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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10/21 22:58:37
Name 번뇌선생
Subject 본격 E-SPORTS 로망활극 - 제 11 화 우리 형 (첫번째)
제 11 화    우리 형 (첫번째)


  “인우야, 재밌나?”
  “어! 어! 진짜 재밌다.”
  “좋나?”
  “어! 어! 윽수로 좋다! 행님, 내일 또 홈런 쳐라!”
  “그기 마음대로 되나 임마.”

  우리 형은 그러면서 내 머리를 만집니다. 나는 형이 내 머리를 만질 때가 좋습니다. 형은 그냥 쓰다듬지 않습니다. 형은 정말 사랑스럽게 머리를 만집니다. 나는 우리 형이 제일 멋있습니다.

  내일은 형의 학교가 동성고하고 시합을 합니다. 동성고는 봉황기에 4강에 든 강팀입니다. 하지만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형이 있으니까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형은 한국 고등학생중에 제일 야구를 잘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잘 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내일 구덕운동장에 갈 겁니다. 친구 몇 명 데리고 갈 겁니다. 어머니는 바빠서 못 오실 테니까 제가 가서 응원을 해야 합니다.

  “감독님! 감독님!”
  “오, 그래. 인우 왔네.”

  형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나는 몰래 벤치로 갑니다. 감독님은 저한테 잘 해줍니다. 제가 맨날 형 연습하는 걸 구경하기 때문에 감독님도 저를 잘 압니다.

  감독님은 저를 귀여워 하지만 형은 화를 냅니다. 형은 내가 벤치로 몰래 숨어든 날에는 꼭 화를 냅니다. 보통 때는 절대 화를 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때에는 꼭 냅니다. 감독님도 형의 선배 후배도 다 나를 보면 좋아하지만 형만은 꼭 뭐라고 합니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벤치를 지키고 않습니다.

  “니 임마 또 왔나! 내가 벤치에 오지 말랬지! 안 올라 갈래!”
  “은다. 안갈끄다. 행니마, 내 여기 있으께.”
  “안돼! 어서 올라가!”

  이때에는 감독님이 웃으시며 말립니다.

  “인수야 놔두라. 괜찮다.”
  “안됩니더. 버릇 나빠 집니더. 맨날 오면 우얍니까.”
  “괜찮다. 인수야. 너거 동생은 우리 승리의 여신 아이가.”
  “그래 맞아요 선배. 놔두세요.”
  “인우가 배트 보이 해줘야지 우리가 이기지.”

  이쯤 되면 형도 어쩔 수 없습니다. 형은 다시 한번 제게 주의를 줍니다. 그러고는 경기 끝 날때 까지 제게 단 한마디도 말을 시키지 않습니다. 저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어려도 눈치가 좋아서 입 다물때는 끝까지 입 다물고 있습니다.

경기 내내, 저는 열심히 배트를 줍습니다. 오늘은 경기가 영 안 풀립니다. 동성고 에이스라더니 확실히 잘합니다. 벤치에서 봐도 공이 정말 빠릅니다. 느린 공을 치면 될 텐데 자꾸만 빠른 공에 헛스윙을 합니다. 바보같이. 나는 몰래 대식이 형한테 귓속말을 했습니다.

  “행니마, 빠른 거 치지 말고 느린거 쳐요. 왜 자꾸 빠른 거만 칠려고 그래요?”
  “허허. 그래 니 말이 맞다.”

  그러고 나간 대식이형이 홈런을 쳐 버렸습니다. 느린 공을 쳤습니다. 역시 내 말이 맞습니다. 홈을 밟고 돌아온 대식이 형이 감독님에게 말합니다.

  “커브가 영 밋밋해 졌습니더. 직구 흘리고 변화구만 커트하면 공이 중앙으로 몰릴 것 같습니더.”
  “너거 다 들었제?”
  “예!”

  그때 부터 연신 치고 나갑니다. 지루하던 경기가 순식간에 불이 붙었습니다. 우리 형도 타석에 들어섭니다. 저는 형이 약속을 지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느린 공은 커트하고 직구는 보내라. 초조해 지면 둘 중 하나는 온다. 중앙으로 몰리는 직구가 오던지 밋밋한 커브가 오던지.’

  벌써 투스트라익 입니다. 다시 공이 날아 옵니다. 아슬아슬하게 휘두르지 않습니다. 연달아 볼이 들어 옵니다. 아직은 2-2 입니다. 하지만 왠지 예감이 옵니다. 다음 공, 다음공. 다음공을 못치면 못칠것 같다는......

  ‘변화구 온다. 제발 떨어지지 마라. 제발 떨어지지 마라.’

  쳤습니다. 모두 벌떡 일어나 타구를 쳐다 봅니다. 하지만 저는 보지 않았습니다. 안 봐도 압니다. 안 봐도 소리만 들으면 홈런은 알 수 있습니다. 형도 타구를 보지 않습니다. 멋지게 두세걸음 걷다가 뜁니다. 메이져리그에도 저렇게 하는 타자가 있다던데 이름이 생각이 안납니다. 무슨 쥬니언데.... 하여간 우리 형은 역시 멋있습니다.

  그 날 나는 집으로 먼저 돌아와서 형을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일하고 오신 엄마 옆에 붙어서 형이 얼마나 멋있었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열심히 얘기 합니다. 어머니는 안 들으시는 척 드라마만 보시는 척 하지만 속으로 웃고 계십니다. 요것도 안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인우야, 엄마 치매 안 걸렸다. 한번만 얘기해도 다 안다. 고만좀 하그라. 피곤하데이.”
  “엄마 피곤하나? 많이 피곤하나?”

  나는 엄마의 어깨를 주무릅니다. 엄마는 됐다 됐다 하시면서도 또 속으로 웃습니다. 나는 열심히 어깨를 주무릅니다. 어깨 팔 등 허리 다리 내친 김에 다 주물렀습니다. 엄마는 꽤 시원하신듯 합니다.

  “엄마 좋제? 시원하제?”
  “그래 그래, 아이고 시원하다.”
  “더 주물러 주까? 어데 또 주물러 주까?”
  “아이다. 인쟈 괜찮다, 우리 효자야.”
  “더 주물러 주께.”

  됐다고 하셨지만 나는 계속 다리를 주물러 드렸습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십니다. 그러면서 제 볼을 만집니다.

  “저거 아버지 아들 아이랄까봐. 손아구 힘 좋은거 봐라.”

  가끔 엄마는 날 보며 아빠를 쏙 뺐다고 합니다. 형은 엄마를 좀 닮았지만 나는 아예 아빠랍니다. 자는 내 얼굴을 보다가 깜짝 놀랄 때도 있답니다. 하지만 손아구 힘 좋은건 둘 다 닮아서 그래서 형이 야구를 잘 하는 거랍니다.

  “행님 왔는갑다!”
  “그래? 얼른 문 열어 줘라. 저녁 묵자.”

  나는 현관을 향해 달리고 엄마는 주방을 향해 걷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형이 들어옵니다. 땀냄새에 흙냄새에 옷도 유니폼을 그냥 입고 와서 엉망입니다. 도대체 저 꼴로 뭘 타고 왔을까요.

  “형아!”
  “어 그래. 엄마는?”
  “엄마, 밥 차린다.”
  “엄마, 갔다왔어요.”
  “그래, 어서 온나 밥묵자. 얼른 씻고 온나.”
  “예.”

  나는 형이 옷을 벗기 기다렸다가 얼른 챙겨서는 세탁기 안에 집어넣고 돌립니다. 형은 씩 웃습니다. 또 다시 주방으로 달려가 수저를 놓습니다. 이번엔 엄마가 씩 웃으십니다.

  그리고 셋이 앉아 저녁을 먹습니다. 형이 아무말이 없길래 내가 다시 홈런 친 얘기를 했습니다. 엄마는 열번이나 들었는데도 또 들으시며 웃습니다. 밥 먹으면서 나는 또 열번은 했을 겁니다.







우리집은 이렇게 행복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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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물량
04/10/21 23:09
수정 아이콘
이야.. 오랜만이네요~
차차 주인공 정인우의 비밀이 밝혀지는 듯~~
연재속도가 좀만 더 빠르면 ㅠㅠ..
사람들이 잊을지도 몰라요-_-+ 흐흐......
여튼 제가 PGR오는 이유 중의 하나를 담당하고 계시니까-_-;;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흐흐흐
번뇌선생
04/10/21 23:55
수정 아이콘
영웅의 물량님께서 항상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빨리빨리 올리고 싶지만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게 있습니다. 그래서 써야지 마음먹고 앉으면 쓰지 못하다가도 아무생각 없이 몇자 치다보면 그게 도화선이 되어 백자도 쓰고 천자도 쓰고 그럽니다.
제 글이 다른 게시물처럼 눈길을 끄는 흥미거리도 아니고 호흡도 빠르지 못하고 거기다 기존의 프로기에머들을 패러디하여 웃음을 주거나 하는 것은 더더욱 없습니다. 오히려 출판물처럼, 드라마에 비하자면 정극의 느낌으로 쓰고 있습니다. 가볍고 단출하게 쓰면 좋겠지만 제 능력 밖이며 또 인터넷을 이용한 소설이라고 해서 이모티콘이 난무하고 채팅용어를 써야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글이니까.
그런 점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께는 정말 감사드리며 아울러 희망 같은 것을 느낍니다.
좌우간 쉽게 완결 되지는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연재속도가 빨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빠르게 쓰면 그만큼 내 안에 글을 쓰는 힘이 빨리 고갈되고 제대로 충전되지 못한 상태에서 또 어설픈 것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pgr눈팅경력20년
04/10/22 00:18
수정 아이콘
헉...두번째편은 오늘 안올리시나요?ㅠㅠ
신멘다케조
04/10/22 00:32
수정 아이콘
sk t1 팀과의 경기 무지 궁금해지네요... 빨리 써주세요~
석지남
04/10/22 01:15
수정 아이콘
연재물을 기다리는 독자의 입장은 원래 이런거죠 ^ ^;; 보채면 더 재미없어지고 쓰는 사람 힘들어지는거 뻔히 알지만 보고 싶은 욕구는 어쩔 수 없는거 아니겠습니까 ㅋ... 번뇌선생님께서 가장 잘 쓰실 수 있는 페이스와 가장 잘 쓰실 수 있는 환경아래서 최대한~만 빨리 써서 보여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 이것도 압박 리플인가 -_-;;
04/10/22 04:26
수정 아이콘
ㅇ/_ㅇ/다음글을 기다려요~
아케미
04/10/22 07:44
수정 아이콘
독촉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어서 다음 편을 보고 싶은 독자의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해해 주세요^^;
드디어 정인우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여전히 다음 편도 기대합니다!
sunnyway
04/10/22 08:33
수정 아이콘
기다렸어요~~ +_+
전 중요한 것은 글의 짜임새라 생각하기에, 정극 스타일도 좋아요 ^^
와룡선생
04/10/22 10:30
수정 아이콘
번뇌선생님// 정말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
사적인 질문입니다만 부산사시는지요?
부산사투리에 동성고에 구덕운동장.
저도 부산 살거등요.. ^^
좋은 하루 보내세요
영웅의물량
04/10/22 17:10
수정 아이콘
번뇌선생님//앗, 제가 눈에 띄었군요^^;
연재글이라 그런지 조회수는 많지 않지만 보시는 분들이 거의 매니아-_-급이 되거 가는 분위기죠~
하하, 한때 10화 이후로 연재를 접으신게 아닌가-_-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만^^~
직접 남기신 댓글을 보니 안심; 이군요~ 좌우간 열심히(?) 기다리겠습니다~ 하핫;;
04/10/22 23:04
수정 아이콘
번뇌선생님의 글, 항상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
다음 편도 기대합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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