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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4/17 00:48:59 |
Name |
Artemis |
Subject |
2002년 : <게임, 그 새로운 문화> 그리고 김창선 님 |
지금으로부터 2년 전, 그러니 2002년의 이맘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는 혼자 여행도 다녀도 보고, 난생 처음 좋아하는 게이머의 응원도 가 보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 런칭한다는 잡지사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고 취재기자 분야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면접 당일 날. 오전 10시에 예정된 면접을 위해서 대학로로 가는 길은 이상하게도 내내 주체할 수 없는 떨림으로 가득 찼습니다.
'길어야 10분에서 15분이겠지? 그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날 어필할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많은 고민과 경우의 수를 떠올리는데 몸이 둥둥 뜨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면접은 여타의 경우와 달랐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면접관이 하시는 말씀이, 기자란 손과 입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 아니라 발로 뛰는 직업이라고 하면서 당장 나가서 기사를 작성해 오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주제는 '문화'에 대한 것이면 어떤 것이든 상관 없다고 하면서 그걸로 평가하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사진기자에 응모한 사람들에게는 사진을 찍어오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사무실을 나와서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영화계 쪽에 아는 분이 몇몇 있어서 그쪽으로 문을 두드려 볼까 하다가, 무언가 색다른 것을 찾아내고 싶다는 욕심에 머리를 굴려 떠올린 것은 바로 스타리그였습니다. 그때 한창 텔레비전 앞을 떠나서 메가웹에 직접 경기를 관람하러 가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기사의 주제로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불과 2년의 차이지만 그때만 해도 프로게이머, 게임중계, 게임팬이란 것은 지금보다 더 생소했으니까요. 한창 임요환 선수가 CF계에 진출(?)해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구도상 지금보다 좀더 매니악한 문화였음은 사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스폰서쉽이 제대로 정착된 때도 아니었다고 기억합니다.
물론, 그 전에도 메가웹에 간 적은 있었습니다. 과연 그곳에선 어떻게 경기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하는 호기심에 친한 사람과 함께 두어 번 발걸음을 했는데... 당시만 해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을 때라 경기장 내부는 매우 고요한 편이었습니다. 관람하러 오신 분들도 대부분 낮은 목소리로 소근대며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있었고, 멋진 장면이 나와도 자그마한 탄식을 내지를 뿐, 그곳에 울리고 있던 건 선수들의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전부였습니다. 그 긴장감. 가슴 가득히 밀려오는 긴장감으로 인해 숨쉬기조차 어렵더군요. 아직도 그때의 긴장감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득해집니다. 제가 한창 처음으로 경기를 보러 다니던 네이트배 때까지도 대부분 이러한 양상이었던 걸로 전 기억합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방향을 잡고 근처 PC방에 가서 관련 자료를 찾고 있었는데... 우연치 않게 김창선 님의 연락처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팀의 매니저로 김창선 님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고, 그와 함께 휴대폰 번호가 기재되어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일단 전화번호를 다이어리에 적고 나와서 삼성동으로 향했습니다. 가서 사람들과 인터뷰도 하고 이전보다 메가웹을 구석구석 꼼꼼히 훑어보았죠. 다행인 것은 제가 정식 기자가 아니고 그저 시험을 치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도 귀찮아 하지 않고 응답들을 해주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다시 대학로로 돌아와 기사 작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김창선 님의 전화번호를 눌렀죠. 참으로 많이 망설였는데 결국은 손가락을 움직이게 되더군요. 기사 작성이 잘돼 그 회사에 입사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지만, 김창선 님 방송 초창기 때부터 꾸준히 보아왔던 한 사람의 애청자로서 인터뷰를 핑계 삼아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도 부인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저의 상황을 말씀드리고 몇 가지 인터뷰를 진행해도 되겠냐고 여쭈었더니, 제게 학교는 어디를 나왔냐, 언제 졸업했느냐 등의 몇 가지 질문을 하시고는 흔쾌히 응해 주시더군요. 정말이지 그때의 안도감과 기쁨이란...
그때 김창선 님과 진행했던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Q. 프로게이머란 직업은 어떻게 해서 탄생되었는가?
A.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1998년도에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고, 그 해 말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열리면서 자연스레 프로게이머란 직업이 생기게 되었다.
Q. 그렇다면 프로게이머로서 활동하고 현재 게임 해설가로 활동하는 입장에서 프로게이머란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A. 사실 완전한 직업이라고 하기에 이르다. 더욱이 요새는 어린 선수들이 많은데, 게임 좋아하고 그걸로 조금이나마 돈을 벌 수 있으니까 하고 있는 거지 아직은 불완전하다. 군대라도 갔다 오게 되면 선수생활 계속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고... 그러나 앞으로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보완이 된다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Q. 게임 중계의 시초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A. 99년 11월 투니버스 시절, 황현준 PD가 게임대회가 열리는 것을 보고 이것도 스포츠처럼 사람들에게 관람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란 생각으로 녹화중계를 시작했다. 게임중계를 하기 시작하니 그동안 가려져 있던 프로게이머들의 활동영역이 밖으로 드러나고, 여러 사람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게임팬들도 생겨난 것이라 생각한다.
Q. 현재 해설가로 게임중계를 하고 있는데 방송하면서 느끼는 점은?
A. 일단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역시 아직 불안정한 직업이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운 면이 있긴 하다.
Q. 하나의 문화현상으로서 현재의 게임문화에 대한 생각은?
A. 아직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관전료를 내고 경기를 본다는 것도 아직 정착이 안 되었고, 선수들이나 관중들의 마인드도 아직 부족하다. 그러나 전망을 밝다고 본다. 앞으로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반짝하는 문화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사람들이 지금처럼 즐기는 가운데 조금씩 발전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김창선 님이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를 해달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시더군요.^^ 그러나 이미 제 자신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라고 긍정적 시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고 기사를 작성했기 때문에 제가 내린 결론은 새롭지만 자연스런 문화적 소비행태란 것이었습니다.
“게임이란 놀이문화, 관전문화, 소비문화가 혼합된 특이한 형태의 문화이다. <제3의 물결>에서 앨빈 토플러는 미래사회에서는 생산자가 소비자가 되고 소비자가 생산자가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게임은 이에 딱 들어맞는 형태다. 그리고 그 자체가 새로운 물결이다.”
쓰고 나니 A4 용지로 세 장 분량이 넘더군요. 그래서 나름 일반적인 기사라기보다 기획기사인 이미지가 나도록 노력했는데... 지금 다시 보니 거의 논문을 쓴 듯한 느낌이군요. 아, 그때 이 기사는 얼마 전 집에서 독립해 나오면서 우연히 찾아냈습니다. 아니, 자기가 먼저 손들고 나오더군요.^^;;
기사를 마무리 짓고 사무실로 돌아가니 저녁 7시쯤 되었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간부 면접까지 마쳤는데... 왠지 모를 뿌듯함과 기분 좋은 느낌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느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실상 결과는 제 느낌과 반대더군요. 그 회사에 입사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순간 김창선 님이 가장 맘에 걸렸습니다. 얼굴도 안 보고 그저 전화상으로만 진행한 인터뷰, 그것도 과연 기자가 될지 모르는 사람한테 매우 성의 있게 대해 주셨는데 그 도움이 왠지 무위로 돌아간 것 같아서 말이죠.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잠시나마 다른 세상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그로 인해 얻은 깨달음도 많았으니까요.
그 이후로 메가웹에서나 혹은 코엑스몰 어디에서 김창선 님을 마주하게 되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반갑기도 하면서도 죄송스런 마음도 들고... 그러나 항상 드는 생각은 ‘고마움’이죠.^^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인사 전해 드립니다.
그로부터 2년 후.
현재의 스타계는 그 전과는 확실히 다른 게 정말 몸으로 느껴집니다. 메가웹에 사람들은 이전보다 배로 많아졌고, 전에는 들을 수 없었던 우렁찬(?) 함성과 응원을 외치는 소리도 들리고, 대부분이 남자 관중이었던 곳에 여자 관중들도 그만큼 많아졌습니다. 정식으로 스폰서쉽을 받고 운영하는 게임단도 생겨났고, 대기업들도 진출을 해 있는 상황입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작일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 얼마만큼 더 제가 스타에 열광하고 게임 중계를 즐겨보고 할지는 쉽게 장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법이라서 말이죠.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제 젊은 시절의 한 자락을 즐거움과 기분 좋은 들뜸으로 메워주고,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인연을 맺게 해준 알싸한 추억들이 되리라는 것 말이죠.
앞으로 스타가 초석이 되어서 게임계가 더 많은 발전을 이루게 되었으면 좋겠단 바람입니다.
-Artemis
p.s.
1. 예상보다 상당히 긴 글이 되어버렸네요. 지루한 글, 끝까지 보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 내일, 모레 이틀간 벌어지는 MBCgame Champion's Day가 잘 치러졌음 좋겠습니다. 특히나 최다 출연에 최장 시간 방송하게 되는 김동준 님, 아무쪼록 방송 잘 마치셨으면 좋겠고요, 최상용 님도 피파 결승전 파이팅입니다.^^ 복귀하시는 김철민 님도 아무쪼록 중계 잘 마치시길 바랍니다.
3. 프로리그도 개막을 하는군요. 삼성 칸 파이팅입니다. 최인규 선수에게는 더더욱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4. 김창선 님과 한 인터뷰 내용은 PgR 분들에게는 어쩌면 새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잘 모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경우를 생각하고 진행한 내용이니까 그렇게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5. 혹여 인터뷰 내용이 올라온 것에 대해 김창선 님이 불편한 마음이 생기신다면 말씀해 주셨으면 하네요.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6. 주말입니다. 통합결승전이든 프로리그 개막이든 아니면 여타 어떠한 것이든 간에 즐거운 주말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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