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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8/04 11:48:39
Name 타임머슴
Subject 승부의 세계에 농락은 없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상대를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해라’
어떤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위하려면 애당초 싸움 같은 것은 시작도 말고 싸우기로 결정했다면 철저히 밟아주라는….그런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전 치고받는 싸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직접 저런 입장에 서 본 적은 없습니다만. 흔히 영화에서 보면 멋진 주인공은 대개 그렇죠. 섣불리 싸우지는 않지만, 악당(?)이 깐죽거려올 경우 아주 무섭게 기세를 확 꺾어버리는….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도 단순하게 보면 작은 전쟁이요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성제 선수 말마따나 ‘이기는 게 장땡’인 세계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언제부터 그랬는지 어떤 방법으로 이기느냐에 대해 ‘매너냐’ ‘비매너냐’를 따지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고스트로 핵을 맞으면, 테란 커맨드 센터가 감염되면, 경기를 좀 오래 끌면, 해처리를 과도하게 많이 지으면…..그런 경기에 대해서는 선수들 자체도 불명예로 여기고, 팬들도 ‘너무 심하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제가 박태민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계기도 그랬습니다. 2년 전인가…임성춘 선수와의 경기에서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태에서 해처리를 수십 개 지은 것이 좀 비매너스럽게 느껴졌고 많은 팬들이 항의하자 박 선수 본인이 게시판에 사과글을 올리기까지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그것이 ‘비매너’로 매도될 일이었나 싶습니다.
일반적인 경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해처리는 고작 대여섯 개 정도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도 저그쪽으로 많이 기울었을 경우이고 상대방은 그걸 파괴하러 다니기 때문에 그 이상 늘어나는 경우도 거의 보기 드뭅니다. 그런데 만약, 해처리가 수십 개가 되는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리고 그것을 프로게이머가 직접 보여준다면 그 자체로 게임을 넘어서는 장관이 되는 것은 아닌지요….’저그가 정복한 세계의 악몽’이란 이런 것이다 하고 말이죠…암울하지만 판타지는 판타지인 거죠.

또한 베르트랑 선수가 비프로스트에서 나도현 선수를 상대로 계속 핵을 쏘려고 노력했던 경기 기억하십니까. 계속 불발로 끝났고, 나도현 선수도 필사적으로 핵을 안 맞으려고 하다가 아주 약하게 한 대 맞고는 GG를 쳤던 경기였지요. 이 경기에 대해서도 왜 그렇게 베르트랑 선수는 핵을 쏘려고 했는지에 대해 좀 비난 섞인 말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것이 아닌 핵이라는 이유에서죠. 그냥 배틀크루저를 뽑으려고 노력했다면, 배쓸 3부대를 뽑으려고 노력했다면 안 그랬을텐데, 핵을 쓰려고 했다는 것 때문에 좀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테란 선수들은 핵을 잘 안 쓰는 것 같습니다. 늘상 탱크, 골리앗, 레이스뿐입니다. (임요환 선수는 예외입니다만..)
하지만 저 같은 경우는, 테란 선수가 고스트를 뽑는 순간부터 아주 흥미진진해집니다. 과연 고스트가 상대방 진영으로 잘 진입할 수 있을까, 적의 어느 진영에 핵을 쏠 것인가..그리고 마침내 성공했을 때의 그 장엄함……당하는 선수는 물론 화가 날지언정, 보는 입장에서는 스릴 만점이죠.

어제 간만에, 조용호 선수가 나도현 선수를 상대로 ‘감염된 커맨드센터’를 보여주었습니다.
퀸즈 네스트를 지은 것을 보긴 했지만, 설마 감염시킬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화면에 감염된 커맨드센터를 보는 순간, 이것이 정말 전쟁이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늘상 정면전, 화력전 위주로 풀어가는 경기에 식상했는데, 다각도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을 보고나니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왜 안 쓰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조용호 선수가 이기기도 했지만, 그는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선수들이 좀더..엽기적인, 그리고 좀 징그러울 정도로 잔인한(?) 방법을 보다 다양하게 구사하는 경기를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타라는 게임 안에 들어 있는 전술과 유닛인 이상, 더 이상 비매너는 없다고 봅니다. 또한 해처리 100개를 짓고, 게이트 100개를 짓는 모습도 또 다시 보았으면 합니다. (실제 전쟁은 그보다 더하지 않겠습니까.)

늘상 질럿, 드래군 또는 마린, 탱크, 또는 러커, 저글링 정도에서 컨트롤로 마무리되는 경기보다는 좀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있는 경기를 기대해봅니다. 아직도 전 김동수 선수 하면, 임요환 선수와의 경기에서 아비터로 리콜 전략을 쓴 선수로 기억합니다.

선수 여러분들….제발 있는 기능은 죄다 써주세요…단순한 승부가 아닌 이야기가 있는 승부를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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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04/08/04 12:00
수정 아이콘
그저 게임을 즐기는 분의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전략과 전술이 재미있게 보이겠지만, 한 프로게이머의 팬 입장에서는 그런 것이 긍정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겠지요. 이런 것들은 받아들이는 생각의 차이가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만..
04/08/04 12:06
수정 아이콘
이왕이면 깔끔하게 끝내주는게 당하는 입장에서는 한결 좋죠.
특히 하수스의 어떤분... 너무해요...ㅠㅠ
La_Storia
04/08/04 12:11
수정 아이콘
충분히 끝낼 수 있는데 질질 끌면서 가지고 노는 것은 분명히 비매너지만, 단순히 핵을 쓴다고 농락모드니, 관광이니 하는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감염된 커멘트센터도 충분히 좋은전략입니다. 어제경기 후 조용호선수의 인터뷰에서도 볼수있듯이 커맨트센터를 감염시켜놓으면 다시 그 멀티를 활성화시킬때까진 한참의 시간의 걸리고 그 시간을 저그는 벌 수 있지요. 무엇이 비매너이고 무엇이 전략전술인지를 판가름하는 관전자들의 현명한 관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04/08/04 12:15
수정 아이콘
게임을 끝내는 건 2유저의 마음이죠..
예전.아주 오래전.. 저저전이 엄청 많았을때..
그땐... 뮤탈싸움 한번 지면 바로 GG였죠~
그때,, 엄해설은 말씀하셧습느다.
계속해도 이길수 없으니 GG빨리 치는것이 다음경기 위해서 좋죠~
옳은 말입니다..
자신이 밀렸다고 생각하면 GG를 치든.
계속 끌고 나가던. 이기고 있는 선수가 올멀티를 하던~
자유민주주의 국가죠~ 대한민국...
04/08/04 12:16
수정 아이콘
그런 의미에서, 질레트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 3차전에서 박정석 선수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습니다. 이미 완전히 밀린 경기, 마엘스트롬+사이오닉 스톰 콤보를 팬들에게 보여주려 끝까지 노력하더군요.(비록 템플러가 쏘라는 스톰은 안 쏘고 댄스를 춰 대는 통에 실패했습니다만...)
팬들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04/08/04 12:17
수정 아이콘
저도 일종의 농락모드가 들어가는 게임이 기억에 많이 남더군요. letter님 말처럼 이길거면 깔끔하게 이겨주는게 지는 입장에서는 속도 덜 상하고 좋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기 때문에 더 짓밟아야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16강에서 무참하게 농락한 상대랑 8강에서 다시 만났다고 생각해본다면 그 때의 충격이 8강의 게임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일종의 심리전입니다. 이길때는 다시는 못 덤빌 정도의 강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훨씬 더 큰 승리를 얻을 수 있죠.

매너있게 깔끔하게 게임하려고 적당히 이길 정도의 공격을 하고 적당히 못 이길 것 같으면 gg치는 것보다는 이길 때는 무참하게 짓밟아버리고 질때에는 끝까지 항쟁하는 모습이 더 기억에 남고 값진 게임이 되지 않을까요?

당하는 입장에선 잔인할 지 몰라도 그 치욕을 발판삼아 또 다른 명승부를 이끌어 낼 수도 있겠죠. 그럼으로써 이야기 꺼리도 풍부해지고 말이죠.
04/08/04 12:19
수정 아이콘
글쓴분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로템에서 섬에만 멀티가 있고..
다른분이 올멀티를 했는데.. 이길 수 있는걸 가지고.. 계속 레이스 2부대씩만 보낸다던지.. 하는건 농락에 가깝긴 하지만..
gg치고 안나가는 상대방도 문제가 있겠죠-_-;;

정말 다행인건.. 질레트 결승전 4경기에서 박성준 선수가 놀라운 자신감으로 박정석 선수 입구앞에 해처리를 폈는데..
거기에 대한 비난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 퀸을 쓴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파괴시키기 힘들면.. 뺏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전 테란이 커멘드를 띄우면 스커지 몇대로 박은 후에 퀸으로 먹어버립니다..
괜히 히드라로 깨려고 따라가다가.. 시즈에 맞고 다 죽는 경우가 더 많더라구요;;
그래서 scv로 고칠 생각도 안나게 찰나에 먹어버리는 -_-;;
forangel
04/08/04 13:28
수정 아이콘
어제 조용호 선수의 퀸은 승부에 결정적인 역활을 했죠..만약 커멘드센터를 감염시키지 않았다면 경기 결과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높구요..
월요일날 전태규 선수의 리콜과 스테이시필드 역시 그랬습니다.
농락모드가 아닌 승부에 결정적인 역활을 했었죠.

저역시 농락모드라는 비난이 전술의 발전을 막는다고 생각합니다.
승기를 잡은후 굳히기에 들어갈때 핵이라던가 아비터,스카웃,퀸 등은 아주 좋은 역활을 할수 있고 또한 전세를 바꿀수도 있으니까요.

예전 배넷에서 공방 양민(?) 상대로 저역시 농락을 즐겼던 편인데 2:2 무한 팀플하면 온리 다크아칸,온리 캐리어로 우리편 캐리어를 마인드컨트롤로 뺏아서 캐려 10부대를 모은다거나..scv 훔쳐서 탱크를 대략 90대쯤 뽑은후 아비터 9기를 이용해서 시즈모드한 탱크를 리콜한다거나 다수의 하이템플러로 상대방 탱크에 홀리시네이션 걸어서 허상 탱크로 도배를 하거나 허상 아칸을 몇분동안 러쉬보내기도 하는 극악의 농락모드를 즐겼었죠..

위대부분은 경기중에선 불가능하지만 대 테란전에서 하이템플러로 상대방 탱크에 홀리시네이션 걸면서 조이기를 뚫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합니다.(탱크에 홀리시네이션 걸면 허상 탱크가 공격일순위의 타겟이 됩니다..또한 스플레쉬 데미지로 탱크가 타격을 받게 돼면서 질럿 드라곤이 피해를 덜받게 돼죠..)
타임머슴
04/08/04 13:32
수정 아이콘
그러고보니 박정석 선수가 할루네이션을 쓰던 경기, 또 패러독스에서 마인드컨트롤 을 썼던 경기도 기억납니다....임요환 선수가 메딕의 옵티컬 플레어를 쓴 경기도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었었죠...
아마추어인생
04/08/04 13:58
수정 아이콘
Q : 커맨드를 감염시킨 것은 단지 기세를 잡기 위해서였나?
조 : 계획에 없던 전략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너무 불리했고 아무리 앞마당을 띄워도 센터가 다시 앉으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센터 체력이 600이었다.
그래서 그때 퀸을 뽑고 센터를 감염시켰다.

Q : 나도현 선수와의 경기 승리를 확신했던 때는 언제인가?
조 : 바로 앞마당 커맨드 센터를 감염시켰을 때다.

조용호선수 인터뷰에서 발췌했습니다. 어제 경기에서 퀸은 농락을 위한 전술은 절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리플레이 캡쳐를 한 것을 봤는데 바로 나도현 선수가 본진 앞마당을 치려고 할때 먹은 것 같았습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그래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조용호 선수의 쎈스를 칭찬하고 싶군요. 저도 본문과 같이 엽기적인 전술도 이기는 경기를 한다면야 뭐든지 ok입니다. 환영입니다. 다만 너무 끌어서 해설진이 할말이 없어 지치고 관중들이 질려서 지치는 경기는 좀 자제를 해야겠죠^^
Trick_kkk
04/08/04 15:43
수정 아이콘
농락은 좋게 말하면 승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당하는(?) 패자 또는 패자의 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매우 불쾌할 것 같기도 하고
이왕이면 좋게좋게 끝내면 좋겠지만 그런 플레이가 싫진 않습니다. 재밌거든요. 다만 질질 끄는 게임은 저도 별로입니다. 대표적으로 최연성-이병민 선수의 질레트배 경기가 있었는데 그 경기는 최연성 선수가 좀 더 빨리 끝낼 수 있었고 이병민 선수가 좀 더 빨리 끝낼 수도 있었죠.
ilove--v
04/08/04 15:56
수정 아이콘
어제 조용호 선수의 커맨드센터 감염은 절대 농락이 아니죠 ㅡㅡ;; 오히려 불리하다면 불리하다고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조용호 선수의 인터뷰에서도 나오듯이 커맨드 센터 체력이 600 남았는데 퀸을 생산해서 감염시킬 생각을 한 조용호 선수를 칭찬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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