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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8/04 20:17:38 |
Name |
edelweis_s |
Subject |
[픽션] 빙화(氷花) 2 |
빙화(氷花)
-훈아 그 애가 재훈이가 없으니 마음이 빈 듯 하이. 민이 네가 더욱 신경 써 주거라.
“훈아. 무릇 모든 병기(兵器)는 손아귀로 잡는 것이 아니라고 했잖느냐. 아직 집병(執柄)의 자세도 완벽하지 못해서야 쓰겠니.”
매서운 눈보라가 지오장을 뒤덮고 있는 겨울이었다. 흰 눈이 땅을 내리덮어 몽상가(夢想家-강민)의 붉은 창영(槍影-창날 바로 밑에 달아놓는 일종의 장식. 자신에게 피가 쏟아지는 것을 막는 기능도 있다.)이 유난히도 튀었다. 혜휘(暳暉-이재훈)가 출호(出湖)한지도 막 두 달이 다 되어간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수련에 열중하는 듯 했지만, 대사형인 이재훈이 없으니 그를 잘 따르던 서지훈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당연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어리니 마음 또한 유약 한 것은 당연할터. 그런 서지훈을 보는 능비강(能飛强-조규남)과 강민의 마음 또한 살갑지만은 않았다.
“훈아. 도(刀)가 그리는 동선(動線)이 너무 길다. 끊음을 정확히 해야 허점을 감출 수 있다고 몇 번이나 말해주었니.”
“…….”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것이 알았다는 긍정의 뜻이면 좋으련만. 강민의 마음은 심란했다.
******
강민의 창술(槍術)은 매끄러웠다.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는 날렵한 동작. 공기를 뚫고 전해지는 기백. 창끝의 매서움이 살아있는 날카로운 예기(銳氣). 창이 휘둘러져 허공을 가를 때마다 창영은 춤을 추듯이 흔들렸다. 조규남은 강민의 연무를 보고 빙그레 웃었다.
“음, 많이 늘었구나.”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스승님.”
칭찬에 기쁨을 애써 감추려 고개를 숙이지만 강민의 얼굴에는 밝다 못해 해맑은 웃음이 가득했다. 조규남은 강민의 어깨를 토닥이며 안채로 들였다.
“그러고 보니 내 문하(門下)에서 수련한 세월도 꽤 되었구나.”
조르륵. 뜨듯한 차가 잘 만들어진 도기(陶器)에 담겨 뜨거운 김을 내뿜는다. 무도(武道)에는 끝이 없다. 무(武)의 오묘함은 알 길이 없다. 평생 수련을 해도 완벽한 무예(武藝)를 탄생 시킬 수 없다. 그런 길에서 이제 고작 20년. 그 시간이 감히 아깝다고 할 수 없을터였다. 손을 휘저으며 부정하는 강민의 모습을 보고 조규남이 말을 이었다.
“허나…….”
“…….”
조규남이 찻잔을 내려놓고 강민을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자애(慈愛)하기가 친아비의 그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으니, 강민은 그저 스승의 하늘같은 사랑애 감읍할 뿐이다.
“민아. 넌 천재적 기질을 타고 났으면서도 유난히 느렸다. 너 스스로도 알고 있을게다. 너의 주창영(朱槍影-강민이 직접 창제한 창술)은 이미 예전에 완성 되어 있음에도, 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어.”
“…….”
“그렇지만 이제 되었다. 이제 너도 출호하거라. 민아 너라면 중원 무림에서 이름 떨치는 것은 수이 할 수 있을게다..”
“예? 아직 부족합니다. 스승님께서 더 가르침을 주셔야지요.”
“아니야. 그만하면 되었어. 내일 지오장을 떠나거라.”
말을 끝내고 목이 탔는지, 조규남은 차 한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어찌 태연하랴. 어찌 담담하랴. 20년을 함께 해 온 자식 같은 아이를 보내는데 마음이 편할 길이 있으랴. 그런 스승의 모습을 바라보는 강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스승님의 불거진 손이 오늘따라 슬퍼 보이는 이유는.
“스승님…….”
그 때 안채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람이 문지방을 급히 넘어 왔다. 무슨 일인가 하는 의문이 조규남과 강민의 눈가에 걸렸다. 하아. 하아. 무슨 일인지 문지방을 넘어 온 자는 숨을 급히 들이쉬고 있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은 그의 입에서 확고한 결의가 담긴 요청이 튀어나왔다.
“스승님! 사형이 떠날 때, 저도 함께 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
강민은 짐짓 고개를 숙여보였다. 옆에는 서지훈이 손을 모은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 한숨이 푹 나온다. 아직 집병(執柄)도 익숙치 아니한 녀석이 자기를 따라 출호하겠다고 하다니. 평생에 이렇게 당혹하기는 처음이었다.
“훈아. 넌 아직 이르다. 스승님 곁에서 배울 것이 많아.”
침중한 목소리가 눈을 밟고 허공에 울렸다. 한 때는 자신도 저런 적이 있었다.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지오장을 뛰쳐나가 철난 후 처음으로 눈물을 흘려보았다. 자신이 과오를 저지른 적이 있기에, 그 일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알기에 이 귀여운 사제(師弟)와 동행 할 수 없었다.
“훈아. 너 스스로도 수행의 부족함을 알고 있지 않더냐. 어찌 출호를 서두르는 것이냐.”
“강 사형. 부족한 것 압니다. 그 것 때문에 더욱 이러는 겁니다. 이 사형도 없는데 강 사형도 떠나버리면 전 어떻게…….”
“스승님이 있잖느냐. 네 수련에 대해 무엇이 걱정이더냐.”
엄한 표정의 강민을 보고 서지훈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 밑으로 늘어진 머리카락이 처량했다. 그 것을 보고도 차갑게 말을 잇는 사형이 미운 건 역시 수행이 부족해서인가.
“훈아. 넌 노수성(弩手星)의 재능을 타고 났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고, 너 혼자만의 수련으로도 큰 공부가 될 수 있어. 언제까지 사형의 그늘에 묻혀 살 것이냐. 또한, 내가 떠나면 스승님이 더욱 한가하시니 네 사형 역할까지 톡톡히 해주실 것이다.”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아직 한 없이 부족한데, 혼자서 스승님을 보필하고 가르침을 받는 게 두려울 뿐입니다.”
힘없는 목소리. 사제의 고심(苦心)은 곧 사형의 마음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아직 이렇게 어린 것을 두고 떠나야만 한다니. 무림에 나가서도 이 가여운 것이 생각날 것만 같아, 다시 한번 목이 메었다.
“훈아, 너…….”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고 강민이 마당으로 내려갔다. 눈이 밟히며 뽀드득거리는 소리가 구슬프다. 또한 구슬프기는 강민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 나와 같이 가고 싶다면, 날 이겨라.”
자신의 주창영(朱槍影-강민이 애용하는 창. 강민이 창제한 창술과 동명.)을 힘껏 움켜쥐며 강민이 말했다. 영문을 모르는 서지훈을 붉은 창영이 재촉하듯이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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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제 심혈을 기울인 최대 화제작_- 빙화 그 두 번째 입니다.
다음화는 강민과 서지훈의 대련 씬, 그리고 강민의 떠남을 다룰 생각입니다.
차회 거듭할수록 새 인물들을 등장시킬 예정입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lovehis 님, 그분이 유명하지 않은 인터넷 작가분이십니다.
출판작도 하나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유명하지 않아서요.
그렇지만 문체가 진짜...
구슬프고, 애절하고, 매끄럽고... 하여간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 그런게 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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