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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8/08 22:31:13 |
Name |
Artemis |
Subject |
[잡담] 사랑? 웃기지 마. 그건 당신의 그리고 나의 이기심이겠지. |
방금 <얼굴없는 미녀>를 보고 왔습니다.
오는 내내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득문득 들어오는 한기에 몸이 오싹거렸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솟더군요.
얼마 전 안전제일 님께서 이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지독한 사랑'이라고 하셨는데, 제게는 이기심의 발로가 먼저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사랑의 실체보다는 결국 '소통에 실패한 인간'이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또한 [어쩌면 '아무도'사랑하지 않고 그저 사랑을 '하고'있는 지도 모를 만큼]이라는 안전제일 님의 평에 동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영화를 보고 와서 일단 느끼는 대로 주워섬겨 본 것입니다.
영화의 비평을 떠나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에 의미를 두고 '사랑'과 '소통'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일단 시간이 나면 다시 한 번 보러 가고 싶을 만큼 매혹적인 영화였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스포일러 있을 수 있으니 영화 꼭 보러 가실 분들 주의하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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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있다.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을까 두려운 여자.
그녀가 사랑한 남자가 말도 없이 그녀를 떠나던 순간, 그 상처는 지울 수 없는 흉터로 남아버렸다.
한 남자가 있다.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여자를 사랑하게 돼버린 남자.
오지 않는 여자를,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계속 최면을 건다.
하지만 그게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녀도 그도, 어느 한 순간도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려 보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성 안에서 한 사람을 사랑하고 버림받았다고 느끼고 광기와 집착으로 변해 갔을 뿐.
영화 내내 무겁게 울리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는 결국 공허한 마음속의 울림을 이야기하려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녀의 아픔에, 그의 아픔에 동감한다.
슬프고 아린 마음에 모든 사고 회로가 정지되어버린다.
하지만 그 모든 상처는 스스로에서 비롯된 것임을 왜 알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서 그 사랑은 상처가 되고 증오가 되고 광기가 되고 파멸을 낳는다.
영화 속 그 누구도 자신은 사랑한다고 하지, 그 자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그 감정으로 상대방이 어떤 상처를 받게 될지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만이 유일한 가치. 자기 마음만이 유일한 기준.
그래서 더 슬프다.
그들은 왜 성 안의 문을 열지 않는 것일까?
그 창에 무거운 커텐을 왜 걷지 못하는 것일까?
그들의 사랑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그 이기심의 발로는 결국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어쩌면 이는 자신이 내지른 소리의 메아리만을 듣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아프고 슬프고 우울하다.
p.s.
사랑은 이기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이 영화로 인해 그 이기심의 실체를 확인하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에 그녀의 남편이 이런 말을 한다.
"자기 딴에는 실연당했다고 생각했나 부지."
내게는 이 말이 이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영화 속 그녀, 지수가 사랑한 그 남자도 지수를 사랑했는지 영화에서는 알 수 없다.
그녀만이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알 뿐.
영화 속 그, 석원 역시 혼자만이 그녀를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기다렸을 뿐이지, 그 마음을 그녀는 알지도 못했고 그에 응답해 줄 의무조차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영화 속의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
한 여자를 좋아해, 좋아하는 그녀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었다며 여자의 사진을 찍어대는 그 남자도 자신만을 이야기할 뿐, 그 여자의 마음은 어땠을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친아빠를 새아버지라고 불러가면서까지 거리를 두고 싶어했던 병원의 소녀, 밤마다 자신의 침실에 들어오는 새아버지가 싫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가 짐승 같았다고 울부짖던 소녀는 엘렉트라 컴플렉스처럼 보였다.
개나 고양이는 말이 없는데 사람들만 말이 많다고 하소연 하던 중년의 여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푸념하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현대인의 소통의 부재라는 것은 자신만의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런지.
영화 내내 울려나오는 그 공허함은 그래서 안타까웠고 숨이 막혔다.
그리고 결국 뫼비우스 띠처럼 얽히고 마는 그들.
그가 하던 행동을 그녀의 남편이 하고, 그녀가 하던 행동을 그가 한다.
어쩌면 그 뒤로 또 다른 그녀 혹은 그가 그렇게 변모해 갈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하고 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려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소통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이해와 배려'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는 그것을 과연 소통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점점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늘어만 가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면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소통하려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틀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해서 상처받고 마는 불안한 우리의 현 모습.
문득 나도 그러한 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하게 굳어져버렸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짙은 어둠에 오싹한 기운이 몸을 휘감는다.
-Arte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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