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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4/15 09:23
위의 내용들 전부 사실 진위가 확인된 내용들입니다.
미국이 독일어 대신 영어를 선택했다는 점만 빼고요. 영어는 이주 당시 많은 사람들이 쓰니까 선택된 것이지 투표로 말이 결정된 건 아니겠죠 ^^;; 그 외의 나머지 사실들은 전부 사실이라고 합니다. 물론 민주주의의 역사상 저런 예가 나오기는 어렵지만 그만큼 한 표의 중요성을 강조한, 아주 잘 된 자료조사 같던데요. 꼭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04/04/15 09:24
nbk570님 농담으로 받아들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의심을 좀 해봤으나 미국이 한표차로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사용키로 했다는 것만 부정확할 뿐 그 밖의 역사적 사실등은 검색을 통해서도 사실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히 올라온다고 하네요.
관련 사이트입니다. 미국 공용어에 대한 : 참고자료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ir_id=61401&docid=254778 그 밖의 역사적 사실들... http://kin.naver.com/browse/db_detail.php?dir_id=110107&docid=182064 http://www.famousamericans.net/marcusmorton/ http://news.naver.com/news_read.php?oldid=20040315000051072014
04/04/15 09:26
투표는 한시간 전쯤에 하고 왔습니다.^^ 아직 아침이라서 그런지 젊은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투표들 꼭 하세요. 특히 젊은이들~~
04/04/15 10:10
높은 투표열기에 깜짝 놀라고 왔습니다^^ 저는 가면 바로 할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기다리는 시간이 이렇게 기분좋을수가 없었네요~~이제 남는 시간은 여자친구에게 투자하러 갑니다!! 모두즐투표하고 오시길^^
04/04/15 10:31
모 대학 BBS에 올라온 글 퍼옵니다..;;
================================================= 이 글은 미국에서 꽤나 퍼졌던 글인데 우리나라도 누군가 그대로 번역해서 퍼뜨리고 있군요. 앞의 용직님께서는 대부분 구라라고 하셨는데 꼭 그런것 만은 아닙니다. 이게 미국에서 퍼진게 1990년대 중반?쯤 부터였을 겁니다. > 1645년, 단 한 표의 투표 차로 대영제국은 올리버 크롬웰에게 > 전 영국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부여했습니다. 1645년 결정된 사항은 철기군을 기반으로 New Model Army의 편성과 크롬웰 을 그 사령관으로 한다는 것이었지, 전 영국의 통치가 아니었습니다. 구라. > 1649년, 영국왕 챨스 1세는 단 한 표 때문에 처형되었고, 찰스 1세의 처결을 위한 법안은 1648년 영국 하원에서 26:20, 6표차로 통과 됩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구라. > 1776년, 미국은 단 한 표 차로 독일어 대신 영어를 국어로 채택했고, 이게 제일 심한 구라. 이건 1794년에 버지니아 주의 독일계 주민들이 미국 의회에다가 공보를 영어/독일어 두 언어로 병기해줄 것을 청원한 것인데 의 회에서 이 청원을 1표차로 기각합니다. 그렇다고 이 안이 통과되었다고 미 국의 국어가 독일어가 될 운명이었다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죠. > 1839년, 마커스 몰톤은 단 한 표의 덕으로 미국 매사츄세츠 주의 주지사로 뽑혔고 마커스 모튼은 1839년 메사추세츠 주지사 선거에서 총 102,066표 중에서 정 확히 51,034표를 얻습니다. 당선에 필요한 1/2의 표가 51,033표였으므로 진 짜 한 표만 못 얻었어도 당선무효가 되었을 것입니다. 고로 이건 진실. > 1868년, 안드류 죤슨 미국 대통령은 단 한 표 때문에 탄핵 소추에서 모면되었고, 앤드류 존슨 대통령의 탄핵표결이 1표차로 부결된 것은 맞습니다. 국무장관 스탠턴을 경질한 문제 등으로 촉발된 탄핵발의 이후 1868년 5월 16일 미 상 원에서 열린 표결에서 공화당 의원 7명이 민주당에 가세하여 탄핵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35:19로 탄핵에 필요한 2/3에 단 1표 남기고 부결됩니다. 진실. > 1875년, 프랑스는 단 한 표 차로 왕정에서 공화국으로 바뀌는 새 역사를 시작하게 > 되었고, 1875년 이전에도 이미 1870년 보불전쟁의 패배로 나폴레옹 3세가 퇴위하여 제 2 제정이 붕괴되면서 실질적으로는 공화정이 회복되었습니다. 다만 이후 의회를 장악한 세력들 상당수가 군주제를 지지하고 있었다는게 문제였지요. 그럼에도 쉽사리 왕정이 회복되지 않은것은 이들 세력이 분열되어서 일부는 부르봉 가를 지지했고 일부는 오를레앙파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다 1873년에 부르봉 가의 샹보흐를 왕으로 추대하는데 합의했으나 샹보흐가 고사하는 진 통을 겪습니다. 이 와중에 국제가 정해지지 않는 위기상황을 계속 방치하다 가는 더 큰 혼란이 파급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었고, 왈롱이라는 의원이 7년 임기의 대통령제 공화국제를 제안합니다. 바로 이 수정안이 1875년 1월 30일에 표결에 붙여져 353:352의 1표차로 통과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한 군주제 지지의원이 사소한 일로 몇 분 늦어 표결에 참여하지 못하게되어 가결되었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뒷얘기도 있지요. 고로 이것은 절반의 진실. > 1923년, 아돌프 히틀러는 단 한 표 때문에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은 나찌당을 >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무얼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는데, 히틀러는 1921년 7월에 이미 독재적인 당 권력을 장악합니다. 히틀러는 1920~21년에 연이은 당권투쟁 속에서 다분 히 즉흥적(?)으로 이 따위로 할거면 당을 때려치겠다고 해서 1920년 12월에 당위원회에서 사직합니다. 그런데 히틀러가 탈당하자 당의 분열이 심화되고 인기가 하락하였고, 이에 에카르트의 중재로 1921년 5월부터 복당을 추진해 1921년 7월 26일자로 독재적 당 전권 위임을 조건으로 복당, 이후로 나찌당 은 히틀러의 사당으로 서서히 기울게 됩니다. 이때 당위원회의 표결은 압도 적인 찬성, 즉 553:1이었습니다. 1923년에는 이렇게 장악한 당권을 바탕으 로 바이에른 주 정부와 여러 충돌 끝에 11월 폭동까지 번져가게 됩니다. 그 러므로 이것도 구라. ============================================== 외국의 경우, 주지사 선거를 빼면 진실인건 전부다 간접선거 형태군요.. 주지사 선거는 좀 대단하네요 -_-; P.S. 어쨌건 투표는 열심히 하세요. ^^
04/04/15 10:33
보면서 어쩌면 지금 수능에서 외국어영역으로 독일어를 보고 있지 않을 까 생각했는데요!~ 한표는 소중한겁니다~ 만 저는 아직 투표권이 없군요; 내년에 선거권이 나온다고 하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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