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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4/22 04:49:57 |
Name |
Bar Sur |
Subject |
[편지] PgR21의 누군가에게(7) |
오랜만입니다. 혹여 연재 중단한 줄 알고 좋아하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연재는 저의 연애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쉽게 끝이 날 것 같지 않습니다. 최초의 편지에 적었지만 긴머리 미녀분들은 언제라도 주저하지 말고 사진을 첨부하셔도 됩니다.(이런 농담, 솔직히 지겹다.)
글을 올리는 것은 나중이 되겠지만, 지금은 수요예술무대를 들으며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열광적인 어셔의 무대 뒤에는 클라츠 브라더스와 쿠바 퍼커션의 연주가 이어지고 있군요. (언제나 그렇듯이 배경음악을 밝히는 것은 당신이 항상 좋은 음악과의 만남에 소홀함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 적고 있는 사이에 토이의 김연우 씨의 무대로 바뀌었군요. 아무튼 감동의 도가니탕입니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한 가지의 거대한 비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캥거루 책 공장보다 더 대단한 비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범국제적인 세력구도와도 연관지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아주 단순한 우리 일상 생활의 영위도 실제로는 너무 위험해서 우리가 알아서는 안되는 비밀에 의해서 성립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가슴 따뜻한 음모론적 발상.... 이라고 해봤자 그리 공감이 가지 않는 소리일 뿐입니다만.
좀더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굳이 가제로 이름을 붙이지면 <항○대 Z작전>..... 으음, 심오한 울림이 담긴 명칭입니다. 그리 애정을 담아서 봐주진 말아주세요.(애정이 가지도 않지만.) 깜찍한 명칭 뒤편으로 실제로는 어떤 무시무시함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음모의 실체인 것입니다.
자, 일단 이 같은 비밀을 내가 일생의 숙업처럼 쫓게 된 일련의 사정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고양시 덕양구, 대학교는 신촌 모 대학교. 버스를 타고 30~40분 가량이 걸리는 이 구간에서 항상 내 시선을 잡아끄는 곳이 있습니다.1300원의 좌석버스를 타면 신촌까지 거의 1자로 굴곡없이 신속하게 이동하지만, 고학생에게는 그 1300이라는 울림이야 말로 나를 번뇌하게 만드는 악마의 울림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악마야, 악마! 첫 강의 시간을 생각하면 지끈지끈 머리 아파오지만, 오로지 인내심을 가지고 구원의 복음이 울려퍼지기만을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립니다.
저 멀리에서 903-1번이 다가오면, 겨우 번뇌를 물리치고, 700원의.... (이것이야 말로 진정 나를 사로잡는 천상의 울림, 당신 구원받았습니다 라고 멀리에서부터 축복의 메세지가 들려옵니다.)보통 버스를 타게되면 처음에 약 2번 정도를 대로가 아닌 옆으로 빠지는 좁은 골목을 지나게 됩니다. 아니, 1번째는 아파트 단지를 지나는 것이지만 산뜻한 미녀들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고 아주머니들의 좌석 침투 작전에 말려들면 별로 마음 설레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2번째 꺾임.
2차선, 하지만 좁은 골목. 후줄근한 인상. 좌우로는 70, 80년대의 복고풍의 상가들이 쭈욱 늘어서 있습니다. 음식점들의 상호명도 심상치 않은데가다 분위기 자체가 시대를 달리하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이곳의 버스정류소를 지나 좀더 가는 순간, 놀라운 것을 보게 되는 것이죠.
상점가 사이로 그리 넓지 않은 골목, 학생들은 그 안으로 속속들이 들어가고 버스의 창문을 통해 내가 본 광경에서 골목 너머로 기차가 지나는 철로가 가로지르고, 다시 그 너머로 상당한 규모의 대학교의 입구가 보이는 것. 학생들은 유유히 그 철로를 건너 교문을 지나 학교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쯤되면 그 짧은 순간의 장면에서 누구라도 그 인상적인 학교의 교문과, 이 주변의 부조화적인 영상적 틀에서 심적인 반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어쩌면..... 후줄근한 상점가는 위장전술, 위험하게 학교 교문 앞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은 외부로부터의 보호수단. 그리고 어쩐지 필요 이상으로 넓어 보이는 운동장과 멀게 만 느껴져서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학교 안의 건물들. 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당신의 어릴 적 로망이 열혈의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지 않습니까?
그러나 비밀과 현실은 그리 쉽게 그 중간적 실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그런 영상을 버스의 차창 너머로 바라본지도 수 개월. 날이 갈수록 사춘기 소년의 연심처럼 망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어 올라, 마침내는 이런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필연적이면서도 어딘가 비극적인 결론.
"국립처럼 보이는 이 학교는 분명 국가적인 비밀 프로젝트의 총집산지이다."
"이곳의 학생과 교수는 모두 일련의 계획과 관련된 내부의 연구원들이다."
"사실 항○대에는 그레이트 후렛샤가 숨겨져 있다."
"대학의 이름이 항○대인 이유는 그레이트 후렛샤가 출동하는 순간에 운동장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활주로가 나오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상의 문제로 활주로를 열 수 없으면 바로 옆의 기차길로 그레이트 후렛샤를 조금은 아름답지 않게,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열혈과 근성을 담아 발진시킨다."
오, 납득. 뭐야, 그런 거였어?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런 산뜻하고 아름다운 종료 상황은 물론 절대 벌어지지 않습니다. 아, 이건 위험합니다. 이런 식의 망상과 적당한 타협으로 어중간한 결과만을 내재화해버리는 내 자신에게 한없이 서글퍼지고 마는 겁니다. 나약해. 너무 나약해...... 중얼중얼
_| ̄|○;;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버리는 것도 좋지 않습니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그레이트 후렛샤의 열혈과 근성의 콤비네이션을 이 눈으로 확인할 날이 올지 모릅니다. 당신도 그 날은 함께 불타올라 보지 않겠습니까?
다음 편지에서는 좀 더 이성적인 내용을 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갈수록 극단적인 성격이 드러나는군요.) 그럼 다음 번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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