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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9/15 17:41:18 |
Name |
시퐁 |
Subject |
[난데없는 음악 이야기]반항을 꿈꾸며. |
고질적인 글쓰기와 코멘트 문제가 그 어느때보다도 격렬하군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글을 쓰는 분에게 요구되는 것은 책임감이지만 글을 읽는 분에게 요구되는 것은 관용입니다.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는 건 정말 중요하죠. 도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글의 분위기에 맞추어 적당히 즐거워하고 여유를 가지세요. 자유게시판의 취지는 일상의 긴장을 벗어나 '쉬어가게' 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용과 상관 없는 이야기는 이쯤하고 격렬했던 또 하나의 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록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감성지수가 비명을 지르던 열여덟살의 어느날입니다. 모두들 나름대로의 계기가 있겠지만 저는 어떤 노래가 처음부터 저를 자극했다기 보다 한 권의 책으로 인해 록음악을 의도적으로 듣기 시작했고 어느새 듣지 않으면 죽고 못사는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저자가 누군지 확실히 기억은 안나는데요, 아마 하세민이란 분이 쓰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제목만큼은 절대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록-그 반항의 역사', 저의 음악관을 통째로 바꾸어준 이름입니다.
그 이전까지 록이란 존재에 대해 저는 꽤나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 직접 체험하지 못하면 알쏭달쏭한 추측만이 난무하게 되는 거죠. 캔디류의 건전한 만화를 보는 이가 하드코어성 야오이 만화를 보게 된 것 같은 재밌는 편견이었죠. (정말 데스메탈 공연에선 거의 다 돼지 목을 잘라 관객들한테 피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_-). 그 당시의 저에겐 ABBA나 ACE OF BASE가 대세였습니다.
편집부에 있던 저는 다양한 학생 대중 문화의 코드를 이해한다는 기획으로 취미생활에 관한 몇편의 원고를 모으게 됩니다. 그 중 평소에 친하던 친구가 록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도 의뢰를 했죠. 당시의 지역 현실에 비추어볼때 약간 특이한 취미였거든요. 그리고 친구에게 자료를 골라주면서 그 책을 발견한 겁니다.
단지 시간때우기로 읽기 시작한 것에 불과했지만 저는 너무 굉장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당시의 사회환경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나팔바지와 경망스러운 몸놀림의 엘비스 프레슬리, 그리고 비틀즈, 영국 왕비에게 욕설을 쏟아부었던 섹스 피스톨즈..
그리고 그 역사를 이렇게 결론 짓습니다. '록의 역사는 기성 세대의 관습과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반항의 역사이다'
음악이라는 것은 단지 듣기에 즐거운 것이다, 관념이나 가치관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다..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이 책이 가져다 준 충격은 그야말로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어떤 관념을 가지고 사회적 분위기에 맞추어 음악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했을 것이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었을 것입니다. 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은 '저항'의 역사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겁니다. 자유을 위한 끊임없는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었던 거죠.
그렇게 록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고, 벌써 8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알게 된 너바나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네요. 장르를 알아갈수록,밴드를 알아갈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고 그 음악들과 함께 마음을 흔들어댑니다. 그 놀라운 저항에 울고 격렬한 사운드에 부들부들 떨어대는 경험을 수시로 했죠. 모던, 브릿, 코어, 펑크, 익스트림..그 어떤 장르에서조차 그 떨림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커트코베인의 죽음과 더불어 종결된 얼터너티브를 끝으로 저는 더 이상의 저항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모코어니, 네오펑크니 하는 장르들이 마구 들려왔지만 대세가 될 수는 없었죠. 물론 여전히 사운드는 격렬했고 감미로웠지만 더 이상의 저항이다, 반항이다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노래만 좋으면 되는 거잖아요. 가치관과는 별도로 듣기 좋으면 인정하고 공감하는 편이었고 어떤 가수가 '저항정신이 왜 필요합니까'라고 말했을때도 비난할 수 없었던 거죠.
그러다 30대 중반의 누군가에게 이런 소리를 들었습니다. 자신도 물론 대학때는 밴드 활동도 해봤고 누구보다도 메탈을 사랑했지만 결혼을 하게 되고 직장을 가지게 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그 느낌이 자꾸 사라진다는 겁니다. 격렬했던 그 감정들이 사그라들어 간다는 거죠.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 또한 나이가 스무살을 넘긴 지 오래다. 또한 직장을 가질 테고 나이를 먹을테지, 세상에 더욱 맞추어가며 살아가게 되는 거다. 양심을 걸고 투쟁판에서도 있어봤고 항상 칼 끝에 있는 듯 긴장하며 살았는데, 내 마음 속 가득한 록은 저항정신으로 가득한 록인데 내가 그 저항을 잊게 되고 요즘의 음악에서도 저항을 찾기 어려우니 나의 안으로도, 바깥으로도 자꾸 그 저항정신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록을 들을 수 있을까..나는 나의 이 격렬했던 순간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늙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러다 그 책의 첫부분을 인용해놓은 저의 일기장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0년을 들어도 나는 록음악에 대해 잘 안다고 하지 못한다.'
사실 록음악에 대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반항의 역사란 말도 누군가의 생각일뿐이고 그 내용도 흐름을 이야기한 것에 불과하거든요. 게다가 저는 중요한 부분을 잊고 있었던 겁니다. 제가 생각한 저항이라는 단어도, 자유라는 단어도 하나의 가치관일 뿐이라는 것을요. 록음악이 저에게 반항의 역사라면 그 반항마저도 단지 '벗어나야 할' 대상에 불과한 것이었던 겁니다. 아직 8년밖에 안 들은 음악을 뭐라고 정의 내린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구요.
저는 음악을 좋아합니다. 변변히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노래 실력도 형편없죠. 하지만 너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젠 그것이 저항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지요. 엘비스 시대의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고 비틀즈 시대의 사람들도 그랬겠죠. 저는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 오히려 '지금'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평가내릴 수 없더라도 훗날 저의 떨림이 '반항'과 '자유'의 역사의 범주에 들어가길 단지 소망할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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