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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6/16 18:30:03 |
Name |
Bar Sur |
Subject |
[글] 아득히 먼, 그곳의 챠우 경. |
나는 도중에 여러 책을 꺼내어, 어떤 것은 표지부터, 또 어떤 것은 첫 장부터, 아니면 어떤 것은 맨 끝만을 살펴보았다. 그건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이 주변에 흐르는 경향 속에서 나 자신을 조율하는 효과가 있는 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도중 나는 예기치 않게 다시 한 번 스콧 피츠제럴드와 조우했다. 이를테면 나의 긴 여정, 대륙을 횡단하던 중에 우연찮게 들르게 된 곳이 ‘피츠제럴드 마을’쯤 되는 것이다. 아기자기한 건물들과 서구적인 색채로 물들어 있는 중간지적 성향의 대지. 자동차의 배기가스와 말발굽에서 일어난 모래바람이 50대50정도로 뒤섞여, 짧게 끊어지는 기침과 어쩐지 작고 모자란 한숨을 동시에 자아내게 한다.
나는 그 마을에서 여유를 가지고 식사를 한다. 대낮부터 술까지 함께 파는 허름한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삐걱거리는 테이블 한쪽에 앉아서, 일상적인 기대와 조금 이른 포기를 적당히 섞어 과일주스처럼 식전에 미리 음미하면서 음식을 기다린다. 귀에 익지 않은 70년대 재즈를 한 곡 천천히 소화할 정도의 시간 뒤에서야, 며칠이나 빨지 않아 때가 든 레이스가 초라하게 달린 앞치마를 두른 여자 점원이 내가 주문한 비프스테이크와 미지근한 맥주를 가져왔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적당히 익혀진 스테이크, 샐러드의 양상추도 생각했던 것보다 싱싱하고, 신경 써서 올려놓은 감자튀김의 끝부분이 부끄러운 듯 바스러지는 소리가 결국에는 내 마음을 울렸다.
문제는 내가 그 음식에 나이프와 포크를 델 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이따금씩 먹을 것에 앞에 두고 주변 문제 따위로 갈등하곤 하는 어린아이의 마음에 근접하기도 하지만 이건 또 다른 문제다. ‘배가 고프다.’와 ‘먹고 싶다.’의 관계가 인과율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면서도 사실은 전혀 별개의 사실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주문했지만 정작 테이블 위에 올려진 스테이크를 먹을 수는 없다. 이곳에서는 그와 같은 행위가 용서되지 않는 것이다. 배가 부른 자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으며, 이곳의 어떤 지표도 그의 앞에서는 소멸해버리고 만다. ‘식당에 왔다.’에서 ‘주문을 한다.’까지는 어떤 시공의 터울 속에서도 서로간의 동질성을 가진다고 한다면, 그 다음의 ‘식사한다.’에 이르러서는 어떤 연관성도 머쉬멜로우가 녹아내리듯 소멸하고 만다. 이 공간에서 팽배하게 부풀어 있는 압도적인 편견이 단두대의 칼날이 내리치듯 그 사이를 가로막아버리는 것이다.
결국 아무 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피츠제럴드의 마을을 도망치듯 벗어난 나는 이름모를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했다. 모노톤의 중세의 성채를 닮은 주변의 산들에 둘러싸인 작은 분지, 그곳에 자리 잡은 그 마을은 지리적인 생김새만큼이나 나 같은 이방인을 반기지 않는 폐쇄적인 분위기의 작은 마을이었다. 주변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들 너머로는 실루엣처럼 다른 산들이 어른거릴 뿐, 모호한 경계처럼 별세계조차도 형태를 잃어버리고 만다.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외부인은 아마 ‘없는 사람’과도 같은 개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건 분명 내게 있어서 괴로운 일이지만 ‘없는 사람’인 나로서는 그 감각조차도 허상이 아닐까 싶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곳 사람들은 직접 포도주를 담그고, 시기가 여물면 이웃사촌 간에 각자의 완성품을 맛을 음미하며 따사로운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주 고운 빛깔이 나는 붉은 액체를 통해 이곳 사람들은 하루의 피로를 토하고, 내일 뜰 태양의 빛을 미리 그 안에 품어 그들 자신의 작은 영토를 축복하는 것이다. 그들의 말은 다정함을 형태로 하고, 그들의 행동은 친절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방인으로 이 땅에 도착한 내게 있어서, 그들의 친절함과 이 땅을 사랑함이란 아주 편협한 의미로서 국경을 넘어서면 쓸모가 없어지는 화폐규격과도 같았다. 그저 표면적인 의미의 작은 변화가 소유의 종말로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지루한 자연다큐멘터리처럼 한정된 범위에서 감동을 줄뿐 내 안에서 독자적인 생명을 취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나는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일만한 작은 언덕 위로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다. 그곳의 커다란 나무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거대한 그루터기가 멀리에서부터 내 시선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없는 사람’인 나는 겨우 나를 발견해준 존재를 만날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나를 볼 수도, 인간의 언어라는 매체를 통하지 않고서도 나와 자립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다. 애석한 점이 있다면 그가 인간이 아니라 다름 아닌 쥐라는 점에 있다.
살짝 보이는 갈색 털, 그리고 다난한 삶을 대변이라도 하듯 반쯤 잘려져 있는 짧은 꼬리. 거대한 그루터기 위에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인상적으로 몸을 일으킨 그 쥐는 어울리지 않게도 자신의 몸길이보다도 긴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그의 등장에 당황했기도 보다도, '꽤 어울리는군.'하고 순순히 생각할 뿐이었다.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도 첫 등장치곤 인상적이고 틀을 벗어나는 멋진 센스이지 않은가? 물론 그런 센스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퍽 많을 거야. 하지만 그의 센스를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하는 문제는 그리 우리의 만남에 있어서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지 않은가. 어쨌거나 우리는 이 접혀진 세계 속에서 교묘하게 감춰진 필요에 의해 서로를 끌어당긴 것이리라.
[여. 처음 보는 인간이로군. 그래, 어떻게 여기 오게 됐지? 자네도 나처럼 도망쳐 온 건가? 그래. 이름이 뭐야?]
“김지호라고 합니다. 음, 도망쳐 왔다는 건 맞는 말이기는 한데, 어디서부터 해당되는 말인지는 모호하군요.”
['도망쳤다.'라는 행위에 있어서 '어디에서부터'는 큰 의미가 없어. 차라리 '어디까지'가 더 큰 의미를 지니지. 미국이라는 나라, 3류 영화에 자주 나오지 않는가. 탈옥한 죄수들은 멕시코를 주로 찾더군. 유전자의 각인처럼 아주 사소한 발로에 의해 각성해서 자석처럼 이끌리지. 그들은 본 적도 없는 멕시코의 한적한 해변을 평생의 연인처럼 그리워하는 거야. 자기들이 살던 그 넓은 땅덩어리 어느 곳에도 느끼지 못했던,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향수에 사로잡히지.]
그의 이야기는 어딘가 핀트가 어긋한 것처럼 들리기도 했지만 그 나름대로는 나를 배려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정확히 어떤 식의 배려인지 잘 알 수 없는 건, 분명 내가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쓴 쥐를 만나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으응, 아마도 그럴 것이리라. 그런데 그의 말대로라면 그 역시도 도망쳐 왔다는 이야기로군. 그리고 나는 금세 나는 그가 무엇 때문에 이곳으로 도망쳐온 것인지가 궁금해지고 만다.
[그건 말할 수 없어.]
팔짱까지 끼며 거드름을 피우듯이 딱 잘라서 말하는 투가 제법 그에게 어울렸다. 음, 나는 왠지 그가 그렇게 말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예감이고 그것이 맞아 떨어졌다고 해서 모든 인과를 거기에 집약시킬 필요는 없다. 막상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자신을 움직이던 경향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상대의 단단한 가드에 한 번 부딪쳤다고 해서 무작정 물러나는 것도 잡지사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인 것이다. 나는 일단 되도록 부드러운 말투로 그에게 물어 보았다.
“어째서 말할 수 없는지 여쭤도 괜찮겠습니까?”
[이봐. 세상에는 말로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지 않은가. 어떤 말은 입 밖으로 그것을 꺼내는 순간 단순한 뜻과 음과 조합 이상의 힘을 가지게 되거든. 이를테면 입에서부터 시작되어 공기 중에 퍼져나가는 소리의 울림처럼 한계가 없지. 가장 흔한 예로는 이름을 들 수 있을 거야.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이름이야말로 가장 흔한 저주라고 말이야. 건전한 방식으로 살아온 한 명의 인간을 아무런 저항도 의심도 없이 완벽하게 속박해내지 않은가.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마 평생 내가 도망쳐온 이유를 타인에게 말하지는 않을 거야. 자네가 설령 이해해주지 않더라도 그것만은 어쩔 수가 없어.]
그렇게 말을 하면서 그는 양의 가죽 아래에서 손을 바쁘게 움직여 몸의 이곳저곳 가려운 곳을 수시로 긁적인다. 하긴 이런 여름날 양의 가죽 같은 걸 뒤집어쓰고 있으니 이나 진드기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어디까지나 말 속의 평온함만큼은 독일인의 원칙성처럼 유지하고 있는 그의 참을성에 순수하게 감탄하며 대답했다.
“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좋아. ‘아마도’란 아주 편한 말이지. 얼버무리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동시에 안심이 돼. 나는 그 말을 아주 좋아한다네. 아슬아슬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그 울림도 좋고 말이야. 수학 문제를 푸는 건 아니니까 무리할 필요는 없어. 분명 아직도 이 세계의 5할 정도는 ‘아마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 혜택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경우는 나로서는 되도록이면 맞부딪치고 싶지 않아.]
그는 꽤나 단호하다. 말에 있어서 단호한 사람은 여러 가지로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충돌하는 일이 잦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기에 나는 그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쳐 왔는지 약간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곧장 수증기처럼 흩어져 다시는 하나로 뭉쳐지지 못하는 그런 식의 상상 말이다.
“그런데 아직 당신 이름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군. 이거 실례.]
“별 말씀을.”
짧은 한 마디 씩을 주고받은 것뿐인데 한결 친근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이런 식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그와의 대화는 나름대로 멋과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닐까? 과거 낮부엉이 씨에게 ‘고마워.’ 그 한 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에 비하면 어떤 식으로 내가 변화한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내 이름은 챠우라고 하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기사 작위도 가지고 있지. 뭐어, 긴 세월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해왔으니까 말이야. 거기에 얽매이는 건 아니야. 여러 장신구 가운데 좀 더 멋져 보이는 액세서리라고 보면 될 거야.]
“챠우………경?”
글쎄,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꽤 미묘한 발음이군. 뭐, 본인은 앞니까지 내보이며 굉장히 만족하는 것 같으니 그것으로 좋겠지. 이래저래 의도치 않게도 화제가 뒤쳐진 듯한 느낌지만 지금부터라고 그에게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차례다. 이를테면 내가 그를 불러들이고, 그로 하여금 나를 만나게 한 공통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다.
“이제야 약간이나마 명확해진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건데, 확실히 저는 도망쳐 온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여기에 도착한 것까지는 아무래도 괜찮은데, 특별히 이곳 사람들과 특별히 만나지 않아도, 내 이름을 이곳에 새겨 넣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왠지 이곳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만 선을 그어놓고 그 범위 안쪽으로만 알면 된다는 느낌입니다. 당신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어떻게 이곳으로부터 빠져나가는가, 그리고 그 다음엔 어디로 가야하는가 하는 겁니다. 길을 잃어버렸다기보다도 나 자신의 위치 자체를 잃어버린 듯 하다고 할까요. 막막하다기보다도 그저 공허함이 파고듭니다. 여기가 세계의 끝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이곳에 도착한 뒤부터 천천히, 그리고 이제는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자라나버린 고민을 떼어 넘겨주었다. 전체 몸이 그 혹 정도의 크기밖에 안되는 존재에게 말이다. 양가죽을 둘러쓴 기사 쥐에게 고민을 토로하는 길 잃은 인간. 그건 분명 내가 있던 원래의 세계에게서는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우스운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여기에서는 전혀 우스운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 세계를 먼 우주의 토성처럼 ‘아마도’의 고리가 동화에서처럼 멈추지 않고 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내게 있어서는 경계로 나눠진 어떤 가지가지의 현실보다도 좀 더 진실을 관통하는 현실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자네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니야. 여기는 세계의 끝이면서 또한 세계의 끝이 아니기도 하지. 다행히도 이 마을 사람들과는 달리 이방인일 뿐인 우리들은 거울의 일면만을 보면서도 그 안에서 양면성을 찾아낼 수 있거든. 이를테면 자네가 길을 잃은 이곳이야말로 자네 자신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이라고 할 수 있어. 자네는 길이 막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거야. 약간만 상상력을 발휘하고 시야를 넓게 가지는 지혜가 필요해. 거울을 보고 있는 본체를 움직이지 않으면서 거울 속의 또 하나의 자네를 움직이는 거라고나 하면 좀 어려울까나.]
“사실 그 ‘아주 약간’은 의외로 어렵습니다.”
[그건 그렇지. 일상 속에서 한정된 범위만을 보고 상상하며, 그런 사소한 변화를 겪어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자네 세계의 대부분을 구축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아도 세계는 평온하지. 그리고 무언가 소란스러워지면 그걸 아주 간단히 일종의 혼돈 상태로 규정지어 버리는 거야. 백화점의 세일품목처럼 후다닥 달려가 닥치는 대로 손을 뻗다보면 상황정리.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해지지. 그들의 행복은 대부분 깨어지지 않는 현실에서만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시뮬레이션 되어 있거든. 게다가 황소의 심줄처럼 고집이 아주 세지. 하지만 자네는 다행히도 사전에 그 ‘아주 약간’의 변화와 익숙해질 기회를 가져왔지 않은가. 이곳에 도착한 것도 그 중 하나야. 자네는 이 변화와 직면한 자신을 불행하다고 단정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자네는 아주 운이 좋은 편이라고.]
“그렇군요.”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 이곳에 도착했음을 깨달은 뒤에는 하나의 현실이 되어 있었고 나는 과정이라고 부를만한 국경선 하나 지나지 않았다. 세관에서 검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비자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우습지만 나는 의도했던 것도 아닌데 ‘아주 약간’ 시선이 바뀐 것만으로 이곳에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아주 짧다면 짧은 시간, 마을을 자세히 둘러본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이곳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양가죽을 뒤집어 쓴 챠우 경과 만난 것은 그 중에도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그것으로 내 자신 안의 무언가가 극적으로 변모했다든가 하는 걸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다시 좌표에서 나를 세우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걸 상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잊고 있던 어린 날의 미소를 떠올리듯이 말이다.
[유감스럽지만 이쯤에서 대화를 끝내야겠어.]하고 일순 두 눈을 좌우로 번뜩이며 챠우 경이 말했다. 그건 쥐로서의 특별한 지각능력인 것일까, 아니면 기사로서 수많은 경험을 해온 그가 가지게 된 일종의 감일까. 어느 쪽이든, 그는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한 듯 사뭇 경계심을 바짝 드러내며 한시도 시선의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시 나를 응시한다. 그 맑은 눈에서 의구심이 기포처럼 피어나는 것을 보인다. 음, 이건 좋은 상황은 아닌 게 확실하군.
[혹시 낮부엉이와 만나고 온 건가, 자네?]
그의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나는 무언가 과거에 중대한 규율을 어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모를 기시감이 문득 감지된 것이다.
“아뇨.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낮부엉이 씨와의 만남은 벌써 며칠이나 지난 일이고 단순히 흘러간 시간 속에서 그 한 시점을 챠우 씨의 질문에 담겨있는 시점까지 끌어올 수 있는 가는 솔직히 의문이다. 어느 정도 의도한 대답이지만 굳이 거짓말을 한다고도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차분하게 나를 대해준 그의 호의를 고약하게 무시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 으음, 어쨌든 이곳에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못된 낮부엉이들이 날 발견할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도 10분 이상 한곳에 머무르는 건 꽤 위험하지. 그놈들은 수시로 시간을 재면서 사방을 옮겨 다니거든. 만약을 위해 양의 가죽을 뒤집어쓰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임시방편이고 녀석들의 부리에 걸리면 끝장이지. 끔찍해. 고상하기로 하면 교활한 뱀들이 차라리 나을 거야. 음, 아냐. 솔직히 말해서 어느 쪽도 좋을 것은 없어. 자네라면 알겠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 주어진 목숨을 자신의 의지대로 처분할 수 없다면 사실 어떤 식으로 죽더라도 그 무게는 쉽게 저울질 될 수 없는 거죠.”
[음, 자네는 나와 잘 통하는 모양이야. 어쩌면 같은 통풍구로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정확히는 거기를 관통하고 지나는 바람을 말이야.]
“세계를 잇는 통풍구.”하고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그 말을 반복해 보았다. 그러면 어떤 두터운 관념도 머리 속에서 한 겹 두 겹 어둠을 껍질처럼 벗어내고 뚜렷한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통풍구는 좁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통과하거나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은 그것이 어떤 용도인지, 왜 있는 것인지를 모르고 이내 그 존재까지도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굳이 그 실체를 드러내거나 가설을 증명하지 않아도 분명 그것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으며 또한 사람마다 각양각색으로 다르다고 챠우 경은 말했다. 어떤 이의 것은 아주 어둡고 축축해서 그 안의 공기가 죽어 있기도 하고, 어떤 이의 것은 색이 다르거나 공기가 푸근해서 가끔씩 이름모를 동물들이 이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그것들이 지상의 지형과 구조물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시공까지 건너 뛰어 이어지곤 하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대로일지도 모른다. 그 통풍구는 한 방향으로만 한정된 매체는 아닐 것이고, 그와 내가 같은 통풍구로 이어져 있다고 해서 굳이 부자연스럽다거나 이상하게 느껴질 것은 없는 것이다. 적어도 그는 나보다는 그 관념과 친숙하며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위화감 없이 그것과 공존하는 것에도 익숙해 있을 테니까.
[읏챠! 그럼 이만 헤어져야겠군. 자네라면 길을 잃지 않고 잘 걸어 나갈 수 있을 거야.]
‘자신을 잃지 않고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살짝 웃었다. 서로 간에 기억에 남을 만한 작별의 인사 같은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낯간지러움을 잘 타는 나의 고질적인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서 만남이 가지는 의미 외에 행위로서의 헤어짐이란 자연스러운 부속 과정일 뿐 그럴싸할 가치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할까? 뭐랄까, 같은 통풍구로 이어진 관계에 있어서 그런 것은 무의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챠우 경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재회의 가능성은 언제, 어디에서나 활짝 열려 있는 것이고, 그것보다도 우리는 좀 더 자기 자신을 돌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만남과 대화를 나누었던 자신이 여기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휘릭~’ 하고 망토를 휘감듯 양의 가죽을 다시금 잘 뒤집어쓰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챠우 경은 결코 뒤돌아보지 않으며 어디론가 재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었던 이 마을 중앙의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좁은 골목으로 곧장 빠져들어 가는 모습이 흡사 새하얀 공이 회전력에 의해 굴러 가는 듯 보인다. 이곳에 등을 곧추 세우고 둘러 보려하면 몸을 한바퀴를 휙 돌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작고, 또 구석구석 살펴볼수록 소박한 냄새가 나는 마을이지만, 그 작고 재빠른 몸을 숨길만한 비밀스런 장소는 어디에도 있다.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가 인간이 아닌 쥐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 점에서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자. 그럼.” 슬슬 나 역시도 돌아갈 때가 되었다. 챠우 씨를 만나기 전에는 왠지 모르게 시선을 끌었던 이 언덕의 거대한 그루터기 역시 지금에 와서는 단순히 그 거대함만이 긴 세월의 애수처럼 얹혀 있을 뿐 내게 있어서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동시에 나는 이곳에는 내가 있을 만한 어떤 이유도 이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은 그곳에 자신이 있을만한 이유를 찾아내고 그것에만 구애되어 자신의 자리를 정하는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그리 긴 시간이 부여된 것이 아니다. 만약 내가 자신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직업도 던져버리고 세계의 끝에서 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곳에 줄곧 머무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작은 한 걸음. 그것만으로 마을은 이미 내게서 아득하게 멀어져 있었다. 티베트의 승려들이 머무르는 높은 산의 바위로 된 사원, 새하얗게 저무는 침묵의 대지처럼 아득히. 그건 의외로 손쉬운 일이었다고 할까, 아니면 사실은 이전의 어느 시점부터 나는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로 마을을 벗어나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과거라고 부를만한 증거가 없는 것이다. 실은 챠우 경과의 대화 역시 어디에서 이루어 진 것인지, 우리가 그곳에 멈추어 서있던 것인지, 어느 것 하나 명확하지 않다. ‘언덕 위 그루터기 앞’이라는 것은 단순히 눈에 편한 ‘설정’이었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는 그와의 만남과 대화를 가졌던 그 장소와 나 자신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이리라. 뭐, 하긴 그런 구분은 애초부터 모호했던 것들이고 지금에 와서 더욱 혼탁해진 그것들에 굳이 구애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거기’에 자신이 있었음을 잊지 않은 채로 분명 작은 한 걸음을 시도했고, 지금은 그것으로 됐다.
ps. 1년 전쯤에, 우연찮게 소재가 떠올라 마구잡이로 쓴 짧은 파트 부분인데(하나의 단편이라 하기에는 여러 요소가 부족합니다.), 다 보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영 엉망입니다. -_- 일단 1년 전 시점에서 전혀 손대지 않은 점도 있구요, 어색하거나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다 못찾겠네요.) 이래저래 표현을 되는데로 질러놓던 시절이다보니, 이런저런 작품에서 빌려온 듯한 말들이 상당히 많군요. 이질감을 느끼셨다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다시 써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로서는 가볍게 읽어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감상까지는 무리겠지만,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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