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
2004/12/15 08:16:23 |
Name |
공룡 |
Subject |
늦은 새벽, 프로게이머들을 떠올리며 드는 생각들 |
1. 뚝심
해설진에서 가끔 이야기하는 선수들의 뚝심. 이러한 뚝심이 유난히 강한 선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전략을 짜왔는데 중간에 들통이 날 경우 보통 전략을 바꾸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뚝심 있게 그대로 밀고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모습은 뚝심보다는 무모하다는 말이 더 맞을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무모’ 라는 단어보다는 ‘뚝심’ 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선수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은 그래도 많이 달라졌지만 한웅렬 선수의 뚝심은 유명하죠. 카리스마 넘치는 경기운영 중에서는 한 번 실패한 빌드를 끝까지 밀고나가 결국 승리를 일구어내는 것도 있습니다. 수비를 할 시간에 오히려 공격을 하면서 결국에는 상대를 함락시키는 김동준, 임정호 선수도 뚝심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뚝심이 느껴지는 선수라면 지금은 군대에 가 있는 ‘타이슨저그’ 정재호 선수입니다. 이 선수 정말 특이했죠. 메이저 경기를 그리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팬들의 뇌리에 각인된 경기가 꽤 됩니다. 이 선수는 드랍류 플레이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입구돌파죠. 벙커가 때리건, 시즈가 때리건 그냥 저글링 히드라로 배럭 깨고 들어가서 결국에는 상대를 제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스타일로 굳어지는 경우는 곤란할 수도 있긴 합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방어의 방법 중 배재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넓어지는 것이니까요. 예전 조규남 감독님이 한숨을 쉬시며 말씀하셨다는 “우리 재훈이는 그냥 옵드라야, 무조건 옵드라야” 라는 우스개도 이제는 사라질 것 같더군요. 요즘 스타일이 상당히 자유로워지고 있으니까요^^ 어떤 스타일로 굳어져서 변할 것 같지 않던 선수가 조금만 전략적으로 변화를 하면 큰 성과를 거두곤 합니다. 이재훈, 김정민 선수 등이 대표적이죠. 요즘 이러한 변화를 바라는 선수라면 정재호 선수 이래로 가장 뚝심(!)이 느껴지는 박지호 선수입니다. 아직도 저번 듀얼 김현진 선수와의 경기가 뇌리에 남는군요. 반 부대 이상의 시즈탱크가 버티고 있는 곳에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질드라...(결국 뚫죠) 그리고 잠시 뒤 화면에 잡히는 한 여성분의 입모양은 ‘꼴아박지호’(정말입니다. vod로 보신 분들도 있을 듯) 이런 박지호 선수가 게릴라 등 전술적 운용의 폭을 넓힌다면 정말 무서운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예전에 피지알 3차대회를 했을 때, 우승자가 정재호 선수였습니다. 결승 상대는 당시만 해도 신예에 속했던 이병민 선수였죠. 하지만 그때도 정말 뛰어난 모습을 많이 보여주더군요. 어쨌건 정재호 선수가 그 때 드랍을 시도하더군요.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그리고 대회 뒷풀이에 뒤늦게 나타난 이재균 감독님께 그 이야기를 해드렸죠. 그러자,
“예? 재호가 드랍을 했어요?” 라고 우리보다 더 놀라시는 모습….
어쨌건 개인적으로는 선수들의 그런 뚝심 있는 플레이를 좋아합니다. 로망이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정재호 선수 무사히 군생활 마치고 한빛에 합류하여 다시 그런 멋진 모습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2. 용어를 만드는 선수들, 그리고 사라지는 용어들
선수의 이름이 붙은 용어들이 방송에서 언급되는 것은 매우 영광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런 선수들의 기분은 정말 어떨까요? 어제 엠게임 팀리그를 보면서 이승원 해설위원이 ‘임성춘식 한방 러시’를 언급하셨죠. 옆에 있는 당사자인 임성춘 해설위원의 쑥스러워 하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이제 프로토스가 모든 유닛을 갖추고 러시를 준비하는 경우 누구나 임성춘 해설위원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자신의 아이디가 그대로 이름이 되어버린 김동수 선수의 ‘가림토스’도 그렇죠. 하드코어를 언급할 때, 가림토스라는 단어도 같이 언급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테란의 경우에는 대 플토전에서 차분히 터렛 박으며 전진하는 조이기 라인을 보면 너무나 당연스럽게 ‘김정민류 조이기’ 라고 말합니다. 연속되는 드랍이나 정신없는 공격이 나오면 홍진호 선수의 '폭풍'이 떠오르는 것도 요즘에는 자연스러워졌군요.
예전에는 ‘순회공연’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그건 사장되고 있죠. 과거에는 모인 한방 병력으로 전 맵을 돌며 상대(주로 저그)를 전멸시킬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순회공연을 성공하는 모습을 보기 힘듭니다. 본진이 털리건 말건 갖춰진 부대로 순회공연을 하다가는 중간쯤에 매복한 디파일러와 스커지 조합으로 테란을 장님으로 만들어버리곤 하죠. 엘리전은 무조건 테란이 유리하다는 것도 옛말이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때문에 주병력을 운용하면서도 멀티 견제, 혹은 동시다발적인 공격이 필요하고, 한방 병력이라도 숨을 고르면서 계속 본진의 병력을 보충해줘야 하며, 본진의 수비 역시 탄탄히 해야만 하는 시절이 온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순회공연이라는 단어는 점차 사라질지도 모르겠습니다.
3바락에서 뽑아내는 공업 마린들로 러시를 갈 경우, 불꽃테란이라고 말하고 곧바로 변길섭 선수를 떠올립니다. 사실 이러한 불꽃테란이 변길섭 선수가 처음은 아니라고 해도 사람들은 변길섭 선수 자체를 불꽃테란으로 생각하곤 하죠. 마치 드랍십이 뜰 때마다 임요환 선수를 생각하듯이 말입니다. 전 아직도 그 느린 드랍십이 오버로드와 패트롤 하는 스커지 사이를 절묘하게 누비며 적진을 향해 가는 그 아슬아슬하고 짜릿한 기분을 생각하곤 합니다. 그 외에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화된 용어들, 즉 단어만 떠올리면 바로 어떤 선수가 생각나는 식의 일은 점차 없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전략 전술이 만들어지고, 제대로 한 선수에 의해 정립되기도 전에 그 파해법이 나와서 일회용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좋은 전략이 나오면 금방 모두가 같이 쓰게 되고, 변형시켜 더 좋은 모습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누구누구식’ 이라는 식의 용어들은 점차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워낙 하나의 전략에서 파생되는 전략도 많기 때문에 원류를 일일이 따지기에도 벅차 보이기 때문이지요. 그냥 어떤 리그의 어떤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썼던 전략! 이라는 식이 많아지겠지요. 물론 제 예상일 뿐입니다.^^
3. 현재의 워크리그를 보며 과거의 스타리그를 추억한다.
피지알 워크 게시판을 보면 참 화기애애합니다. 수가 적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요. 언뜻 조회수를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하루에 올라오는 글들이 너무나 적습니다. 때문에 같은 글을 여러 번 보는 분들도 많겠죠. 후기나 일정, 기타 여러 가지 종류가 모두 하나의 게시판에 다 올려집니다. 몇몇 열성 매니아 분들의 좋은 글들이 꾸준히 올라가고, 선수들도 가끔 글을 쓰곤 하죠. 피지알의 초기 모습도 이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경기장에 직접 가보면 워크 선수들이 관중들과 같이 앉아서 게임을 봅니다. 하지만 아직 인지도 면에서 낮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선수를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마치 스타리그에서 챌린지, 마이너 등이 처음 생겼을 때, 썰렁하던 관중석의 모습과 비슷하죠. 그리고 요즘에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팬카페를 가지고 있고 선수 대기실을 벗어나지 못할 만큼 팬들의 열성이 대단하지만, 불과 1,2년 전만 해도 인지도가 낮은 선수들이 몰려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지요. 마주쳐도 잘 모르고 지나가는 팬들이 많았거든요. 저도 예전에 다른 소울 선수들과 같이 지나가는 한승엽 선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선수에게만 사인을 받았습니다. 나중에야 생각나서 땅을 쳤지만, 다행히 다른 분을 통해 얻을 수 있었지요.^^
기타 많은 점에서 스타리그를 생각나게 하지만, 워크리그의 앞날은 여전히 험난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워크는 조금 오래 차트 상위권에 있다가 미끄러지고 있는 여러 게임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워크보다 더 많은 인기를 누리고, 더 오래 차트의 순위권에 든 게임들이 많죠. 특히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의 인기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닙니다. 이미 나온 지가 꽤 되었으니까요. 스타도 이런 시기가 있었죠. 그리고 그 때 나타난 선수가 임요환 선수였습니다. 그 전에 신주영, 이기석 선수가 있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꾸준한 인기와 사랑을 받으며 스타리그와 함께 커나간 선수는 임요환 선수라고 생각됩니다. 거기에 홍진호선수와의 대결구도, 기타 특색 있는 플레이를 펼치는 여러 선수들이 생겨나면서 스타는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죠.
워크의 경우에도 눈에 띄는 선수들은 많습니다. 봉준구, 이형주, 정인호, 김대호, 황태민, 임효진, 전영현, 오창정 등, 스타를 비롯하여 기타 국산 RTS를 주로 하던 유명 게이머들이 워크로 전향한 경우가 많았고, 마치 임요환 선수를 연상시키는 오크의 영웅 이중헌 선수도 있었죠. 그리고 최근에는 장재호 선수의 화려하면서도 기발한 플레이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스타라는 게임에 너무 익숙해진 많은 유저들의 관심을 워크 쪽으로도 가게 하기 위해서는 정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래도 전 워크 게시판의 오붓한 분위기가 부러울 때도 있더군요. 선수와 유저들이 어우러져 마음껏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 그것이 제가 늘 꿈꾸던 이상적인 팬사이트 커뮤니티의 모습이었으니까요.
4. 신은 공평하다.
흔히 이윤열 선수와 최연성 선수를 가리켜 ‘머씨 형제’라고 하거나 ‘제 4의 종족’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물량에서 컨트롤에 이르기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이 별로 없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수마다 각자 특별한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윤열 선수나 최연성 선수, 또 서지훈 선수와 같은, 거의 부족한 것이 없는 덕에 높은 승률을 가진 선수들도 부러워할만한 그런 것들을요.
이운재 선수의 마린메딕 컨트롤은 정말 부드럽습니다. 함부로 스팀팩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러커를 잡곤 하죠. 바이오닉의 운용과 컨트롤에 있어서 일가를 이룬 선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저그 게이머들이 컨트롤에 신경을 많이 쓰던 시절이 아닐 때, 이운재 선수의 마린들은 정말 그의 별명처럼 죽지를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임요환 선수의 컨트롤보다 더 대단해보였죠. 하지만 선수들의 초반 저글링 컨트롤이 갈수록 좋아지면서, 예전만큼의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더군요.(이는 다른 테란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마린메딕 컨트롤로 러커를 잡는 플레이에 있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선수는 이운재 선수입니다.
소수병력 운용에 있어서는 임요환 선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 드랍십의 속도가 업이 되지 않은 오버로드보다 약간 빨랐던 시절부터 드랍십 하나로 경기를 풀어나갔죠. 그리고 지금까지도 소수병력을 통해 상대와 싸우는 데 있어 탁월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마린과 메딕은 이운재 선수처럼 부드럽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군대처럼 질서정연합니다. 스팀팩만 놔주면 러커의 촉수 사이를 마치 줄넘기 하듯 넘어 다니죠. 다른 유닛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벌쳐 몇 기, 탱크 몇 기 식으로 소수의 같은 병력을 주고 싸우게 할 경우 그를 이기는 게이머가 드물 것입니다. 그리고 scv를 정말 잘 사용하죠. 어제 팀리그에서도 scv가 한 건 했더군요. 배럭 바로 앞에 서플을 지으며 상대 본진으로 통과하는 모습에 그저 감탄이 나올 뿐이었습니다.
‘조이기’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김정민 선수라는 데는 아마 이의가 없으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3만년 조이기’, ‘토 나오는 조이기’ 등 여러 가지 별명이 있지요. 김정민 선수처럼 단단하게 조이고 들어오는 테란은 요즘에도 보기 힘듭니다. 사실 요즘은 게릴라에 이은 한방 병력이 바로 적진 앞에 들이닥치거나 거기에서부터 엎어지는 이윤열, 서지훈 선수와 같은 방식이 선호되는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요. 어쨌건 소수의 병력이라도 상대의 입구를 조였을 때, 그 조이는 사람이 김정민 선수일 때는 이상하게 안정되어 보입니다. 왠지 전혀 뚫릴 것 같지 않죠. 그리고 실제로 경기에서 김정민 선수의 조이기를 뚫어낸 선수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일 것 같습니다. 김정민 선수의 병력이 점차 상대의 본진 쪽으로 차분히 라인을 형성하는 모습을 보면 토스 유저인 저는 숨이 턱턱 막힙니다. 이상스럽게도 김정민 선수의 경기에서는 발업질럿이 달리고, 셔틀로 사이사이 질럿을 떨궈도 마인대박이 거의 나오질 않습니다. 조금은 신기한 일입니다.
프로브는 당연히 박용욱 선수의 몫입니다. 하지만 그런 프로브의 움직임은 박용욱 선수의 놀라운 컨트롤에서 기인하죠. 박용욱 선수의 프로브가 초반에 상대 일꾼을 하나라도 잡지 못하거나 가스러시 같은 것도 하지 못하면 왠지 제 컨디션이 아닌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프로들의 경기에서 일꾼 하나 잡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요. 그 짧은 시간에 무빙 샷과(사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심리전이 정신없이 오갑니다. 그런 속에서 자기 할 일 다 해내는 프로브를 보면 그저 박용욱 선수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겨우 프로브를 잡고난 뒤에 보면 제대로 테크가 올라가있지 않거나 병력이 흩어져 있곤 하죠. 그래서 그 다음에 난입한 질럿이나 기타 병력에 의해 또 한번 수모를 겪습니다. 그렇다고 박용욱 선수가 본 전투를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술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죠. 그냥 아무 방해 없이 착실하게 유닛을 모아 같은 힘으로 싸워도 여차하면 밀리는데, 프로브나 초기 유닛에 견제라도 단단히 당한 상태라면 상대는 가망이 없죠. 무서운 선수입니다.
리버를 떠올렸을 때, 같이 생각나는 선수는 김환중 선수와 김성제 선수입니다만, 요즘은 ‘대놓고 리버’라는 점에서 김성제 선수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리버 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그 뛰어난 셔틀 아케이드입니다. 안에 뭐가 탔건 그 유닛을 이용해서 상대를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탁월하죠. 그렇게 실컷 괴롭히면서도 자기 할 일은 착착 진행하는 것도 놀랍습니다. 매우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한데 말이지요. 초기 김환중 선수나 김성제 선수는 리버를 자주 쓰면서도 그렇게 큰 활용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한 번의 변수 정도로 생각했죠. 그래서 ‘양날의 검’이라고 표현되는 리버의 스캐럽 배신에 자주 울었습니다. 실수로 셔틀도 많이 터트렸죠. 그래서 김환중 선수는 다른 여러 가지 전략으로의 모색을 꾀했지만, 김성제 선수는 오히려 셔틀의 컨트롤을 더욱 발전시켰죠.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 전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아, 기욤! 그는 과연 언제쯤!)
이재훈 선수의 한량모드는 여전히 불가사이입니다. 오죽하면 ‘이재훈의 초반’ 이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어떤 면에서 그도 천재인지 모르겠습니다. ‘손 가는대로 빌드’라고 해야 할까요?(그런 점은 저도 비슷한데, 왜 저는 안 되는지 모르겠군요^^) 강민 선수처럼 정밀한 계산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박용욱 선수처럼 초반 일꾼 정찰부터 시작하여 끊임없이 상대를 괴롭히는 것도 아닙니다. 정말 ‘한량’처럼 한가롭게 운영을 하죠. 보는 입장에서는 조금 무의미해 보이는 유닛의 움직임도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어느 사이엔가 이재훈 선수가 참 무난하게 승기를 가져가곤 하죠. 이번 챌린지에서도 그런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엄청난 유닛컨트롤이나 끝도 없는 물량으로 이겼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지만 어느 사이엔가 시나브로 유리해지는 분위기…. 강민 선수와 함께 있었기에 상대를 꿈에 빠트리는 다른 방법을 찾은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 꿈보다는 몽유병 같은 것일까요?^^
기타 특색 있는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은 참 많습니다. 매지컬저그 임정호 선수도 그렇고, 최근 소 방목 대신 커맨드 먹기에 바쁜 조용호 선수의 플레이도 그렇지요. 생각해보면 낭만시대라고 말하곤 하는 과거의 선수들 중에 그런 선수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가장 최적화된 빌드를 따라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풀어내는 선수들이 워낙 많으니까요. 물량과 컨트롤이 기본바탕이 되어버린 신예들의 전략 전술 흡수력은 가히 경이적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자신만의 특화된 것을 찾아가는 것이 게이머로서 장수하는 길이겠지요.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든든한 것도 없죠. 팬들의 사랑도 받을 수 있구요. 자신만의 물량, 자신만의 타이밍, 자신만의 빌드, 자신만의 유닛, 자신만의 컨트롤 등 다른 선수에게는 없는 특화된 무언가가 있는 그들 때문에 벌써 수명이 다해도 몇 번은 다 할 패키지 게임 하나가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
5. 새벽에 충동적으로 생각나는 인상 깊던 장면들...
요즘도 스타중계를 거의 빼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만, 조금은 힘에 부치더군요. 너무나 리그가 많아졌습니다. 요즘처럼 프리미어까지 하는 경우 두 개의 메이저리그 외에, 챌린지와 마이너, 프리미어, 팀리그 두 개, 거기에 신인왕전이나 이제 오늘부터 하게 될 여성부 리그같은 경기까지, 정말 일주일이 모자랄 정도입니다. 당연히 건성건성 보는 게임도 생겨나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정말 선수들의 놀라운 컨트롤도 쉽게 잊혀지곤 합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유심히 경기를 보면서 선수들의 컨트롤이 이렇게나 발달했나 하고 새삼 놀랬지요. 박정석 선수가 질럿도 아닌 프로브를 잘 이동시켜 러커 위쪽에 정확히 놓고 리버의 스캐럽을 통해 잡는 모습이라던가, 커세어의 무빙샷으로 달아나는 뮤탈을 잡는다던가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더군요. 임요환 선수의 배럭 옆에 서플 지어서 통과하는 모습은 몇 달 전 벌쳐 마인 비비기로 파일론을 통과했을 때만큼이나 신선했습니다.
예전에는 리그가 겨우 둘 뿐이었기에 iTV까지 정말 열심히 봤죠. 그것도 두어 번씩 재방까지 꼼꼼히 보면서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그래봐야 일주일 내내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으니까요. 덕분에 정말 세세한 모습까지 보며 감탄을 많이 했죠. 그냥 문득 생각나는,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을 써보자면,
1. 옵틱 플레어(Optic Flare) : 예전 iTV에서 테란과 토스의 경기였습니다. 임요환 선수가 한참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이었죠. 임요환 선수가 거의 다 졌다고 생각했던 경기(캐리어 나오면 토스가 무조건 이겼다고 생각하던 초보시절)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던 메딕들이 순식간에 모든 옵저버에 옵틱 플레어를 걸면서 장님을 만들고는 모아둔 레이스로 차분히 캐리어를 잡아주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떻게 그 작은 옵저버들을 모두 클릭해서 일일이 걸어줬는지 정말 신기했죠.
2. 스태시스 필드(Stasis Field) : 아비터의 모습을 경기에서 본 것도, 그것을 활용하는 모습을 본 것도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임요환 선수와 최인규 선수의 iTV 랭킹전 경기였죠. 천하의 임요환 선수였지만, 당시 임요환 선수 못지않게 강력한 힘을 자랑하는 선수가 최인규 선수였죠. 그 당시 iTV 랭킹전 10연승의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한창 테란과 프로토스가 정신없이 싸우는데 느닷없이 아비터가 나타나더니 임요환 선수의 병력 절반 정도를 얼려버리더군요. 그것으로 바로 승기는 넘어갔습니다. 정말 놀라웠죠.
3. 레스토레이션(Restoration) : 그러고 보면 iTV에서 참 재미난 경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임요환 선수와 이윤열 선수의 로템 경기였는데, 전세가 불리한 상황에서 임요환 선수는 이윤열 선수의 배틀에 고스트의 락다운을 걸려고 했죠. 그런데 이윤열 선수의 배틀 부대 아래쪽에 모여 있던 메딕들… 고스트가 락다운을 걸며 장렬히 산화하는 장면이 끝나기가 무섭게, 둥근 공에 묶여 있어야 할 배틀이 반짝거리며 다시 본모습을 찾게 됩니다. 바로 발음하기에도 생소한 레스토레이션이 이윤열 선수에 의해 방송경기에서 처음 시도된 것이었죠. 아마 레스토레이션은 그 뒤로도 개발한 선수도, 사용한 선수도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4. 적과의 동침 : 온게임넷 결승에서 벌어졌던 임요환 선수와 장진남 선수와의 극적인 역전경기가 생각납니다. 장진남 선수가 뿌려둔 다크스웜에 불쑥 들어가는 마린메딕 부대. 그런데, 정작 장진남 선수의 주병력은 히드라였죠. 스웜 안에서 서로 신나게 공격을 하지만 죽어나가는 병력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스웜이 걷히면서 상황은 달라졌죠. 메딕이 있는 마린이 히드라를 모두 죽이면서 장진남 선수는 점차 역전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고 결국 임요환 선수가 극적인 승리를 가져가게 되죠. 질긴 악연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5. 리콜(Recall) : 포비든존에서 임요환 선수와 김동수 선수의 경기는 정말 기억에 남습니다. 빠른 스타게이트 이후 느닷없이 아비터를 뽑더니 리콜을 감행하는 김동수 선수, 그리고 본진이 거의 털리는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방어하고는 결국 역전에 성공하는 임요환 선수 모두 대단했죠. 적진에 피어난 소용돌이 속에서 프로토스의 병력이 리콜 되는 모습이 정말 전율이었습니다. 최근에는 강민 선수가 이병민 선수를 상대로 정말 멋진 리콜을 선보였죠. 덕분에 저도 따라하다가 그만….
6. 어택땅 프로토스 : 김동수 선수가 우승한 스카이배에서 김정민 선수와의 경기였습니다. 서양 선수들이나 쓸 법한 어택땅 프로토스를 구사한 김동수 선수와 그걸 지겹도록 막아내는 김정민 선수의 물량과 컨트롤이 빛났죠. 당시 김동수 선수의 후기를 찾아보면 김정민 선수를 잡아내기 위해 한 달 가까이 연습을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질럿과 아콘, 그리고 끝도 없는 확장은 놀라운 모습이었습니다. 벌쳐가 수도 없이 마인을 박았지만 그것을 보란 듯 밟고 지나가면서도 옵저버도 뽑지 않던 모습. 하지만 김정민 선수의 수비력은 놀라웠죠. 결국 체제전환을 통해 이기긴 했지만 정말 충격적인 경기였습니다.
7. 매지컬저그 : 임정호 선수와 김동수 선수의 경기였습니다. 김동수 선수가 하이템플러를 이용 가짜 셔틀을 다수 만들어 같이 보내자, 임정호 선수의 퀸이 즉석에서 인스네어를 뿌려 진짜 셔틀을 가려내죠. 정말 기발한 공격을 한 김동수 선수도 대단했지만, 순간적인 기지로 인스네어를 뿌린 임정호 선수도 대단했습니다. 정말 저그의 마법유닛을 너무나 잘 사용하는 선수입니다.
8. 히드라 쌈싸먹기 : 이윤열 선수와 강도경 선수의 비프로스트 경기였습니다. 갖춰진 이윤열 선수의 바이오닉 병력을 상대로 러커 한 기 뽑지 않고 온니 히드라로 쌈싸먹기를 시도한 강도경 선수는 정말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싸움에서 히드라의 완승으로 끝이 났고, 승리를 가져가게 되었죠. 아, 대마왕! 당신의 그런 경기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9. 59분 59초 : 당시 상당히 화제가 되었던 경기였죠. 이윤열 선수의 처절한 버티기와 기지가 돋보이는 경기였습니다. 누가 봐도 완전하게 진 경기였는데도 불구하고 고스트 한 기로 한승엽 선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죠. 한승엽 선수로서는 참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자원이 마르고 닳도록 싸운 경기 중에서도 참 인상에 남는 경기였네요.
10. 집념의 베르트랑 : 나도현 선수와 베르트랑 선수의 비프로스트 경기였을 겁니다. 유리한 상황으로 경기를 가져간 베르트랑 선수가 나도현 선수의 본진에 핵을 쏘려고 하죠. 당연히 나도현 선수는 필사적으로 막습니다. 대체 몇 번이나 실패를 했는지, 경기시간 중 전투를 벌인 시간보다도 핵을 준비해서 쏘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핵을 날리지만 별 피해를 주지 못했고, 그 장면으로 오히려 한빛 선수들을 불타오르게 했죠^^ 훗날 나도현 선수가 복수를 하긴 했지만, 당시 상황은 참 난감하기만 했었죠. 그러나 그렇다고 베르트랑 선수가 미웠다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쇼맨십이었을 테니까요.
그 외에도 생각나는 것이 많지만 계속 쓰다가는 아마 끝도 없겠지요. 요즘 부쩍 주절주절 늘어놓는 일이 많아지는군요. 짧으면서도 많은 메시지를 주는 글을 쓸 재주는 없기에 그냥 장황한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아 양으로 승부하려나봅니다.^^
이제 프로게이머와 스타라는 게임은 취미를 넘어 즐거운 추억과 함께하는 저의 일부가 되어가는군요. 늘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ps : 우연히 iTV가 파업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워낙 방송들이 많다보니 iTV는 소홀하게 되더군요. 정작 명승부가 참 많이 나왔던 곳이었는데요. 노사가 굉장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같은데,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네요.
ps2 : 삼성은 계속 부전패로 기록될 것인지…. 이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차라리 삼성 책임자분이 협회에 가서 담판을 짓는 것은 어떨까요? 올킬을 하며 좋은 출발을 했던 삼성인지라 더욱 아쉽군요. 정말 정말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s3 : 알테어님이 요즘 바쁘신가보군요. 요 며칠 전적후기 란에서 알테어님의 글을 찾아보기가 힘드네요. 그래도 많은 분들이 결과와 후기를 올려주셔서 빈자리를 메워주시고 계시니 그저 감사하기만 합니다. pgr에서 정말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 바로 이런 분들이 아닌가 합니다. 조용히 지켜보시다가도 빈자리가 있으면 앞을 다투어 달려가 메워주는 그런 분들이지요. 지금의 pgr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사이트라고 생각합니다. 늘 뭔가를 바라고 받기만 하려 하기 보다는, 사이트를 위해 도움을 줄 방법을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pgr이 있는 것이겠지요.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