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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5/30 01:45:58
Name Bar Sur
Subject [글] 토막 (3)
  - 모비 딕

  어제 밤에 청설모 씨가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아니, 찾아왔다기보다도 내 허락도 없이 먼저 내 방에 이미 들어와 있던 셈이지만.


  나는 그가 오래 전에 학교로 가는 눈길 위에서 만났던 그 때의 그 청설모라는 것을 떠올리곤 반갑게 그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인사를 하든말든 내 침대 위에서 깔깔 박장대소하고 있을 뿐이었다. 몸을 베베꼬며 웃다가 나를 확인하고는 살짝 손을 흔들었을 뿐이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뒹굴뒹굴 구르며 웃었다.

  "이봐,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어? 뭘 그렇게 웃고 있는 거야?"

  "미안미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하고 심호흡을 하다가 다시 한 번 뒹굴었다. 눈물까지 쏟으며 웃는 꼴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가 진정할 시간을 주기로 하고 거실로 나가 냉장고 안에 있던 잣으로 만든 주스와 묵을 한접시 가져와서 그에게 접대했다.

  "자, 여기."

  "고마워. 역시 좋은 친구라니까."

  "별 말씀을."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다가 주스를 쭈욱 들이키고 작게 자른 잣묵을 3, 4개 씩 입 안에 몰아넣고 '청설모식으로'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나도 앞으로는 저런 식으로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모범적인 '청설모식' 식사법이다.


  "이야, 맛이 좋군. 최근 들어 이런 대접 받기 쉽지 않아졌거든. 요샌 다들 청설모와 다람쥐도 구별 못하는 얼간이들 뿐이란 말이지. 이녀석도 저녀석도 도토리따위를 주니 살 맛이 안 나. 자네도 알겠지만 다람쥐야 말로 우리 점심 식사밖에 안 되지 않나. 쯧쯧. 아무튼 정말 잘 먹었어."

  "응응, 맘껏 고마워해도 돼. 근데, 아까는 왜 그렇게 웃었던 거지?"

  나는 아까부터 그게 신경이 쓰여 줄곧 입이 근질근질했던 참이었다. 소변까지 참아가며 그의 옆에서 줄곧 질문할 기회를 기다렸다. 청설모 씨는 "아, 그거."하고 운을 떼었다.

  "사실 별 건 아냐. 여기 오는 길에 보기 싫은 녀석이 있길래 혼 좀 내 준 것 뿐이야."

  그는 다시 한 번 웃음기를 머금었다.

  "그런 녀석들이 가끔 있잖아. '고래'인지 '고래의 박제'인지 알 수 없는 놈들 말야. 고래라면 얌전히 물속에 쳐박혀 있을 것이지 멀쩡히 이런 근처에 꼼찍않고 있으면 그건 '고래'인지 '박제'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런 놈들은 혼나도 싸. 아예 거죽을 벗기고 살도 발라낸 뒤에 뼈만 전시해 놔야 한다고. 어때? 멋지겠지? 차라리 그 편이 훨씬 더 나을 거야. 그놈들에게는 존재이유도, 정체성도 없어. 다만 박제야. 알겠어?"

  "흐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애초에 고래 따위가 사람들 눈에 드려면 박물관에 가는 수밖에 없지. 고래 따위를 보러 사람이 바다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흰고래 '모비 딕'의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지. 내 말뜻, 알겠어?"

  "아마도."

  아마도. 나는 연신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 역시 복수심에 불타는 외다리 선장이 아닌 것이다. 청설모 씨는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 번엔 좀 더 좋은 걸 대접하고 싶군."

  "살아있는 다람쥐를 잡아 놓으면 고맙지. 요샌 육식이 힘들거든. 무리일지 모르지만. 낄낄."

  그는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에릭 크립톤의 신곡을 부르며 돌아갔다. 나 역시 참았던 소변을 보고 나서, 자리에 누워 거대한 박제처럼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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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하시
04/05/30 23:23
수정 아이콘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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