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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7/06 11:05:45 |
Name |
총알이 모자라. |
Subject |
[역사잡담]내가 좋아하는 역사속의 인물 - 조선의 알려지지 않은 천재 송구봉 |
구봉 선생의 명은 익필(翼弼), 자는 운장(雲長), 호는 구봉(龜峯) 또는 현승(玄繩) 본관은
여산(礪山), 사련(祀連)의 아들로 중종 29년(1534)에 현 파주시 교하면 산 남리 심악산하
궁동에서 생장하였으며 선생을 잉태 후 심악산에 나무들이 고갈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
고 있습니다. 동생 운곡 송한필(雲谷宋翰弼)도 문학에 이름이 높아 대학자 율곡 이이(栗
谷 李珥)가 말하기를 성리학을 알만한 사람은 오직 익필과 한필 형제 뿐이라 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서출(庶出)로서 벼슬을 하지 못하였으나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과 사우교제하면서 성리학에 통달했고 예학 (禮學)과 문장에 뛰어나 이산해, 최경창, 백
광홍, 최 입, 이순인, 윤탁연, 하응임 (李山海, 崔慶昌, 白光弘, 崔笠, 李純仁, 尹卓然, 河應
臨)등과 함께 8文章의 한사람 으로 손꼽혔으며 시와 글씨에도 능하였다 합니다. 당시 현
고양시 송포동 구봉산 기슭에서 후진을 양성 문하생 중 김장생, 김 집, 정 엽, 서 성, 정홍
명, 김 반 등 많은 학자가 배출되었으며 이중에서 특히 金長生이 그의 예학을 이어받아 대
가가 되었습니다.
구봉은 7세 때 ‘산가모옥월참차山家茅屋月參差 - 산 속 초가집에 달빛이 어른거리네’라는
싯구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하였고, 20대에 이미 ‘8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으며, 시와
글씨에도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당대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는 서로의 학문적 경지를 흠모해 평생
에 걸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구봉은 신분차별이 엄격하였던 조선중엽에 태어나
종의 자손이라는 신분상의 문제와 동인들의 방해로 끝내 정계에 진출하지 못하였습니다.
구봉의 외 증조모는 안씨 집안의 종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송사련은 자신의 출세를 위
해 외삼촌인 안당의 일가를 몰락시켰고, 신사무옥辛巳誣獄이라 불린 이 사건은 가문과 혈
연관계를 중시하는 당시 유생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송씨 일가의 이러한 약점
은 자식인 송구봉의 대에 이르러, 동인들에 의해 불거지게 됩니다. <선조수정실록>에는
‘사노(私奴:남자 종) 송익필을 체포하라!’는 요지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가 일찍이 관
직을 포기하고 교육자로 나선 것도 이러한 출신상의 배경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송구봉은 학문만 대단했던 것이 아니라 번개가 치는 듯한 안광과 당당한 풍채에서 우러나
오는 독특한 기백으로 인해 많은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시 조정에서 판서의 직위에 있던 홍가신은 송구봉을 흠모하여 자주 서신을 보내 학문과
업무에 관한 대소사에 많은 자문을 구했습니다. 이런 홍가신에게 경신이라는 동생이 있었
는데 동생 경신은 판서의 직위에까지 오른 형이 한낱 종의 자손에게 굽실거리는 것을 무척
이나 못마땅하게 여겨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내곤 했습니다.
두고만 보던 형은 어느 날 동생을 불러 편지하나를 건넸습니다. "너, 이걸 가지고 구봉 선
생께 전하거라." 평소 가뜩이나 불만이 많은 동생 경신은 길길이 뛰며 화를 내며 "종놈의
자식한테 제가 왜 갑니까?" 그러나 형은 이런 동생을 잘 달래 기어이 보냈습니다. "가서 서
신만 전하거라." 형의 명을 끝내 어길 수는 없어 동생은 단단히 벼르며 송구봉의 집을 찾아
갔습니다.
집에 당도해 사람을 부르니, 마침 밖에 아무도 없었는지 마중을 나오는 사람이 없었습니
다. 이에 홍경신은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습니다. "종의 자식이 이럴 수 있다니, 게 익필이
있느냐!" 방안에서 글을 읽고 있던 송구봉은 낯선 사람이 함부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을 듣고 이상하게 여겨 직접 마루로 나와 손님을 맞았습니다. "그 뉘시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송구봉을 욕보이겠다고 기세 등등하던 홍경신이 갑자기 깍듯이
절을 하며 예절을 차리는 것이었습니다.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리로 가지고 오시
오." "아닙니다. 그냥 여기 놓고 가겠습니다." 그리고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온 동생에게 홍가신이 물었습니다. "편지는 전했느냐?" "아뇨, 못 전했어요. 정신이 까
막까막해서 놓고만 왔습니다." 그러자 형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정신이 까막까막한 것만
아니라, 너 오줌쌌지? 구봉 선생과 마주 앉아 쳐다보는 건 율곡 하나고, 성우계는 나하고
곁에 앉아 얘기하는데 구봉 선생과 마주 앉으면 벼락치는 것 같아서 나도 마주 앉지는 못
하느니라." 훗날 홍경신은 자초지종을 묻는 세인들에게 '절을 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무릎
에 힘이 빠져 넘어진 것'이라며 변명을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구봉을 알아주는 몇 안 되는 지기였던 율곡은 다가오는 국가의 환란을 짐작하고 선조에게
송구봉을 끊임없이 천거했다고 합니다. 당시 율곡은 성우계와 함께 송구봉이 병조판서라
도 하면 왜놈은 공격할 마음조차 못 먹는다며 여러모로 선조를 설득하였습니다. 율곡에 대
한 신임이 두터웠던 선조는 마침내 그를 만나보기에 이르렀고 우여곡절 끝에 송구봉과 대
면하게 된 선조는 그의 학식과 경륜에 찬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조가 보니 송
구봉은 눈을 감고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경은 왜 눈을 뜨
지 않소?" "제가 눈을 뜨면 주상께서 놀라실까 염려되어 이리하옵니다." "그럴 리 있겠소?
어서 눈을 뜨시오. 어명이오." 이에 할 수 없이 눈을 뜨니, 선조는 그만 그의 눈빛에 놀라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눈도 제대로 쳐다볼 수 없는 신하를 조정에 둘 수가 없다 하여
이 일은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송구봉에 관하여 전해지는 정사나 야사에는 꼭 율곡 이이가 함께 등장합니다. 송구봉을
알 만한 이는 율곡 정도였고, 관직에 등용될 수 없는 신분인 송구봉은 자신의 뜻을 율곡을
통해 펴고자했습니다. 그가 나중에 동인의 미움을 받아 노비가 된 것도, 율곡과의 친교로
서인의 정책 자문 역할을 많이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율곡의 〈서자 허통: 서자들을 등용하는 일〉에 대한 사상 때문에 율곡을 뛰어난 혁명적
정신의 소유자라고 생각한 송 구봉이 어느 날, 율곡에게 자식의 혼인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율곡은 송 구봉에게,
"벗은 옳거니와, 혼인은 어렵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송 구봉은 율곡에게서 혼인에 대하여 거절을 당하자 담담히 웃으며,
"율곡도 역시 속인을 못 면했군!"
하였습니다.
이것에 대하여 율곡으로서도 항상 인륜이 근본을 따져서 적자와 서자의 구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 왔던 만큼 족히 실행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마는, 국법이 정식으
로 고쳐지기 전에는 역시 어떤 혼란을 가져올 것을 생각하고 실행에까지는 옮기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후 율곡은 십만양병설을 건의하지만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던 당시 중신들의 반대로 무
산되고, 그는 임진왜란이 닥치기 전에 죽고 맙니다.
율곡 이이 선생이 세상을 뜨자, 그의 죽마고우이던 구봉 송익필은 애도의 시를 지어서, "그
대와 나는 합해서 하나인데, 반쪽만 남은 나는 사람 구실 못하겠네" 라는 애절한 슬픔을 토
로했습니다.
고봉은 이순신에게 병법을 가르쳤다고 알려졌는데 병법을 가르칠 때 아래 시를 유념하도
록 하였습니다.
월흑안비고(月黑雁飛高) 달 밝은 밤에 기러기 높이 나니
선우야순도(戰于夜循道) 선우는 밤에 도망치리라
또한 심심 당부하기를
“독룡이 숨어있는 곳의 물은 편벽 되게 맑으리라(毒龍潛處水偏靑)” 하니 이러한 일곱자 글
귀를 이순신 장군은 잊지 않고 잘 이용하였다 하는데 그것이 바로 열 두척의 배로 적을 맞
이한 명랑해전입니다.
전설과 야사가 섞여 있지만 송구봉 이란 사람이 시대의 차별을 뛰어넘는 훌륭한 인재였음
은 분명합니다.
ps. 이 글의 주요 내용은 네이버 블로그 白山運化에 있습니다.
ps. 우리나라 인물을 올려달라는 말씀에 그냥 생각나는대로 급하게 올립니다.
당분간은 책을 좀 봐야겠군요.
도배라고 무어라 하시면 그냥 봐주세요 하고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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