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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11/30 23:53:16 |
Name |
Elecviva |
File #1 |
0123_15.jpg (17.4 KB), Download : 38 |
Subject |
숭산 큰 스님께서 입적하셨습니다. |
“큰스님, 스님이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다 걱정 마라. 만고광명이 청산유수니라.” 30일 오후 5시15분. 선불교의 큰 별 숭산 스님은 화계사의 주지 성광 스님과 국제선원장 현각 스님 등 수십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자의 물음에 이렇듯 한마디만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제자의 ‘애타는 심정’마저 선사의 심검으로 베어버렸다. 숭산 스님은 ‘왜 선을 수행하는지’에 대해 “자신의 참모습을 아는 일”이라고 분명히 했다.
“모두 놓아 버려라. 그 다음엔 우리의 견해나 조건, 상황을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행할 뿐.” 평소 그의 이런 설법은 생사의 경계에서도 일관됐다. ‘오직 할 뿐’이었다.
일제 식민시대에 태어난 스님은 어릴 시절부터 시대를 고민하는 젊은이였다. 17살 때 독립운동에 가담해 일본 헌병대에 체포, 수감돼 감방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숭산 스님은 1946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정치 운동이나 학문으로는 사회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보고 4대 독자의 몸으로 출가의 길을 선택했다. 47년 10월이었다.
그는 깊은 암자에 들어가 불교 기도문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며 백일기도를 해 힘을 얻은 뒤 경허-만공 스님으로부터 이어온 법맥을 이어받은 고봉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참선을 시작했다.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동안거(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승려들이 바깥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힘쓰는 일)를 마친 그는 누더기를 걸친 채 소주 한 병과 오징어 한 마리를 들고 고봉 스님을 찾아가 법거량(불가의 스승이 제자의 수행 정도를 문답으로 점검하는 것) 끝에 깨달음의 징표인 법인가를 받았다. 22살의 새파란 나이였다. 60년 세랍 33살에 불교신문사 초대 사장을 지낸 스님은 66년 일본에 홍법원을 세워 외국 포교를 떠나며 인생의 전기를 맞게 된다.
그는 한국 불교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던 서양에 한국의 선을 알려 69년부터 미국, 캐나다, 브라질, 프랑스에 선원을 지어 선풍을 드날렸다.
“유 애스크, 아 앤서. 디스 이스 러브.”(네가 묻는데, 내가 대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강연에서 한 학생이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늦은 나이에 영어를 익혀 오직 간결하고 선적이었던 그의 문답은 복잡한 지식에 식상한 서양인들을 매료시켰다.
그는 동양의 선불교에 무지한 서양인들을 위해 일본 선 방식으로 공안(화두)을 하나하나 타파해 나가도록 지도했다.
돈오점수를 인정하지 않는 국내 전통 선가에서는 단계적인 깨달음으로 이끄는 그의 이런 지도 방식 때문에 “일본 선의 아류”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계룡산 국제선원 무상사 조실 대봉 스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로 화계사 국제선원장인 현각 스님, <왜 사느냐>의 저자인 미국 캘리포니아 태고사 주지 무량 스님 등 수많은 외국 제자들을 길러냈다.
그래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교재에선 티베트의 정신지도자 달라이라마, 베트남 출신 프랑스 플럼빌리지의 틱낫한 스님, 캄보디아의 종정 마하 고사난다와 함께 세계 4대 생불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는 늘 “세상의 복잡한 문제를 달리 풀려고 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라”고 가르쳤다.
-출처 : 한겨례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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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내 가슴 아픈 밤입니다. 살아 생전에 그토록 존경하고 또 존경하던 숭산 큰 스님이 입적하셨습니다. 간략히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세계 4대 생불' 중에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흔히들 말씀 하시는 달라이 라마도 그 중에 한 분이지요.
불혹을 넘긴 나이에 미국에 세탁소에서 일을 하면서 영어를 배우시며 한국 불교를 널리 알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분이십니다. 하버드 대학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강연을 하셨고 많은 제자를 가리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종교에 오만가지 회의를 갖고 살던 사춘기에 우연히 현각 스님의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고 커다란 감동을 받아 알게 된 숭산 큰 스님은 항상 '오직 모를 뿐'의 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전 큰 스님과 현각 스님, 무량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불교는 종교로서 '믿음'의 유무가 아니라 그저 삶의 한 모습이며 철학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서인 '선의 나침반'과 '오직 모를 뿐', '오직 행할 뿐'을 읽으며 제 마음 속에 가장 큰 별이셨는 데 하필이면 이렇게 추운 날 입적하시다니..
따뜻한 봄날에 가셨으면 조금 더 좋았을 것을 마음이 참으로 많이 아픕니다.
스님의 어린아이 같이 티끌 없는 미소가 아른거립니다.
부디 성불하시길..
덧말 : 절절한 마음을 옮길 곳이 없어 좋아하는 pgr에 올려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쉽게 우리의 불교를 무시하지만 결코 우리의 가십거리에 회자되는 것으로 우리 불교와 모든 스님을 욕하거나 무시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례로 지율스님의 천성산 도룡뇽 관련 뉴스의 리플을 보면 개발중식의 논리야 이해를 한다고 하지만 땡중이니 뭐니 하는 불경한 이야기에 얼굴이 빨개진 기억이 많습니다. 거시적으로 그 것이 참된 뜻이기에 그저 행할 뿐이지 지율 스님이 부정한 목적으로 그렇게 행동하진 않으시다고 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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