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경기 맵이 몇 가지나 되는지 일일이 세어보기는 귀찮다. 그런 정성도 없이 써내려가는 글이 얼마나 영양가 있을지는 이 글을
적고있는 나조차도 의문이지만, (아마 거의 없을 거라 생각되기는 한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자 하는 백지병이 도진 탓인지, 이렇게
다시금 자판을 두드린다.
블리자드가 래더 맵을 배포하기 시작한 이래, 곧 그 변형으로 유즈맵이 탄생하였으며, 방송경기에서는 방송용 경기맵이라는 것을
(왠지 말이 이상하다) 만들어서 사용하게 되었다.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도에 출시된 게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여러가지 제약과 불가능했던 점이 많았음을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블리자드가 만든 맵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보더라도, 디자인 적으로나 발상적인 측면에서 매우 획기적인 부분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는 점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비록 밸런스적인 측면을 고려하자면 다소 엉망일 수는 있겠으나, 스타크래프트가 활성화되는
초창기에 제작되었음을 생각한다면, 그정도는 어렵지 않게 눈감아 줄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단 실제로 플레이 해 보라고 한다면
일단 한숨부터 쉬고 보겠다.)
과거 래더 맵은 2인용으로 제작되었다. 상대의 위치를 알기 쉽게 하기 위한 의도와 (게임에 보다 쉽게 빠져들게 하기 위한
블리자드의 계산이었을 것이다.) 그 헛점을 노린 다양한 전략의 발굴이 비의도적으로 깔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리버 스틱스,
건틀렛 등 과거의 래더 맵은 상당히 긴 러시거리와, 엄청나게 불균형적인 자원배치 (물론 이후에 발표한 래더 맵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지 않은 점이다 이 점은)가 특징이다. 블리자드의 이 맵 들 중 본인이 특별히 애착이 가는 맵이 있는데 그 맵이
바로 엘드리치 레이크이다. (혹시나 싶어 밝혀두지만 본인은 프로토스 유저이며, 이 맵의 밸런스가 프로토스에게는 가혹한 수준임을
잘 알고 있다.) 입구가 세 개라는 점, 매우 특이한 본진 형태는 밸런스를 제외하고 봤을 때, '재미있는 게임 양상'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너무도 완벽한 조건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본인이 MBC게임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신규맵을 제작하자는 의견에 엘드리치 레이크를 강력추천한 바 있다. 물론 채택되진 않았고, 그 자리는 건틀렛 2003이 대신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은 없다.) 과거 게임큐 시절에 이 맵이 잠깐 사용되었는데,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밸런스는 엉망이었지만, 게임 양상 자체는 꽤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대기 선수가 김동수 선수에게 뉴클리어를
선물한 맵이 바로 요 맵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방송'화 된 경기에서 핵을 맞은 게이머는 매우 드물며, 그런 점에서 김대기
선수의 이러한 팬 서비스 정신(?)은 높이 살 만하다.)
아무튼 시대적인 요구에 맞물려, 래더 맵은 2인용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걸린다는 점 또한, 2인용 래더
맵의 인기를 뒷 받침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인용 맵에서는 최소한 두 가지 요소가 필연적으로 결여될 수밖에 없다. 한 가지는 정찰의 중요성이다. 이 점을 역으로 노려
전진 건물 시리즈를 하는 발상도 가능하지만, 평범한 게임으로 봤을 때는 그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이는 MBC게임에서
제작된 데토네이션, 엔터더드래곤과 온게임넷의 비프로스트, 백두대간 등과는 별개다. 이 맵들은 모두 '최근'에 제작되었으며,
따라서 플레이하는 유저들의 수준이 엄연히 차이가 난다는 점외에도, 오래 전에 제작된 래더 맵과는 '컨셉'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또 하나의 부족한 점은 '역전의 여지'이다. 멀티가 너무도 뻔하면 승패 역시 뻔할 수밖에 없다. 래더를
한 번이라도 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비록 패스티스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컨트롤하는데 있어 쥐가나는 긴장감과 실제
요구되는 손 스피드는 차이가 '아예'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지금 스타크래프트 스피드를 래더 속도로 맞춰놓고
실력이 비슷한 사람과 게임을 해보라. 처음엔 우습고 하품나게 느껴질지 몰라도 조금 있으면 긴장감에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자신을
마주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4인용 맵의 등장은 스타 맵 세계에 있어서는 일대 혁신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도 다인용 맵이 없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래더 맵에서 4인용 맵이 등장하게 되면서부터 전략 가짓수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2인용 맵에서 존재하던
'타이밍'이라는 요소에 4인용 맵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즉 장기전에서) '운영'이라는 요소가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너무도 잘 아는 로스트 템플, 아시리고, 라이벌리 등이 대표적인 4인용 래더 맵이다. 이 세 가지가 거론되는 이유는 아마도
'닮은 듯 다른'이라는 명제에 가장 충실하게 부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세 개의 맵 모두가 4인용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로스트 템플에는 '앞마당'이라는 멀티에 '개스'가 있었으나, 라이벌리에는 미네랄만 존재했으며,
아시리고는 센터 지역에 다수의 미네랄과 개스가 있는 섬 멀티가 있었으나, 앞 마당 멀티는 하기엔 하찮고, 안하자니 아까운
계륵과도 같은 느낌을 주는 멀티였다. 라이벌리에는 다리가 있었으되 나머지 두 맵에는 다리가 없었으며, 로스트 템플에는 '언덕'을
이용한 전략 전술이 가능했으되 다른 두 맵에서는 그러한 요소가 없거나 미약했다. 아시리고와 라이벌리는 대칭형 4인용 맵의 표준을
그리고 있었지만, 로스트템플은 비대칭형 4인용의 교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아마 로스트템플이 국민맵이 되었던 데는, 이 요소가 가장 크지 않나 싶다. 위치간의 유불리가 존재한다는 뻔뻔함이, 수많은
전략을 탄생시키는 밑 거름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나만의 지나친 비약인 것일까? 현재 어느 방송 경기 맵을 봐도 위치간의
유불리는 금기사항에 가까우며, 알케미스트 이후 (사실 이 맵도 엄밀히 말하면 비대칭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종류의 맵은 아예 볼 수 조차 없다. 하지만 로스트 템플은 가까운 거리에서는 가까운 거리대로, 먼 거리면 먼 거리대로
쓸만한 전략과 운영등이 존재하고 개발되었으며, 이는 스타크래프트 역사를 사실상 이 때 종결 지었다 해도 별 무리가 없는 주장이
될 것이다.
그런데, 방송 경기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블리자드의 맵들은 변혁을 맞게 된다. 그것이 바로 '밸런스'라는 개념의 등장이다.
그전까지는 이른 바 '아시리고는 저그맵' '쇼다운은 테란맵(사실 이건 억지가 좀 있다. 왜인지는 저그와 한 겜 해보면 알 것이다.)
'헌터는 플토맵' 식으로 정해져만 있었다. 맵 전체에 산재해있는 불균형은, 이미 하나의 '요소'로 자리잡은 경향이 강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예를 들어, 로스트템플 6시에 테란이 걸리면 SCV를 한 기 생산한 후에 커맨드를 들어서 위치를 다시
조정한다든지, 저그가 옆에 해처리를 하나 더 짓는다던지 (프로토스는 이래저래 안좋다...)하는 방법을 썼으며, 헌터에서 12시가
걸리게 되면, 프로토스의 경우 11 더블 게이트를 짓는 식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이 무슨 사장님 나이스샷같은 소리겠냐마는,
당시에는 그랬다. 정말로.
하지만 방송경기 맵으로 래더 맵이 쓰이게 되면서, 이들은 밸런스 조정을 당하게 된다. 로스트템플 12시는 컴셋 스테이션을
건설할 수 있도록 조정되었으며, 들쭉날쭉하던 미네랄들은 가지런히 늘어서게 되었다. 건물을 못짓는 타일이 등장하는 가 하면,
특정 지형의 유리함을 줄여보고자 지형을 수정하기도 했다. 종족간의 근본적인 밸런스는 변화하지 않았으되, 맵 자체의 밸런스가
조정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로스트 템플은 '캐 저그 맵'이었다. (당시 기준, 지금이라고 해서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점화를 당긴 것은 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로 통신배부터 사용되던 맵들은 당시 밸런스적인 측면은
걸음마 단계였기에 논할 가치조차 없다 하겠지만, 그 시도 자체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위대한 것이었다. 아시리고 이상의
러시거리를 자랑하며 그 이상으로 가난한 앞마당(?)을 가졌던 블레이즈나, 발상 자체는 지금 생각해도 뛰어난 글래셜 이포크,
섬 맵에서의 프로토스 강세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만들었던 스페이스 오딧세이(결과적으로 완벽한 실패), 헌터의 개량형이자
당시 모든 맵 중 가장 재미있는 경기를 양산했던 딥 퍼플 등, 이 맵들이 있었기에 오늘 날과 같은 수많은 맵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방송경기 맵은 그 맵만의 독특한 재미를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아직까지도 걸음마 수준이었던 맵 디자인적인 요소는 배제하더라도
그 영향이 매우 컸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디자인적인 요소가 서서히 부각될 무렵 (아마도 한빛 때 부터였을 것이다.
레가시 오브 챠와 홀 오브 발할라의 등장시점 부터 맵의 디자인 적인 요소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본다.) 당시에도 개념이 미약했던
'밸런스'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이것이 최초로 폭발했던 것이 바로 저 유명한(?) 라그라로크이다. 한 때 맵 제작에 손을 대기도 했던
사람이긴 하지만, 그러한 본인의 입장에서 대변하고자 보더라도 무어라 답이 나오지 않을 이 맵이 등장한 이래, '밸런스'라는 요소는
'방송 경기 맵'에서 가져야할 가장 필수적은 덕목으로 자리잡고 '만다.'
그렇다.
본인은 '만다.'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이 가지고 있으며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밸런스'라는 토끼와 '디자인'이라는 토끼가
드디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달음박질 치기 시작했으며, 그 때부터 제작된 맵들은 이 것에 얽매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인 셈이다.
(단 하나, 아리조나는 본인의 입으로 밝혔듯이 밸런스는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음을 강조한다 -_-a) 언덕이 제거되기 시작했고,
섬 맵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구조물들이 철거되기 시작했다. 멀티는 정형화되어갔고, 간혹 등장했던 소위 '깨는 맵'들을 제외하면
'거기서 거기'인 맵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처음부터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그때까지 활용하지 않았던 다양한 시도가 새롭게 이루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미네랄을 뚫는 맵이 등장했으며, 역 언덕형의 맵이 탄생했고, 반 섬맵의 기준이 어느정도 정착되기도 했으며, 러시거리와 멀티 간의
함수관계가 일반인들과 게이머들 사이에서 도출되기도 했다. 건물을 못 짓는 지형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자원의
배분의 변경을 통해 새로운 게임 양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달은 차면 기우는 법. 아이디어는 차츰 고갈되어 가고, 밸런스와 디자인, 거기에 '재미'라는 요소까지 동시에 충족시키는
맵은 점점 더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나 밸런스 문제는 맵 좀 오래 만들었다 하는 사람들도 헛다리를 짚기 일쑤인
경우가 허다해, (레이드 어썰트나 레퀴엠 등장 당시의 논쟁을 지금 보면 아주 가관이다.) 맵 제작이라는 작업은 그 어려움니 날이
갈 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스타크래프트가 1998년도에 출시 된 이래,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것들이 가능해지고 있다. 과거에도 가능은 했었지만, 그 실용성과 디자인적인 측면 때문에 버림받았던 '윗 입구'라든지,
'중립 건물'의 도입이라든지, 심지어 맵에 로고를 새겨넣거나, 음악이 흘러나오게 하는 등의 요소는 익히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것들이다. (실제로 관심없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미 스타 맵 제작에서는 거의 3차원에 필적하는 느낌을 주는 맵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만큼 유즈맵의 힘은, 비록 어둠 속에 있는 형태에 가깝지만, 스타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다.)
초창기 '옵저버 트리거'를 몰라서 커맨드를 띄우고 비전을 꺼서 게임을 진행하던 시절에서 현재는 맵에서 스폰서 광고를 봐도
어색하지 않을 시대까지 오게 되었다.
비록 맵 제작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지만, 기술의 발전이 있고, 노력하는 맵퍼들이 있는 이상, 과거에 재미있던 맵들이 좋은
경기를 만들었던 것처럼, 미래에도 명맵이 탄생할 것으로 믿는다.
이러한 장문의 글을 쓰면 보통 오타 수정등을 위한 작업이 있어야 겠지만, 그냥 웹상에서 작성하는지라 귀찮음의 압박 때문에
그냥 올리려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뜬금없이 쓴 글은 뜬금없이 마무리하는게 옳다고 생각하기에 이쯤에서 줄일까 한다.
더위야 가라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