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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석, 이리 와라.』
그는 피칭 연습을 하다 말고 감독이 부르는 곳으로 달려갔다. 감독은 야구공을 쥐면서 던지는 시늉을 하고 있었고, 태석은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면서도 긴장한 듯 하였다.
『왜 야구 선수가 되고 싶지?』
태석은 순간 움찔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곧 털어놓았다.
『...아버지와 가족을 위해서입니다.』
『아버지?』
『네. 저희 가족을 위해서 몇 십년째 새우잡이를 하신 분입니다. 그 분의 고생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저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감독은 계속해서 피칭 시늉을 계속했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하필 야구선수를?』
태석은 잠시 뭐라 할지 고민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금방 자신의 답을 말했다.
『...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하기만 한다면, 제가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잘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던지는 시늉을 하던 감독이 이제는 와인드 업을 하더니 공을 던졌다, 그리고 그 공은 포수 이미지가 그려져 있는 벽의 한 가운데에 맞추었다. 감독은 한숨을 쉬더니 태석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래. 참 영화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태석아, 프로의 세계는 그렇게 쉬운게 아니다. 무조건 노력만을 해서 된다면, 그 이상 세상에서 쉬운일이 없다. 그만 가봐.』
태석은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연습하던 곳으로 달려갔다. 아직은 팀의 2군에 속해있던 그였기에, 지금 그가 해야 할일은 밤새도록 열심히 연습해서 선발로 출전하는 일 뿐이였다.
몇 개월 뒤, 그의 고등학교는 전국대회에 진출했다. 그리고 태석은 그 대회 16강전에서 기회를 잡았다. 팀의 선발로 나서서 상대팀의 타선을 8이닝동안 1실점에 묶는데에 성공했다. 게다가 그의 상대는 작년 대회에 4강에 올라온 역전의 강호였기에, 비교적 무명이던 태석의 고등학교가 승리한 것은 엄청난 사건이였다.
하지만 그는 그 뒤로 출전하지 못했다. 뛰어난 피칭을 보여서 몇몇 프로팀들에게 큰 인상을 안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했다. 그것은 경기가 있던 다음 날 자신의 감독이 자신에게 한 퀴즈를 풀지 못했기 때문이였다.
『너의 피칭은 대단하다. 어느새 초고교급까지 왔구나. 하지만, 너는 너의 공을 너만이 던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정말 프로가 되고싶다고 했지?』
『...네.』
『그러면 방금 내가 물은 퀴즈의 답을 알아내라. 그렇지 못하다면 너는 영원히 최고가 될 수 없다.』
불운하게도, 태석은 그 대답을 알아맞히지 못했다. 적어도 그의 고등학교 일생동안에서는. 태석은 그 때 물은 감독의 퀴즈를 풀지 못했고, 결국 그에게도 슬럼프라는 것이 찾아왔다. 일종의 정신병인 ‘블레스 신드롬’ 이라는 것이 그를 덥쳤고,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공을 컨트롤 할수 없었다. 결국 그는 어두컴컴한 밤 몰래 학교로 와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자퇴서를 교무실 앞에 놔두고 학교를 떠났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여기까지가 태석의 전(前) 감독이자 한지훈의 아버지, 한혁수가 아는 강태석의 전부였다.
혁수가 태석을 다시 만났을때, 그는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연이라고 해도 이런 우연이 없을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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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 집에 돌아온 것은 밤늦은 시각이였다. 처음에 자신의 아버지가 태석에게 안부인사를 하자, 태석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계속해서 둘 간의 침묵이 있었고, 그 때쯤 아버지가 ‘지훈아, 일단 너만 가서 연습해라. 태석이는 오늘 연습이 힘들겠다.’ 라는 말을 듣고 혼자 PC방에 갔다. 태석과 아버지가 서로 아는 사이였다니... 그에게는 하나의 놀라움과도 같은 일이였다.
태석과 아버지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던 지훈은 답답하기 까지 했다.
하지만 곧장 그는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내일이였다. 그래, 내일이였다.
자신의 첫 데뷔무대와도 같은 커리지 매치 생중계가 불과 20시간도 남지 않았었다. 그는 내일을 위해 잠을 자기로 했다. 그곳에서 한바탕 ‘결전’을 최대의 컨디션으로 치루기 위해서였다. 여기까지 왔고, 후회는 없었다.
...그날 밤은 한지훈이 살아가면서 가장 잠이 오지 않은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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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안가봐도 돼니?”
“네, 아후 엄마도 참. 채널 돌리다 보면 온게임넷 나온다니까요. 거기서 봐요.”
“잘 다녀 오너라.”
“...네.”
너무나도 길었던 것 같은 밤이 지나고, 이제 그는 신발을 메고 있었다. 그는 (어제 새벽에 늦게 들어온 듯한) 아버지에게 어제의 일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냥 신경을 꺼버리기로 했다. 그랬던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아버지의 특별한 선물 때문이였다. 그 날 오전에 아버지는 스타크래프트-배틀 체스트라고 적힌 박스를 지훈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집을 나서기 전까지 lpg 채널에 있던 사람들과 경기를 펼쳤다. 그곳에 있는 모든 테란 유저들(태석은 있지 않았다)을 ‘버스 태운’ 점을 보더라도, 그의 컨디션은 ‘최상’ 이였다.
그는 삼성동으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다. 주변에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기다려라. 몇 개월 후에 내가 지하철을 탄다면 너희들은 나를 우러러 보게 될테니까.
지훈은 왠지 그런 상상을 하며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도 잠시, 점점 전장터가 가까워 질수록 그는 떨리는 가슴을 멈추지 못했다. 이건 커리지매치 예선때의 그것보다도 더 심한 듯 했다. 내 얼굴, 내 경기, 내 플레이가 방송으로 하나하나 다 나가는 거야. 열차가 가면 갈수록 시간은 가까워진다. 시간이 가까워지면 긴장은 고조되었다.
그가 코엑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길을 따라 ‘메가스튜디오’ 라고 적힌 곳을 발견했다. 그가 이곳을 찾은건 두 번. 한번은 그의 우상, 홍진호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고, 한번은 지금이다.
그는 ‘선수 대기실’ 이라고 적힌 곳 앞까지 왔다. 그 앞에는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지훈은 그에게 말을 건넸고, 곧 허가를 받은 뒤 자신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받고 선수 대기실로 입장했다.
이상했던 일은, 그가 선수 대기실에 입장 한 뒤에는 갑자기 긴장이 풀렸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이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앞으로 많이 찾아올 곳이라서 Home같은 기분을 느낀거야’ 라고 생각했다.(동시에, 자신이 봉신을 닮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걱정했다.) 그 곳에 선수로 보이는 사람은 한 명 - 홍남봉이라는 사람이였다. 그는 mp3 플레이러를 통해 무언가를 듣고 있는 듯 했다.
“I said one for the money and two for the show... 남봉이와 함께면 너도 챔피언~ hey hey hey I said 새로 태어난 힙합 홍남봉~”
...지훈은 부디 그가 자신의 상대가 아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1시간은 생각보다 금세 흘러갔다. 그동안 담당 PD가 자신에게 무대위에서 해야할것들 - 마우스 세팅, 조인, 스타트, 문제시 대처행동 - 등등을 가르쳐 주었고, 오늘 생방송으로 나갈 네명의 선수가 모두 왔다. 자신과 맞붙을 상대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이승혁이였고, 대진표에서 그의 이름을 한번 본 기억이 있었다. 아마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그는 테란 유저였다. 하지만 그와 경기를 해본 기억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의 리플레이를 분석한적도 몰랐다. 아니, 그의 ID 자체를 몰랐다.
“곧 시작합니다. A조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A조 홍남봉 선수와 박찬효 선수, 홍 선수는 좌측에, 찬효 선수는 우측에 위치해주세요.”
드디어 곧 시작이였다. 첫 번째 경기는 지훈의 경기가 아니였다. 그 이상한 노래를 부르던 홍남봉 대 또 다른 테란유저 박찬효. 경기가 얼마나 길어졌을까. 그는 tv로 가만히 그들의 경기를 지켜봤고, 둘다 수준급이였다. 태석도 저정도의 수준일까... 결국, 세경기 모두 30분을 넘겼고, 결국 홍남봉이라는 사람이 2:1로 박찬효를 이겼다. 그는 게임을 즐기는 것 같았다.
“광고 나갑니다. 좌측에는 한지훈 선수, 우측에는 이승혁 선수 위치해주세요.”
지훈은 기다렸다는듯이 선수 대기석에서 나왔다. 마치 프로게이머와 같이, 스스로 기를 죽이지 않으며 컴퓨터 세팅을 하러 자리로 갔다.
“어이 태석! We come했어~”
태석은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에서 두 번째 줄에 PC방 아저씨 봉신과, LPG 클랜원들 - 석과 소닉, 프리. 그리고 은주. 이렇게 다섯명의 사람이 그를 응원하러 왔다.
“지훈아 잘해라~”
“쫄면 죽어!”
“이기면 저녁사주셈~”
“한태석 파이팅~”
다른 사람의 응원은 무시할수 있어도, 은주의 응원을 듣고 지훈은 다시 힘내기로 마음 먹었다. 어느새 다시 마음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우스와 키보드는 OS와 별 충돌 없이 세팅이 잘 되었다. 잠시 싱글플레이에 들어가서 컴퓨터와 게임을 해보았다. 마치 다른 게이머들이 그랬던 것처럼 멋도 내보고. 치어풀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직 그건 좀 심한 욕심이였다.
“이제 조인해주세요.”
지훈은 게임에서 나왔다. 멀티플레이어, IPX, New ID - LPG_OnlySilver. 아이디의 참 뜻을 은주가 알지는 않을까 쑥스럽기도 했다.
IPX Game에는 Umpire 1/4 라고 되어있었다. 그곳에 조인. 이제 드디어 카운트 다운만을 남겨뒀다. 그전에 상대가 와야...
Acheron has joined the game.
상대의 ID는 Acheron 이였다. 그리고는 테란을 선택.
Acheron,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아이디였다. Acheron... 혹시나, 어디서 경기를 해본 게이머는 아니였을까? 그의 호기심은 경기전에 계속해서 생각을 하게끔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답을 찾았다.
『전 있잖아요. 세상에서 벙커링이 제일 싫어요.』
언젠가 그가, 게릴라 대회에서 패배 한 후 봉신에게 했었던 그 말.
그 게릴라대회의 상대였다.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당했던 패배.
Acheron, 그런 그를 여기서 만날줄은... (아마, 상대는 자신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CuteJu라는 아이디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지훈을 너무나도 거만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LPG_OnlySilver : u know
LPG_OnlySilver : gongbu gerilla?
Acheron : k
Acheron : me woo seung why?
LPG_OnlySilver : hmm...
LPG_OnlySilver : ok...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요원의 말이 들렸다. 지훈은 그사이 다시 자신의 컨디션을 찾았다. 자신의 게임에서 당한 몇 안되는 어이없고 일방적이였던 패배. 그것을 갚아줄때가 왔다. 그는 신께 감사했다.
‘잘 봐라. 내가 3개월만에 어떻게 바뀌었나.’
LPG_OnlySilver :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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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 작가의 잡담
21편에 약간 억지투정을 부렸더니 많은분들이 응원해주시고 또 어떤 분들은 쪽지를 주셨네요. 걱정마세요. 끝까지 다 나갈겁니다. 성원해주시는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
이번편이 제일 내놓으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소설 초창기부터 비장의 카드(?) 로 만들어 놓았던 강태석의 비밀이 밝혀지는 편이였으니까요. 개인적인 얘기 조금만 하자면, 주인공 한지훈보다 그를 단련시킨 강태석이라는 캐릭터가 정말 멋있고 좋습니다 ㅠㅠb (가끔 가다가 강태석을 만드는 사람은 난데 강태석이 왜이리 멋지고 말을 잘해보이는건지;;) 혹시 강태석의 비밀이 밝혀졌다고 이제 글 안 읽는 분은 없겠죠 -_-;
하지만 저 하나의 챕터로 강태석의 모든것을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완결이 끝나고 어느정도의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이 하면, 강태석의 이야기를 좀더 담은 외전격의 얘기도 해볼까 합니다. 이러다 보니 어쩌면 주인공이 한지훈이 아니라 강태석이 된것 같은 기분도 1g씩 들긴 하네요 ㅇㅇ;
아무튼 이번회는 횡설수설 잡담이 많아서 전하는 말씀에서 그냥 이름도 바꿔버렸습니다. 좋은 밤, 좋은 하루, 좋은 한주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