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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11/13 09:34:26
Name 길 가는 법만
Subject 스타크래프트...... 임진록...... 맵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저도 역시 어제 임진록을 보고 글을 씁니다. 알테어님께서 어제의 임진록 관련 글은 아래 글의 댓글로 달아놓으라고 하셨는데, 내용이 조금 다른 것도 있고 해서 새로 작성합니다. 운영자분께서 판단하셔서 아래 글의 댓글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라면 번거로우시겠지만 좀 옮겨 주세요. m(_._)m

저는 사실 스타크래프트가 참 잘 만든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밸런스에 관해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사실 3가지 종족으로, 그것도 서로 다른 성격의 유닛들을 가진 3가지 종족으로 이 정도의 밸런스를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정도까지 오기 위해 수차례 패치를 거쳤고 보다 나은 밸런스를 위해 몇 번 더 패치를 해야 할 지도 모르지만요.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바둑이나 장기, 체스는 밸런스(?)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지요. 선수와 후수라는 것 외에는 두 경기자가 입장의 차이가 없고 완전히 동등한 유닛(?)으로 하니까요. 전에 워크래프트 II 가 나왔을 때의 평가가 기억이 나네요. 당시 워크래프트 II 는 종족은 2개였고 그나마도 유닛들의 성능이나 특성이 양 쪽이 거의 비슷해서 같은 종족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일 스타크래프트가 그랬다면 적어도 밸런스 문제는 없었겠지만...... 아마 수명이 더 짧아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스타크래프트의 매력 중의 하나가 한 맵에서 각기 다른 세 종족이 각기 다른 성격의 유닛을 사용하여 승리를 위해 천변만화하는 전략, 전술 및 컨트롤을 보여준다는 점이니까요. 다만 스타크래프트의 종족 및 각 종족 유닛 특성상 특정 지형의 영향을 서로 다르게 받기 때문에 세 종족 모두 다른 종족들을 상대로 거의 동등한 조건에서 싸울 수 있도록 맵을 제작하는 것이 관건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 점이 어렵고요.

어제 임진록에 관해서는 저는 실망이라기 보다 맥이 빠지는 느낌이었습니다(같은 이야긴가요? ^^;). 대개 임진록이라면 코크배때 처럼 치고받는 난전 및 치열한 전략, 전술의 주고받음을 연상하고 또 실제로 그런 경기가 대부분이었는데(지난 주에 엄재경 해설위원께서 '임진록은 무조~건 재미있습니다. 허허허~' 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이번에는 좀 어이없다 싶을 정도로 임요환 선수의 3 경기 연속 벙커링에 홍진호 선수가 초반에 무너졌죠. 3 경기가 끝난 다음 홍진호 선수의 벙찐 표정이 눈에 아직도 선하네요. 별로 분하다든가 아쉽다든가 한 표정도 아니고 그저 황당하다는 벙찐 표정이더군요. 하긴 제가 그 상황이라도 그랬겠지만요. 그리고 요새는 중요한 경기에서 이기면 나름대로 빅토리 포즈를 취하고 활짝 웃어주는 임요환 선수도 그리 기쁜 표정도 아니었고 피곤하다는 듯이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말더군요. 감히 추측해 보건대 아마 임요환 선수도 준비해 온 작전이 초반 러쉬와 벙커링이라서 그대로 하기는 했지만, 벙커링으로만 홍진호 선수를 이긴 것에 어느 정도는 미안함이나 회의를 느낀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제 사견으로는 아마 벙커링 후에 그것이 실패했을 때 이어지는 콤비네이션도 뭔가 준비해 왔을 것 같고요, 설마 홍진호 선수가 벙커링만으로 3 경기 다 무너질거라고는 임요환 선수도 예상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웬지 오히려 임요환 선수가 이후에 한동안 벙커링을 안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군요. 홍진호 선수만큼은 아니더라도 임요환 선수도 어느 정도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어쨌든 어제 게임이 끝난 후의 두 선수의 표정을 오랫 동안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 ID 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 초보입니다. 그래서 어떤 종족에게 어떤 맵이 왜 불리하고 유리한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워낙 맵에 대한 말이 많아서 맵 선정에 문제가 있다는 정도는 알 것 같더군요. 그리고 어제의 임진록은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아마 변종석 님을 비롯 온게임넷 맵 선정 관계자들은 임요환 선수를 원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홍진호 선수가 까페에 남긴 글 내용 중에 '제발 대각선만 걸리길 바랬다' 라든가 하는 내용이 있었고 그것에 대해 프로 선수가 취할 자세가 아니라는 내용의 글도 있었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사실 홍진호 선수 정도의 프로선수, 아니 그렇지는 않더라도 프로선수라고 인정을 받은 선수라면 저런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썼다는 것은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당대의 라이벌이라는 임요환 선수와 홍진호 선수...... '임진록'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두 선수들이고 아마 서로를 제일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제 생각에는 홍진호 선수는 임요환 선수의 초반 BBS 러쉬와 벙커링을 예상을 못 했던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4강 맵에서 러쉬 거리가 가까운 스타팅 포인트가 걸리면 틀림없이 초반 러쉬, 최소한 흔들기는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을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대해 대비책도 수많이 연구해 보았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나왔기 때문'에 저런 생각까지 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임요환 선수는 홍진호 선수가 앞마당을 차지하는 것을 제지한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고요. 달리 생각해 보면 어제의 벙커링들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나온 결과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해 봅니다.

하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홍진호 선수가 한 경기 정도는 앞마당을 차지하는 것을 포기하고 본진 플레이를 시도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은 저그가 불리한 상황은 틀림없지만, 바둑에서도 초반에 크게 당하더라도 이후에 묵묵히 착실하게 큰 실수 없이 두어나가게 되면 어느 새에 이기는 경우도 가끔은 있으니까요. 또 그렇게 침착하게 두어나가다 보면 오히려 초반에 유리함을 차지한 상대가 실수하는 경우도 있기도 하고요('초반 50집 확보는 필패' 라는 바둑 격언도 있죠.). 물론 상대가 임요환 선수인만큼 쉽지는 않았겠지만, 어제 홍진호 선수도 한 경기 정도는 그렇게 풀어나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임요환 선수가 '재미있는 경기'를 하기 때문에 임요환 선수의 경기를 좋아하는데 어제 경기는 실망이었다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물론 임요환 선수의 경기는 재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더라도 보는 사람을 전율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지요. 물론 그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어이없이 지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저는 임요환 선수가 재미있는 경기를 추구하는 선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기기 위한' 강한 승부욕이 경기에 투영되다 보니 재미있는 경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SCV 댄스라든지 배틀크루저 댄스라든지 등의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승패에 관계가 없는 상황에 한해서만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전에 임요환 선수가 쓴 '임요환의 드랍쉽'이라는 책에 보면 '친구들끼리라면 내가 레이스 한 부대를 모아 적 본진에 쳐들어 갔을 때 친구가 미처 방어타워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레이스를 돌려 기지로 되돌아와 친구가 방어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 그러나 프로끼리의 대결에서는 그렇지 않다. 상대가 조그만 허점이라도 보이면 최대의 노력을 통해 최단시간에 그 허점을 파고든다.' 라는 내용이 있습니다(원문을 좀 축약했습니다). 즉 임요환 선수는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하는 선수였고, 선수이고, 선수일 것입니다. 그런 것이야 다른 프로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그리고 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어제 임진록의 결과를 놓고 보았을 때 어쨌은 이번 시즌의 맵은 문제가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온게임넷 스타리그 출범 후 가장 어려운 시기(말이 좀 애매하군요.)일 수도 있겠고요. 제 기억으로는 스타리그가 이런 정도까지 맵에 대해 비난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홍진호 선수가 연습을 게을리 하거나 하는 선수도 아닐 것이고 실력도 최정상급의 선수이며, 더구나 리그 4강전이나 결승전은 선수들이 더 신경써서 준비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홍진호 선수가 '제발 대각선이 걸리기만을 바랬다' 라는 등의 약한 소리를 하는 것은 연습을 안 한 것이 아니라(아무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만) 오히려 더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작전을 세워 보니 서로 가까운 스타팅 포인트가 걸렸을 때 임요환 선수가 틀림없이 구사할 초반 러쉬를 막고 이길 방법이 없다고 결론이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런 경우 아무래도 맵에 책임이 돌아가지 않을까 하네요. 하지만, 어쨌든 일단 이번 시즌도 거의 끝나가고, 지난 결과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승전도 테테전이라 종족의 유불리를 따질 수도 없고, 3,4 위전은 문제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는 그렇게 문제삼을 것 같지도 않고요. 그리고 이번 일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 온게임넷 맵 제작진이나 선정진들도 좀 더 발전을 하리라고 기대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맵에 대한 좀 더 자세한 통계를 준비해 두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단순히 어떤 맵에서 종족간 승패가 어땠다 이런 것 말고요. 어떤 맵은 어떤 형태의 맵이었는데, 종족간 승패는 어땠고(이건 당연하지만) 어떤 형태의 승부가 많이 나왔는가 하는 것까지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초반 러쉬에 의한 승부가 많은지, 중후반 힘싸움의 형태가 많았는지, 테란의 드랍작전이 많이 나왔는지, 조이기가 많았는지, 프로토스의 몰래 게이트가 많았는지 정석적인 힘싸움이 많았는지 등등이요. 물론 분류하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겠습니다만, 어느 정도 맵 제작에 참고가 되는 필요한 기준을 만드는 것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특히 이번 시즌처럼 밸런스가 좋지 않거나 종족간에서 일방적인 승부가 많이 나왔던 맵들은 따로 분류하여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어떤 요소가 그런 결과를 나오게 했는지, 어떤 식으로 선수들이 풀어가니까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기록해 둔 다음 차기 맵에 그런 요소가 없도록 반영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온게임넷 맵 관련자 분들에게는 오히려 기회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드네요. 이런 식으로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종족간 밸런스에 큰 문제가 없는 맵들이 계속적으로 나오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하우도 생기고요. 단순히 그동안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밸런스에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은' 맵을 만들고 선수들에게 테스트해보고 별 문제 없으면 사용하고 문제가 있으면 그 부분만 수정하는 방식보다는 이러한 데이터를 맵 제작에 반영하는 것이 시행착오를 줄일 확률이 클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방대한 작업이고 많은 수고를 요구하는 작업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추어 맵 제작자가 아닌 '프로' 맵 제작자라면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것은 저만의 이기적인 생각일까요?

마지막으로 선수들을 격려하는 말을 남기고 마치겠습니다.

임요환 선수. 수고하셨습니다. 결승 진출을 축하드립니다. 비난의 말에 너무 신경쓰지 마시길. 어제는 당신의 승부사적인 모습을 최고로 보여준 경기 중 하나였습니다. 결승에서도 힘내서 최연성 선수와 좋은 경기를 부탁드립니다.

홍진호 선수. 수고하셨습니다. 다만, 어제의 어이없는 패배에 너무 충격받거나 실망하지 마시길. 그렇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홍진호 선수이고, 그리고, 폭풍입니다. 박정석 선수와의 3,4 위전에서 멋진 모습을 기대합니다. 이젠 경험과 연륜이 쌓인 만큼 그런 패배를 당했다고 해서 3,4 위전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초보의 횡설수설하는 글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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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1/13 09:42
수정 아이콘
바둑은 아직도 밸런스 논쟁중입니다. ^^
그쪽의 맵은 수천년(-_-)에 한번 바뀔정도지만..
아직 덤에 대한건 확실히 계속 변해오고 있습니다.
(다섯집반이냐 여섯집반이냐 일곱집반이냐.. 요즘은 거의 못보지만 KBS바둑왕전은 여섯집반인가 그럴겁니다. 이번주 승자결승이 이창호9단 vs 최철한7단인가 그럴텐데.. 대박입니다.. 후훗. ^^)

정말. 밸런스 논쟁은. 어느게임이건 끝이없습니다.
(주관적 밸런스를 맞춰야하는 카드게임은 더 합니다.. 쩝.)
맵은 다들 충분히 노력하고 계십니다.. 이번은 정말 선정운이 없었던겁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범한 로템류의 맵을 보고 싶지 않으니..
면죄부를 쥐어드리는건지도 모릅니다..
길 가는 법만
04/11/13 09:57
수정 아이콘
Yang 님// 예, Yang 님의 말씀대로 바둑도 아직 밸런스가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흑이 선수인 만큼 몇 집을 먹고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 수천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정해지지 않은게 사실이지요. 그래도 스타에 비해서는 유불리 이야기가 덜 나오는 듯 해서요. 제가 잘 몰라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지만요.

그리고 맵에 대해서도 다들 노력하고 계신다는 것은 저도 공감합니다. 다만 저는 한 가지 방법(그것도 상당히 수고로울 수 있는 ^^;a)을 제시한 것이고요....... 뭐, 이미 하시고 계신 일인지도 모르죠. 어쨌든 앞으로 발전하겠죠.
마리아
04/11/13 11:26
수정 아이콘
온게임넷 지금 쓰이고있는 맵 최악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04/11/13 14:16
수정 아이콘
워2에서 오크>>휴먼 ;;
Hidden Box
04/11/13 16:10
수정 아이콘
제가 하고싶은말을 다 써놓았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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