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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8/15 12:51:32
Name 탐정
Subject [잡담] 동전 여덟개
동전 여덟개.



안녕하세요. 탐정입니다.

저는 미국 뉴욕에 삽니다. 리버데일(Riverdale)이라고 부르는 브롱스 서쪽 변두리에 살고 있지요.
4년전 아무것도 없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9월 대학에 들어갑니다.
4년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어느정도 적응이 된 지금은 미국 생활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밤 늦게까지 일을 하십니다. 매일 피곤해 하시지요.
저 역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 여름방학동안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지금은 시립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쓸 휴대폰 요금이나 용돈 정도는 해결할 정도만 벌고 있네요.

그 도서관은 집에서 약 한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뛰어도 30분정도는 걸립니다.
여름이라 더운데다가 거리까지 멀기때문에 자연스레 버스를 이용하게 됩니다. 뉴욕 시내의 버스요금은 2달러(한화로는 2500원정도)이구요.

평소에 저는 씀씀이가 헤픈 편은 아니지만, 아껴쓰는 편도 아닙니다. 기분에 따라 친구들에게 한턱 쏠때도 있고, 시내에 나가기 위한 버스값이나 지하철요금은 아끼지 않습니다.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사는 10불짜리 교통카드를 사면서 돈 아깝다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당연히 사야한다고 생각했었죠. 그 정도는 부담스러운 액수도 아니었으니까요.

요즘은 일을 하면서 돈의 가치를 조금씩 알아갑니다. 처음 일해보는 새내기이지만 돈 버는게 힘든거구나 하는 생각이 매일 듭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들과 컴퓨터를 가끔씩 쓰면서 일하는데도 힘이 듭니다.
아, 부모님이 이보다 더 힘들게 일하시는구나. 이런 생각이 요즘은 매일 드네요.

며칠 전, 아버지가 10불짜리 교통카드를 제게 주셨습니다.
그 카드를 받았을 때는 제 용돈 10불을 아끼게 된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막 쓰다가 오늘 친구집 가는 버스에서 확인하니 마지막 2불이 남았더군요.
친구집에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그리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죠.

지갑에 보이는 2불밖에 남지 않은 교통카드,
2불정도는 생각없이 쓰던 저인데, 왜인지 그 카드를 쓰기가 싫었습니다.
친구에게 지폐로 2불을 주고 25센트짜리 쿼터 8개를 받았습니다.

밤 10시 반,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어둠이 짙은 거리를 지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동전 여덟개를 봤습니다. 그 순간 아무생각없이 뛰었습니다.
저 멀리 버스정류장이 보였지만, 무시하고 집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도서관 옆 친구집에서 집까지 쉬지않고 뛰었습니다.
2불이 아까웠던 것도 아니고, 어둠속에서 뛰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어둠속에서 느껴지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과,
도로를 지나가는 버스 안 사람들의 의아한 듯한 시선을 무시하며 뛰었습니다.
온몸을 적신 것이 땀인지 빗물인지도 모른채 집까지 달렸습니다.
헉헉대며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 다시한번 손을 펴보니 동전 여덟개가 그대로네요.
온 몸이 땀에 범벅인 채로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손에 쥔 동전 여덟개를 아버지 주머니 속에 넣었습니다.
2불 남은 교통카드를 대신해 동전 여덟개를요.
어차피 곧 쓰여 없어질 동전 여덟개가 왜 제 맘 한구석을 이렇게 두드릴까요.

제 손에 동전 냄새가 배어있습니다. 샤워를 하며 깨끗이 지워졌겠지만, 아직도 그 동전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 냄새가 영원히 가시지 않고 배어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그 동전 여덟개를 벌기 위해 오늘도 땀흘려 일하시는 부모님의 고생을 잊지 않겠죠.
그래야 그 동전 여덟개를 쓰지 않고 밤 늦게 공원을 가로질러 달린 오늘의 저를 잊지 않겠죠.
이런 오늘의 제가 있어 내일의 저도 있는 거겠죠?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평소에 별 생각없이 쓰던 동전 여덟개의 가치가 새삼스레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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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제일
04/08/15 14:26
수정 아이콘
살면서 느끼는 '돈'에 대한 소중함을 저랑은 조금 다르게 느끼시는 분이시로군요.^_^
<---일명 돈이 좋아! 돈이 제일! 쪽입니다..으하하하

점점 더 많이 강하게 느끼는 것은 '무언가를 하기위한 수단'이지만 그 수단 자체로도 꽤나 의미있을때도 있다는 것이죠.
내가 무언가를 하기위해서 돈을 모으지만 그 무언가가 확실하지 않더라도 돈이라는 것이 내게 엄청난 가능성을 허락한다는 사실이죠.^_^
살면서 모두 느낄수 있지만 모두들 느끼지는 못하는 소중한 기억..잘 들었습니다. 그 기억과 그 느낌 잘 간직하시기를 빕니다.^_^

탐정님께서도 건강하세요.^_^
iSterion
04/09/07 17:29
수정 아이콘
하 이런멋진글이 있었군요..탐정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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