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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8/19 20:27:22 |
Name |
edelweis_s |
Subject |
[픽션] 빙화(氷花) 20 完 |
빙화(氷花)
“으아악!”
허공에 붉은 피를 흩뿌리며 내지른 단말마의 비명이 이리도 크게 들리는 이유는 그 속에 섞인 애처로움 때문이리라. 그 비명은 하도 원통하고 억울하여 사방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 비명은 누구하나 신경 쓰는 사람 없이 그저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그 것은 서지훈도 마찬가지였다. 여태껏 벤 사람만 해도 십수 명은 되었으나 그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신경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벤다. 막아서는 놈은 벤다. 덤벼오는 놈은 벤다. 정신없이 도(刀)를 휘두르며 적들을 거꾸러뜨리면서도 눈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다. 이런 잡졸 따위가 그의 고민을 해결해 줄 리가 없다. ‘그’만이 가능하다. 서지훈은 다시 한 번 적의 목을 꿰뚫으면서도 쉬지 않고 눈을 움직였다. 그러던 와중에 서지훈은 하늘색 복장을 갖춘 아군의 무리가 우루루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 중심에는 신출귀몰하게 도(刀)를 놀리는 자가 있었다. 저 자다. 풍무공자(風武公子) 이윤열이다. 가로막는 무리들을 가차 없이 베어가며 그 곳으로 달려갔다.
“핫!”
짧은 기합성을 외치고 그 자에게 짓쳐 들어갔다. 예상대로 정신없이 도를 휘두르던 그 자는 용케도 그 공격을 막아냈다. 그 자는 갑자기 들어온 예리한 공격에 고개를 들었다. 아. 그의 얼굴을 보고 서지훈은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이윤열이 아니었다. 짙은 눈썹에 목까지 내려오는 머리칼을 산발하고 사내다운 다부진 입술을 가진 자였다.
“네 놈은 누구냐.”
“그러는 네 놈은.”
크윽.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같은 질문을 내던지는 자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 것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지오장의 빙화(氷花), 서지훈이다.”
“쾌이태풍장의 염열제(焰熱帝). 변길섭이다.”
꽤나 거친 통성명(通姓名) 절차를 거치고 그들은 검을 맞대었다. 이 난중(亂中)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에 주위가 침묵한다. 일순간 무거운 침묵을 깬 누군가의 기합성을 시발점으로 둘의 칼이 서로 맞부딪혔다. 부딪혀보니 적의 병기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보도(寶刀)다. 단 한 번 격검(擊劍)에도 날이 지르는 비명이 온몸으로 똑똑히 느껴졌다. 순간 부러져버린 빙화가 더욱 아쉽다. 입맛을 다시며 다시 손을 놀리니 허공에서 서로의 도가 연거푸 부딪혔다. 만만찮은 상대다. 상대방의 공격은 모든 수가 하나 같이 강력했다. 이윤열의 그 것과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 도법이었다. 속으로 혀를 차며 서지훈은 정신없이 손을 놀렸다. 캉. 주위는 비명소리에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 함성 등이 허공을 떠돌며 아우성이지만 어째 귀에는 모든 것이 들리지 않는다. 변길섭은 강했다. 그 것도 무척이나. 그러나.
“역시 해답을 찾을 길은 그 사람을 만나는 것 밖에 없지.”
서지훈이 무심코 중얼거린 말에 대충 반응할 법만 하건만 변길섭은 눈썹하나 꿈틀하지 않고 계속 검을 놀린다. 아직은 깨닫지 못했다. 그 깨달음을 얻을 때까진. 쓰러지지도, 뒤돌아보지도, 죽지도 못하겠다. 난 앞만 보고 달린다.
“하!”
“…….”
서지훈의 예리한 공격에 허리를 베인 변길섭이 잠시 휘청거렸다. 끝장을 보려 도를 내려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 그림자가 불쑥 튀어나온다. 대경하여 몸을 급히 뒤로 빼니 쾌이태풍장의 문양을 새기고 장창을 든 자가 변길섭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서지훈의 입가에 자그마한 미소가 번졌다. 이윤열이었다.
“천장 이윤열이 공의 상대가 될 진 모르겠지만.”
“…….”
“한 번 겨뤄보시겠소?”
“물론이지.”
이윤열은 고개를 돌려 변길섭에게 말했다.
“형님. 대결 중에 미안하지만 제게 양보해 주시겠수? 꼭 풀어야 할 일이 있어서.”
“…….”
원래 저리 말이 없는 건지 자존심에 상처 입어 말을 하지 않는 건지 변길섭은 대답하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윤열은 그런 그를 보고 한 번 멋쩍게 웃었지만 곧 있어 싸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각오는 돼 있겠지.”
어느 새 하대하는 말투. 더불어 그 속에 숨어 있는 날카로움을 알아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답 대신으로 서지훈은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랫동안. 이 싸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 기회가 생긴 지금……. 이제서야.”
“…….”
“난 깨달았다.”
“……?”
“난. 내가 강해지려는 이유는.”
“…….”
“바로 널 이기기 위해서다. 이윤열.”
싸하던 이윤열의 표정이 의문으로 흔들렸다. 그렇지만 이윤열은 곧 환하게 미소 지었다. 자기 앞에서 세상 그 무엇보다도 빛나는 웃음을 짓고 있는 그에게 대답해주기 위해서라도.
******
들고 있던 도를 떨어트리고 그 앞에 무릎 꿇었다. 물론 자의적으로 꿇은 것이 아니다. 더 이상은 움직일 힘도 도를 휘두를 힘도 없었다. 또 한 번… 진 것이다. 한심하게. 하지만 이젠 패배한다는 것이 두렵진 않다. 패배가 분하고 원통하긴 하지만 이대로 여기서 쓰러진다고 해도 두려운 것은 없었다. 난 이 싸움에서 무엇보다도 값진 것을 깨우쳤고, 후회 한 점 없을 정도로 열심히 싸웠다.
“역시.”
“…….”
“대단하구나, 이윤열.”
“…….”
“죽여라.”
이윤열이 도를 번쩍 치켜들었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 서지훈은 눈을 조심히 감았다. 그러나 아직 하지 못한 말이 생각나 눈을 다시 뜨고는 빠르게 쏟아냈다.
“아. 그리고 황천에서 실력을 쌓으며 기다릴테니, 빨리 오라구. 난 아직 포기한 게 아니야.”
“…….”
“난. 너를 이기기 위해서 강해지려 했고. 강해졌으니까.”
“…….”
“…….”
“장부로 태어나 했던 말을 번복한다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긴 하나.”
시익. 이윤열의 도는 서지훈의 목을 치지 않았다. 오히려 새가 둥지를 찾아가듯 편안한 모양으로 칼집에 들어앉았을 뿐. 이번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지훈을 향해 이윤열이 입을 열었다.
“딱 한 번만 번복하도록 하지.”
“…….”
“너와 나의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자.”
“무얼… 어떻게.”
“날 이기려 위해 강해졌다고?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날 꺾어봐라.”
“…….”
“네가 죽을 때까지 날 단 한번도 꺾지 못한다면 내가 이기는 것이고.”
“널 꺾는다면 내가 이긴다는 건가.”
이윤열이 해야 할 말을 서지훈이 가로채어 말했다. 그러나 이윤열은 말을 뺏긴 것에 개의치 않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의 진짜 승부는. 바로 이제부터다.”
“킥. 재미있군. 누가 할 소리.”
여전히 전쟁은 계속 되고 있었다. 언제까지 계속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만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하여 계속 될 것이다. 언제까지 계속 될지도 모른다. 그저 계속 된다. 언제까지나…….
MBC GAME SPRIS배 스타리그 5주차 패자조 2회전 3경기 Parallellines3 - 세중 게임 월드
“이윤열 선수도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입니다. SCV 다 나오지 않았어요.”
“드랍쉽 추가~”
“이건, 이건 아프네요. 이젠 안 돼요.”
“아아, 투나 SG가…….”
[ReD]NaDa : GG
XellOs[yg] : GG
GG란 글자를 보자마자 헤드폰을 벗었더니, 팬들의 함성소리가 들리더라. 그러나 그 함성소리마저도 지우지 못한 서지훈의 감정은 ‘희열’이었다. 서지훈은 전음술(傳音術)을 이용해 이윤열에게 말을 걸었다.
- 드디어 이겼습니다 그려. 우리의 승부는 내가 이긴 거지요?
그러자 이윤열도 역시 전음술로 답변을 보내왔다.
- 헹, 당연히 아니지. 우리가 한 번 죽고 난 후잖아. 승부는 이미 예전에 내가 이긴거라구.
-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다시 살아났지 않습니까?
- 다시 살아났으면 약속도 무효화 되는 거지. 자넨 얼음땡 할 때 술래가 바뀌면 얼음 다 풀리는 것도 모르나?
- 이 어거지를 보시게. 오랜만에 식칼이라도 들고 진짜 한판 붙어볼까요?
- 허! 이 사람 이거 많이 건방져졌구만! 그 오래전 정사대전 때 자네 목숨을 살려준 건 나야. 이거 왜 이래.
- 와아. 이거 옛 날일 꺼내는 거 봐라. 진짜 치사하구만. 어쨌든 모르오. 게임으로는 1승 10패 통합전적 1승 70패요. 앞으론 내가 이기는 일이 많아질 거요. 전 먼저 가겠소.
- 아니, 이 사람이!
서지훈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겨서 먼저 밖으로 나갔다. 그들의 전쟁은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이다. 언제까지 갈진 물론 모르는 일이고.
******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저로써는 더욱 바랄 일이 없습니다.
후기는 나중에 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태껏 빙화를 보아주셨던 여러분들 정말 감사드립니다.
완결 후에
예. 빙화가 20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분량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애초, 빙화는 그냥 심심하고 할일도 없어 그냥 무심코 써본 글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족한 글을 좋게 봐주시고 재미있게 봐주시는 분들이 계시어서
결국엔 큰 책임감과 중압감을 가지고 20화 완결이라는 끝을 맺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즉흥적인 생각으로 써나가 짧게 끝낼 생각이었던 빙화가 20화.
한글 2000으로 약 60장정도 될 때까지 써나갔다는 것이 저로서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사실 빙화는 PGR에서 그리 인기 많은 글은 아닙니다.
조회수는 잘해야 300을 웃돌고 그것을 불쌍하게 여기셨는지;;
그나마 여러분들이 절 격려해주시는 코멘트를 남겨주셔서 여기까지 잘 버텨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끝에 엠비씨 게임에서의 내용은 애초에는 쓰지 않으려던 것이었습니다만
써놓고 보니 분량이 너무 작고 이걸 쓰면 좀더 깔끔하고 재미있어질까 하는 생각에
집어넣어 보았습니다.
제 부족한 실력으로 빙화를 써오는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멘트 남겨주셔서 격려해주셨던 분들 소리없이 읽어주셔서
조회수를 올려주셨던 여러 독자분들, 그리고 빙화라는 글이 있었던 것을 알아주신
여러분들 때문에 그나마 가장 나은 결말을 맺게 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제 밥 먹으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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