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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8/27 22:04:59 |
Name |
아케미 |
Subject |
[잡담] 작은 바람 |
어제 오후 6시, 피아노 학원에서 열심히 건반을 두들기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습니다. 놀이터를 지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데, 아무리 많이 잡아도 초등학교 2학년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두 남자아이가 재잘거리며 걸어오더군요.
별 생각 없이 지나치려 했지만 그애들의 이야기 중 한 단어가 제 귀에 쏙 들어왔습니다. '배틀넷'. 호기심이 동해 걸음을 늦추면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둘 중 하나가 나머지 하나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배틀넷 깔면 너랑 나랑 할 수 있어. 우리 집도 브루드 워인데…"
예상대로 스타크래프트였습니다. 아마 둘이서 한 번 붙어 보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인가 했더니, 강의를 듣던 아이가 새로운 질문을 합니다.
"근데 너 배틀크루저 뽑을 줄 알아?"
"어."
"어떻게 해? 가르쳐 주라."
"음 먼저 스타워즈 있지. 그거 지은 다음에, 왜 옆에 달린 거 있잖아. 그거 달고 나서…"
아니, 웬 스타워즈? 순간 풋 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애들이 말하는 '스타워즈'가 스타포트인지 사이언스 퍼실리티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속으로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 안달이 났답니다.
"그러니까 우선 스타포트 짓고 애드 온한 다음에, 사이언스 퍼실리티를 짓고 피직스 랩을 달으란 말이야."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애들은 못 알아듣고 어디서 이상한 누나가 나타났나 빤히 쳐다보겠지만 말이지요. 하하하.
잘 모르면서도 열을 내며 즐거워하는 두 아이가 5년 전의 저와 많이 닮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쿡쿡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왜인지 모르게 뿌듯했습니다.
요즘 종종 10년 뒤의 스타리그를 상상하곤 합니다. 그때는 스타크래프트 2가 나왔을지도 모르고, 지금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감독으로 벤치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고, 아니 어쩌면 이미 추억 속으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영원한 건 없다고 하니 언젠가는 사라지겠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가끔 튀어나오는 불상사들이 그 예상 날짜를 앞당기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PC방에서 친구와 게임 한 판 한 뒤, "나도 ○○○처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제 2의 임요환 홍진호를 꿈꾸는 아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10년 뒤에도 스타리그가 계속된다면 주역은 이들이 되겠지요. 그때의 스타리그라면 이미 생긴 지 15년 남짓,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을 것이고요. 그러나 과도기인 지금, 그 기반을 갖추지 못한다면 이들의 자리는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문제들이 그저 성장통이기를, 지금 겪어 더욱 성숙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타종목과의 공존, 정확하고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운영, 프로 의식 정착… 숙제는 참 많군요. 지금 저의 글솜씨와 생각으로는 어떤 해답도 쓸 수 없습니다. 그저, 나중에 제가 어른이 되어도 게임 경기장으로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작은, 아니 큰 바람입니다.
두서 없는 글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웃을 수 있는 하루하루 만드세요.
덧1/우선 워3부터 배워야 할 텐데… 게임치인 저로서는 복잡해 보이기만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T_T
덧2/내일 팀리그 결승전, 슈마GO 필승!!을 외칩니다. 오늘 경기는 그냥 액땜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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