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배너 1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4/03/06 13:44:29
Name PeculiarDay
File #1 azab_040305_01.rep (0 Byte), Download : 17
File #2 norae_01.rep (0 Byte), Download : 15
Subject 그들이 내게 준 마음가짐
/* 글 성격상 존대말 생략합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

1997년,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 무척 공부를 잘하던 같은 반의 친구와의 워크래프트 2 모뎀 플레이(칼리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던 듯 싶다)는 초보였던 나의 무참히 패배 도배였다. 이미 Command & Conquer 1 이나 Dune 2 등에서도 RTS 장르의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나이기에 친구 녀석에게의 전패는 향후 내가 사람들에게 "난 RTS 싫어해" 라고 말을 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1998년이었던가? 이미 1997년부터 내가 자주 방문하는 PC통신망의 게임 공용 게시판을 비롯한 동호회등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한 스타크래프트. 지금의 내가 별 생각 없이 가리지 않고 디지털 음원(ogg, mp3, ape 등)을 수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는 즐기지도 않을 게임을 다운로드(불법 복제) 했었고, 우연히 내 수중에 200여메가 남짓한 립 버전의 스타크래프트가 있었다. 이미 RTS 에 대한 안좋은 추억들이 있기에 나는 총 3기가 중 300메가도 채 안남은 하드 디스크에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할 마음의 여유는 존재할 리 만무했다. 그래서 나는 펜티엄 120mhz 에 램 16인 PC를 보유한 친구에게 요즘 인기 엄청 많은 게임이라 소개하며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해주었고, 과연 내 친구답게(?) 친구와 그 동생는 재미를 못느낀 채 당시로서도 고전 게임인 SRPG 용의 기사를 열심히 즐기더라.

그럼에도 스타크래프트가 인기이긴 인기였었나보다. 몇 개월만에 녀석의 집에 갔을 때 녀석들은 스타크래프트 캠페인을 즐기고 있었다. 빠지지지지지지 .. 찌짐이(사이오닉 스톰)의 작렬에 발업도 안된 느릿한 히드라들이 터져나갔다.
"저게 뭐야?"
"응 찌짐이라고 .. 번개치는 거 있어. 편 안가리고 저 속에 드가면 다 hp 달아"
"꾸졌네?"
"응"
지금은 웃음도 안나올 대화가 오가고 다시 침묵. 친구 형제는 서로 키보드와 마우스의 주도권 경쟁을 하며 프로토스로 저그와의 힘싸움 주도권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이게 재밌다고? 게임 불감증에 골골대던 나는 m.net 에서 나를 향해 미소를 날리는 이쁜 여가수의 뮤직 비디오를 감상 했다. 여전히 스타크래프트를 비롯한 RTS 는 재미 없는 게임이라는 생각은 굳이 할 가치도 못느끼며.

초보는 어떤 종족이 좋아? 라는 호기심 가득하고 도움을 간절히 요구하는 스타크래프트 중독증이 보이기 시작하는 극초보들의 통과의례같은 질문은 1999년 5월에 내 입에서 나왔다. 4월달에 입사한 게임 개발사 G사는 점심/저녁 식사 후의 짜투리 시간에 3:3 팀플로 후끈했다. 맵은 아이스 헌터. 머드나 울티마 온라인은 조금 끄적대어도 네트워크 플레이로 소수의 사람이 대전을 펼치는 게임은 처음 구경하던 나로서는 비로서 스타크래프트도 재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1달간의 구경을 통해 나는 프로토스로 게임을 시작했다. 질럿 뽑아서 중앙에 모아! 라고 하면 게이트 5개에서 질럿만 뽑았고, 이제 드래군만 계속 뽑아! 라고 하면 알써!, 대답하며 d 만 연타했다. 가끔은 다템 뽑으면 안돼? 라고 힘 없이 반항해보며. 회사의 스타크래프트 고수는 저그였고 대단히 저그스럽게 게임을 잘 했다. 그의 저그 플레이에 매료되어 저그를 택하였지만 툭하면 죽는 오버로드가 귀찮고 빌드 오더도 괴상해서 저그는 버리기로 결정했다. 종족 선택 슬롯을 Protoss 가 아닌 Random 으로 하고픈 마음에 시작한 테란 플레이. 똥가루(스캔) 뿌리는 재미가 솔솔하고 언덕에 잔뜩 배치한 탱크가 즐거웠다. 다행히 수송선에 유닛 태워서 탱크 위에 떨어뜨리는 플레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스타크래프트 멀티 플레이 '중독' 현상은 농익어 갔다. 하지만 여전히 '찌짐이'가 꾸지다는 나의 의견이 동의했던 그 친구를 1:1 에서 이겨보지는 못했다.

2000년에 이르러 민간인이 아닌 프로, 즉 스타크래프트로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스타크래프트 마음가짐(마인드)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 왜 그의 드랍쉽 게릴라가 탄성을 터뜨리는지, 왜 그의 마린 메딕들이 럴커에 그리도 안죽어서 사람들을 경악시키는지는 몰랐다. 어쨌건 그때까지의 나는 어택 땅하고 유닛들이 싸우는 광경을 흐뭇하게 쳐다보다가 유닛 다 죽으면 본진으로 화면 이동하여 유닛을 생산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 내게 임요환의 플레이 중 내게 감동을 준 것은 동시에 2개 이상의 화면을 컨트롤하는 모습(게릴라와 중앙 힘싸움)과 본진에 방어를 대단히 튼튼히 하는 모습이었다. 됐어! 이제 본진에 방어 건물 짓는다고 구박하는 사람 있으면 임요환을 들이대서 나의 기지 방어가 정당함임을 주장할 수 있어! 라는 얄팍한 생각. 하지만 2004년 지금까지도 팀플에서 본진에 방어 건물 잔뜩 짓는 건 무리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어쨌건 임요환에 매료되어 나는 과감히 주종족을 테란으로 바꾸고 보조종족으로 프로토스를 선택한다. 그러면서 로템을 처음으로 익혀갔고, 유한 맵의 스릴감을 익혀갔다. 드랍쉽 한 대 분량에 저그의 해처리가 날아가고, 드랍쉽 한 대 분량에 프로토스 가스 앞마당이 날아가는 쾌감을 느끼며.

김동수 선수의 OSL 우승에 별 감흥을 못느끼며 나는 여전히 테란을 애용했다. 사람들이 열광을 했고 나도 재밌게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화학적으로 변화할 무언가가 없었다. 내 마린 한 부대는 왜 럴커 한 마리에 쫓겨서 본진 언덕 위까지 올라가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시작될 때쯤, 박정석 선수와 임요환 선수의 결승전을 보았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조폭들과 아이스크림 박스들 ... 박정석 선수의 게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물량. 프로게이머처럼 빠른 손놀림이 힘들고 컨트롤도 힘들다면 물량으로 밀어부치자는 생각을 결심했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RTS 에서 전략, 전술이 아닌 물량으로 상대를 이긴다는 걸 부끄럽게 생각했었다. 임요환 선수의 영향도 있었고, 머리 수로 이긴다는 것이 어째 남자답지 못하다는 묘한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아직 일부 살아 남아서 지금도 팀플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물량전이 저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박정석 선수를 통해 깨달았고, 테란은 다시 내게서 멀어져갔다.

최근 며칠 간 배틀넷에서 테란전을 했다. 물론 나는 프로토스. 초반을 리버로 시간 끌며 병력 못나오게 괴롭혀주고 나는 멀티를 먹은 뒤 물량전을 하거나 테크를 막 올리는 전략으로 나갔고 성공했다. 기존에는 손이 많이 가고 초반의 불안함 때문에 전혀 쓰지 않던 전략을 새삼 쓰기 시작한 것은 강민 선수에 그 책임이 있다. 프로토스의 테크 트리간의 넓직한 간격을 물 흐르는 듯한 꿈을 꾸는 듯한 운영으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강민 선수. 최근 나는 그의 플레이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단 스크롤 쭉 내려서 이 감사의 인사만 읽는 분들은 제외!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임상훈
04/03/06 14:46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제가 스타를 처음 배우던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시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713 순수 스타사랑청년 피터와의 2년우정. [16] 테리아5365 04/03/06 5365 0
2712 제안합니다. [11] 온리진3208 04/03/06 3208 0
2711 4인 4색, 감독 열전 - #1, SUMA GO 조규남 감독님 [11] 막군5716 04/03/06 5716 0
2709 [PvT] 리메이크 다나 토스 [2] 김연우3873 04/03/06 3873 0
2708 [잡담] 박찬호가 부활하길 바라며.. [15] intothestars3247 04/03/06 3247 0
2707 [의문]엠비씨 게임 스타대회 결승전은 두번해야 된다?? [19] 리차드VS살라딘4415 04/03/06 4415 0
2705 그들이 내게 준 마음가짐 [1] PeculiarDay3192 04/03/06 3192 0
2701 OSL 5판3선승제 승부의 데이터로 분석한 종족상성... [37] 스타매니아4152 04/03/06 4152 0
2700 우리집 강아지 해피야.. 꼭 해피해야해.. [9] 달빛만으론니2901 04/03/06 2901 0
2699 3전 2선승제,5전 3선승제의 승률을 계산하면? [7] 김연우7181 04/03/06 7181 0
2698 눈이네요 하얀 눈.... [2] darkioo3352 04/03/06 3352 0
2697 100년만에 폭설이라고 합니다.. [31] 키드2965 04/03/06 2965 0
2693 [잡담] 엠겜덕에 난감스러운 이틀입니다. [7] Grateful Days~4144 04/03/06 4144 0
2692 [사랑이야기]짝사랑.. [14] 기억의 습작...3446 04/03/06 3446 0
2691 그냥 잡담... 그리고 화풀이... [9] NoReason3261 04/03/06 3261 0
2688 OSL 관전일기 - 자멸한 변은종 [23] sylent6206 04/03/05 6206 0
2685 강민 vs 전태규 결승전 예고 가상 씨에푸. [13] Egret3821 04/03/05 3821 0
2684 나는 물량저그가 보고싶다. [11] ː오렌지피코3821 04/03/05 3821 0
2683 여러분들은 얼마나 숨은 명경기들을 알고 계십니까?? [51] 저그맨5768 04/03/05 5768 0
2682 [픽션] 그 남자는 내가 모르는 경이를 본다. [14] Bar Sur3109 04/03/05 3109 0
2681 술을 마신다는 것, 그리고 운전 [7] 콜록콜록3138 04/03/05 3138 0
2680 [도움글] 영어 공부하기 (중3~고3 학생들을 위한) [35] 하와이강5922 04/03/05 5922 0
2679 어제, 오늘 엠비씨게임을 보며.. [12] By's F5452 04/03/05 545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