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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7/01 11:50:33
Name 총알이 모자라.
Subject [역사잡담]내가 좋아하는 역사의 인물 진평
진평(? ~ BC 178)은 서한 왕조의 개국 공신의 한 사람으로 서한 초기에 승상을 역임하였

습니다. 일찍이 지략이 뛰어난 모사(謀士)로 알려진 그는 양무(陽武, 지금의 하남성 原陽

동남)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황로학(黃老學)을 좋아하였

으며, 진나라 말기에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봉기하자 그는 위왕(魏王) 구(咎)를 섬겼

으나 중용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항우(項羽)에게 기탁하여 진나라 공격에 가담하기도 하

였으나, 그때까지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자 후에는 다시 유방(劉邦)을 섬겼습니다.

유방은 진평을 대면한 후 그를 매우 신임하여 호군중위(護軍中尉)에 임명하였습니다. 이

후 그는 항상 유방의 막하에 있으면서 뛰어난 계책을 짜내어 몇 번이나 유방의 위난을 구

했으며, 항우와의 승패를 건 초한전(楚漢戰)에서도 그는 타고난 지모를 발휘하여 유방의

중요한 참모가 되었습니다.

진평은 유방을 섬긴 후 여섯 번 기계(奇計)를 내고 여섯 번 봉록이 올라갔습니다. 그 중 진

평의 뛰어난 계책으로 유방 군이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해 보겠습니다.

BC 205년 관중(關中)을 수중에 넣은 유방은 56만의 대군을 이끌고 항우의 본거지인 팽성

(彭城)을 덮쳤지만 항우의 반격으로 괴멸의 쓴잔을 마시고 말았습니다. 이에 유방은 형양

(滎陽)으로 물러나 패잔병들을 집결시켜 포진했습니다. 후방의 관중에 있으면서 수비 책

임을 지고 있던 소하(蕭何)로부터는 새로운 부대가 편성되어 투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전열이 채 가다듬어지지 않았던 유방은 항우에게 강화를 제의했으나, 항우는

이를 거절하고 서서히 형양성을 향한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했습니다. 형양성에 고립되

어 위기를 느낀 유방은 진평에게 그 계책을 논의했습니다. 진평은 먼저 항우 진영을 이간

질하여 내분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항우 진영으로 첩자를 파견하여 종리매

(鍾離昧)를 비롯한 항우의 측신들이 반란을 도모한다는 소문을 내게 하였습니다. 이로써

항우는 종리매 등 측근의 장수들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마침 항우 진영에서 유방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이 사자에 대해 유방은 호화로운

연석을 베풀고 왕을 받들 때만 내어놓는 귀중한 보물인 정려(鼎呂)까지 준비시켰습니다.

그런 다음에 사자의 얼굴을 보면서 자못 놀란 듯이 "이런, 나는 범증(范增)의 사자인가 했

더니 항우의 사자였던가"라고 말하고는 준비한 요리를 모두 물리게 하고 새로 형편 없는

요리를 가져오게 했습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진평의 계책이었던 것입니다.

사자는 돌아가서 이러한 상황을 항우에게 그대로 보고하였습니다. 범증은 항우 진영의 가

장 뛰어난 참모였는데, 항우는 이 일로 인하여 범증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범증이

유방의 형양성을 급습할 묘책을 권했지만 항우는 그를 상대하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렇게 항우의 의심을 사게 된 범증은 마침내 항우에게 작별을 고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도

중 등창이 나서 죽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범증을 항우 곁에서 쫓아 버린 진평은 기회를 보아 먼저 여자들로 편성된 2천여

명을 형양성의 동문으로부터 출격시켜 항우군이 이것을 공격하는 사이에 야음을 틈타 유

방을 서문으로부터 탈출시켰습니다.

유방은 함곡관에 들어가자 재차 병력을 집결시켜 반격을 개시하였습니다. 진평의 이간 공

작으로 범증이라는 뛰어난 참모를 잃은 항우는 이때부터 서서히 수세에 몰리게 되었습니
다.

BC 202년 유방은 숙적 항우를 물리치고 정식으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는 그 이후에도 반역자의 속출에 머리를 앓고 그 진압을 위하여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동

분서주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이 동안에 진평은 시종 고조(高祖) 유방과 행동을 함께

하면서 뛰어난 계책으로 반란군의 진압에 많은 공헌을 하였습니다.

잇따른 반란 가운데서도 가장 유방의 마음을 떨게 한 것은 아마 초왕(楚王) 한신(韓信)의

반역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신은 당대 그와 비견할 사람이 없는 용병의 명수였

으며, 유방의 군단과 거의 필적할만한 대군단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위기를 구한 것이 바로 진평의 책략이었습니다.

고조 6년(BC 201) 한신이 모반을 기도하고 있다는 상서가 있었습니다. 유방은 한신을 정

면으로 치려고 하였으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유방은 진평을 불

러 계책을 논의했으며, 진평은 유방을 위하여 이러한 계책을 내놓았습니다.

"옛날 천자는 천하를 순행(巡幸)하여 제후와 회동하였습니다. 남방에 운몽호(雲夢湖)가

있습니다. 이번에 폐하는 이곳을 순행한다고 속이고 제후와 진(陳)의 땅에서 회동해 주십

시오. 진(陳)은 초(楚)의 서쪽에 있으니 천자가 나들이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리 한신

일지라도 일을 꾸밀 수는 없습니다. 아마도 스스로 찾아와서 알현을 청할 것입니다. 그때

가 바로 기회입니다. 강력한 자 한 사람이면 문제없이 그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일행이 진(陳)의 교외에 다가가자 과연 초왕(楚王) 한신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유방은 미

리 무장병을 배치해 두어 한신이 모습을 나타내자 기회를 주지 않고 그를 포박하였습니

다. 이때 한신은 다음과 같은 비통한 말을 토했다고 합니다.

"과연 내려오는 말이 맞도다. 민첩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하던 개는 소용이 없어 삶아 죽이

고(狡兎死, 走狗烹),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은 감추어진다(高鳥盡, 良弓藏). 적

국을 치고나면 모신(謀臣)은 망하는구나. 천하는 이미 정해졌다. 나는 처음부터 삶겨질 운

명이었어!"

실은 이때 한신의 마음은 확실히 동요는 있었지만 모반에까지는 용단을 내리지 않았었습

니다. 그러나 유방은 진평의 헌책에 의해 미연에 그 화근을 끊어 버렸던 것입니다.

한 고조 유방이 세상을 떠난 후 혜제(惠帝)가 제위를 계승하였습니다. 혜제 6년(BC 189)

에 진평은 상국(相國)인 조삼(曹參)의 뒤를 이어 좌승상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후 혜제가 세상을 떠나자 혜제의 모후인 여후(呂后)가 정치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로부터 8년간에 걸쳐 여후의 친정이 계속되면서 여씨 일족이 전횡을 일

삼았습니다. 여후는 정치의 실권을 장악한 다음 여씨 세력을 확대 강화하는 일에 전념했으

며, 나아가서는 여씨 일족을 각지의 왕위에 앉히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때 우승상인 왕릉

(王陵)은 여후에게 그 부당함을 간했지만, 진평은 여후의 그러한 처사에 그대로 동의하였

습니다. 왕릉이 진평의 태도에 항의하자 진평은 태연하게

"여후 앞에서 직언을 하는 것은 내가 당신만 못하지만 유씨의 나라를 지키는 것은 당신이 나만 못하오."

이후 여후는 왕릉을 우승상에서 파면하고 진평을 최고의 직위인 우승상에 임명했습니다.

진평은 여후 밑에서 우승상에 있는 동안 모든 것을 여후가 하는대로 내 버려두었습니다.

심지어는 여씨 일족을 왕위에 세우는데도 유유낙낙한 채 그대로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후가 죽자(BC 180년) 진평은 태위(太尉, 국방장관)인 주발(周勃)과 짜고 일거

에 여씨 일족을 주살하고 문제(文帝, BC 180~157)를 옹립함으로써 유씨의 천하를 회복시

켰습니다. 굳이 여후의 뜻을 거슬리려 하지 않고 요령부득의 처세로 일관했던 것은 원래부

터 이러한 목표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문제(文帝)는 여씨 타도의 제일 공로자로 여긴 주발을 우승상에, 진평을 좌승상에 임명하

였습니다. 그 후 주발이 우승상을 사직하고 물러나자 진평은 혼자서 승상을 맡았으면서 어

진 재상의 명성을 떨쳤습니다.

BC 178년(문제 2년)에 진평이 세상을 떠나자 문제는 그에게 헌후(獻侯)의 시호를 내렸습

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진평을 이렇게 평하였습니다.

"진평은 마지막에 고조의 막하에 몸을 의탁하고 항상 뛰어난 계책을 짜내어 분규와 나라

의 환난을 구했다. 여후의 시대는 바야흐로 다사다난했다. 그러자 진평은 스스로의 활약으

로 위난을 벗어나 한나라의 종묘를 편안케 하고 명예롭게 생애를 마쳐 어진 재상으로 찬양

받았다."

저는 진평이야 말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였으며 자신이 굽힐 때와 일어설 때를 아

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당당한 패기와 기개를 높이 평가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는 것은 유연한 사고와 부끄

러움에 굴하지 않는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전쟁터에서 멋지게 죽은 장수는 높은 평가를 받지만 진평과 같은 인물은 비겁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듯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해있는 상황들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진평과 같은

성향의 인재가 설자리가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희생도 좋겠지만 자신

을 보전하면서도 보다 큰 것도 지키는 것이 현명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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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너를
04/07/01 11:57
수정 아이콘
역시 삼국지의 "가후"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진평 선생;;

숙청이 두려워서 은둔해버린 장자방 선생이나 숙청 당한 한신에 비해서 처세에 있어서는
역시 몇 수 위인 인물로 평가될 수 밖에 없겠죠;;
총알이 모자라.
04/07/01 12:06
수정 아이콘
삼국지는 한대 이후의 역사이니 진평의 냄새가 솔솔 풍기는 가후라고 해야 맞을듯 하네요^^ 딴지는 아니고요.
김준용
04/07/01 13:03
수정 아이콘
토사구팽의 어원은 한신에게 있군요. 저는 초한에서는 장량이 가장 좋습니다. 장량이 숙청이 두려워서 은퇴하다니요. 장량이 그러면 아들을 관직으로 내보냈을까요?
DayWalker
04/07/01 13:17
수정 아이콘
한신이나 진평이나 장량이나 소하.. 모두들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던 대단한 사람들이죠. 저는 초한지에서 유방 휘하에 있던 사람들은 다 매력 있더군요. 어떻게 그런 인재들이 유방한테로 다 갔을지, 정말 유방의 인덕이 좋았던 건지 승자의 신하들이라 더한 평가를 받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무튼간에 참 신기한 일이죠.^^
04/07/01 13:20
수정 아이콘
음;;;어떤 책에서 보았는데 유방은 그냥 마을에서 놀고 먹던 건달,한량이였다던데......역시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는게 아닌듯.....물론 그만큼 능력이 있었다는거겠지만......(유방은 자기 자신의 능력은 별볼일 없지만 훌륭한 인재들을 자기 편에서 잘 다룰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Grateful Days~
04/07/01 13:46
수정 아이콘
그런데 한신이 과연 진짜 반역을 꾀했을까요?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_-;;
그래도너를
04/07/01 13:59
수정 아이콘
유방은 그릇이 작은 반면에 (정말 양아치) 여러 사람의 충고를 잘 섭취하는 능력이 있어서 항우를 이길 수 있었죠
달라몬드
04/07/01 14:00
수정 아이콘
음 한신은 저도 좋아하는 인물인데...
총알님은 지식의 화수분을 가지고 계신감요? 아 이 자신감 결여된 불안감.
종합백과
04/07/01 14:11
수정 아이콘
일견에는 이런설도 있습니다.

유방은 다중인격자였는데, 대범함과 소심함, 옹졸함과 깊은 사려심이 복합된 특이한 존재라고 평하는 사저도

있습니다. 그의 성공에는 우연과 관계된 일들이 많고, 그는 인간적으로도 그다지 매력이 많지 않은 자였으나

너무나도 강력한 초패왕 항우를 견제하기 위해서,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보신을 위해서만 노력했던

어찌 보면 신하들이 언제든 뒤엎어버릴 수도 있는 정도의 그릇인 유방을 택했다는..

그러나, 그들이 생각지 못했던 부분은, 역시 그의 성격.. 한신은 당장의 모반은 꾀하지 않았더라도, 역사서에도

등장하듯이, 스스로 왕이라 칭하기를 요청하는 등, 상당히 독립적인 성향의 장수였을 듯 합니다. 또한 불리한

상황에서 그는 유방과는 별개로 군대를 구축, 전쟁의 향방을 바꾸는데 유방과 엇비슷할 정도의 공로를 세웠죠.

한신이 모반을 해려 했든, 그러지 않았든, 어떤 상황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소심해 보이던 유방이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 반대로 자신과 일가의 보신을 위해서는 번개같이 행동했다 라고 보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보면,

난세를 평정한 이후, 스스로 물러날 줄 아는 자 아외에는 개국공신 중 살해되는 자들이 적지 않죠.
종합백과
04/07/01 14:14
수정 아이콘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현 파병 상황에 대한 인식이 잡히는듯 한 건 저만의 착각 ^^a

자신의 지지기반을 외면하면서 까지 더 큰것을 바라봐야 하는 노 대통령의 심기도 헤아려 주시는 분들이

많기를 바라면서...
총알이 모자라.
04/07/01 14:46
수정 아이콘
음..종합백과님이 눈치를...
유방의 강점은 자신이 무식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하들이 직언을 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의강
04/07/01 16:09
수정 아이콘
한신이 마음만 먹었다면 진작 유방에게서 독립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너를
04/07/01 17:29
수정 아이콘
전국 통일 직후 한신이 초왕일 당시의 병력이 유방의 병력보다 더 많았다고 하더군요
한신이 마음만 굳게 먹었다면 다시 한신 우위의 천하 양분체제로 나갈 수 있었으나
한신은 유방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던 듯;; 설마 개국공신인 나를 숙청할까? 하고 생각만하다가
결국 먼저 당하고 말았다는
총알이 모자라.
04/07/01 17:36
수정 아이콘
뭐, 한신의 개인적인 능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상대적으로 참모진이나 믿을 만한 장수의 숫자가 적었으니 반란을 일으키는데 커다란 부담이 있었던것이 사실일겁니다. 결국 힘도 중요하지만 신뢰할 수 있는 두뇌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대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 할 수 있겠죠,
i_random
04/07/01 20:09
수정 아이콘
너무 좋은 글이네요.. 삼국지를 뺴고는 중국역사에 관련된 책을 본 적이 없는데 이런 재미있는 글들이 많으니 나중에 초한지나 열국지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그건 그렇고 총알이 모자라님처럼 보기 편하게 줄 바꾸고 칸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한글이나 워드패드에서 미리 써보시고 칸 맞춰서 줄 바꾸시나요??
총알이 모자라.
04/07/01 20:37
수정 아이콘
i_random님 저는 한글로 작성하고 복사해서 붙였놓은 다음 한줄씩 띄는 방법으로 합니다. 조금 귀찮아도 나름대로 좋은 방법인듯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중국의 역사아 우리나라의 잘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이야기 꺼리로 생각중입니다.
soundofsilence
04/07/01 22:48
수정 아이콘
제가 역사 이야기를 썼을 때는 조회수가 500을 넘기 힘들었는데...
총알이 모자라... 님이 쓰시니 1000이 금방 넘어가네요.
후... 이게 글발의 차이인가요?
암튼 재미있는글 잘 읽고 갑니다~~~
Grateful Days~
04/07/01 23:56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론 초한지보다는 열국지가 배울것들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진짜 역사 서술형이어서 약간 지루할지는 모르겠지만.. 얻을것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04/07/02 00:30
수정 아이콘
제가 읽은 초한지는 항우가 죽고 유방이 황제에 오르는 부분까지라서, 그 후의 이야기는 전혀 감을 못잡았었는데(어린이용이었습니다..ㅜ.ㅜ)
총알이 모자라님 글을 보니 어느정도 감이 잡히는군요.

유방은... 중국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황제의 이미지라죠.
든것이 없어서 뭐든 흡수해버릴 것만 같은 흡입력(이건 제생각입니다;;)
^^;
Connection Out
04/07/02 18:43
수정 아이콘
한고조야말로 한방 러쉬의 원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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