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s oF Inferno - Prologue
"아... 심심하다..."
중얼거리는 현우.
어깨에 걸친 가방이 가볍게 덜그럭거린다.
"정말 할 일 없구만..."
전혀 의욕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 모습.
걷기조차 귀찮은 듯 어슬렁거리는 듯한 걸음걸이다.
그럴 만도 하다. 중간고사도 끝나고, 평범한 고등학생에게는 가장 한가로울 시기니까.
학교에서 돌아오는 현우의 무기력함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응?"
문득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드는 현우.
하늘에서 떨어지는 밝은 빛이 눈에 들어온다.
"유성? 잠깐... 지금은 낮이잖아?"
의아함과 불안감이 증폭되는 현우의 마음 속 상태와 더불어 그 빛덩어리도 점점 커지고...
손톱만한 크기에서 손바닥만한 크기.
손바닥에서 사람 머리.
사람 머리에서 사람.
그리고 돌.덩.어.리.
"뭐야아아아아아아아!!!"
허무한 현우의 비명 소리는 거대한 폭발음에 묻혀버린다.
그리고 대폭발.
골목길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한다.
...같은 일은 없었다.
"...으으..."
"정신이 드세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을 뜨는 현우.
"무슨... 어?"
잠시 동안의 침묵.
이윽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모두 기억해내는 현우였다.
"그러고 보니 난 유성에 맞았는데... 어떻게 된 거지?"
유성이 떨어진 흔적 따위는 전혀 없는 주위를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현우.
치솟는 불길은 커녕, 큼지막한 돌.덩.어.리.조차 없었다.
다만 방금전까지는 없던 귀여운 여자아이 한 명이 있을 뿐.
...여자아이?
"깨어나셔서 다행이에요!"
"고마워... 가 아니고, 근데 넌 누구야?"
"제 이름은 인퍼널이에요. 17세의 천사죠♥"
"...처... 천사?"
'이게 왠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여' 라는 표정의 현우.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전 혹시라도 현우 씨가 못 깨어날까봐 걱정했다구요."
"못 깨어나다니... 무슨 소리야..."
"기억 안나세요? 저하고 충돌하셨잖아요."
"충돌... 이라면... 그 유성이 너?"
"정답♥"
현우의 표정이 갑자기 싸늘해진다.
"저... 저기 말야..."
"네♥"
"혹시 말이지..."
"네♥"
"저쪽에 엎어진 시체 비스무리한 거..."
"네♥"
"누구야?"
깡총깡총 뛰어서 현우의 뒷편에 엎어진 시체 비스무리한 것의 얼굴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인퍼널.
"현우 씨랑 똑같이 생기셨네요♥"
"그럼 나란 소리잖아!!!"
"에? 그럼 지금 이야기하는 현우 씨는 누구에요?"
"너 천사라며! 천사하고 이야기하는 사람 봤어!?"
"여기 있잖아요?"
"일.반.인.은.죽.지.않.는.이.상.그.럴.일.따.위.없.어!!!"
폭주에 돌입하는 현우.
인퍼널이 애써 현우를 만류하려 하지만...
"진정해요!"
"무슨 놈의 진정! 죽고 나서 무슨 진정이야!"
"저... 저기... 이건 아마도 실수로..."
"넌 사람 죽이고 실수라고 하면 다 해결되는 줄 아냐!!!"
"그게 아니라 제 말을 좀..."
"필요 없어!!!"
"저기..."
"시끄러워!!!"
"그만 해라."
퍼어억.
"우욱..."
명치에 정통으로 꽂힌 인퍼널의 주먹에 무릎을 꿇는 현우.
자신을 감싸는 어두운 그림자에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떠는 현우에게,
지금까지의 고분고분함은 어디로 간 건지 싸늘하게 말하는 인퍼널.
"내 말 좀 들으라고. 이 자식아. 사람 말하면 들어."
'...니가 사람이냐...'
"보자보자하니 너무 씨부렁거리는데 내가 다 알아서 해준다니까?"
'죽이고 뭘 알아서 해준다는 거야...'
"뚜껑 열리게 하지 말... 어?"
현우를 감싸던 어두운 그림자가 삽시간에 걷힌다.
살며시 고개를 든 현우가 본 것은 인퍼널의 눈물이 글썽글썽한 얼굴.
"죄송해요!!!"
"우... 우욱... 숨막혀..."
갑자기 목을 감싸는 인퍼널의 팔에 현기증을 느끼는 현우.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제가 너무 부주의하게 비행하는 바람에 하늘에서 내려올 때 궤도를
이탈해서 하필이면 현우 씨와 정통으로 부딪치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겨버리고 게다가
현우 씨의 정신이 몸과 분리되는 일까지 생겨버리고 말았는데 제가 그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현우 씨와 만났다는 것에만 기뻐해서 앞뒤 안 가리고 너무 흥분해서 좋아만 했고 거기에
제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고 현우 씨에게 큰 상처를..."
"나...... 죽어......"
"아... 아앗! 죄송해요! 제가 너무 부주의하게 비행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반복하지 마! 그... 쿨럭..."
인퍼널에게 큰 소리를 지르려다 목의 통증 탓에 쓰러져버리는 현우.
아무래도 인퍼널이 '천사'긴 하지만 '돌'인 탓에 워낙 단단한 몸을 지닌 것이 이유일 것이다.
돌에 목을 졸렸으니...
"괜찮으세요?"
"......"
인퍼널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하지만 현우는 대답하지 않는다.
힘없이 땅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짚은 좌절스러운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있을 뿐.
살며시 현우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는 인퍼널.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어깨를 감싸쥐며 바닥에 구르는 현우였다.
급히 뒤로 멀찍이 물러나며 다시 사과의 말을 하려고 하는 인퍼널이었지만.
"...흐흐흑..."
현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울먹임.
인퍼널이 힘없이 중얼거린다.
"현우 씨..."
"왜 이렇게 된 거야... 무슨 놈의 천사냐구... 돌 맞고 허무하게 죽어버리다니..."
"무슨 놈의 천사냐니 너무하세요... 전 이래뵈도 천상에서도..."
"그럼 나 다시 살려내... 나 다시 돌아갈래..."
"아. 그건 기각."
"아직도 장난칠 거야!... 쿨럭..."
바닥에 쓰러지는 현우...
비참해 보인다.
안돼 보였는지(?) 인퍼널이 입을 연다.
"제 실수로 현우 씨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긴 했지만... 방법은 있어요."
"무슨 방법..."
"지금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을 도와주시면 되요."
말을 마치며 주머니를 뒤적거리는 인퍼널. 곧 검은 공을 꺼내든다.
'어쩌면 희망이 있을지도 몰라' 라는 생각으로 살며시 고개를 들며 물어보는 현우.
"그건 뭐야..."
"제가 천상에서 내려올 때 받은 물건이에요."
공의 크기는 인퍼널의 손바닥 안에 딱 들어갈 만큼의 아담한 크기였다.
"이 물건은 천상에서 저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거에요."
"......"
"아. 왔어요."
푸른빛 글씨가 공에 은은히 떠오른다.
뭐라고 적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는 현우와 인퍼널.
[또 실수했구나. 병神아.]
잠시 침묵.
"원래 얘가 입이 험해요♥"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그리고 '얘' 라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한번 해결책을 물어볼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무언가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쏟아내는 인퍼널.
천상의 언어인지, 평범한 인간인 현우에게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인퍼널의 발성(?)이 끝나고... 잠시 후 검은 공에 다시 글자가 떠오른다.
한 가닥의 기대감을 가지고 다시 얼굴을 갖다대는 현우.
[나보고 어쩌라고?]
좌절포즈를 취하는 현우.
"더 있어요!"
인퍼널의 말에 힘없이 고개를 드는 현우...
[그 인간 녀석이 널 도와서 점수를 채우면 본래의 몸을 살려주도록 하지.]
"됐어요!"
기뻐하는 인퍼널과는 달리 현우는 '자 이제 어디가 됐다는 건지 말해봐' 라는 표정이다.
그 표정을 이해하지 못한 인퍼널 탓에 잠시 침묵이 이어지고...
"아. 설명이요?"
"진작 좀 알아들어!"
"그러니까... 제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그게 점수가 되거든요?
그 점수를 얻는 일을 현우 씨가 도와주시면 현우 씨도 점수를 얻게 되고
그 점수가 정해진 만큼 채워지게 되면 현우 씨의 몸을 돌려주겠다는 말이에요."
"한마디로 나보고 널 도우라는 말 아냐?"
"정답♥"
"내가 왜! 지금 죽은 것도 억울한데 날 죽인 널 도우라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우 씨는 살아날 수 없어요."
"못해! 나 안해! 이건 횡포야! 왜 니 잘못을 내가 덮어써야 하냐고!"
화를 내는 현우. 물론 화는 아까전부터 계속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인퍼널의 상식 밖의 행동에 페이스가 말려 제대로 화를 내지 못했을 뿐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현우가 화를 낸다는 사실조차 인퍼널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하실 거에요?"
"안해!"
"그럼 이대로 죽는 건데..."
"천사가 멋대로 살인을 저질러도 되는 거야!?"
"그러니까 살 수 있다니까요?"
"으아!!! 왜 같은 말 계속 하게 하냐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신히 깨달은 인퍼널.
검은 공을 붙잡고 뭔가 중얼거린 후, 거기에 적힌 글귀를 읽어보고 알았다는 듯 손가락을 튕긴다.
"저기..."
"뭐야!!!"
버럭 화를 내며 고개를 돌리는 현우의 눈 앞에 보이는 건...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인퍼널의 얼굴.
"도와주시면 안 되나요?"
"윽... 그런 얼굴로 보지 마!"
"제발 도와주세요. 네?"
"젠장..."
양 손을 모은 채 글썽거리는 인퍼널의 눈빛에 현우는 두 손을 내젓는다.
"알았어! 도와주면 돼잖아!"
"고마워요!!!"
눈물은 다 어디 간 건지, 환한 얼굴로 현우를 끌어안는 인퍼널이었다...
그 덕분에 영혼마저 소멸할 뻔한 위기를 겪게 된 현우...
간신히 질식사의 위험을 넘기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현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예의 검은 구체.
[남자는 귀여운 여자의 눈물에 약하다.]
'...젠장... 이 자식 날 속여먹다니...'
뒤늦은 후회에 땅을 치는 현우였다...
"일단은 몸을 좀 빌려와야겠어요."
"빌려오다니?"
갑작스러운 인퍼널의 말에 반문하는 현우.
"영혼인 채로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야 그렇... 그러면 그냥 날 되살려주면 되잖아!"
"그건 안 돼요."
"어째서!"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댓가를 필요로..."
"어이...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더라?"
"너... 너무해요! 그런 눈으로 저를..."
"이젠 안 통해! 너야말로 그런 눈으로 날 보지마!"
"쳇."
"...뭐 뭐야 그 반응은..."
"네? 아뇨. 신경쓰지 마세요♥"
'이 여자... 도대체 정체가 뭐야?'
너무나도 오래 전에 품었어야 할 의문을 지금에서야 떠올리는 현우.
물론 인퍼널이 '천사' 인 것은 '그래도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제공된 정보'이다.
하지만 너무나 당황했던 나머지 제대로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으니까...
찬찬히 인퍼널을 살피는 현우.
검은 긴 생머리, 무슨 유행인지 알 수조차 없는 기괴한 복장, 큰 눈, 귀고리.
대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계속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현우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과 비슷한 키.
'생긴 건 그래도 말짱해보이는데...'
"무슨 생각하고 계세요?"
"으아! 놀랐잖아! 얼굴 좀 치워!"
"아무튼 이걸로 연락을 했으니까 임시로 쓸 몸을 '복사' 해 올 거에요."
"몸을... 복사한다고?"
"천상에는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 비상용 육체를 구비해두거든요♥"
"...대체 어디서 '구비' 한다는 거지?"
"아. 지금 왔어요!"
다시 한번 골목에 강한 파동이 휘몰아치고...
잠시 후, 파동이 잠잠해진 곳에 누워 있는 것은...
"자. 그럼 여기로..."
"이 '사람' 머리가 좀 긴걸?"
"가슴도 나왔네요♥"
"난 남자란 말이야!"
이윽고, 새로운 복사본이 도착했다.
"다 좋은데... 검은 머리라는 게 맘에 안 들어."
"천상의 사람들은 모두 검은 머리에요."
"하지만 난 그냥 평범한 보라색 머리가 더 좋은데..."
"일단은 이걸로 만족하세요♥ 염색해도 되니까요."
"그... 그래."
인퍼널이 또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읊자, 현우의 정신은 그 복사본으로 옮겨간다.
"음... 된 건가..."
온 몸을 구석구석 움직여보고 바라보는 현우.
원래의 현우의 몸과 키나 체격도 비슷한 편인 몸이다.
다만 눈동자 빛과 머리색이 검은색인 것이 현우에게는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그럼... 이제 내 원래 몸은 어떻게 하지?"
한켠에 쓰러져 방치되고 있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현우.
인퍼널은 생긋 웃으며 현우의 몸에 다가간다.
"이렇게 하면 되겠죠?"
"...왜 신문지로 덮는 건데?"
"그야 들키면 안돼니까..."
"그건 사체유기야!"
버럭 화를 내는 현우.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되겠죠?"
"...땅은 또 왜 파는 건데?"
"에이... 알면서♥"
"사.람.의.몸.은.파.묻.으.면. 썩는다고!!!"
"그럼 어떡해요? 이대로 놔두면 얼어붙을 텐데..."
"천상에서는 여름에 사람 몸이 얼어붙을까봐 걱정하냐?"
"아. 그 방법이 있어요!"
"...내 말은 아예 듣지도 않는구만..."
한숨을 내쉬는 현우를 무시하고, 인퍼널은 다시 한 번 검은 공을 꺼낸다.
또 다시 이계(異界)의 음성을 발하는 인퍼널.
검은 공이 갑자기 물결치듯 흔들리며, 큼지막한 관이 공 속에서 튀어나온다.
"그건 뭐야? 관?"
"사물함이에요♥"
"사... 사물함... 그렇게 생긴 게?"
"일단 여기에 현우 씨의 시체♥를 넣어두면 무사할 거에요.
이건 이래뵈도 천상의 물건이거든요♥"
즐거워 보이는 인퍼널.
현우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저기 말야."
"네♥"
"...왜 천사가... 나한테 찾아온 거야?"
여전히 밝은 표정의 인퍼널의 대답.
"당신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랍니다♥"
"...행복?"
"천사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해요."
갑자기 양 손을 가슴에 모으며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히는 인퍼널.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현우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현우 씨는 너무나도 행복이라는 감정과 거리가 있었어요. 저희들은 그것을 알았고..."
"그래서 나한테 찾아온 거야?"
"물론이에요♥"
"음..."
갑자기 미소짓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현우. 어긋나는 두 가지의 감정이 오가는 얼굴이다.
"근데 왜 난 지금 불행할까?"
"저랑 만난 게 기쁘지 않으세요?"
"아니 말이지... 무난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사람을 들이받아 죽였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지금은 살아있잖아요♥"
"...조금은 반성 좀 하란 말야!!!!!!"
현우의 애달픈 외침이 골목에 메아리친다...
안녕하세요.
뭐 이 글도 유게로 GoGo- 라는 댓글이 달릴 것 같긴 하지만(이 글도?) 올려봅니다.
요즘은 습작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너무나도 부족해서 수준 낮은 글만 늘어놓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도 많이 반성하고 있지만... 어머니께서도 말씀하시길, 많은 습작이 있어야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래도 바써님 글 보면 정말 좌절밖에 못 느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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