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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6/25 21:38:25 |
Name |
edelweis_s |
Subject |
서지훈 선수...! |
편의상 반말투로 서술하는 것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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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역시 무더위, 습도도 높아 불쾌지수 2천배 증가,
숙제도 많은데 아침자습 시간의 운동장 조회, 무더위의 여름날
수상하는 애들은 수십명... 애들 정렬 못 시킨다고 기열 씨(학생부장;;)에게
욕 잔뜩 먹고 돌아가 교실에 누워 있다가, 컴퓨터 수업을 받으러 갔는데
하필이면 또 플래시 시험보고, 연달아 터지는 제일 싫은 과목 수학...
오늘따라 미술 선생님은 뭔 그런 잔소리가 많으신지 짜증을 돋구고
또 기다리던 점심시간에 나온 반찬은 거의 환상의 수준......
6교시에 한 체육 수업으로 인해 HP -500 등등등...
오늘 학교에서의 생활은 정말 최.악. 그 자체였다.
거기다가 얼마 남지 않은 시험으로 인해 집에 가면 또 열심히 공부...
라는 지옥 수준의 하루를 그나마 위로 해 줄 수 있는 것은
7시의 질레트 스타리그였다. 집에 와 씻자마자 책상에 앉으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7시가 온다 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했다.
******
드, 드, 드, 드, 드디어 6시 55분!
문제도 다 풀었고 하니, 이제 슬슬 티비 시청을 할까...?
34번으로 채널을 돌리니 화면 오른쪽 상단에 선명하게 써져 있는
'질레트 스타리그'라는 글씨. 이전까지의 불쾌한 마음은
어디 갔는지 내 맘은 설레기만 했다.
1경기 최연성 선수와 전태규 선수의 대결은 전태규 선수가 이겼으면
좋겠고, 2경기 서지훈 선수와 박성준 선수와의 대결은 기필코
서지훈 선수가 이길 것이고, 3경기 나도현 선수와 박용욱 선수의
대결은, 글쎄... 나도현 선수도 잘하긴 한다만 박용욱 선수의 승리를
예감한다. 박정석 선수와 이윤열 선수와의 대결에서는 Xellos와의 결승전
대결을 위해서도 이윤열 선수가 기필코 이겨야만 하지, 그럼그럼.
그렇다. 난 서지훈 선수의 승리를 100% 확신하고 있었다.
그가 꼭 4강 진출에 성공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믿었다.
믿고 있었다.
******
나는 곧 사색이 되어야만 했다. 1경기가 막 시작할 쯔음 집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화.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기 충분했다.
"어, 아빤데. 지금 들어갈거야. 엄마 집에 계시니?"
"아니요, 어디 잠깐 나가셨어요."
"음, 그래..."
나는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독재자였다. 상당히 인자하신 나의 아빠였지만
티비 채널에 대해서 그는 히틀러 수준의 뛰어난 독재를 보여주곤 했다.
내가 온게임넷을 보자고 졸라도, 그 말을 개무시하시고 딴 곳으로
돌릴 것이 분명했다.
1경기 를 보는 내내 불안했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냐아냐,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기셔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일이야'
'아니면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짱 씨 아저씨랑 또 소맥 한잔 하실지도
모른 일이구...'
******
전태규 선수가 최연성 선수의 진출을 막으며 1시 멀티를 공략할때,
나의 희망을 처절하게 깨트리는 벨소리가 울렸다.
누군지 알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나의
"누구세요?"
에 대답하는 목소리는 역시, 그였다... 히틀러...;;
"아빠다."
힘없이 문을 열어드리고 '안녕히 다녀오셨어요'란 멘트를
잊은채 쓸쓸히 돌아섰다.
오늘 그 짜증나는 일과들을 내가 뭘로 버텼는데...
하기 싫은 공부도 7시 스타리그를 위해 정말 열심히 했는데...
스타리그 끝나면 다시 기분 좋은 맘으로 공부할려고 했는데...
정말 슬퍼서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그렇다. 오늘의 짜증나는 일들, 그리고 아빠로 인한 스타리그
시청 불가... 이 때부터 나를 경악하게 만들 그 일은 이미
터질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
아빠 다리를 붙잡고 울고불고 하다 시피 해서 결국은
1경기를 끝까지 보긴 했지만 약간 어이없는 사건 발생...
결국 단 한경기의 결과도 알지 못한채 바로 한 채널 뒤에서 하는
두산과 한화의 야구 경기를 봐야만 했다.
제길! 궁금해서 시험 공부는 어떻게 하라고, 아 짜증나...
그 때, 아빠가 채널을 마구잡이로 돌릴 때 잠시 온게임넷을
스쳤고, 살짝 보인 서지훈 선수의 얼굴!! 그가 약간의 웃음기를
머금은채(착각이었을 수도;;)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보자
어느 정도 심란한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래, 서지훈 선수는 어차피 이길텐데. 꼭 이기실거야.
안봐도 비디오지. 히히히...
******
식사를 끝마치고 잠시 소화를 시키면서 1경기에 대해
pgr 회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며 pgr에 들어왔다.
역시나 1경기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내용을 읽고 달린
댓글들을 읽는 중, 나는 나의 눈을 의심케하는 약 두줄 정도의
멘트를 목격했다.
잘 기억은 안나지만...
'그나저나 박성준 선수 정말 대단하군요, 서지훈 선수를 꺾고
4강에 진출하다니...'
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몇번이나 스크롤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계속 확인해보았지만 서지훈 선수가 졌다는 내용을 담고 있음이 분명
했다.
"아... 서지훈... 선수가..."
입에서는 절로 탄식이 새어나오고, 마우스를 잡았던 손으로 이마를
감싸쥐었다.
******
그를 믿고 있었다. 작년 부진이 있었지만, 여전히 서지훈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얼마전 그의 짧게 자른 머리를 보고
왠진 몰라도 더욱 믿음직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엠비씨 팀리그에서 박성준 선수를 꺾고 올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4강 진출을 100% 확신했다.
그런 그가, 그랬던 그가, 이렇게 탈락하고 말다니...
******
서지훈 선수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은 이사온 바로 직후였다.
그 전에 살고 있던 곳은 케이블 방송이 안나와서 온게임넷을
보지 못했지만, 이사 오니 온게임넷이 나오더라...
그땐 파나소닉 16강이 한창 진행중이었고 그 때만해도
지금의 세련 된 모습과는 달리 고등학생 티가 확확 풍기는
선수가 있었다. 그가 서지훈 선수였다. 그 때는 그에게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스타에 많은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냥 시간이 남을 때 온게임넷을 돌리는 수준이어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도 많지 않았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한 스타에 푹 빠져버렸고, 온게임넷 생각이나
돌려보니 올림푸스 스타리그가 진행중이었다. 그 곳에 나온 서지훈
선수를 보고 파나소닉의 서지훈 선수를 떠올리니 좀 많이 변해 있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별 관심이 없던 선수였다.
그 때는 이재훈 선수를 칼 타이밍 바카닉으로 밀어붙여 승리를 이끌어낸
임요환 선수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임요환 선수에게 매료 된 나는 그가 결승전에 가기를
꼭 바라고 있었다.
생각해보건대, 난 참 줏대 없는 놈이다. 평생 좋아할거라고 생각하던
임요환 선수를 4강에서 완벽하게 꺾어버린 서지훈 선수에게 한순간에
반하다니... 임요환 선수와의 4강전을 마치고 나니 서지훈 선수의
외모가 한층 빛나보이고, 그가 쓴 안경, 그가 입은 GO의 팀복이
왜 그렇게 빛나 보이던지. 아마 그때 "삘"이란게 꽂혔던 것 같다.
'아! 임요환 선수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게 될
사람은 바로 이 선수구나!'
라고......
그해 치뤄졌던 올림푸스 배의 서지훈 선수 대 홍진호 선수의
결승전은 내게 아직 최고의 경기로 각인되어 있고,
2003 올림푸스 배 스타리그는 내 머릿속에 추억이 가득한 스타리그로
기억 되어 있다.
******
아직도
조 지명식에서 '마음이... 아팠어요...'라고 말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이 아파온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 많은 기회가 남아 있기에 난 아직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비록 안경을 벗고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으로 예전과 많이 변해있지만
네오 비프로스트에서 홍진호 선수에게 역전승을 일구어낸 경기가
내 머리에 떠올라 난 아직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승하고 엄마 이야기를 꺼내면서 조금 흐느끼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서
난 내가 그를 여전히 좋아하는 것을 확신한다.
아직도 내 머리에 고등학생 시절의 검은 머리였던 그의 모습이
생각나기에, 그의 완벽한 플레이에 여전히 매료되어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기에, 난 그를 앞으로도 영원히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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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리그에서 다시 한 번 뛰어오르는 당신의 모습이 상상되기에
난 당신을 죽을 때까지 좋아합니다.
서지훈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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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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