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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5/15 20:52:08 |
Name |
박진호 |
Subject |
Fiction "Brotherhood" (1) |
"제4항 출전자 종족 선택 및 변경 관련
갑. 대회에 출전한 게이머는 종족 선택 시 과거, 현재 타 대회에서의 종족 선택으로 인한 제약을 받지 않는다.
을. 종족 선택 및 변경 허용 시기는 각 게임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로 한다. (게임의 시작의 정의는 제2항 게임 내 규칙 참고)”
-‘한국 e-sports 협회 지정 대회 StarCraft 종목에 관한 규정’ 중에서-
“당신의 장을 위한 최선의 선택 프로바이오GG 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결승전 마지막 5차전 시작합니다.”
“뚜!”
5초 카운트다운 신호음이 시작 되었다.
지훈은 평소 즐겨하던 gl 연타도 잊은 채 모니터를 뚫어질 듯 응시하였다.
“뚜! 뚜! 뚜!........”
5,4,3 ...... 반복되는 기계음과 모니터의 4색 점들로 인한 최면 효과였을까. 긴장감과 피로감도 잊은 채 상념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또 그걸 쓸 까.’
“뚜! 뚜!”
5초 카운트다운 신호음 소리가 시작되었다.
“glglglglglglglglglglgl"
긴장감에 gl을 연타하고 있던 중이었다.
“형 이것 봐!”
대훈이 옆에서 갑자기 소리를 질러댔다.
“왜 호들갑이야.”
모니터에서 시선을 고정시킨 체 한마디 툭 던졌다.
“됐어 우리 이제 KT&G 연습생으로 들어갈 수 있어.”
“뭐?”
갑자기 게임화면이 보이지 않았다.
“어 이거 봐 박천모 감독님 한테 메일이 왔어.”
대훈의 흥분되는 목소리는 계속 되었다.
“그..그래?”
“어 다음주 월요일에 숙소로 찾아 오래.”
지훈은 챗팅창에 ‘sorry;; gab ja gi il i;;' 치고는 alt Q를 연타한 후 동생 컴퓨터로 몸을 날렸다.
고등학교 때부터 유난히 스타를 좋아했고 소질이 있던 지훈 대훈 형제는 졸업과 동시에 KT&G 구단에 연습생으로 들어갔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에는 엄청난 연습량과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며 힘들어했다. 하지만 노력에 더해진 둘의 돈독한 우애 덕에 쉽게 시련을 극복하고 비교적 짧은 시간을 거쳐 둘 다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그들의 실력 향상은 완벽한 팀플에서 빛을 발하였고 신생팀이던 KT&G는 프로리그 상위권에 입상하였다.
완벽 호흡의 최강 팀플로 불리었던 그들 중 개인적으로 두각을 나타낸건 형 지훈이였다. 지훈은 테란 유저로 그 해 3개 메이저 대회 동시 16강 진출에 성공하였고, 그 중 한 대회는 첫 출전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였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1개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최고 루키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하였다. 게다가 정석과 힘싸움을 중시하는 플레이 스타일과 어느 상황이든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매너는 인기를 높이는 데 한 몫 하며 스마일 테란이라는 이쁜 이름도 안겨주었다. 그에 비해 동생 대훈은 팀플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형... 나 언제까지 이럴까.”
대훈은 침대에 누워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곧 잘 될거야. 매일 이렇게 연습하는데...”
지훈은 좋은 성적을 낼수록 대훈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형 문제는 그건 거 같아. 이렇다 하게 잘하는 종족이 없어.”
어거지성으로 플토 유저를 선언하고 연습하고는 있지만 애초에 팀플로 두각을 나타내서 인지 플토, 저그, 테란을 고루 잘하는 대훈이었다.
“랜덤을 해보는 건 어때?”
“랜덤 어려운거 형도 잘 알잖아. 상대방은 내 종족을 모르고 나는 내가 뭐 할 줄 아는 랜덤은 없나. 그러면 연습하기도 편할 텐데.”
“어이구, 못하는 소리가 없다. 언제는 종족 안 찍고 시작하면 치사하다고 난리 치더니.”
비록 동생을 위로해줘야 하는 시간이었으나 평소 동생의 신념과 정반대의 이야기가 나오자 자기도 모르게 면박을 주었다.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야. 생각해 보니 그거 정말 치사하네.”
‘이지훈 3연속 3위 만에 드디어 우승.’
‘승리의 여신 이지훈에게 스마일(미소) 짓다.’
일간지 게임 면 헤드라인이 지훈의 이름으로 장식되었다.
데뷔 1년 후 지훈은 드디어 상금 순위 2위의 메이저 대회에서 당대 최고의 플토라는 이성은을 3대1로 가볍게 꺾고 우승하였다.
그리고 지훈의 우승을 축하하던 파티...
“대훈아 이리와라 헝아랑 한 잔 해야지.”
어느 새 거나하게 취해버린 지훈은 상기 된 얼굴로 대훈을 찾았다.
“......”
“야 이리 오래도. 헝아가 우승했는데 표정이 왜 그래.”
평소 그렇게도 동생을 챙기던 지훈은 이 날 만큼은 술에 취해서였는지 우승의 기쁨에 취해서였는지 대훈의 속을 잘 헤아리지 못하였다.
“형... 나 할 말 있어.”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숨어 지훈에게 들릴만큼만 조용하게 하지만 강하게 대훈은 말을 꺼내었다.
“뭐? 말해 말해.”
“... 나... 팀 옮겨.”
대훈은 담담한 척 하려 했지만 떨리는 감정은 성대를 자극했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
순간 술이 확 깨는 것이 느껴졌다.
“팀 옮긴다고, 좀 있으면 우리 계약 기간 끝나잖아.”
그랬긴 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가곤 있었지만 그건 단순히 재계약 날짜가 다가오는 것을 뜻했지 팀을 옮긴다는 뜻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KT&G는 지훈에게 괜찮은 조건의 연봉을 제안 하였다. 동생 대훈에게도 비록 개인 성적은 안 좋았지만 지훈과의 완벽 팀플레이를 통한 팀 내 공헌도를 높게 사 보통 메이저 16강에 드는 선수만큼의 연봉을 지급할 의사를 내보였다. 게다가 그들은 형제가 아닌가. 헤어져 다른 팀에 소속 되어 서로 맞서 싸운다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었다. 게임계에서 둘의 우애가 정말 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왜 갑자기 팀을 옮긴다는 거야. 난데없이. 어디 팀으로 갈 건데 누가 너를 꼬셨어! 어디 팀이 너랑 계약 한데!”
급한 나머지 갑자기 닥친 일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 하였다. 알콜 대신 놀라운 사실로 인한 흥분이 지훈의 정신을 지배하였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차근차근 얘기하며 상대방의 입장을 살펴주던 화법은 뭉개져 있었다.
“고려인삼...”
“뭐? 고려인삼? 하필이면 또 거기야!”
고려인삼. 현 16개의 프로게임단은 5강이 장악하고 있다. 이동통신업계 라이벌로 대표되는 KTF, SKT 그리고 후발 주자 LGT. 통신계 3팀과 함께 신흥 강팀으로 떠오르고 있는 고려인삼, KT&G 인삼계 2팀. 스폰서를 맡는 회사의 특성상 KT&G와 고려인삼은 신 라이벌로 대두되며 프로리그에 새로운 이슈가 되었다. 저번 시즌 프로리그 3,4위전에서 KT&G가 고려인삼에 아쉽게 패하였지만 지훈이 4강에서 고려인삼 소속 저그 유저 박세환을 꺾고 결승에 올라 우승까지 하여 팀 분위기는 달아올라 있었다. 이번 시즌에야 말로 고려인삼을 꺾고 프로리그에서 우승을 할 거라며 다들 열심인 상황에 팀플에 최고 전력인 대훈이 고려인삼으로 팀을 옮긴다는 것은 지훈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야. 더 이상 팀플레이 게이머로 남고 싶지 않아. 계속 형과 같이 있으면 발전이 없을 거 같아. 고려인삼 팀 감독님이 여기와 동등한 연봉에 개인 연습을 무한히 할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했어. 게다가 내 플레이 스타일에 맞는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셨어.”
대훈은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네가 무슨 심정으로 그런 이야기 하는 줄 알아. 하지만 감독님도 이제부턴 너에게 개인 연습 시간을 많이 할애 한다고 약속하셨고, 그리고 우린 형제잖아. 너를 다른 팀에 두고 싸우고 싶지 않아.”
지훈은 최대한 침착하게 설득하고 있었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고려인삼 팀 감독이 KT&G 팀 전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작전이니 속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이 농후하더라도 동생이 어렵게 선택한 일을 비하시키는 방법으로 동생을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시간 문제가 아니야. 우리 감독님 스타일로는 내가 앞으로 해 나갈 게임 방식은 받아들이지 않을 껄. 여기서 못하는 것을 고려 팀으로 가면 할 수 있어.”
“그게 뭔 데! 뭐 길래 우리가 팀을 가르면서 까지 거기로 가야 하는 거냐고.”
지훈은 결국 목청을 높였고, 순간 파티장의 분위기는 싸해졌다.
“그건 앞으로 알게 될 거야. 내일 감독님에게 정식으로 말 하고 다음 주부턴 고려 인삼 팀 소속으로 활동 할 거구.”
정적 속에 대훈의 말이 파티장 모든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모두들 놀란 표정이었지만 박천모 감독만큼 당황스런 표정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형 미안해......”
이것이 KT&G 팀 소속 대훈이가 한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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