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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4/21 20:14:28 |
Name |
총알이 모자라. |
Subject |
그 남자가 사는 법 |
아침이다.
눈을 떠봐야 볼 것도 없으니 눈은 감고 있다.
"일어나 밥 쳐 먹어!"
어제까지는 문은 열고 말씀하시더니 이제는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으신다.
솔직히 내가 어머니라도 그럴 것이다. 백수 생활 어언 1년이 다 되간다.
나태해지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하지만 아침마다 힘겹다.
하루를 시작하는 것부터가 힘드니 참 한심할 뿐이다.
시계를 보니 이미 9시가 넘었다.
집에는 어머니와 나, 둘뿐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책 몇 권을 주워담고 방을 나선다.
"저 공부하러 갈게요.."
"... ..."
밥이라도 먹고 가란 소리도 없으시다. 그러나 어쩌랴 나보다 더 속상한 것은 어머니일텐데..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서너 시간을 공부를 했다. 뭐 사시를 보는 것도 아닌데 공부는 핑계
고 거의 소설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 전부다.
핸드폰이 울린다.
K의 메시지다. 거의 몇 개월만에 온 K의 메세지다.
"pgr 피씨방으로 와라, 한판 붙자"
짜식, 상대도 안되는 녀석이...
터벅 터벅 피씨방에 들어섰다.
인상 좋은 호미아저씨가 가벼운 미소로 맞아준다.
"야, 백수, 여기다"
쪽 팔리게 녀석은 큰소리로 나를 부른다. 사람이 있건 없건 백수라는 단어는 나를 주눅들
게 한다.
"웬일이냐? 니가 날 부르고"
녀석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응, 며칠 아르바이트 좀 하고 용돈 좀 벌었지..그래서 오늘 피씨방 쏘는 거다."
쪼잔한 녀석 겨우 피씨방으로 생색내려고...
"야, 1:1 어때.."
훗, 가벼운 콧방귀를 껴준다. 또 어디서 이상한 전술하나를 배웠는지 녀석이 자신만만하
다. 녀석은 공방에서 70승에 300패의 초특급 하수다. 반면 나는 1000승을 돌파한지 오랜
나름대로 중수다. 녀석이 아무리 엽기적인 도박을 해와도 가볍게 물리칠 준비가 되어있다.
조용히 조인을 하고 겜을 시작한다.
난 테란, 녀석은 프로토스를 선택했다. 원래를 테란하던 놈인데...테테전은 길고 지루해서
싫어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상관없다. 가볍게 눌러주지.
난 12시였다. 정찰을 해보니 녀석은 6시다.
"위치 운도 없군 불쌍한 녀석"
난 투팩 벌처로 녀석의 입구 주위에서 농성을 하고 드랍쉽과 탱크를 준비했다.
내 조이기에 밀린 녀석은 멀티도 없었다.
거의 일방적으로 게임을 리드해 나갔고 베틀을 몇 대 뽑아서 야마토를 몇 방 쏘면서 농락
모드로 갔다. 그래도 녀석은 끈질기게 끝가지 결사항전을 했다. 내 스스로 너무 심하게
몰아 붙이는 거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고개를 들어 녀석을 보았다. 이마에는 땀방울
이 흐르고 뭐 할게 그리 많은지 열심히 마우스 질을 해대고 있었다. 녀석은 내 시선을 느
낄 새도 없이 혼자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난 가만히 녀석을 보았다. 3분쯤 지나서야 이상
한지 녀석은 나를 바라보았다.
"야, 게임 안 해?"
"이미 끝난 게임을 뭘 그리 열을 내냐? 혹시 역전시킬 것 같냐?"
'녀석은 싱거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아니, 하지만 단 1분 1초라도, 어떠한 것이라도 열심히 하고 싶어서.."
"그래? 게임 열심히 한다고 뭐 달라지냐? 그리고 넌 실력도 없잖아.."
"내 실력이야 뻔하지..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별... 야! 재미없으니까 나가자!"
난 일방적으로 조인을 풀고 일어섰다.
녀석은 말없이 카운터로 가서 게임비를 계산했다.
벌써, 저녁이였다.
"야, 돈 있으면 술이나 한잔 사라"
"그래"
우리는 허름한 꼬치 집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내가 사정이 있어서 술은 못 마신다."
"이런.. 술도 안 먹을 거면서 여긴 왜 왔냐?"
"그냥, 너 먹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별.. 무슨 일 있냐?"
녀석은 한참을 말없이 내가 술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이윽고, 내가 약간 취기가 오르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야, 나..."
"뭐, 말을 해"
"나, 위암이래..."
풋, 입에 담았던 술이 흘러나왔다. 황급히 휴지로 닦아내며
"야, 비싼 밥 쳐 먹으면서 뻥만 연구했냐? 뻥두 어디서"
녀석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 같지? 나두 그래 그런데 이게 현실이야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야. 갑자기 니가 보
구 싶었어, 이젠 당분간 너랑 게임도 못 할거구, 그래두 니 녀석하구 게임하는게 좋았는
데..."
녀석은 눈가가 젖어들고 있었다.
"이런, 젠장 그딴 소리 집어쳐, 그래 병원에서는 뭐래? 엉?"
"아직 초기라서 수술을 받으면 좋아질 거래.."
"그럼 임마 빨리 가서 수술받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높아졌다.
"응, 내일 입원한다. 그래서 니가 보고 싶었어,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보구 싶었
어!"
"젠장, 빨리 집어치우고 들어가 아픈 놈이 왜 싸돌아다니구 그래!"
나도 모르게 녀석을 일으키고는 집으로 향했다.
녀석을 택시에 억지로 태웠다. 녀석은 마지못해 타면서 나에게 말했다.
"야, 그냥 열심히 살어 내 걱정하지 말구, 난 건강해질테니 너도 열심히 생활해서 니가 하
구 싶은 일 빨리 찾도록 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거 말구 우리 인생이 무어가 있겠냐? 만
일 내가 퇴원했는데 니가 빌빌거리면 사이오닉 검으로 콱!! 알지?"
녀석은 아픈 놈 같지 않게 밝게 웃으며 멀어져 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그래, 임마 열심히 살게, 니나 건강해져라...멀쩡한 내 걱정 말구.."
그 날은 밤새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리고 3개월 뒤,
난 조그만 회사에 입사를 했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것저것 아쉬운
것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열심히 채우며 살아갈밖에...전화가 울렸다.
"어, 그래, 알았어...야, 오늘은 안 봐줘...알지? 그래 이따 보자!"
오늘도 난 K와 게임하러 pgr피씨방에 간다. 건강해진 K와 놀러간다...
-끝-
ps. 허접하지만 김철민 캐스터님의 복귀 뒤늦게 축하드리는 글을 올립니다. 혹시 기분 나
쁜 표현이 있더라도 요가를...(퍽) 덧붙여 혹시 지금 어려우신 여러분 인생이 뭐 있겠습니
까? 그냥 열심히 살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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