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5/07 04:58:05
Name Kaestro
Link #1 https://kaestro.github.io/%EC%8B%A0%EB%B3%80%EC%9E%A1%EA%B8%B0/2024/05/07/from-odds-and-ends-to-room.html
Subject [일반] 정리를 통해 잠만 자는 공간에서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리를 통해 인생 최초로 내 공간을 얻다]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며칠 전에서야 제 인생 처음으로 옷장과 방을 스스로 정리했습니다. 방을 청소하거나 정리해본 적이 여태까지 없다는 것은 아니라 이것들을 어떻게하면 내 생활 패턴에 어울리는 형태로 자리를 잡게 만들어 내 개성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나는 여태까지 내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방을 쓰거나 학교에서 제공하는 공동의 공간으로써 자연발생적인 방을 가졌던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내 공간’이라 할 수 있는 곳은 처음 사용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옷걸이 전반을 내가 원하는 순서대로 재배치하고 옷걸이에 올라가지 않는 옷은 분류하는 과정을 통하다보니 프로그래머로써의 관점에서 ‘디자인이 아니라 기능만이 중요한 운동복 같은 옷이라면 큐처럼 선입선출로 관리할 방법이 없을까?’와 같은 질문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지구의 중력을 거스르는 일은 워낙에 대단한 일이기에 이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옷 정리 트레이를 구매하고 이에 포개서 옷을 정렬해두니 제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 공간에서 드러나는 개성은 유지 관리 용이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건은 접근성이 높은 공간에 사용 빈도가 낮은 물건은 접근성이 낮은 공간에 두고, 비슷한 성향의 물건들은 같은 곳에 관리합니다. 그리고 이 방이 단순히 제 노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적은 노력과 자연스러움으로도 유지될 수 있도록 박스, 트레이, 선반과 같은 도구로 시스템을 갖춰두었습니다.


[아시아 사람은 집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꾸미는데는 관심이 없다]

얼마 전 외국인들이 가지는 의문 중에 아시아인들은 왜 집을 꾸미는 데에는 관심이 없느냐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시아인들이 집에 대해 보이는 관심은 지대한 데 반해, 정작 이를 꾸미는 노력은 서양 사람들이 바라볼 때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해당 영상 에서는 이에 대해 집은 ‘가격, 부지, 평수’와 같이 남들과 정량적으로 비교를 통해 계급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집을 꾸미는 것은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라 이야기합니다.

이에 대해 무조건적인 동의를 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와 제 가족의 사례로 놓고 봤을 때는 이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가족은 집에서 방을 단순히 잠을 자고 일어나 밖을 나가기 위해 정비하기 위한 일종의 전투기의 격납고 같은 공간으로써만 활용해 왔습니다. 제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해당 집이 역세권 몇분 거리인지, 서울에서 얼마나 떨어져있는지, 주변에 편의시설이 얼마나 있는지와 같은 외적인 요소 뿐이었습니다. 집을 꾸미는 것은 남들이 다들 하는 것을 따라하는 것이면 족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마무리]

정리와 내 물건들로 방을 꾸미는 것은 제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동시에 방을 격납고가 아니라 내가 나로써 있을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행위 라는 사실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정리를 하고 빈 공간이 생기니 이를 채우기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것을 실행하니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과정을 통해 제 방은 점점 더 나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재 제 방에는 얼마 전까지는 없었던 스피커, 가습기, 옷장 정리 트레이, 피규어 같은 물건들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방을 단순히 잠을 자면 족하던 공간으로 생각했지만 이제는 제 방이 제가 나로써 가장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얼마 전 구매한 베개가 오면 그것들은 또 제 방을 더 나로써 가깝게 만들어줄 것이 즐겁게 기대되네요. 앞으로도 제 방을 더 나에게 가깝고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며 이를 통해 나를 더 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정리부터 시작해야 하겠지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5/07 05: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예전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 방(혹은 집)이 저 자신을 잘 드러내는 공간이어야 밖에서 정신 없는 삶을 살다 오더라도, 집에 왔을 때 본래의 나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다고요. 저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야 진정한 제 자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비슷한 관점인거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 책을 잘 안읽더라도 저에게 유의미한 책들을 잘 보이는데 둡니다. 살다보면 중요한걸 까먹을 때가 많지만, 그걸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금방 되찾을 수가 있어서요.
24/05/07 05:49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 내 방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곳으로 있어야 내가 생각하는 나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럴만한 것들을 좀 더 배치해봐야겠네요
김삼관
24/05/07 07:09
수정 아이콘
정신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보면 집안 정리를 경한시 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쓰레기 집이 되어버린다던가..
자기 주변환경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자신으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Kaestro님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글을 읽으니 제 과거가 떠오르네요. 저도 다시 한 번 정리를 해야겠어요.
24/05/07 07:28
수정 아이콘
저는 아플 정도로 집안 정리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건강하다 할 정도까지 정리를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집안 정리를 통해 마음이 건강해지는 경험을 하셨으면 좋겠네요
계층방정
24/05/07 09:26
수정 아이콘
별 거 아니지만 어제 집청소를 했는데 이 글을 보니 반갑네요. 저도 조금씩이나마 정리를 해봐야겠습니다.
24/05/07 09:31
수정 아이콘
전 그런 대청소까지는 아직입니다 대단하시네요 크크
봄은 대청소의 계절이긴 하니까...
짐바르도
24/05/07 09:34
수정 아이콘
여친(현와이프)님이 보기에는 돼지우리였겠지만 저도 자취 시작하면서 공간분리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어요. 공간이면 공간이지 왜 분리하지? 싶었는데 커튼 하나만 달아놔도 마음의 모드도 따라가는지 집에서 여러 활동을 할 수 있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그 뒤로 월급날에 소소하게 책장, 조명, 수납, 그림, 책을 꾸며놓는 재미를 들이게 됐었네요.
24/05/07 10:51
수정 아이콘
같은 공간 내에서 분리하는걸 배우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진짜 다른 삶을 살 수 있는게 재미있죠
멋진 와이프분을 두셨네요, 부럽습니다
무냐고
24/05/07 09:37
수정 아이콘
잠만자는 공간의 대표적인게 고시원, 작은 원룸인데 정신건강에 진짜 안좋은거같습니다.
날아가고 싶어.
24/05/07 11:37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가사노동의 값어치가 절대 낮지 않은 이유가 이런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창의적이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하고 체력도 필요하죠. 그래서 멘탈에 문제가 있으면 우선 집 상태부터가 엉망진창이 되고말죠. 제가 그리 썩 많이버는편이 아님에도, 가사도우미를 꼭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피곤할때 깨끗이 청소된 공간에 들어가는순간 여행가서 정리되어 있는 호텔방에 들어가서 있는 만족+ 내것이라는 안도가 안정감과 극도의 편안함을 줍니다.
24/05/07 11:40
수정 아이콘
가사 도우미를 쓰는 것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가능하면 저도 나중에 이용해 봐야겠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4/05/07 11:38
수정 아이콘
가끔가다 TV 같은데 나오는 일반인 집들 중에 집은 넓은데 잡동사니들이 거실이나 방 가득채워진 것 보면, 아파트 값이 한두푼도 아닌데 쓸데없이 자리차지만 하는 것들은 차라리 창고 빌려서 넣고 집을 좀 더 좁은데로 이사가는게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낫겠다는 생각 들 때가 있더라고요.

살다보면 별의별 물건들이 계속 쌓이다보니까 1년에 한 번 정도 물건들 끄집어내서 필요없는 거 털어내고 재배치 하면 삶의 효율도 올라가고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리고 색 변환이랑 밝기조절되는 스마트 조명 사용하는 것도 적은 돈으로 집안 분위기 바꿀 수 있어서 추천드립니다. 천장 조명 갈기 부담스러우면 스탠드 하나만 세워 놓아도 밤에 훨씬 좋더라구요.
24/05/07 11:41
수정 아이콘
잘 정리가 된 집과 안 된 집은 실질적인 규모 측면에서 차이가 많이 나고 말씀대로 삶의 효율도 올라가게 되죠

별개로 그런 스마트 조명을 얼마 전에 사용중이라 굉장히 만족중입니다 크크. 리뷰글 썼는데 다른 제품에 다들 시선이 끌리셨지만요
24/05/07 12:24
수정 아이콘
한국인들이 개성이 없는건 아닌거 같고
한국인들 대부분이 아파트나 다가구 빌라 같은 딱 정해진 규격안에서 생활하다보니 집 구조적인 측면에서 창의력 발휘하기가 쉽지 않죠.
아파트 대부분은 24평 34평에 3베이 4베이 눈감으면 딱 나오는 평면도에서 사니까요.
똥꼬쪼으기
24/05/07 16:36
수정 아이콘
저도 요즘 한참 제 방 꾸미기에 관심이 많아서 많은 공감이 되네요.

사진도 첨부해주시면 더 좋을거 같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420 [일반] 풀체인지 아이패드 프로 신형 발표 [112] Leeka17276 24/05/07 17276 0
101419 [일반] 올해 보도사진 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로이터 사진들 [77] 우주전쟁18042 24/05/07 18042 23
101418 [일반] Udio로 노래 만들어보기 [3] 닉언급금지9060 24/05/07 9060 2
101417 [일반] 비트코인 - 이분법적 사고, 피아식별, 건전한 투자 투기 [50] lexial12706 24/05/07 12706 3
101416 [일반] 독일에서 아이의 척추측만증 치료를 시작했어요 [19] Traumer10801 24/05/07 10801 11
101415 [일반] 정리를 통해 잠만 자는 공간에서 나로써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15] Kaestro10214 24/05/07 10214 5
101414 [일반] 비트코인이 갑자기 새롭게 보인 은행원 이야기 [63] 유랑15755 24/05/07 15755 7
101413 [일반]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야간운전 [43] Regentag10606 24/05/07 10606 0
101412 [일반] [방산] 인도네시아는 KF-21사업에 분담금 3분의1만 지급할 예정 [33] 어강됴리11629 24/05/06 11629 0
101410 [일반] [팝송] 맥스 새 앨범 "LOVE IN STEREO" [2] 김치찌개8561 24/05/06 8561 1
101408 [일반] 장안의 화제(?) ILLIT의 'Magnetic'을 촬영해 보았습니다. [13] 메존일각11089 24/05/05 11089 11
101407 [일반] [글쓰기] 아니 나사가 왜 남아? [9] 한국외대10619 24/05/05 10619 3
101406 [일반] [만화 추천]그리고 또 그리고 [12] 그때가언제라도10303 24/05/05 10303 3
101405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11) 시흥의 막내딸, 금천 [6] 계층방정15595 24/05/05 15595 6
101404 [일반] 신난다 어린이 날, 즐겁다 어린이 날 [7] 착한아이7841 24/05/05 7841 8
101403 [일반] (락/메탈) Silverchair - Without You (보컬 커버) [5] Neuromancer6326 24/05/05 6326 1
101402 [일반] <스턴트맨> - 우린 그럼에도 액션영화를 만든다.(노스포) [11] aDayInTheLife7602 24/05/05 7602 5
101401 [일반] [팝송] 피더 엘리아스 새 앨범 "Youth & Family" 김치찌개6168 24/05/05 6168 0
101400 [일반] 예전 닷컴버블때와는 달리 지금은 AI버블이 일어나기 힘든 이유 [35] 보리야밥먹자14986 24/05/04 14986 3
101399 [일반] 시흥의 열두 딸들 - 아낌없이 주는 시흥의 역사 (10) 소래읍이 오지 않았다면 [4] 계층방정16432 24/05/04 16432 3
101398 [일반] (미국주식)간략하게 보는 2분기 유동성 방향 [20] 기다리다9919 24/05/04 9919 1
101397 [일반] 못생겨서 그렇지 제기준 데일리 러닝용으로 최고의 러닝화.JPG [18] insane11634 24/05/04 11634 2
101394 [일반] 최근 내 삶을 바꾼 제품들 총 6선 - 전구, AI에서 태블릿 pc까지 [33] Kaestro9925 24/05/04 9925 9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