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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4/04/22 21:24:34
Name 세인트리버
Subject 아버지께 메일을 받았습니다.
흔히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뽑는다면 이런 저런 위인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게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자신있게 "아버지"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의사십니다.

지방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재단 소유의 종합병원급 병원의 원장이셨고 특별한 일이 없는한 앞으로 10년 이상 더 그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직위에 대해서 과거형을 쓴 이유는 얼마전 그 직장을 그만 두시고 베트남으로 의료봉사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새로운 도전을 찾아서,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것을 놓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원래 제가 학교 때문에 아버지와 따로 살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두번정도밖에 못뵜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가신 뒤에도 그렇게까지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오늘 아버지의 메일에 첨부된 그동안의 일기를 읽고 굉장히 가슴이 공허해집니다.

아버지께 누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그 일기의 아주 조금을 여기 첨부합니다.

***
하노이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있는 하떠이 성의 한 농촌 마을에 교회에서 봉사를 갔다.
같이 간 인원은 베트남인 미용사들과 박시뇨를 포함하여 약 30명 정도 된다.
머리 깍고 진료하는 장소는 그 동네에 있는 장애인 아동 재활센터이다.
그 전에는 마을회관을 빌려 쓰다가 얼마 전에 새로 건물을 지어서 이사하였다고 반소장이 말한다.
150명 정도의 장애아동을 돌보고 5명의 의사가 근무한다고  한다.
시설을 돌아보니 시설이랄 것도 없다.
재활시설이라고 해야 함석 같은 재질로 만든 자전거 4대와 평균대 같은 기구 하나가 전부다.
두개의 진찰실에는 간이 침대가 두 개씩 놓여 있고 소독장 모양을 한 곳을 들여다 보니 옛날에 난로에 구워먹던 알미늄 도시락 모양의 것이 두개 있다.
열어보니 핀셋만 달랑 세 개 들어있다.
무엇으로 치료하는지 한심해 하고 있는데 옆의 이집사님이 다른 종합병원도 거의 같은 실정이라고 귀뜸해 준다.
뇌성마비 걸린 아이는 그들 특유의 의사전달 소리를 내고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에게서는 한국에서 정신질환자들 수용하는 곳에서 여름에 맡았던 바로 그 냄새가 풍긴다.



****
사람은 참 간사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맞추어져 가는 나를 느낀다.
여기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 곳이 살만 하다는 것이다.
살만하다는 것은 처음 왔을 때 느꼈던 두려운, 생소함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처럼 살만하다는 것일까?
익숙한 만큼 나태해지지 않을까 경계를 해야 하겠다.



아버지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하셨습니다.

처음 시골에 내려오셨을 때(당신께서는 서울에서 의사자격을 따셨습니다) 소의 꼬리보다는 닭의 머리가 되자. 라는 생각으로 원장이라는 목표를 이루셨고, 이제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시겠다고 먼 타국땅으로 날아가셨습니다.(가족들을 팽개.. 치신건 아닙니다만..)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고 모범적인 교육법은 솔선수범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알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행할 수 없는 그런 방법이죠.

저는 아버지께 여러가지를 배웠고 앞으로도 배워갈 겁니다.

그리고 적어도 그런 아버지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는 않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저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건강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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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urn Of The N.ex.T
04/04/22 21:28
수정 아이콘
힘드신 결정 하신 아버님과, 그 결정을 이해한 가족 모두들 굉장하군요.
저같으면 그러지 못할텐데.. 흠..
총알이 모자라.
04/04/22 21:34
수정 아이콘
존경스럽습니다. 세인트리버님의 아버님 처럼 조용히 자신의 일을 충실히할 수있다면 좋은 삶이라고 할 수 있겠죠.
04/04/22 21:52
수정 아이콘
가만 보면 아들은 그 아버지 팔자를 닮아가는것 같더군요 :)
세인트리버님도 아버지 못지 않은 훌륭한 사람이 될 겁니다.
저는 아버지 닮아서 왜 이리도 여자와 노는걸 좋아하는건지...
Return Of The N.ex.T
04/04/22 22:01
수정 아이콘
Paul님//그래서 그런지 저도 술마시는걸 좋아라 한다는..-_-;
Elecviva
04/04/22 22:06
수정 아이콘
존경합니다.

존경합니다.
TheInferno [FAS]
04/04/22 22:29
수정 아이콘
정말로... 위대한 분이시군요.
본호라이즌
04/04/22 22:51
수정 아이콘
추게의 멋진 글들에서 느껴지는 그런 기분을 느낍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저그만쉐이
04/04/22 23:38
수정 아이콘
"의사" 라는 분들에 대해 존경심을 잃은지 오래였습니다.
아직도, 이런 분들이 남아있군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건강을 잃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토순이
04/04/23 00:36
수정 아이콘
이 글을 읽고 나니, 안방에 계신 부모님들 얼굴이 갑자기 그리워 지네요..빨리 가서 굿나잇 인사와 함께 사랑한다 말하렵니다.
세인트 리버님..멋진 아버님이시네요^^
★벌레저그★
04/04/23 01:48
수정 아이콘
Reverence..★
간달프
04/04/23 01:48
수정 아이콘
이런 소수의 분들이 다수를 이루는 그날까지....
아버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좋은 활동해주시길 기원합니다~~
강은희
04/04/23 01:58
수정 아이콘
'의룡'이라는 만화책이 생각나네요^^ 한번 읽어보세요~~
미츠하시
04/04/23 04:42
수정 아이콘
대단하십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더욱 더 좋은 모험 많이 하셨으면 하네요 존경스럽습니다 좋은 아버지 두신것도 부럽네요
하늘 한번 보기
04/04/23 09:39
수정 아이콘
존경스러운 아버님을 두신 세인트리버님은 행복한 사람이네요..
싸이코샤오유
04/04/23 10:58
수정 아이콘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한없이 부끄럽군요.
v행복나라v
04/04/23 11:40
수정 아이콘
멋진 아버님이 시군요~~아무나 못하는 일을 자신을 소신껏 그 일을 한다는 건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그런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용기를 키우려 노력해야 겠습니다.
정석보다강한
04/04/23 14:07
수정 아이콘
저런 의사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위대하십니다~
마요네즈
04/04/23 18:29
수정 아이콘
노벨평화상에 한표 추천해드립니다..^^
전장의안개
04/04/24 07:49
수정 아이콘
세인트리버님// 언젠가 "한민족리포트"에 세인트리버님의 아버지가 나오게 된다면 광고해주세요 시간맞추어 필히 보도록하겠습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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