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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9/08 10:06:28 |
Name |
Artemis |
Subject |
[잡담]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 없지
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거지
그런거지 음음음 어허허~
산다는 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게 덤이잖소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이 노래가 생각이 나는군요. 이 노래가 <엄마의 바다>에서 배경음악으로 쓰여져 히트를 쳤던 곡인가요? <엄마의 바다>를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기억이 맞다면 아마 엄마인 김혜자 님의 테마 비슷하게 쓰였던 것 같군요. 어쨌거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 당시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이 노래가 가진 의미가 '옳다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사실 제가 자주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전 지금까지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것과 같은 이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력서를 수정할 때면 재미가 있더군요. 자기 소개서 쓸 때, 나를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무래도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거든요. 하지만 이력서는 좋은 점이 더 부각되게 써야 하므로 아무래도 주관적 개입이 끼여들게 마련이죠. 어쩌면 전 죽을 때까지 저란 사람이 누군지 모를 것 같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저의 정보 말고, 진정한 내 자신에 대한 근원적 존재에 대해서요. 하지만 중요한 건 제가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고, 이전의 모습도 제 자신이고, 앞으로 살면서 어떻게 변화될는지 모르지만 그것조차 저 자신이란 거겠죠. 퇴적물이 한 층 한 층 모여 지층을 이루듯이 어쩌면 나 자신도 그렇게 이루어져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전 늘 현재 진행형이라는 겁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저는 저니까요.
요즘 PgR을 보고 있으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는 사람의 형태를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넌 이래'라고 규정하는 사람들로부터 과연 내가 그런 건지 아닌 건지, 예전 모습은 어땠는지, 또 지금의 모습은 어떤지 기억하고 상기하고 점검하고...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입하기 전에도 종종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 확실한 건 제가 가입한 그 이후부터 이러한 PgR 자체에 대한 담론(?)이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반성의 기회, 점검의 기회, 돌아봄의 기회를 갖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일 테지만, 이미 수많은 인격체를 소유한 이곳을 뭐라고 딱히 규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PgR은 PgR일 뿐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그 과정에서 PgR을 만들어 가는 사람은 바로 현재의 이곳 사람들일 것입니다. 과거의 누군가가 이곳을 이루어 왔듯이 현재에는 지금 이곳을 아끼고 머무는 사람이 해줄 몫이고 앞으로는 또 누군가가 그렇게 해주겠죠. 세상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일을 겪고 한 단계씩 성숙하는 사람처럼 PgR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이곳이 과연 '사람이 모인 곳'이라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줍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생기는 모든 일들이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고 느끼게 되죠. 비도 오고, 눈도 오고, 폭풍우도 치고, 구름도 끼고, 햇빛도 나고, 쾌청한 바람도 부는 세상처럼, 그 세상에서 활발하게 부대끼고 사는 사람처럼...
사실 저는 PgR에서는 가식적인 사람입니다. 되도록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고, 극도의 논쟁은 피하고 싶고, 골치 아픈 일은 만들기 싫고, 가능한 한 제가 그어 놓은 선을 지키려 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생각, 저의 말투, 저의 표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저의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도 상관은 없을 겁니다. 그 사람들은 저를 알기에 제가 다소 딱딱한 말투로 글을 남겼다 하더라도 다소 흥분한 어조로 글을 남겼다 하더라도 누군가를 질책하는 글을 남겼다 하더라도 저를 알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 어떤 사안에 의견이 다르면 격렬하게 논쟁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 어떤 일을 진행함에 있어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되면 서슴없이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과 사이가 나빠지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그 시간이 지나면 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상(?)이 돌아오니까요. 그건 싸움과는 분명 다른 것이죠. 하지만 이런 면 때문에 간혹 처음 보는 사람이거나 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섭다, 혹은 차갑다란 이야기를 종종 듣는 편이기도 합니다. 예전엔 그런 시선이 참 싫고 그랬는데, 이젠 그러려니 해요. 사람의 만남이란 시간이 쌓여가면서 덧붙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저를 아는 사람들은 말은 냉정하게 센 척해도 실상은 제가 그렇지 않음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PgR에서의 공간은 아직 그 단계까지 올라서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얼굴을 마주할 기회가 전무하니까요. 하지만 전 이 공간이 가지는 분위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이곳에 알맞은 분위기로 저를 맞춥니다. 예전 누군가 말씀하셨던 정장과 캐쥬얼의 차이겠죠. 그렇다고 틀을 지우는 것은 아닙니다. 장소와 때에 따라 저의 모습이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것처럼, 이곳에서의 모습도 그러한 저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일 테니까요. 그래서 그 모습은 그 모습대로 아끼고 있습니다.
최근에 본의 아니게 이곳의 한 사람을 마음 아프게 한 것 같아서 아직도 마음이 무겁습니다. 본인이야 갑작스런 결정은 아니라고 하셨어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입장에서는 그다지 썩 유쾌한 느낌은 아니었으니까요. 왠지 모르게 절벽에 있는 사람 떠다 민 것 같은 느낌에 마음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그곳에서 보여지는 여러 글들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건 그 때문입니다. 네, 조금은 원망스런 마음도 들긴 했죠. 전 '공부하란 의미'가 아닌 일종의 '뜻 전달'이었을 뿐이었으니까요.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난감했던 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쉽사리 미안함의 뜻을 표현할 수 없는 건 아마도 이러한 제 감정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미안하단 뜻은... 전해야 될 것 같네요.
제게도 몇 년간 소중하게 가꾸어 온 꽃밭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물주고, 거름주고, 돌괴어 주고 한 그 꽃밭이 망가지는 경우를 종종 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 그 꽃밭을 가꾸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 꽃밭을 같이 가꾸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쉽사리 저버릴 수 없는 노릇이고, 간혹 누군가 그 꽃밭 가꾸기에 동참해 준다면 그것도 더할 나위 없이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고요. 종종 이곳을 아끼고 가꾸어나가고 그 와중에 상처받는 분들을 보면서 그런 저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애정이 깊으면 그만큼 상처받는 일도 많아지죠.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 또한 바로 그 애정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애정의 형태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그 애정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마음은 다 같지 않을까요?
비 오던 날씨가 개고 맑게 개었습니다. 하늘이 정말 청명하고 공기도 쾌청하네요. 창밖의 사물이 한층 더 뚜렷한 느낌입니다. 비 오는 날도 좋아하지만, 비 개인 다음 날도 좋은 것이 바로 이러한 맑은 대기 때문입니다. 우리네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도 이와 비슷한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저도 이만 저의 젖은 마음 오늘같이 맑은 햇빛과 쾌청한 바람에 널어 말릴까 합니다. 다시 비가 오면 그 뽀송뽀송한 기운이 사라지겠지만, 또 맑은 날이 찾아올 테니까 그때 또 말리면 되겠죠.^^
-Artemis
p.s.
어제 글 올리려 오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회사 일 관계로 마무리를 못하고 이제서야 마무리를 하네요.
회사 일 관계로 나이 드신 분들이랑 오후부터 막걸리를 좀 마셨더니 초저녁부터 뻗어버려서 결국 오늘 아침에야 눈을 떴거든요.^^;;
그래서 다소 어중간한 글이 되어버렸는데...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네요.ㅜ.ㅜ
아, 참!
노래는 <사랑이 뭐길래>에서 나왔더군요.
쓰고 나서 다시 기억이 나길래 확인해 보니 <사랑이 뭐길래>의 삽입곡이 맞네요.
갑자기 대발이 어머니의 쓸쓸함이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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