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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10/10 11:18:48 |
Name |
고래~★ |
Subject |
To. 임요환 선수 '언제나 맑음' |
(일단 전 홍진호 선수의 팬이란 것을 먼저 밝히겠습니다)
임요환 선수, OSL 8강전에 진출하셔서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한때는 요환선수를 정말 싫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홍진호 선수와의 라이벌 관계구도 때문이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꼭 홍진호 선수의 발목을 붙잡는건 임요환 선수, 당신이었으니까요.
정정당당한 승부에서 승리를 가져간 것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최우선이었고
그 선수를 삐끗하게 만드는 것은 용납이 안될 정도로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과거의 안좋은 추억.
넋두리 같지만 제가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접한 것은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오리지날 게임이 출시되고 일년쯤 후부터였을 겁니다.
누구나 경험이 있겠지만 배넷에 들어가 래더게임을 하며 3일 밤을 샌적도 허다하고
팀플을 하며 패할 때는 못하는 팀원 걸려서 졌다고 바락바락 화내던 기억도 나네요. ^^
한동안 스타크래프트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당시엔 방송리그는 상상불가)
브루드워가 출시되고 나서 스타를 접었습니다.
요즘 같으면야 게임방송이나 vod를 보면서
스타크래프트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연구하고 따라할 수 있지만
당시엔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솔직히 주변에 잘하는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컨트롤이란 건 있는지도 몰랐고
저그유저로서 사용하는 체제라고는 땡히드라 러쉬밖에 없었습니다.
오리지널에서의 전략이란 것은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초보수준에 가까웠으니 말 다했죠.
(올마린과 올질럿과의 싸움도 꽤 재미있긴 했었습니다만은...^^)
무식하게 스타를 하다보니 전략적인 요소와 컨트롤 측면이 강화된 브루드워에서는
연패를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골치 아프고 재미가 없어져서 '이게 뭐야. 안해!'라며 미련없이 스타크래프트를 접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2002년 온게임넷 코카배 결승전에서 임요환 선수와 홍진호 선수를 봤습니다.
결승전이 있는지도 몰랐고 우연찮게 가게되었기에 두 선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어요.
원래 저그유저였던지라 영문도 모르고 홍진호 선수를 응원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대형스크린으로 보이는 경기화면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눈을 뗄수도 없었고 벌어진 입은 나중에 의식이 돌아온 후에야 놀라서 다물 정도였으니까요.
생각없이 이리저리 보내고 공격했던 유닛들이 그 커다란 화면 속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오버라고 생각하실진 모르겠지만 정말 한편의 전쟁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두 선수가 만들어내는 와일드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장면들에
그 큰 장충체육관을 울리던 사람들의 탄성과 박수소리.
평소 의식속에 존재하지도 않던 것들에 대해 환희와 전율을 느끼게 됐습니다.
'저 사람들이...프로게이머구나.'
그저 게임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게임플레잉으로 돈만 버는 사람도 아닌 프로게이머.
관중을 거느리고 팬을 거느리고 그래서 책임을 다하려고 하는, 매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하기에 최고인 그들.
당신들은 제가 처음 접한 프로게이머들이었고
비단 그 '처음'이란 말이 가지는 의미가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함께 울고 웃었던 팬인지라 홍진호 선수가 OSL 본선에 2회 탈락이라는 고배를 마실때도 너무 가슴이 아팠었습니다.
홍진호는 결승전 가면 그냥 GG치라는 비아냥거림이 난무할때도 팬들은 그깟거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임요환 선수가 부진한 성적을 보이자 기다렸다는듯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당신의 수많은 팬들에게는 어쩌면 중요한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저 팬들은 계속되는 준우승에 남몰래 삼켜야 했던 홍진호 선수의 눈물과
성적부진후 날라드는 안티들의 태클에 아파했을 임요환 선수의 마음이 걱정됐을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그저 운이 좋아 높은 곳에 서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직 좋은 성적만을 바라는 팬들은 없습니다.
승자의 왕관을 팬들이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노력과 성적이 정비례해서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겠지만
좌절하지 않고 안일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걸로 된겁니다.
땀에 흥건히 젖은 마우스, 오랜 연습으로 쓰려오는 눈동자,
온 몸이 결리도록 앉아 있어야 하는 의자, 뻐근한 어깨와 목,
기대이하의 성적에 타들어가는 가슴 혹은 좋은 성적뒤의 설레임,
이유없이 쏘아붙이는 게임유저와 게임팬들에 대한 때때로의 섭섭함,
프로이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내야한다는 압박감.
모두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알 수는 있습니다.
임요환 선수, 갑갑해 하지 마시구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요환선수가 패할때의 VOD를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경기가 끝난후 화면에 잡힌 모습에서 당신의 옅은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거든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임요환 선수 없이 덩그러니 혼자 남은 홍진호 선수는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홍진호 선수와 오직 스타크 전장에서만 청산할 수 있는 빚이 있지 않나요? ^^
그러니 조급해 마시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져버리지 마세요.
당신들의 마음이 언제나 맑을 수 있기를, 풋풋한 미소 가득한 행복이 함께하기를...
^____________^ 파이팅!!!
P.S 예전과 달리 요즘엔 두리뭉실 좋게좋게 프로게이머 선수들 응원하는 편입니다.
그들이 멋진 플레이를 보여줄땐 편애없이 박수를 쳐줄 수 있게 됐어요.
OSL 8강전에서 붙게 될 선수들,
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마음으로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습니다.
멋진 경기 기대할거구요.
홍진호 선수의 팬이지만 누가 올라가든 아쉬움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임진록에 대한 기대감은 수그러들지 않는군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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