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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0/28 04:43:17
Name 진리탐구자
Subject 글이 글답기 위해서, 무엇 '다워져'야 할까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 이야기를 조금 하지요. 전 가진 취미가 거의 없습니다. 연예인은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 50줄에 들어가시는 저의 아버지께서 저보다 오히려 세간의 연예인들의 정보에 대해 잘 아시며, 영화는 일년에 한 편 정도 보면 많이 보는 것이고, 만화 역시 비슷합니다. 노래방에 가서 부를 수 있는 노래는 10곡 정도이며, 인간 관계는 뜻이 맞는 사람 수십 명 정도와 나눌 뿐이죠. 취미라고 해보았자 소년기에 즐기던 게임 몇 개, 스타크래프트나 운동 경기 시청, 책 중독에 가까운 수준의 독서, 그리고 웹상에서 글을 쓰는 일입니다.

생각해보면 인터넷 상에서 참 많은 글을 써 왔습니다. 글을 쓰기도 하고, 댓글을 쓰기도 하고, 질문을 쓰기도 하고, 동영상을 올리기도 하고, 토론을 하기도 하고, 최근엔 시간 날 때에는 싸이까지 범주에 들어 왔습니다. 글이 다양한 만큼, 글들에 대한 평가 역시 다양했습니다.

"이상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시군요."
"상당히 재미있는 문제의식이네요."
"내용은 좋은데, 동감이 안 가는 부분도 많네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신 것 아닌가요?"
"너무 길어서 읽기가 힘드네요."
"잘 봤습니다. 다만 스크롤의 압박이. ^^;;"
"많이 성장했구나."
"넌 좀 유연해 질 필요가 있어."
"좋은 지적 고마워. 힘 낼게 ^^"
"맞는 말 같긴 한데...잘 모르겠어. 감정적으로 수긍이 안 돼."
"이건 좀 아니지 않나요?"
"저와 정말 코드가 잘 맞으시네요!"

이런 저런 평가를 보면서, 그리고 그 평가에 대해 필요하다 싶을 때는 대응하면서 보낸 것이 지금까지의 글쓰기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존재했지만, 어쨌건 많은 즐거움을 얻어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요.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쓸 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읽고서 나름의 생각을 표현한다면, 취미 생활로는 적합하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최근엔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과연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물론 글은 즐겁기 위해 쓰는 것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혹은 봄으로써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글을 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즐거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결국은 자신의 글을 타인이 읽는다는 것, 자신의 사고를 타인에게 알리려는 것,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게 알리려는 것. 그것이 즐거움의 전부가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글쓰기라는 것이 자신의 성행위를 촬영해서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를까요.

음란물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리는 행위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올리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서로가 원하는 쾌락만을 취할 뿐입니다. 올리는 사람은 노출욕이, 보는 사람은 관찰욕이 충족되죠. 이것이야말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글쓰기는 다릅니다. 아니, 달라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글쓰기엔, 그리고 글읽기엔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 그럼으로써 타인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글쓰기라면, 자신의 생각을 타인과 함께 실천으로 옮김으로써 자신 역시 변화될 수 있음을, 그리고 타인과 하나 됨을 증명해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생각을 파악하고, 그 생각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글읽기라면, 타인의 생각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을 보다 치열하게 고민하여 자신만의 것으로 비판적으로 소화시켜고, 나아가 함께 고민하고 짊어져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글쓰기의 목적도, 글읽기의 목적도, 달성되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변하지 않은, 그리고 여전히 타자로서 존재하는 나와 남일 뿐이지요.

인터넷 공간에서의 대화가 파행적으로 이루어지는 데에 대해 많은 비판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대중 공간이라는 다음 아고라와 같은 곳에 들어가면 악플 일색입니다. PGR 역시 라이트 버튼이 가벼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익명성? 글쓰는 이의 필력? 읽는 이의 수준 저하? 쟁점의 치열함? 관리자의 부실한 감독? 물론 이런 것들이 해당될 수도 있습니다.(삭제되지 않기 위해 마지막 것은 제외합니다. ^^;;;) 하지만 그런 것들이 핵심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런 것이 해결된다고 온라인 상의 대화가 바람직한 가치를 실현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PGR에서 흔히 쓰는 말이 있잖습니까. "표현만 정중하지 다른 곳과 무엇이 다른가요(저는 표현이 다르면 내용도 다르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별로 똑똑한 사람이 못 되는 이상, 지금 당장 문제가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하라면 설명할 수 없지만, 한마디의 추상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글로써, 그리고 글로서 '관계' 맺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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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foot
06/10/28 05:18
수정 아이콘
충분히 해봄직한 고민입니다. 글이라는 도구는 소통에 그리 적절하진 않은 매체이지요. 한국처럼 논쟁보다 화쟁을 강조해온 문화권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일급의 지식인들도 글로 논쟁하다 결국 싸우게되는 경우가 99% 입니다. 몇년 전 진중권-강준만 논쟁도 그러했습니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면 다를 수도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 두 사람 공히, 실제로 마주앉아 이야기할 때와 글을 볼 때의 느낌이 상당히 다르거든요.^^;

PGR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논쟁이(논의의 수준 뿐 아니라 욕의 강도까지) 벌어지곤 했던 사이트에서 몇년간 글을 쓰며 느낀 것이 있습니다. 글의 절대적 쾌락은 마스터베이션이고, 상대적 쾌락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입니다. 상대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텍스트가 아무리 설득력을 가지고 있어도 결국 컨텍스트(여기엔 읽은 사람의 의지도 포함됩니다)도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죠. 우리는 언제나 100%를 썼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100%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오해이건 뭐건간에... 그러나 저는오히려 그것이야말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여백이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100%의 글을 쓰고 모두가 100% 공감하는 사회는 공포스럽지 않습니까.

글 잘읽고 있습니다. 건필하시길.

사족입니다만, 글 쓰실 때 이것저것 너무 고려하면서 쓰진 마세요. 글읽기가 피곤해질 수 있답니다. 쉽게 지칩니다. 너무 쉽게 글을 뱉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님의 경우는 너무 어렵게 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깨에 힘을 좀 뺀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제넘은 충고였습니다.
진리탐구자
06/10/28 05:22
수정 아이콘
조언 감사합니다. 사고로나 삶으로나 무게감이 약할 때 이런 저런 쪽을 많이 신경쓰면 그렇게 되는 것 같은데, 제가 지금 딱 그런 것 같군요. ^^;;; 더불어 님의 글도 잘 읽고 있습니다. 후후.
06/10/28 06:15
수정 아이콘
제가 수준높은 글을 읽기에 조금 부족할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세번정도 다시 읽었는데 궁극적으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잘 모르겠네요. PGR뿐만 아니라 인터넷 공간안에서의 글쓰기 문화(대화)가 파행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글로써, 그리고 글로서 '관계'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이부분에 대해서 조금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의 글쓰기는 단지 글쓰는 사람은 타인을 변화시키고자, 글 읽는 사람은 비판적 사고를 가지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이루어진다고 보기에는 그 글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다양한 범주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다양한 형태로 쓰여지고 읽혀집니다.
그 '관계'가 단지 글쓴이와 독자의 교감이라는 추상적인 메세지라면 글 내용을 좀더 자세히 적어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가 제가 이해한 것이 맞다면 일부분 공감은 합니다. :)
06/10/28 08:31
수정 아이콘
모든 동영상이 음란물이 아니듯, 글을 쓰고 읽는 과정에서 "변화", "실천"이 필요한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있는거겠죠.
sAdteRraN
06/10/28 16:30
수정 아이콘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알리고 그 생각을 타인에게 적용시키려 하는것이 글쓰기"라고 하셨는데. 저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저는 저의 부족함을 질타하기 위해서 글을 많이 쓰곤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변에 대한 생각, 타인과의 다른 의견, 많은 비판. 그런것들을 통해 성숙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가득찬 생각은 한우물에 갇혀 있기 쉽듯, 다른 시선을 봄으로서 새로운 시야를 흭득하고 그럼으로서 더욱 넓어지는, 고로 글이란 남에게 설득으로 쓸수 있으나 다르게 보면 자신이 성숙해지기 위해서 쓴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모 글쓴이님의 주요 내용은 이런 말은 아니었지만 ^^
좋은글 읽고갑니다.
DNA Killer
06/10/28 23:59
수정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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