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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5/03 11:46:37 |
Name |
함군 |
Subject |
운전면허 시험의 추억 ;; 2000년 겨울은 추웠더랬다~ |
실화...입니다 ;;;
일기로 썼던 것들을 편집해서 모은 것이라 반말투가 있더라도 용서해주시길^^
2000년 12월 5일 ~ 2001년 2월 13일까지. 대구 화원운전학원, 경북운전면허시험장
2000. 12. 5.
수능을 치고 한 달도 안 지나서, 친구놈들이랑 동네 자동차 운전 학원에 등록을 했다.
왜 그렇게까지 서둘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이제 나도 어른이고 운전을 해야만 한다는 이상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어쨌거나 나의 운전 인생은 동네 구석에 처박혀 있는 허름한 학원에서 시작되었다.
학원비가 다른 곳에 비해 터무니없이 싸서 뭔가 의심쩍다 했더니,
이 곳에서는 관련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초고속으로 면허를 따게 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지만,
아는 선배 한 분이 여기서 배우고 열흘(!!)만에 면허를 땄다는 말에 혹했던 것이다.
필기 시험은 택시 안에서 훑어보기 신공으로 합격하고, 드디어 운명의 기능 시험을 치르는 날이 왔다.
2000. 12. 14.
그 날도 학교에서 오전에 논술 수업을 듣고 시험장으로 향했는데, 그 도중에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점심을 먹고 배도 꺼지게 할 겸 오락실에 가서 펌프를 뛰다가 아주 잠시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그만 기계 위에 두었던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ㅠ.ㅠ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스카이 폴더를 잃어버리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그 상태로 기능 시험을 쳤다. 물론 그 일은 잊고 시험을 쳐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언덕에서 기어를 바꾸다가 시동이 세 번 꺼지는 바람에 즉석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_-;;
같이 갔던 친구들은 모두 합격해서 싱글벙글인데 나 혼자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틀 뒤, 기능 시험에 합격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2000. 12. 19. - 2000. 12. 23.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도로 주행 시험. 5일 동안 학원에서 연수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쩔쩔매던 내가 나중에는 국도에서 시속 100km를 밟을 정도로 간이 부어 버렸다.
운전 강사분이 말씀해주신 시험 요령이란 것이 간단했다. 결론은 오버액션 -_-;;;
1. 차를 타기 전에 바퀴 네 개를 모두 발로 툭툭 차는 시늉을 해야 하고,
2. 멀쩡한 빽 미러를 다시 조정해야 하며,
3. 횡단 보도를 지날 때에는 속도를 줄이고 어깨까지 흔들어가면서 좌우를 살필 것. (뎀프시 롤과 비슷 -_-;;;)
그렇게만 한다면 경찰관이 흐뭇해하면서 합격을 시켜준다는 것이었다.
2000. 12. 26.
시험 전날 눈이 와서 길이 조금 험하긴 했지만, 주행 시험은 그리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코스대로 U턴하고 돌아오는 길까지 옆의 경찰관 아저씨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시험장에 들어오는 마지막 횡단보도에서 일이 터져 버렸다.
역시나 속도를 줄이고 어깨를 흔들며 좌우를 살피고 있었는데(뎀프시 롤!!),
뒤에서 달려오던 덤프 트럭이 내 차를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물론 잘못이야 그 뒷차 운전자에게 있었지만, 규정에 의하면 사고가 나면 무조건 탈락이었다.
하얗게 쌓인 눈 위로 쓸쓸한 발자국을 남겨주며 다음날 재시험을 신청했다.
2000. 12. 27.
두 번째 주행 시험날, 이상하게 목이 뻐근하다 했더니 어제 사고의 충격이었다.
양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을 정도로 아팠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붙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수많은 횡단보도들이 나와 마주쳤는데 그 때마다 난 최선을 다해서 어깨와 목을 흔들었다.
마지막에 경찰관 아저씨가 하신 말. “양 옆을 살펴야지 지금 어깨춤 춥니까?”
이번에도 불합격. 무지 슬펐다. 목 아픈 걸 어떡하란 말인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서 파스를 사서 덕지덕지 붙였다.
2000. 12. 30.
목이 낫기를 기다린답시고 사흘 뒤에 세 번째 시험을 신청했다.
그 날은 바로 2000년의 마지막 시험날, 2000년을 운전 면허증으로 멋지게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으로 시험을 쳤다.
그러나, 사흘 동안 운전대를 안 잡았더니 감각이 모두 사라졌는지,
차선을 잘못 보고 좌회전을 하다가 사고 낼 뻔하고 급정거를 하기도 하고 -_-;;
매정하게시리 그만 내리라는 경찰관의 말에 제발 한번만 봐 달라고 사정해서 억지로 계속 시험을 쳤는데,
월배 농협 앞에서 U턴을 하는 도중에 시동이 꺼지고 차선에 정확히 직각으로 차가 멈추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마침 그 날은 신정연휴 직전이라 농협 농산물매장 앞이 꽉 막혀 있었더랬다 -_-;;;
경찰관 아저씨가 내 어깨춤을 잡고 트럭에서 끌어내렸다. 아아~~
2001. 2. 7.
슬럼프에는 쉬는 것이 상책이라던가. 한동안 쉬다가 2월에 도로 주행 연수를 다시 받고 네 번째 시험을 치러 향했다.
이번에 또 떨어지면 학원 최고 기록과 타이를 이룬다는 소문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차를 타고 옆의 경찰관 아저씨를 보니 첫날의 그 잘 웃는 분이었다.
그 분도 그 사고로 인해 날 기억하시는지 우리는 즐겁게 인사를 주고받으며(^o^) 시험을 쳤다.
아하, 인맥에 의한 부정부패가 바로 이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로구나!!! 난 합격이구나!!!
아주 즐겁게 시험을 치고 나왔는데, 이번에도 불합격이었다. 점수가 2점 미달.
난 인간에 대한 회의까지 느끼면서 다섯 번째 시험을 등록하러 갔다.
여기서도 이제 원서 접수받는 누나들이랑 안면을 트는 바람에 억지로 졸라서 바로 다음날로 시험 날짜를 받았다.
많이 떨어지니까 좋은 점은 시험장 직원들이랑 친해지는 것 하나였다. -_-;;; 제길 ;;
2001. 2. 8.
다섯 번째 시험, 이번에는 학원 기록을 경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붙어야 했다.
같이 필기 시험을 치고 벌써 면허를 딴 친구가 힘내랍시고 나를 시험장까지 태워주었다. ;;
그 때의 처참한 기분이란 ;; 꼭 붙겠다는 결의를 하고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엉뚱하게도 처음 차 탈 때 반드시 필요한 오버액션(차의 바퀴를 툭툭 차고 빽 미러를 조정하는 행위)을 빼 먹고
깜박이 넣는 것을 몇 번 실수하는 바람에 다시 탈락하고 말았다.
드디어 난 우리 동네 자동차 학원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겨울 바람이 쌩쌩 부는데 눈물을 흩뿌렸다.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저녁을 안 주셨다 ㅠ.ㅠ
2001. 2. 13.
거짓말처럼 여섯 번째 시험은 쉽게 합격했다.
내가 지금껏 왜 그리 고생을 했던가, 이렇게 쉬운 일을 가지고. 이상하게도 별로 기쁘지도 않았다.
이제 운전 면허에 관해 모든 것을 초탈한 자의 마음가짐이었다.
기능 시험을 한 번 떨어졌고 주행 시험을 다섯 번 떨어졌으니 나도 참 대단한 놈인 것 같다.
그만큼 떨어지고 다시 끝까지 용기를 잃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 따위가 대단한 게 아니라,
여섯 번이나 떨어지기도 힘들 텐데 어떻게 그만큼이나 떨어졌는가가 더 대단한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한바탕 좌절을 겪고 나니 앞으로 무슨 시험에서 떨어져도 다시 오기로 달려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내게 있어 녹색의 운전면허증은 그냥 단순한 자격증이 아니라,
상처투성이의 훈장인 동시에 아픈 추억이기도 하고 나의 오기와 응어리가 뭉친 집합체이기도 한 것이다.
친구들이 보냈던 20여 통의 합격축하 메시지 중에 하나가 기억난다.
‘6전 7기 - 니가 무슨 개구리 소년이냐?’...^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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