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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7/05 09:47:52 |
Name |
총알이 모자라. |
Subject |
[역사잡담]내가 좋아하는 역사의 인물 - 풍환의 狡兎三窟 |
狡 : 교활할 교 兎 : 토끼 토 三 : 석 삼 窟 : 구멍 굴
풍환(馮驩)은 제(齊)나라의 재상(宰相)인 맹상군의 식객(食客)이었습니다. 맹상군은 왕족
인 정곽군(靖郭君) 전영(田)의 아들로 이름은 전문(田文)이고, 맹상군은 그의 호입니다.
풍환은 본디 거지였는데 맹상군이 식객을 좋아한다는 말에 짚신을 신고 먼 길을 걸어왔습
니다. 맹상군은 그의 몰골이 하도 우스워 별 재주는 없어 보였지만 받아주었습니다.
맹상군은 그를 3급 숙소(宿所)에 배치했는데 고기 반찬이 없다고 늘 투덜댔고 그래서 2급
숙소로 옮겨 주었는데 이번에는 수레가 없다고 불평을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1급 숙소로
옮겨 주자 그럴 듯한 집이 없다며 투덜댔습니다.
그렇다고 맹산군이 그를 쫓아내거나 하지는 않았고 다만 기분이 상했습니다.
당시 맹상군은 설(薛:현재 山東省 동남지방)에 1만 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지만 3천 명
의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부족해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도
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보내 독촉할까 궁리하고 있는데 1년간 무위도
식(無爲徒食)으로 일관(一貫)했던 풍환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출발할 때 그는 “빚을 받고
나면 무엇을 사올까요?” 하고 묻자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소. 여기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
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설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아서 차용증을 하나하나 점검한 후 이자만 해도 10
만 전을 받았습니다. 예상 외의 좋은 결과였습니다. 징수가 끝나자 그는 사람들에게 잔치
를 벌이고 말했습니다. “맹상군은 여러분의 상환 노력을 어여삐 보고 모든 채무를 면제하
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는 모아 놓았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습니다. 차용증
은 모두 재로 변하고,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 않았습니다. 설에서 돌아온 풍환
에게 맹상군이 “선생은 무엇을 사오셨는가?”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이때 풍환이 말하기
를 “차시풍환왈 군지부족즉은의야 이소차서위군매은의래(此時馮驩曰 軍之不足則恩義也
以燒借書爲君賣恩義來;당신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
라 당신을 위해 돈주고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라 하였다. 그러자
이말을 들은 맹상군은 매우 마땅찮은 기색이었다.
1년 후 맹상군이 제나라의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에게 미움을 사서 재상직에서 물러나
자, 3천 명의 식객들은 모두 뿔뿔이 떠나버렸고,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에 가서 살라고 권
유했습니다. 맹상군이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에 나타나자 주민들이 환호하며 맞이했습
니다. 맹상군이 풍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리를 샀다고 한 말뜻을 이제
야 겨우 깨달았소.” “교활한 토끼는 구멍을 세 개나 뚫지요[狡兎三窟]. 지금 경(卿)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 고침무우(高枕無憂:베개를 높이 베고 근심없
이 잠.)를 즐길 수는 없습니다. 경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도 마저 뚫어드리지요.”
그래서 그는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설득하여 맹상군을 등용하면 부국강병(富國强兵)
을 실현할 것이며 동시에 제나라를 견제하는 힘도 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마음이 동
한 위의 혜왕이 금은보화를 준비하여 세 번이나 맹상군을 불렀지만 그 때마다 풍환은 맹상
군에게 응하지 말 것을 은밀히 권했습니다.
이 사실은 제나라의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아차 싶었던 민왕은 그제서야 맹상군의 진
가를 알아차리고 맹상군에게 사신을 보내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고 다시 재상의 직위를 복
직시켜 주었습니다.
두 번째의 굴을 파는데 성공한 풍환은 세 번째 굴을 파기 위해 제민왕을 설득, 설 땅에 제
나라 선대의 종묘를 세우게 만들어 선왕(先王) 때부터 전승되어 온 제기(祭器)를 종묘에
바치하도록 했습니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영지에 있는 한 설혹 제왕의 마음이 변심한
다 해도 맹상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습니다. “이것으로 세 개의 구
멍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주인님은 고침안면 하십시오.”
맹상군이 재상으로 복귀하자 떠나갔던 식객들이 돌아왔습니다. 맹상군은 그들에게 서운
한 감정이 들어 복수를 하려하자 풍환은 그를 말렸습니다.
"귀할 때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천할때는 떠나기 마련입니다. 아침에 시장에 가면 사람들
은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먼저 들어가려 애를 쓰지만, 저녁이 되면 모두 어깨를 축 늘어뜨
리고 시장을 떠나갑니다. 이는 시장이 좋거나 싫어서가 아니고 그들이 원하는 물건이 있
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며 이익이 없으면 떠나고 이익이 있으면 모이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
니다."
맹상군은 복수하려던 마음을 접었습니다.
이리하여 맹상군은 재상에 재임한 수십 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아니했는데 이것은 모
두 풍환이 맹상군을 위해 세 가지 보금자리를 마련한 덕이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 풍환
을 《戰國策》〈제책편(齊策扁)〉에서는 ‘풍훤(馮)’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 고사는 불안
한 미래를 위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로, 완벽한 준비 뒤에는 뜻하지 않는 불행은 찾
아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풍환은 이익을 쫓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했지만 스스로는 실권한 맹상군을 떠나지 않고
그를 위해 일을 했으니 이익을 탐하지 않고 의리를 중시한 인물인 것 같습니다. 진정한 의
인은 은혜를 잊지 않고 원한은 가슴에 두지 않는다고 했으니 풍환은 진정한 의인의 모습이
라고 하겠습니다. 원한은 가슴에 두고 은혜는 쉽게 잊어버리는 얄팍한 가슴을 가진 저같
은 사람은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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