니다. -_-; 이 상복을 입은 의미에 대해서는 얘기가 많지만, 생략하겠습니다. 일부러 상복으로 갈아 입고 곡한 것, 글쎄요... 제가 처음 받은 느낌은 "조선이 망한다"는 식의 말을 하려는 쇼였죠. 상복을 입을 때는 근신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려 했다는 설명도 있구요.

이 때 대신들은 [너무 엄격하게 하니까 세자가 아버지를 만나는 것조차 두려워 하는 거다]고 하고 [지금부터라도 <자주> 만나서 잘 타이르면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뭐였는지 확연해지죠. 이 때 영조는 세자에게 "또" 선위하겠다고 명령을 내리려 했고, 이 때 승지는 그 말을 도저히 들을 수 없다면서 붓을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자는 모든 일이 끝나고 뜰에 내려가다가 기절했습니다.

이 때의 일에 대해서 한중록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빙애의 일이라는 거죠. 그 시기가 정확히 11월입니다. 이 때 세자를 불러서 꾸짖고 빙애를 데려오게 했는데, 세자는 얼굴을 모르는 것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를 숨긴 곳이 바로 화완 옹주의 집, 영조가 아끼니까 거기까지는 찾지 않을리라 생각했겠죠. 하지만 그것조차 들켜서 욕 먹습니다. 이 때 세자는 우물에 몸을 던졌는데 살아났다고 하며 (다행이라 해야 할 지) 그것조차 영조가 알아서 또 욕 먹었죠. 홍봉한은 이 때 세자를 감싸다가 귀양갑니다.

이 두 가지 다른 일, 이글루스의 로자노프님은 이렇게 해석하시더군요.
http://rozanov.egloos.com/837983 (최복의 의미에 대해서도 자세히 적어놓으셨으니 참고하세요)

정리하자면, 영조는 세자가 반성하길 바랬던 것이 빙애의 문제였는데 세자의 반성문에 그런 내용이 전혀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죠. 일단 진현으로 말을 꺼낸 건데 이것의 비중이 얼마나 컸을지는 모르겠구요. 세자의 낙상과 홍봉한이 실드 치다가 귀양간 것까지 일치하는 것을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5. 아버지
다음 해, 뭔가 특이한 일이 벌어집니다. 네, 정말 특이했어요.

그 해 2월에 영조는 세자를 찾습니다. 11월 이후 처음 보는 거라는군요. 영조는 세자의 상태에 대해서 질문했고, 세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심화가 나면 견디지 못 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닭 짐승이라도 죽이거나 해야 마음이 낫나이다.
"어찌 그러하니?"
"마음이 상하여 그러하나이다."
"어찌하여 상하였니?"

"사랑치 않으시니 서럽고, 꾸중하시기에 무서워, 화가 되어 그러하오이다."

세자는 사람을 죽인 일 등에 대해서 자세히 아뢰었고, 영조는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내 이제는 그리 않으리라." (혜경궁에게) "세자가 마음이 상하였다 하니 그 말이 옳으냐"

(혜경궁) "그러하옵다뿐이리까. 어려서부터 자애를 입지 못 하여 한 번 놀라고 두 번 놀라 이것이 마음의 병이 되어 그러하오이다."
"마음이 상하여 그러하였다 하는구나." "그러면 내가 명했다 하고, 잠은 어찌 자며 밥은 어찌 먹는지, 내가 묻는다 하여라."

혜경궁은 이 날을 2월 27일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정말 기억에 남은 날이었던 모양입니다.

실록에서는 이 때 영조가 혈변(피...)을 보았는데, "마음을 써서" 그러니 대신들에게 세자를 오게 하라고 했습니다. 세자도 거기에 따르죠. 그 날, 2월 27일에 세자를 본 영조의 모습입니다.

“네가 지금 이와 같이 하니, 우리 나라가 그대로 되겠다.”
그리고 세자가 간 후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동궁을 보니, 내 마음이 후련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막장드라마의 결말이 다가오는, 해피엔딩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니었죠. 세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사랑하는 며느리이기에 그 말씀을 곧이 듣는가. (일)부러 하시는 말씀이니 믿을 것이 없으며, 필경은 내가 죽고 말리라"

이 때 영조는 진심이었을까요, 아니면 그것조차 하나의 계산이었을까요. 일단 그 이후에는 세자의 병을 챙기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김한채 등을 죽인 일도 이 때 가서야 보상이 되죠. 세자가 살인을 한 걸 영조가 알았고, 그래서 세자를 찾았다는 얘기입니다. 과연... 일단 그 이후를 더 찾아 보죠.

“차가운 비에 축축히 젖어서 기운이 능히 안정되지 아니한 것이다. 비록 억지로 행하고자 하더라도 예절을 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즉시 가마를 타고 돌아가라.” (34년 8월 1일)

정성왕후의 무덤에 참배하러 가던 날, 실록의 기사입니다. 하지만... 한중록에서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날씨 이런 것이 다 동궁 데려온 탓이라." "도로 들어가라"

전혀 다른 말,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한중록 쪽에 더 마음이 갑니다. 70 다 돼 가는 할아버지가 한창 나이인 자식 건강을 걱정해서 돌아가라고 한다라... 하지만 실록에서 영조가 한 꾸중을 실은 게 많고, 혜경궁은 세자의 말을 들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조가 한 말은 실록 내용이었지만, 세자가 받아들인 것은 한중록의 내용이 아닐까 하구요. 혹은, 실록에서는 저것만 적었지만 가는 길에 내내 "세자 때문이다"라는 식의 말을 했고, 세자를 불러서 "정식으로" 내린 핑계가 실록의 기록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어찌 됐든... 젊은 아들은 자기 건강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명령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점점 살 길이 없노라"라는 말을 했구요.

이 때 혜경궁은 그의 의대증을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옷차림에 편집증 수준으로 신경을 쓰는 영조 때문이라면서요. 옷을 입을 때 수십 벌을 마련해 놓고 입고 벗고를 반복했고, 입어도 마음에 안 들면 불태웠다고 합니다. 옷감을 구하지 못 하면 아랫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죽어나갔다"는군요. 여기에 드는 비용, 아랫사람들의 고충까지... 세자의 의대증은 그의 마지막 날까지도 나타납니다.

어찌됐든, 이 해 초에 뭔가 바뀌었던 영조의 마음은 이 달에 또 바뀐 게 분명합니다.
"삼가 듣건대, 지난 밤에 성심께서 밤새도록 번민하면서 지새웠다고 하는데, 이와 같이 하셨다면, 성상의 옥체를 손상함이 반드시 많았을 것입니다. 신 등이 밤낮으로 바라는 바는 ‘성궁을 보호한다.’는 네 글자입니다. 동궁의 자질은 천고에 빼어나는데, 전하께서 진실로 능히 관대하게 그를 포용하여 그 개도하는 방도를 다하신다면 차질이 없이 덕성을 이룰 것이며, 저절로 털끝만한 잘못도 없을 것입니다"

"좌상이 명을 기다리는 것은 잘못이다. 몸이 사부의 자리에 있으면서 능히 왕세자를 보도하지 못하고, 나의 잘못이라고 하여 연달아 명을 기다리니, 내가 어찌 원통하지 아니하겠는가?" (8월 12일)

조금 바꿔 보죠.
"애가 특별히 문제 되는 건 없어. 부모가 엄격하게만 하지 않고 사랑해 줘야지 애가 잘 할 거 아니야?"
"아니 그래서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이거 억울해서 진짜. 애 교육도 제대로 못 하면서 그게 할 말이야?"

이 날 세자 편을 들던 영의정 이천보와 좌의정 김상로는 파직당합니다. "내가 뭐가 틀렸느냐" 이게 영조의 입장이었죠. 다음 날 채.제.공 (반갑죠?)은 이렇게 말 합니다.

"어제 내린 전교는 쓰지 않는다면 임금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고 쓴다면 신하의 직분상 도저히 할 수 없는 곳입니다. 목숨 걸고 말씀드리니 거두어 주세요"

영조는 그 말이 옳다면서 거둡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또 선위한다는 걸까요. 아니면... 폐세자일까요? 선위라면 굳이 안 쓸 필요가 없습니다. 폐세자라면 그럴 듯 한데 정작 한중록에는 그런 충격적인 사실이 기록돼 있지 않습니다. 영조가 바로 거둔 걸 보면 밖에 제대로 알려지기 전에 숨긴, 이번엔 정말 "홧김에 했던" 걸까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아서 이 달 30일에는 세자의 스승인 춘방관들을 모두 파직시킵니다. 또 세자는 석고 대죄해야 했죠. 이보다는 좀 전이지만... 영조가 위와 같은 말을 또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무렵의 기록은 다 이런 식입니다. 세자에게는 잘 해라, 영조에게는 좀 적당히 해라) 이 때 영조의 말입니다.

"내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이미 다 하여 보았다."
(세자가 황송해서 만나러 못 간다고 하니까) "더욱 가소롭다. 이미 황송한 가운데 있다면 더욱 위로하고 권면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러나 바로 이것을 가지고 핑계를 삼으니, 진실로 한심하다"


영조의 마음은 어디로...

아마 이 무렵 또 다른 일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세자의 증세는 심해지고, 사람을 죽이는 것도 계속됐으니 그런 게 또 알려졌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실록도 한중록도 이 무렵의 일에 대해서는 적지 않고 있습니다. 나름 아쉬운 게 영조의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이번에 또 바뀐 거거든요.

일단 제 생각을 덧붙여 보자면, 이간질이나 해댔다는 말과 달리 신하들은 이 때 열심히 세자를 옹호했습니다. 영조 역시 그런 말과 어쨌든 세자라는 것 때문에 한 번 잘 해 줘 보자고 한 것이구요. 세자가 사람을 죽일 정도로 심해졌다는 건 어쨌든 아버지로서는 걱정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세자는 크게 바뀌지 않았고, 영조는 자기 생각을 더 굳히게 됩니다. 오히려 신하들에게 잔소리한다고 욕 하고, 자기 생각을 더 굳혀 나간 거죠.

반면 세자도 달라진 건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영조가 문제 삼은 건 서연을 열지 않는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 하죠.
"동궁이 지금부터 시작하여 열흘 동안에 세 번 강연을 하고, 공사를 가지고 입대하는 따위의 일들을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는다면, 나도 마땅히 다시 강연과 차대를 행할 것이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한중록의 일들은 일단 무시하고 영조가 세자를 싫어했던 것은 "서연을 안 열고 공부 자체를 안 한다. 세자의 병은 꾀병이다"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병이고 잘 보살펴줘야 된다는 말에 영조가 그렇게 해 본 거죠. 하지만 그런데도 세자는 여전히 공부를 안 했습니다.꾀병이라는 걸 확신한 영조, 생각을 바꿨다가 틀린 걸 확신하면, 그 생각은 더 굳어지죠. 물론 이 태도가 바뀌었다는 게 영조 자기만의 생각일 가능성도 높겠습니다. 어쨌든... 세자는 영조의 기대를 여전히 따라주지 못 했습니다.

"경은 오로지 나더러 나쁘다고 하는 것인가?"

왠지 부모자식간의 얘기에서 쉽게 보는 말이네요.

영조는 "밤낮으로 번민했다"고 하고, "내가 할 것을 다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1758년 초에 보여준 전혀 다른 모습은 세자에게 준 마지막 기회일 겁니다.

세자를 대신할 사람이 나타났거든요.

6. 아버지의 아버지
손자 사랑이 부족한 할아버지가 얼마나 되겠습니까마는... 이 손자도 보통 손자가 아니었고 할아버지도 보통 할아버지가 아니었죠.

"임금이 원손에게 시좌하여 《동몽선습)》을 외우라고 명하였다. 원손은 거지가 단정하고 외는 소리가 크며 우렁차니, 우러러보는 사람이 얼굴빛을 바로잡고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33년 12월 28일)

이 때 원손의 나이 여섯 살. 다음 해 여름 영조는 원손에게 정식으로 스승을 붙여 주었고, 세자에게 그랬듯 심심할 때마다 그를 불러 글을 읽게 합니다. 칭찬 일색인 것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다르죠. 실록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할아버지와 손자의 일문일답을 적고 있습니다. 지금 봐도 어린아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대답이죠.

이 해 겨울, 영조는 정식으로 그를 세손으로 책봉합니다. 그리고 계속 불러서 글을 읽게 하고, 이러저러한 것을 물어보죠. 시간이 갈수록 이게 더 심해집니다. 35년에는 겨우 여덟 살인 세손을 신하들을 만나거나 경연할 때 입석시키는 게 어떻느냐는 말을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영조가 "세자에 대해 밤새도록 번민하고" "자기가 할 것은 다 한" 해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정도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세손은 영조의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미래 편에서 다뤘듯... 자기가 죽을 때까지도요. 영조의 세손에 대한 애정이 심해지는만큼 세자를 향한 기대는 없어져 갔습니다. 아니... 세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위에서 정성왕후 얘기할 때 이렇게 말 했습니다. 정말 싫었으면 무시했을 거라고... 세자는 세자대로 정치를 하고 병을 앓았고, 영조는 영조대로 정치를 했고, 세손은 세손대로 공부를 했습니다. 정상적으로 흘러갔지만, 뭔가 어긋났죠.

그 이후의 모습, 갈수록 심해지는 세자의 비행에 대해서 다음 편에 다뤄보겠습니다.

아, 번외편 하나 나갑니다. 미래편 분량에 따라 몇 개 더 나갈지도요.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09-27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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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1/09/26 07:45
수정 아이콘
아 이것 참... 저 집요한 성격, 글로만 봐도 무섭네요 -_-;
11/09/26 09:24
수정 아이콘
아 제 아버지가 저런 성격이면 ......부모 자식이고 뭐고 뛰쳐 나올듯;;;; [m]
Montreoux
11/09/26 14:19
수정 아이콘
제 분노가 과할듯 하여 답글 안 달려다 달아요.

천개의 강에 비친 천개의 달은 각각 다른 모습이고 또 그 비춰진 그 달을 보는 사람마다 또 제각각 다른 모습이지요.
제가 좋아하는 말이어서 여러번 어딘가에 끄적였던. 선악 판단을 점점 함부로? 하지 않게 됩니다.
요즘 보고 있는 공주의 남자에서 심지어 수양대군조차.
영조는 아무리 돌고 돌아 이길 저길을 떠나보아도, 이해하기 싫습니다.
자식을 서서히 말려죽이며 파괴시키는 괴물.
괴물을 향한 페이소스는 털끝만큼도 안 생깁니다.

집안1, 친지 아이는 집안의 과도한 기대에 마음앓이하다 나이 삼십이 다 되어 자살했고
집안2, 하나는(잘난 아들이라 눈에 차는 며느리감이 없어 지속적 태클과 반대) 결혼 후,
결혼 오래전에 생긴 자식이 갑자기 출현해서 집안이 복잡해졌습니다.
선배에게 자녀 대학시키기 벅차다? 제테크등에 등한시한 노릇이 착오였다고 한탄하니
아이가 오토바이 타고 다니다 어디가서 가여이 죽거나 자녀 대책없이 만들어 책임도 안진다던가
그런 크리만 아니면 돈걱정은 걱정도 아니다 하셨습니다.
친구네 남자아이 하나는 연예인급 외모에 패션감각이 뛰어나요, 자기는 파스타집 같은 식당 차려서 살고 싶다고
대학은 관심이 없다, 대학을 부모가 용인?하지 않은 급으로 갔습니다.
건강하고 잘 살아갈 아이입니다.
저는 부모의 가치관이 후져보여서 친구라 대놓고 촌빨날리는 자식걱정이라고 막말을? 했습니다.
자식 키우면서 그 걱정이 살얼음판 같습니다, 전 담대하다고 자신한 편이었는대도요.
특히 성공한 아버지와 띨띨한? 아들은 자칫 비극을 잉태하기 쉬운 조합인듯;;;
세상살면서 두 사람 몫도 거뜬히 해내는 지력과 체력 처세술 금력을 갖춘 사람은
아들아이가 그 기대를 만족하지 못할때
자기자신을 들볶는 강도로 아이를 들볶고 아이는 못 견디죠.

쓰고 나니 더 화가 나서 콧김 계속 내뿜음 ㅠ.ㅜ+
영조는 역대급 레알 괴물입니다.
키스도사
11/09/26 14:54
수정 아이콘
제가 사도세자라도 미치지 않고서 못배겼을꺼 같네요.
뒤주에 같혀 결국 죽음에 이르렀을때의 공포감은 정말 상상도 못하겠네요. 흠흠
무리수마자용
11/09/26 19:59
수정 아이콘
태갑은 하나라 왕으로 왕이 되자마자 지은 죄가 하도 많아
명재상 이윤에 의해 쫒겨난 임금입니다.
나중에 그 잘못을 뉘우치고 괜찮은 정치를 했다고 하지요....머리속에 있는걸 그냥 썻더니 헷갈리는군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한중록은 한이 서리다 할때 한이 아니고 한가할때 쓰는 '한'이라고 하면서, 다 혜경궁 홍씨가 자기 집안 지키려고 사도세자 미친사람 취급한거다 믿을 게 못된다 라고 했었는데, 실록과 교차검증이 되는 구조면 못 믿을 이유는 없겠네요.
11/09/26 23:28
수정 아이콘
영조도 영조지만 세자 입장에서도.... 지금이야 정신병이 있으면 치료라도 가능하지만
당시는 그런 게 없으니 결국 스스로 이겨낼 수 밖에 없는데,
세자도 그걸 이겨내려는 의지 자체가 없었던 게 아닌가 싶네요.

거기에 자신의 아들의 영특함은 본인을 더 비참하게 만들고...
나중에 영조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자신의 아버지가 죽은 원인 중 하나가 자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됐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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