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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4/22 23:16:28 |
Name |
Bar Sur |
Subject |
[편지] PgR21의 누군가에게(8) |
아마 4년 전쯤에, 서점에서 두리번두리번 거리며 즉흥적으로 책을 찾다가 우연찮게 눈에 띈 책이 있었다. 무겁고 음산한 느낌의 표지에 제목은 '시귀屍鬼'라, 아무튼 초장부터 분위기로 먹고들어가는 구나, 하고 짐짓 쉽게 생각하고 말았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면이 있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일러스트레이터의 화려한 책표지들이 유행하지 않은 시기라서, 그런 식의 디자인에 시큰둥해하면서도 남몰래 시큼한 귤을 맛볼 때처럼 조심스러운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곧장 그 3권 묶음의 장편소설을 집으로 사가지고 와서, 이틀 동안 남의 시선을 피해 혼자서 조용히 읽고, 그 감상 또한 조용히 내 안에만 담아두었다. 그 때는 왠지 그러고 싶었다.
꽤 만족스러운 작품이었고, 나는 '오노 후유미'라는 작가의 이름 또한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요 얼마전에 케이블의 애니원TV에서 국내 더빙한 '십이국기'가 방영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국내에 출판된 원작 소설을 모두 구입했고, 국내방영이 되기 이전에 다른 분들의 도움을 받아 NHK 방영판을 보기도 했지만 또 정신없이 보고있다. 오노 후유미, 그 이름이 어느샌가 가까운 지인처럼 친근하다. 지난날의 기억이 살아나서, 알싸하게 입안으로 귤의 향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괜히 내가 뿌듯함을 느꼈다. 원작과 애니메이션은 때로는 하나로, 때로는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하면서 하나의 십이국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기는 법을 알려준다. OST는 유명한 뉴에이지 아티스트이면서 고유한 동양적 색채의 음악 감성을 지닌 양방언 씨가 맡았으니 더 할 말이 없다.(물론 지금 듣고 있음) 요즘 시대에 갖추기 힘든 '기품'과 '깊이'가 비밀스러운 동굴 너머, 음울한 시귀의 마을을 지나, 하나의 세계를 관통하여 존재를 남긴다.
무라카미 하루키 왈, 오블라디 오블라다, 인생은 브래지어 위를 흐른다. 어떤 경계와 우연을 넘어서, 오노 후유미를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여기 있다.
당신은 어떠신지?
자, 오늘은 갑작스레 서론을 색다른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오해 없으시길. 언제나 내 편지는 당신을 위한 것이고 당신은 '나름대로' 그것을 즐기시면 됩니다. 그럼 여기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죠.(어색하지만, 다시 '~습니다'를 사용하도록 합시다.)
나는 700원짜리 천사 버스에 타면(이 버스 안내방송은 목소리도 좀 더 곱고 매력적인 듯 합니다. 게다가 저공해 버스.) 의식적으로 정면에서 왼쪽, 그리고 앞에서는 2번째 자리에 앉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 위치에서는 버스 입구 바로 위쪽에 달려있는 거울로 자신의 얼굴 및 흉상을 비춰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 자리에 앉아도 버스 기사 씨의 앞거울에도 비춰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거부감이 듭니다. 당신은 어떠신지?
모든 남자는 어느 정도의 나르시시즘을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개인의 대인 환경과 주변의 사회를 통해 냉정한 평가를 받는 와중에 철저하게 자괴감에 빠지게된 불우한 사내를 제외한다면, 어떤 남자라도 거울과 자동차 창문, 건물의 유리창 등에 자신의 얼굴이나 모습을 비춰서 살펴보기를 즐겨하기 마련입니다. 물론 그것을 새삼 남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 비밀스럽게 하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슬쩍 머리를 정돈하는 남자 정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비슷한 맥락에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들이 '평범의 범주'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사실 그 기준이라는 것 자체는 모호하기 짝이 없어서 각자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미추가 갈라지는 냉엄한 현실이 엄밀하게 존재함에도 '평범'이라는 말은 그들을 구원하는 편리한 면죄부 기능을 하는 셈입니다. 학창 시절 사내놈들과 친구로서 어울리다보면 솔직히 외모에 의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조심스럽게 간직하고 있는 그들의 가슴에 조금은 지나칠 정도로 '보통, 평범'에 대한 확신이 덧씌워져 있는 것을 보면 가끔 서글픈 느낌까지 들기도 합니다.(나 역시 남자임에도.)
평소에는 전혀 그렇지 않다가도 나처럼 수염 조금 기른 것 가지고, 양조위나 정우성 씨의 그것과 슬쩍(?) 비교를 해보려는 언감생심의 우를 저지르려는 자도 있으니, 때로는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도 들고, 처절한 응징을 받아야 한다는 얄미운 생각이 들기도 하죠.
뭐, 하지만 그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근거가 부실한 자신감을 통해 얻는 사소한 안정감은 어떤 범주의 누구라도 조금씩 추구하는 가치이고, 그것을 통해 다른 범주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온다면 말이죠. 그러나 지적해야할 가장 큰 문제는 그 '평범'의 유리가면이 연심을 느끼는 이성의 앞에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져 내리곤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암시나 최면이 해제된 직후의 패닉 상태와도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압박감에 의한 좌절은 때로 주변의 사람들까지 안달복달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불안과 실패는 누구야 겪는 거지만, 그 때마다 그 자신의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는 건 결국 남자들입니다.
그럼 그 때부터는 일종의 딜레마가 작동하게 됩니다. '나는 그래도 평범한 외모인데....'하는 생각만 가지고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위기감에서 탈출하기 위해 갑자기 '그녀는 나 같은 취향이나 개성있는 외모를 좋아할지도.....'하는 한 발 물러선 유보적이고 희망적인 관측으로 돌아서려 해도, 그 동안의 남자로서의 의식의 틀이 쉽게 움직여 주질 않습니다.
하지만 직구로 맞든 변화구로 맞든 아픈 것은 마찬가지고, 이전까지의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평범'의 안정감과는 전혀 다른 밑바닥의 근성이 그 때부터 얼마나 작용하는가가 또 하나의 관건이 되겠군요.
뭐, 힘내세요, 라고 응원해줘봤자 아픈 줄을 모르면 발전도 없는 것이 연애니까 이런 이야기가 크게 도움이 될리도 없습니다.(근데 왜 이야기가 여기까지 와버린 건지.)
흥, 이렇게 어쩔 수 없는 남자들 이야기보다 무서운 여자님들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을텐데, 그 분들 이야기를 함부로 하다가는 또 목숨이 위태로울테니 참아야 합죠.
다음 편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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