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
2004/07/13 12:36:01 |
Name |
달라몬드 |
Subject |
올킬드의 추억 [19금] |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순전히 계획적이었던 거다.
모임의 멤버는 한강 상류의 정기를 가장 많이 받는 자진 총무,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전직 교수, 자존심 강해 보이는 공무원, 뭔가를 준비한다는 보라매지원병, 그리고 과묵한 탄약 전문가 그리고 뱃살의 위력을 점점 더해가는 나 더하여 이제나 저제나 늦음의 미학을 선보이는 홍일점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서로 다른 위 멤버들은 각자의 썰렁한 얘기로 분위기를 잡아나갔고 급기야는 이 모임의 매개체인 스타와 특수 연료로 Warm-up을 하면서 전운을 고조시켰다.
부지 불식 간에 결정된 팀 배틀전. 출처는 일본일 것이라고 생각되는 어렸을 적 편 가르기 방법인 '끼울려도 한 편' 댄찌를 사용한 결과 상대 편은 3명 (전직교수, 공무원, 보라매지원병), 우리 편은 4명 (총무, 탄약전문가, 홍일점 그리고 나)이었다. 나는 순간 좋아했으나 팀플이 아닌 팀배틀은 인원이 많다고 좋아할 게 아니란다.
각자의 내공을 사전에 간파한 우리 편은 나를 매너 선봉으로 내세웠고, 저쪽 편은 선봉 시켜주지 않으면 보라매지원철회도 불사하겠다는 지원병이었다.
제 1경기 헌터 나 테란 7시 반 지원병 랜덤 플토 6시
나는 컴퓨터와 일대일은 어느 정도 되니... 사람이라고 뭐 특이한 점 있겠나 그리고 프로들 경기를 많이 보았으니 이미지 트레이닝도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모인 사람들 모두 하수가 아니면 목을 베라 하는 자칭 하수들뿐이었기에...
내심 깜짝 전략으로 한 번쯤 이길 수도 있겠다고 무모한 상상도 하고 있던 터였고...
저쪽 선봉인 듬직한 체구의 보라매지원병은 뭐 "군하일고"(뭇 하수 중 고수 한 마리)일 수도 있지만 특수연료로 인한 육체적 상태가 상당히 모호하였기에 승리에 대한 상상은 도가 지나쳐 이제는 망상의 경계를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게임시작, 나는 7시 반 테란, 시작하는 순간 커멘드를 클릭하고 왼손으로 자랑스럽게 S키를 눌렀다. (단축키를 쓴 것이다.) 이후 민첩하게 열심히 SCV를 갈랐다. 한 놈 찍어 미네랄 보내고, 또 한 놈 찍고 보내고 네 마리 다 보내고 나니 어느새 생산된 다섯 번 째 SCV 음 오늘 시작이 너무 좋다.
우리 편은 열심히 응원이다. 심지어는 첩보원까지 두었다. "어 여섯 시에 있는 외계인은 뭐야" 흠 나 정도의 경력이면 상대방 위치는 감으로 맟춘다. 더군다나 7시 반 테란일 경우 첫 정찰은 당연히 6시 아니던가.
본진까지 정찰을 갈 필요도 없다. 상대방 입구에 바로 벙커링 헉 그런데 시야에 상대방 파일론이 보이는 게 아닌가. 아 오늘 지적리듬은 충만한데 몸 상태가 안 좋은가 하는 순간 상대방 프로브들이 난리다. 할 수 없이 벙커 취소하고 후퇴 상대방 앞마당에 벙커를 두 개씩이나 지었다. 거의 필승의 국면. 팩토리에서 탱크도 뽑고 벌쳐로 마인 개발까지 하여 군데 군데 박고, 더군다나 멀티까지... 상대는 멀티를 하지 못했다. 워낙 조이기를 완벽하게 해 놓았으니.
너무 분위기가 좋아 평소에는 잘하지 않은 투팩을 올렸는데 갑자기 상대방 병력이 내 본진과 조이기 라인을 동시에 유린하는 거다.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어떻게 멀티도 먹지 않은 플토가 멀티 먹고 앞마당 조이기까지 성공한 테란을 이길 수 있는 거냐. 더군다나 내가 확보하고 있는 자원은 이미 2천을 넘어섰는데 말이다.
내가 생각한 패인은 첩보원이 제 역할을 못했다. 상대방 병력의 규모를 제때에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특수 방해공작이라도 하던지...끌끌 이래서 냉전시대가 종식된 이후로 첩보원들의 군기가 많이 빠진 게 백일하에 드러난 셈이다.
우리 편은 갑자기 고민을 했다. 2장은 누구로 할까? 머리를 맞대려고 할 때 홍일점으로 낙찰을 보았다. 고금의 역사에도 미인계가 통하지 않던가.
제 2경기 노스텔지아 우리 편 홍일점 7시 저그, 나쁜 편 지원병 11시 플토
나는 이 경기를 보고 몇 가지 경악을 했다. (조금 나중에 밝히겠다)
우리 편 음 분명 나보다는 고수다. 어떻게 오바로드를 11시로 정확히 상대방 본진으로 보내는가 말이다. 그래서 일러 주었다. 아니 어떻게 알았어요? 물었더니 음 미소만 짓는다.
내가 상대편을 정찰을 갔다. 그런데 이 아저씨 이상한 거다. 나는 광고에서 (뭐 초고속 인터넷 광고였을 거다)만 왼손으로 피아노 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지원병도 왼손으로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치는 거다. 내가 뭐 하는 거냐고 왼손을 들었더니만 오른손 마우스로 이번엔 칸딘스키의 콤포지션5를 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첫 번째 경악했던 사실...
불안한 마음을 머금고 우리 편으로 돌아왔는데 두 번째 경악한 사실. 아니 어찌 된 것이 우리의 홍일점은 자원 특히 미네랄은 50 이상 넘어가는 꼴을 못 보는 거다. 어떻게 이렇게 게임을 하냔 말이다. 적어도 천은 가지고 있어야 흡족한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을 하는 동안... 홍일점과 지원병은 나름대로 치열한 게임을 치렀다.
플토의 초반 압박을 이겨낸 저그, 럴커와 수송업으로 상대방 앞마당 넥서스를 깨고 본진 자원수급도 방해해서 야 드디어 이기는가 싶었다. 그런데 지원병 이 아저씨 좀 수상하다. 앞마당의 자원은 본 개념을 상실한 프로브들이 머나먼 자원 나르기를 하면서도 병력이 왜 이리 많은 거냐?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음에도 엄청난 병력에 그만 청천병력같은...홍일점은 마지막으로 "nappayo"라는 말이라도 치고 gg를 치려고 했다는데 그 틈도 주지 않고 앨리... 아 그 전설 속에서나 볼 수 있다는 앨리 내가 컴에게만 쓰는 앨리를 실전 게임에서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나는 순간 지갑을 꺼냈다. 포커판에서 로얄스트레이트플러시를 보면 지갑을 열어야 한다지 않은가.
이 경기의 패인은 초반 압박에 들어간 럴커 1마리가 댄스하다 그냥 잡힌 거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 시점부터는 연료의 화학작용으로 기억세포들이 마구 죽어갔을테니까)
제 3경기 로템 (확실하지 않다) 우리편 총무 8시 테란 나쁜편 아직도 지원병 12시 플토
이 경기를 시작하기 전 총무는 우리편들에게 걱정말라며 위로를 했다. 그간의 내공 살피기에서 음 나름대로의 전략적 플레이어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우리는 충분히 기대를 하고 있던 터였다.
게임시작 후 우리의 총무는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 본진 배럭에 이어 배럭널뛰기 등 온갖 희안한 신공을 다 펼치면서 그냥 졌다. (이제부터의 내용은 거의 창작 수준이므로 사실성 여부를 가지고 따지면 무조건 사과하겠다.)
게임의 중간에 내가 또 정찰을 가서 온갖 방해를 했다. 심지어는 육중한 내 머리로 상대방 모니터를 가로 막기도 해 보았지만 우리편 총무는 그것은 우리팀을 두 번 죽이는 거라고 하면서 아예 손을 묶으라고 했다. 하지만 위에서도 밝혔지만 듬직한 나쁜편 지원병은 고령의 뱃살신공은 그저 왼손하나로 치워버릴 정도의 막강한 내공의 소유자였기에 하릴없이 정찰병은 패퇴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자 이제는 아무리 웃고 즐기는 가식의 얼굴들을 할지라도 이건 장난이 아닌거다. 뭔가가 필요했지만 그것이 뭔지를 아무도 찾지를 못했다. 상대편 대기주자인 전직교수와 공무원은 무료했음인지 자기네끼리 게임을 두 판이나 하고 있다. 중간에 종종 알피는 곳에 댓글까지 남겼단다. 음 우리편은 총체적으로 무시를 당하고 있던거다.
제 4경기 로템 우리편 과묵한 탄약전문가 8시 플토 진짜 나쁜편 지원병 12시 테란 (랜덤이었는지는 확실하진 않음)
많은 전문가 아니 그날의 멤버들이 이게 진짜 진검 승부다라고 했고 내심 우리편이 이기면 역올킬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저쪽의 지원병은 게임 중 연신 앗싸를 연발하면서 자기도취된 홍진풍과 같아서 과연 저 광기를 우리의 과묵한 탄약전문가가 잠재워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은 곧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의 탄약전문가는 중반까지는 꽤 팽팽한 접전을 유도했지만(그랬던거 같다) 결국은 "아 테란은 너무 싫어"라는 몇 번의 절규와 함께 gg
침묵 또 침묵 (나쁜편의 지원병은 게임이 끝났는데도 연신 앗싸를 외치고 있다. 주변의 사람들 부럽다는 눈초리는 당연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올킬을 당한 것이다. 방송경기에서 나오면 와 하는 환호성과 함께 감동을 느꼈던 장면이 오늘은 처참한 기분으로 다가올 줄 누가 알았던가.
모두는 주섬주섬 각자의 짐을 챙겨서 나왔다. 도저히 이 기분으론 집에 못간다며 근처의 희망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는 도중 나와 총무는 연신 "음 사회생활 하는데 애로사항 있겠는 걸" , "그렇죠 군대에서는 더욱 힘들텐데" 하면서 연신 부하갈구기 신공을 펼쳤지만 하늘 끝까지 올라간 지원병의 기세는 꺽이기는 커녕 "올킬에다 앨리까지 시켰으니 오늘 일기 써야겠다"며 우리를 세 번 죽이기까지 했다.
그렇다(again) 우리는 그저 올킬만 당한 것이 아니었다. 앨리까지 당한 것이었다. 이 부분에서 우리편이었던 홍일점의 작은 소동(지원병을 죽일 뻔 했다. 말로)이 있었으나 전직교수와 공무원의 가식적인 만류로 큰 탈없이 수습을 하였다.
희망집에서 우리의 총무는 나에게 많은 전략과 치렀던 게임의 아쉬움을 무지 무지 많이 열과 성의를 다하여 얘기해 주었지만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졸린 눈을 깜박이며 그저 매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무지 미안했다. 바로 옆좌석에서는 지원병의 무용담이 끊일줄 모르고 이어졌고... 우리의 추억은 그렇게 끝나갔다.
하나의 만남은 하나의 추억이 되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는 체력이 뒷 받침이 되는 고로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기로 했단다. (부러웠다.)
내가 빠진 만남은 그들의 추억이고 나와 같이 했던 만남은 우리의 추억이다. 오늘의 추억은 좀 더 색다르게...
"올킬드의 추억"이다. We were all killed by Always.
P.S.)
1. 추억이므로 반말투로 써 보았습니다. 또한 자유게시판이므로... 다만 최근에 올라오는 자기 체험담이 이글 때문에 같이 뭇매를 맞지 않기를 바랍니다. 시간적 여유를 조금만 가지시고 마음에 안드는 것은 무관심으로 그저 넘어가 주심이 어떨까요?
2. 지원병님의 입대를 축하(?)합니다. 몸 건강히 다녀오세요. 입대전 연락주시면 언제든...
3. 교수님의 입성을 축하드립니다. 많은 활약(?) 기대합니다.
4. 총무님 계속하라면 혹시 모를 구설수가 있을 수 있으므로...수고하셨습니다.
5. 공무원님 계속 우리나라를 위해 애써주시길 바랍니다.
6. 홍일점님 좀 더 관심가져 주시고요?
7. 과묵한 탄약전문가님 다음에는 흔적하나 남겨주시고요 (집요하죠)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