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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10/06 01:16:18 |
Name |
번뇌선생 |
Subject |
본격 e-sports 로망활극 - REPLAY (2) |
“아이고. 내가 한방 묵었네.”
“됐어. 농담은 그만 하자. 나는 진짜로 말싸움 하러 온 거 아니야.”
“농담...그래 농담은 그만 해야지.”
“태민이 한테는 어떻게 이겼냐?”
“박태민이? 아아...그때? 못 이겼다. 졌다.”
“장난 치지마 이 자식아. 그땐 니가 이긴거나 다름 없었어.”
“야는 쪽팔린줄도 모르고 지가 졌다고 노래를 부르네.”
“정인우. 맞나?”
“맞다.”
“그래. 인우. 이제 확실히 생각 났다. 너 마지막에 초등학생한테 마우스 넘기고 갔지? 프로가 아마츄어한테 지면 쪽팔리는 거라며. 태민아 맞냐?”
태민은 고개만 끄덕끄덕 했다.
“내 생각에는 말이야...... 걔가 상욱이 이긴 얘 맞지?”
“귀신이네, 강민. 역시.”
“귀신이고 뭐고...... 나 솔직히 정말 궁금 해서 왔다.”
“뭐가.”
“니가 아까 나에가 말했던 거.”
“뭐?”
“임요환은 몇분 몇초 이재훈 몇분 몇초 하던 거.”
“아. 그거. 그게 와?”
“그런거... 솔직히 다 외우고 있어 봤자 별 도움 안되 거든.”
“와 도움이 안되는데.”
“스타 할때 시계를 옆에 두고 하는 것도 아니고 키보드를 한번이라도 안 틀리고 누르지 않는 이상에 초까지 맞추기도 힘들고.”
“그라믄 니는 타이밍을 어떻게 맞추는게 맞다는 말인데?‘
“타이밍은 초로 재는 게 아니야. 내 빌드로 맞추는 거지. 시간 재는 거는 처음 빌드를 만 들때 말고는 별 소용 없어.”
태민도 강민의 말을 들으며 일리가 있다고 생각 했다. 이미 스타크래프트에 기본적인 전략은 다 짜여진 상태다. 투팩을 하든 9드론을 하든 그것들은 최적화된 빌드이다. 가장 빠른 시간안에 할 수 있도록 빌드는 짜여지며 그것보다 더 빠를 수는 없다. 다만 상대의 빌드를 끊임없는 정찰로 알아내서 그것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빌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가위바위보와 원리가 비슷하다. 그 다음은 운영과 컨트롤이다.
“소용있다.”
“소용 있다고?”
“그래. 나는 소용 있더라. 안 그라믄 내가 그걸 뭐할라꼬 재서 외우고 다니겠노.”
“글쎄, 솔직히 나도 그게 제일 궁금 하던데.”
“킥킥. 그런거는 말 못하제.”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형, 뭐야 지금. 헛걸음 했다는 거예요? 형 땜에 난 이 자식이랑 아무 말도 못했어요.”
“어 그럼 이제 니가 얘기해.”
“예?”
강민은 너무도 순하게 태민과 자리를 바꾸어 주었다. 물어볼 건 다 물어보고 포기할 건 다 포기 했으므로 더 이상 용무가 없다는 것이었다. 막상 정인우의 옆자리에 앉긴 앉았지만 앉고보니 할말이 없어진 태민이었다.
“이 자식...너..그때..”
“이 자식 뭐? 니는 그말 밖에 못하나? 그라고 내가 니 삼촌뻘은 되겠구만 와 자꾸 반말이고.”
“....좋다. 솔직히 그때 니 컨트롤에 놀랐다. 첫 질럿이 꼭 용욱이 형 같더라구.”
“니 솔직히 말해봐라. 그날 게임 건성으로 했제?”
“뭐?”
“니 부대지정도 안하고 저글링 막 때리 붓고 그라데? 니 단축키 쓰긴 썼나? 니 솔직히 초반에 마우스만 가지고 했제?”
그랬다. 그 날 태민은 아마츄어의 도발에 약간 약이 올라 있었던 관계로 스스로 없는 핸디캡을 만들었었다. 그가 말한 그대로 였다.
“니 그래 성의 없이 해가지고 내를 이길라 켔드나?”
“뭐라고? 너 지금 니 실력을 너무 높이 평가 하는 것 같은데 넌 아마츄어야!”
“정신 몬 차리네. 봐라 박군아. 내는 니 참 영리하다고 생각하거든? 니는 영리하고 빈틈 없고 빠른 게 장점인기라. 물샐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니 페이스에 한번 말리면 아무도 못 빠져 나오는 기라. 니는 조용호나 성학승이 처럼 느긋하이 앉아가 니는 깝쳐라 나는 배터지도록 자원 묵으께 하면 안된다. 아나?”
마치 게임 해설위원 같은 정인우의 분석이 계속 되었다. 욕이나 한바가지 퍼 붓고 설욕전을 하려고 칼을 갈았던 태민은 그의 날카로운 분석에 어느새 동요 되고 말았다. 하릴없이 싸이질이나 하고 있던 강민도 이미 귀를 그의 말에 빼앗기고 있었다. 숫제 태민은 인우와 의견을 주고 받으며 플레이의 장단점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다. 인우 역시 아는지 모르는지 객기어린 자세로 던지던 말장난을 하지 않고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이삼십분 셋은 깊은 전술 전략과 플레이에 대해 얘기를 했다.
“잠깐만, 내가 지금 너랑 이런 얘기를 하려고 온 게 아닌데!”
“그라믄 뭔데?”
이윽고 태민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예의 적개심은 많이 수그러 들었고 자신도 모르게 정인우를 조금 좋게 생각하게 되었다.
“난 너랑 설욕전을 하러 온거야. 정확히 말하면 정식으로 한판 붙자는 거지.”
“은다.”
“어? 뭐라고?”
“은다. 피곤하다.”
“은다? 은다가 무슨 말이야?”
“은다고. 안한다고. 싫다고. 한국말도 몬 알아 듣나?”
설욕전 신청에 솔깃했던 강민도 순간 ‘은다’란 말에 당황을 했다. 그것이 거절표현이란 것에 더 당황 했다. 분명 뭐라고 뭐라고 주깨면서 태민을 놀리며 심리전에서 부터 우위를 점할 줄 알았는데. 너무도 쉽게 거절을 해 버린것이다.
“오늘은 피곤해서 안 할란다. 이 상태로 하면 질 것도 같고. 진짜로. 놀리는 거 아이고 진짜로 질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뭐야. 그럼 헛걸음 한거야.”
“대신에 멀리서 온 손님이니까 내가 선물하나 주께.”
“뭐?”
인우는 마우스를 잡더니 스타크래프트를 실행시켰다. 그리고 리플레이를 선택했다. 거기에는 수많은 리플레이들이 저장 되어있었는데 파일명이 하나같이 ‘IMYOHWAN', 'HINGJINHO' 처럼 프로게이머들의 이름을 소리나는 대로 로마자표기를 해 놓은 것이었다.
“잘 봐래이.”
정인우는 ‘PARKTAEMIN' 이란 파일을 열었다.
“어? 뭐야? 내거야?”
곧 리플레이가 펼쳐 졌다. 비프로스트3에서 벌어지는 경기였다. 박태민은 자세히 보았다. 얼마 안 있어 상대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불과 몇일 전에 있었던 최연성과의 경기 였다.
“이걸 왜 보여 주는데?”
“나는 이걸 하루에 골백번도 더 본다.”
“왜?”
“이길라고. 거의 전경기를 골백번도 더 돌려 본다. 내가 니를 우째 궁지로 몰아 넣었는줄 아나? 니 경기도 몇백번 봤을 끼다. 이거 뿐만이 아니고 전부다. 그래서 다 외운다. 타이밍도 외우고 니 전략 빌드 하다못해 첫 드론 4마리를 어는 미네랄에 같다 붙이는 것 까지도 다 외운다. 다 외우면 머릿속에 니가 생긴다. 그러면 이길 수 있다.”
그러면서 인우는 리플레이를 잠시 멈췄다.
“바둑 기보 외우듯이 외우는 거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 순서대로 외우면 저절로 잘해진다. 손은 그 다음이더라.”
자뭇 진지한 그의 모습에 강민과 태민도 진지해 질 수 밖에 없었다.
“너거도 봐서 알겠지만 나도 꿈은 프로가 되는 거다. 하루종일 모니터 들여다 보면서 외우고 또 연습한다. 내 사실 너거팀 윽수로 좋아한다. 그래서 기필코 이겨 볼 거라고 용을 쓰고 몇일 밤을 새면서 준비를 한거다. 솔직히 너거 감독남 한테 윽수로 미안하다. 마빡에 피도 안마른 놈이 면상에서 깝쳤으니 한대 맞아도 할말 없지.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다 내 포석이었다. 약을 올리고 열이 뻗으면 판단이 흐려지니까. 솔직히 이겨서 기분 좋다. 잡수를 쓰긴 썼지만 어쨌든 프로를 이겼으니까.”
그랬다. 정인우는 늦은 밤 그를 찾아온 두 선수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가 동경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을 그 둘은 가지고 있었다. 비록 낮의 경기들은 불쾌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보니 그럴 법도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노력이 보였다. 분명 그는 수많은 시간을 연습하고 연구 했다. 강민도 스스로 연구파라고 생각 했지만 이 정도로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미안하다. 너거 감독님한테도 죄송스럽다.”
뜻밖의 사죄까지. 둘의 마음은 이상한 감정에 사로 잡혔다. 외나무 다리에서 원수를 만났는데 그 원수가 스님이 되어 머리를 조아리는 격이었다.
결국 둘은 착잡한 마음으로 피씨방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응징하려던 상대가 먼저 사과를 한데다가 시간 역시 너무 늦었기 때문이었다.
“형, 기분이 좀 이상하네. 그지?”
“그래. 나도 욕이나 한방 먹일라 그랬는데 말이야.”
“형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그만큼 열 받았단 말이다.”
“진짜요?”
“그래. 그러니까 택시비는 니가 내.”
한바탕 웃음으로 모른 체 하기엔 그래도 석연찮았지만 둘은 택시를 잡아탔다. 올 때 보단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한결 나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예? 어어...형 숙소있는데가 동네 이름이 뭐지요?”
“어? 어? 몰라. 모르겠는데?”
“나도 모르는데?”
“손님, 어디로 가세요?”
결국 박태민, 또 상체를 운전석까지 빼서는 동네 설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인우는 멈췄던 리플레이를 다시 플레이 시켰다. 얼마 전 있었던 최연성과 박태민의 경기가 계속해서 재현되고 있었다. 초반 정신없이 몰아치던 박태민은 승기를 잡는 듯 했으나 불의의 마인에 의해 회심의 러커 2기가 횡사하면서 급격히 기울게 된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리플레이에서의 러커는 죽지 않았다. 뒷마당에 진입하기 전 한기의 저글링이 먼저 뛰어들어 마인을 몸으로 받아내며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러커두기는 안전하게 상대의 미네랄 필드를 공략 했고 이어 도착한 또 두기의 러커와 여남은 저글링으로 컴셋을 파괴하므로써 승기를 굳힌다. 결국 테란의 패배로 끝나는 이 기묘한 리플레이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행님, 아까 온 거 강민 맞지요.”
“어 그래 맞다.”
“봐라 짜식아. 내가 맞다 안카드나. 아이씨...싸인받아 둘 걸.”
“그래 받아 놓지 그랬노.”
“아니 나는 맞는 것 같던데 일마가 자꾸 아니라 캐서....근데 행님 이거는 말라꼬 또 보고 있습니까?”
“와 보면 안되나.”
“행님이 만들어 놓은 리플레이를 행님이 자꾸 보고 앉았으면 뭐합니까? 차라리 배틀넷을 한판 더 뛰지.”
“내 볼라고 틀어놓은게 아니고 누구 보여줄라고 틀어 놓은기라.”
“누구예? 우리도 그거는 열번 쯤 봤겠다.”
“킥킥. 있다. 니는 몰라도 된다.”
“행님은 참 대단 한거 같아요. 어떻게 경기를 한두번 보고 똑같이 재현할 수 있습니까?”
“부러우면 니도 연습해라.”
“내 생각에는 연습해가 되는기 아이다. 타고 나야 된다. 행님 진짜 대단해요. 행님은 천재예요.”
“그걸 인쟈 알았드나. 킥킥.”
“형, 근데 아까 리플레이 있잖아요.”
“응. 그게 왜?”
“아니 보통 리플레이 저장할 때는 누구 대 누구 이런식으로 해놔야지 안 헷갈리잖아요. 한사람 이름만 적어놓으면 헷갈리잖아요.”
“자기 나름대로 구분법이 있겠지.”
“그런가.. 나는 이해가 안되네.”
“그것보다도......”
“예?”
“그것보다도...... 우리 나올 때 정인우가 한말이 자꾸 기억에 남는데.”
“무슨말이요?”
“우리보고 그랬잖아. 자기 가슴 만지면서 ‘이 안에 시계있다’고.”
“그랬나?”
“그랬다.”
“잘 모르겠는데.”
“모르겠으면 택시비나 내라.”
택시는 어느 새 숙소 앞에 도착했다.
“부산 택시 아저씨들은 길을 잘 아시는 거 같아요.”
"조심하세요. 부산이 워낙 길이 복잡해서 외지 사람들 길잊어 먹기 딱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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