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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8/19 13:33:12 |
Name |
edelweis_s |
Subject |
[픽션] 빙화(氷花) 19 |
빙화(氷花)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사파를 떠받들고 있던 큰 문파들 중 태언장이 무사의 절반을 잃고 절세고수들로 칭송 받던 자들도 비음(庇蔭)과의 전투로 사망하거나 큰 상처를 입게 되어 그 세력이 크게 약해진 것이다. 초조해진 사파는 전력을 쏟아 부어서 전면전을 일으켰다. 이에 정파는 비양팔조를 해산해 기존의 특수 임무와는 달리 적들과 맞서 싸우는 유격무사로 편입했다. 그리고 그 것은 비음의 삼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정파와 사파의 흥망을 건 큰 싸움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광활한 평야의 동쪽에는 사파의 무사들이 서쪽에는 정파의 무사들이 대오(大悟)를 이뤄 진격할 태세를 가추고 있었다. 수백, 수천 개의 깃발이 허공에 펄럭인다. 정파 연합의 하늘색 깃발과 사파 연합의 붉은색 깃발은 아군의 무사들에게 기를 북돋아 주려고 하는 것인지 힘차게 펄럭였다. 그 광활한 땅이 비좁아 보일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건만 숨소리 하나 나지 않는 침묵이 흘렀다. 정파의 선두에는 강민과 서지훈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살기가 느껴질 정도의 날카로운 눈으로 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지훈은 계속 적들을 경계하듯이 쳐다보고 있건만 강민은 어느새 고개를 돌려 서지훈에게 말을 건다.
“어째, 새 도(刀)가 손에 잘 익나?”
강민의 물음에 서지훈도 경계를 멈추고 허리춤에 찬 도를 바라보았다. 감히 무인이 자기 실력의 부족함을 병기 탓 하겠냐 하지만, 평생을 함께 할 줄 알았던 병기가 손에서 떠나니 마음이 살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예, 뭐 그런대로.”
서지훈은 약간은 어정쩡하게 들릴 수도 있는 대답을 했다. 대답을 듣고 강민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곧 손가락으로 적군을 가리키며 재차 질문했다.
“그래. 이제 저자들과 싸워야 하는데 떨리지는 않고?”
“싸우기도 전에 겁먹어서야 쓰겠습니까.”
“허허. 나와 대련 할 때 겁을 집어먹고 덜덜 떨던 자네가 생각나는군.”
강민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서지훈도 어렸을 적 생각이 나는지 살풋이 미소 짓는다. 언제부턴가 강민은 서지훈을 아명(훈아)으로 부르지 않고 ‘자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것은 이제야 서지훈을 어른으로 봐준다는 것일까. 강민은 특별한 언급 없이 ‘자네’라는 호칭을 사용했고 서지훈도 호칭이 바뀐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인지 그 것에 대해 특별히 말하는 일은 없었다.
“옛 일은 왜 갑자기 꺼내십니까.”
“자네… 요즘에 고민이 있지.”
“…….”
뜨끔. 강민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태언장에서 돌아온 이후로 넌 많이 변했다.”
“…….”
“평소에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하루에 한 마디도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언제나 혼자 있으며 밥도 많이 걸렀지. 뭐가 고민이냐.”
털어 놔도 될까. 사형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모두 다 털어 놓으면 마음이 편해질까. 사형이 무슨 조언이라도 해주실까. 해답이 나오기나 하는 걸까. 강민은 이미 한 번 답해준 적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 것은 서지훈이 찾은 답은 아니었다. 배움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다. 아무리 오랫동안 배우고 가르침을 사사받아도 부족하여 자기 자신의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 있다. 이 문제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직접 깨달아야 할.
“사형.”
“…….”
“이번 전투에서 그 고민이 해결 되지 않는다면.”
“…….”
“그 때는 사형께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알았다.”
끝나지도 않았건만 강민이 말을 끊는다. 서지훈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그저 처음처럼 적들의 군세(軍勢)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푸우. 이윤열은 긴장 반 초조 반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아군도 전력을 이 싸움에 집중 시켰다지만 적들 또한 만만치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저 곳엔 아마.
“이보게, 윤열이.”
“아, 형님이십니까.”
뒤를 돌아보니 개파영웅(鎧破英雄)이라고 불리우는 박정석이 다가온다. 수려한 외모에 용맹한 무공 거기에다 군자 같은 성품으로 세간(世間)의 칭송을 듣고 있는 인물이었다. 박정석과 이윤열은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박정석은 다가와 이윤열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이 친구, 뭐 그리 심난한 표정을 짓고 있는가?”
“아. 형님께서 혹시 지오장(志悟壯)의 서지훈이란 자와 겨뤄보셨습니까?”
박정석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반문 했다. 박정석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대답했다.
“아, 서지훈이란 자 이름은 들어 봤는데. 지오장에서 싸워 본 이는 몽상가(夢想家) 밖에 없고.”
이윤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긴, 잘 나서지 않고 음지에서 활동하던 이였으니. 이윤열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런데 그만 그 것이 표정으로 드러났던지 박정석이 캐묻는다.
“왜 서지훈이란 자와 무슨 일이 있나?”
그렇지만 이번 역시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형님은 누군가와 겨룬다는 것이. 이리도 오싹하고 공포스러웠던 적이 있었습니까?”
“하하, 이 사람. 물론 많지. 싸우기 전에는 언제나 그렇다네.”
박정석은 그 말을 하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아마도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이윤열의 마음을 알아챘기 때문일 것이다. 이윤열은 살짝 미소 지었다. 그렇다. 모든 싸움은 떨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은 특별하다. 난 그와의 일전을 앞두고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오싹하며 또 웃음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 와라, 빙화(氷花). 내 모든 것을 걸고 널 상대해 주겠다. 날 꺾을 수 있다면 꺾어보아라. 허나 실패했을 때는.
“…….”
그 차갑고 도도한 얼음 꽃의 잎사귀를… 갈가리 찢어주마.
******
진격(進擊). 지휘자들의 명령에 정파와 사파의 무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괴성을 지르며 서소를 향해 들려들었다. 몇 걸음 뛰지도 않았건만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흙먼지가 일어와 눈이 따갑다. 그래도 눈을 감으면 안 된다. 시야가 가려지는 순간이 바로 목숨의 끝이다. 앞을 똑바로 보며 주위를 경계하라. 병(柄)은 부드럽게 잡고 병기는 팔을 이용하여 휘두른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잘 되지 않는다. 무턱대고 일단 잡아끌어서 휘두른다. 이게 바로 전쟁이다. 이 곳이 바로 전장이다. 내 뼈를 묻고 내 영혼을 묻을 나의 무덤이다. 살려면 베어라. 그 것이 전쟁의 섭리다. 베어라. 베고 또 베어라. 그렇다면 어느새 우린 승리해 있을 것이다.
“…….”
이 잔혹한 전장에서 그 둘은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대결에 몸을 던진다.
******
에, 빙화 그 대망의 완결을 단 1화 남겨둔 1열 아홉번째 이야기입니다.
뭐 이젠 특별히 드릴 말씀도 없는 듯.
여기까지 쓸 수 있도록 제게 힘을 주신 독자 여러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늦은 밤쯤 빙화의 완결편을 만나실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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