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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8/31 09:37:49 |
Name |
마샤™ |
File #1 |
울지마세요.jpg (0 Byte), Download : 41 |
Subject |
[펌] 내 징크스와 우리 아줌마들.... 그리고 제 생각 |
그랬다.. 아마도 그때부터 였을게다.
나만의 어이없는 스포츠 징크스가 생겨버린것은..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27년전..
일곱살박이 코흘리개 소년은 어린나이 답지않게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중요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가슴을 졸이며 손에 땀을 쥐고는 경기를 기다리곤 했었다.
아니, 그 어린 나이에 스포츠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고 대한민국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았다고 목이 터져라 선수를 응원하며 거기다 애국가가 울리기라도 할라치면 혼자 코끝이 찡해져서 애국심에 불타오른단 말인가?
여하튼 아마도 기억의 시작은 염동균이 푸에르토리코까지 날아가서 윌프레도 고메즈라는 KO머신에게 무릎꿇은 경기를 지켜보면서 부터일것이다.
혼자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것은...
아마도 그날은 일요일, 그것도 오전이었을게다. 우리의 호프 홍수환이 카라카스에 날아가서 '지옥에서온 악마' 헥토르 카라스키야와 맞짱을 뜬 날은..
분명 그 전날부터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경기순간만을 기다렸을 일곱살박이 꼬마는 막상 경기시간이 다가오자 슬그머니 놀이터로 향한다.
TV를 보며 응원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던 게다.
초조하게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혼자서 모래를 갖고노는 어린아이란...
짐작에 경기가 끝났으리라 생각되는 시간에 들어간 집은 한마디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무려 4번씩이나 바닥에 나뒹굴었던 홍수환이 불사신처럼 일어나서 까불대던 검둥이 녀석을 때려 눕혔던 것이다.
원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와 이모부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권투라하면 야만적이라며 일체의 관심도 보이지 않던 엄마와 이모들까지 얼굴이 벌개져서흥분하고 있었다.
덩달아 일곱살짜리 어린아이는 경기도 못본 주제에 들떠서 방방거리고 있었고..
그랬다. 그때부터였던거다.
아주 중요한 스포츠 경기는 직접 관람하지 못하게 된것은...
김태식이 루이스 이바라를 뭉개버리던 경기도, 강만수가 다나까를 압도하던 모스크바 올림픽 배구 예선도, 신연호가 미친듯 달리던 세계청소년 축구대회도 나는 재방송을 봐야만 했다.
마치 그럼으로 내가 한국선수의 승리에 일조하기라도 하는것처럼...
무심코 시청하던 김태식의 LA원정경기에서 어줍잖은 마테블라에게 어이없이 패하는 KO제조기의 모습을 본후로 그건 거의 확고한 징크스가 되버렸다.
그후로도 오랬동안 나는 간절히 응원하던 프로야구 삼미 슈퍼스타스나 청보 핀토스의 경기는 직접 보지 못했으며(그팀들은 징크스에 상관없이 거의 무조건 지는 팀이였다만..)
각종 국제대회의 한국팀의 중요한 경기는 차마 볼수 없었다.
LA올림픽 축구 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는 지금도 잊을수 없다.
이기면 몇십년만의 본선진출이 확정되는 그 중요도를 생각해볼때 나는 그경기를 보아서는 당연히 안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경기시간은 오후 11시가 넘는 늦은 시간이었고 고작 중학교 2학년 짜리가 동네를 헤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던 것이 아마도 불행의 시초였을 거다.
컴컴한 놀이터에 혼자 앉아 청승을 떠는 동생이 안됐던지 누나가 뛰어나왔다.
"얘, 3-0으로 이기구 있어. 어여 들어와. 들어와두 괜찮을것 같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그 악마의 유혹을 한국축구의 위대한 업적을 생각하며 분연히 떨쳤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네에 앉아 버티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어버렸고 게다가 어슬렁 거리던 동네 양아치 형들의 것으로 보이는 빨간 담뱃불이 너무 무서웠다.
못이기는척 집으로 들어와 TV앞에 앉은 나는 기어코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게 5-4로 대역전패를 당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장성한 청년은 그때만큼 한국팀의 승리를 간절히 기원하지는 않게된다.
여전히 스포츠에는 관심이 많고 우리편의 승리를 원하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우리편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고생을 감수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경기의 승패와 나의 바램은 사실 별 상관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뒤늦게 떠올린 탓일까?
아니면 커갈수록 알아가는 각종 어른들의 비리와 대한민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통찰 탓으로 애국심이 무뎌져서였을까?
이유야 어쨌든 난 더이상 한국팀의 승리을 위해서 경기를 관람하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희생을 하지 않게 됐고, 세상없이 중요하다던 스포츠 경기도 결국은 스포츠일뿐, 나의 일상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것을 깨닫게 됐던거다.
그렇게 청년은 나이를 먹어갔고 결혼을 했으며 몇번의 올림픽과 월드컵을 시청했고 심지어는 우리땅에서 열린 월드컵도 전혀 거리낌없이 직접 지켜볼수 있었다.
비록 느닷없이 질러대는 승리의 함성에 집사람과 아이의 질타를 받긴 했지만...
그리고 맞은 아테네 올림픽.
언제부터인가 올림픽은 그저 밤잠을 설치게 하는, 그래서 회사에서 내내 졸리게하는, 하지만 재미는 있는 그정도의 스포츠게임에 지나지 않았다.
머 억울하기는 하지만 심판의 장난으로 메달을 놓치고, 메달의 색이 변하는 황당한 경우를 당해도 예전처럼 눈물을 흘리며 억울해하지는 않았다.
세상사가 다 그렇고, 힘있는 것들이 언제나 많이 가져간다는.. 그런 엿같은 경우를 이미 나는 많이 경험한 후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마지막날.. 나는 간만에 경기와 내가 합일 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예전처럼 경기를 보지 않고 밖에서 서성대야만 할 것같은 강한 의무감을 느낀것이다.
그것은 바로 여자 핸드볼 경기 탓이었다.
뭐 여자 핸드볼이야 예전부터 금메달, 은메달을 심심치않게 따주던 종목인데 뭘 그리 세삼스레 야단이었냐구?
핸드볼 예선전을 보다 난 보고야 말았던 거다.
내 또래의 임오경과 오성옥 그리고 오영란을..
아니, 도대체 언제적 임오경이고 언제적 오성옥이란 말이냐? 게다가 날라다니는 골리가 오영란?
내가 기억하는 여자 핸드볼의 전설적 이름들인, 윤병순, 성경화, 김현미, 김경순, 송지연.. 그리고 그 끝에 올려졌던 바로 그 이름들이 아니더냐..
저 나이에 현역으로 뛰는 것도 가당찮은데 경기중에 보여주는 그 스킬들이라니.. 도대체 저게 서른넘은 아줌마들이 할수있는 운동량이냐?
손에 땀을 쥐고 한골 한골 집중하며 보던 나는 후반 막판 점수가 두점차로 벌어지며 뒤지게 되는 순간 더이상 경기를 지켜보지 못한다.
담배를 찾아들고 옥상으로 올라간 나는 혼자 생각한다.
'그래, 이 지긋지긋한 아줌마들아.. 그걸로 된거야.. 그만하면 된거야.. 그럼 충분하고 말고. 대체 누가 알아준다고 그렇게 땀을 흘려가며 플로어에 머리를 짓찧냐 말이다. 이젠 쉴때도 된거야.. 충분해..'
왠지 모를 서글픔에 담배를 연거퍼 두대를 피우고 난 이후에야 나는 다시 집에 돌아올수 있었다.
이제쯤이면 경기가 끝났으려니 생각하던 나는 끝끝내, 기어이, 억척스레, 결국은 동점을 만들고 게다가 공격권을 거머쥔 한국의 징한 아줌마들을 볼수있었다.
심장은 쿵쾅거리고, 어쩌면... 어쩌면... 저이들도 황선홍이나 홍명보처럼 눈물대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을 장식할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할 즈음..
종료 몇초를 남기고 기가 막힌 작전에 의해 마지막 프리드로를 쏘아댄 문필희의 슛이 상대 골키퍼에 막히고 연장으로 접어드는 순간..
그랬다. 나는 거기서 더 이상의 경기관람을 포기하고 담배 한갑과 함께 다시금 옥상을 찾아가야 했다.
그랬어야 옳았다.
만일 그랬다면 아마도 나는 더이상 그이들을 통한의 눈물과 함께 떠나보내지 않았어도 됐을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명히 그랬어야 맞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조그만 욕심이 나를 TV수상기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했다.
커다란 덩치의 외국것들에 떠밀려 바닥에 나뒹굴던, 거칠게 잡아채는 손길에 일그러지던, 상대의 무시무시한 공을 눈하나 깜짝않고 얼굴로 막아내던 오경이와 성옥이, 그리고 영란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금메달!!'을 외치는 갈라진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쏟아지고, 달려드는 후배들을 안아주며 피어오를 그이들의 한조각 웃음을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이들이 아무 아쉬움 없이, 한 점의 여한없이 한남자의 아내로, 또 아이들의 엄마로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싶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정말로 그러기를 원했다면 내가 더이상 그 경기를 보지 않았어야 옳았다.
기회는 많았다. 1차 연장중에서도, 또 2차 연장중에서도, 하다못해 승부던지기 직전에라도 나는 일어서서 집을 벗어나야 했다.
그것이 오래전부터 가지고있던 나의 징크스인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땅바닥에 나뒹굴던 그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보고싶었다. 정말 간절히... 단지 그 뿐이었다.
결국 우리의 징한 아줌마들은 굵은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장하다.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 어쩌구.... 척박한 환경을 딛고 노력한... 어쩌구....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
분명히 삼사일은 각종 언론에서 저렇게 떠들게 틀림없다.
또한 삼사개월 이후에는 또 언제 그랬냐는듯이 우리는 백수인 前 대표팀감독이 힘없이 기대어 지켜보는 가운데 통털어 10명 안쪽의 관객이 자리하는 곳에서 코트를 나뒹구는 대표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봐야할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삼십대를 훌쩍 넘어섰던 우리의 아줌마들이 어떻게 코트를 뛰어다녔으며 어떻게 적진을 헤집었고 또 어떻게 자신들의 마지막 불꽃을 장열히 불살랐는지도 기억하지 못할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틀림없이 그러하리라..
그 모든것을 짐작하기에 나는 그이들에게 미안하다.
그이들이 승리하기위하여 관람을 포기하는 조그마한 성의도 보여주지 못한 나자신 때문에 그이들에게 미안하다.
그저 떠나는 그이들의 등뒤로 진심 어린 박수와 조그마한 성원을 보낼뿐...
"아줌마들! 진짜 멋졌다우... 정말이라니깐... 이젠 편히 쉬어도돼... 정말이야..."
[펌] Hooc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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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생각]
핸드볼 보다가 눈물 났습니다 ㅠ_ㅠ
한국 여자 핸드볼팀이 29일(한국시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 못지않은 값진 은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했지만
코칭스태프나 선수들의 얼굴 한켠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12년만의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는 설움에서 온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려왔다가 대회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철저히 외면해 버리고 마 는 국민의 차가운 눈초리가 두려워서 였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핸드볼 결승전의 패인은 기술과 체력이 뒤 져서가 아니라 덴마크 국민의 열렬한 응원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올림픽만 끝나면 핸드볼을 잊어버리는 무관심을 지금 까지 되풀이 해 왔기 때문입니다. 맨 땅에 헤딩하는 꼴 이라는 말이 맞는 이유가, 덴마크는 클럽팀만 수백개이지만 우리의 경우 서울의 초등학교 핸드볼팀이 남녀를 통털어 하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국민이 박수를 치지만 금 새 핸드볼을 잊어버릴거 아니겟습니까..
동점 18차례, 역전 8차례. 2차 연장까지 가는 2시간의 사투 내내 저는 가슴을 졸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임오경(33)·오성옥(32) 등 주전 대부분인 노장인 누혼을 발휘했습니다.
전·후반 25―25, 1차 연장에서도 29―29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한 한국은 2차 연장 종료 26초 전 김차연(3골)의 슛으로 승리를 눈앞에 뒀지만 종료 8초 전 프루엘룬트에게 동점골을 허용, 또다시 금메달 일보 직전에서 좌절했습니다.
결승전 중계는 방송 3사에서 해주면서 은메달 수여식은 달랑 한 방송국 밖에 하지 않는 우리의 냄비 언론 현실, 국민의 무관심, 팀의 에이스들이 사실상 실직 상태인 열악한 현실들 속에서....
겨우 4년에 한번 핸드볼 보는 저 역시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잘했습니다. 당신들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울지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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