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학술회의 관련으로 연세대 쪽을 찾아가 외솔관에 가게 됐습니다. 2층에 올라가보니 바로 마광수 교수의 옛날 연구실이 보입니다. 지금 주인이 없는 듯 보이지만, 그 명패는 그대로더랍니다...

그걸 보니 문뜩 10여 년 전 일이 생각났지요. <줄거운 사라> 사건, 마광수 교수의 구속 수사... 사실 생각해보면 그 때에 한국 지식인 집단은 아우성을 치고 난리 쳐야 됐을 것입니다. 검찰청의 검사들이 세계 문학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책을 봐도 성적 표현의 노골성으로는 마 교수보다 어쩌면 한 순위 위지요. 그러나 다니자키는 쇼와 문학의 거성이고, 마광수는 대한민국 인테리 집단의 낙오자가 된 것이지요. 성매매 산업이 농업보다 더 높은, 약 4% 정도 되는 몫을 총국민생산에서 차지하는 나라에서 마광수 교수가 독자들의 순결함을 모독한 무서운 죄악으로 잡혀 갔을 때에, 대한민국의 다수의 지식인들이 왜 그렇게 태연했을까요? 이문열이 마광수가 교수 직함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망발을 했을 때에, 왜 이문열을 생매장시키지 않았을까요?

결국 이것이죠. 마 교수는 본인의 직장에서 헤게모니를 가진 패거리들과 잘 어울려 술을 자주 마시지 않는데다가, 문단이라는 골목에서는 그 대장들에게 굽신거리는 일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냥 한 개인으로서 자신의 취미대로 살아온 것인데, 그 정도의 도전을 대한민국이 용서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다 마 교수가 학생들을 평등한 인간으로 대해주고 "스승님"으로서의 폼을 잡을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마도 추가적인 꾀심죄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쓸쓸한 이야기지요. 사실 개인의 내면 세계마다 성적 팬타지, 성적 상상력 등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당연히 차지하는 것이고, 이걸 그냥 자연대로 인정하여 사는 게 가장 현명할 터인데, "내가 손톱이 긴 여자가 좋다"는 정도의 커밍아웃이 마 교수를 왕따로 만들고 만 것이지요. 성욕의 개인적인 형태들을 솔직히 이야기해주는 게 그렇게 큰 반지성적 범죄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성욕은 예컨대 소유욕과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욕망이지요. 성욕은 결국 새로운 생명을 낳는 것이고 "나"의 경계를 넘게 하는 어떤 초월성을 내포하지요. 그런데 자아 지향적 소유욕은 결국 파괴 욕망으로 연결되기가 쉽고요. 성에 대한 억압은 곧 권위주의, 극단,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라이흐가 한 지 이미 70여 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그걸 알고도 그 악순환을 왜 못벗어나지요? 어쨌든 현대 한국의 제대로 된 역사가 미래에 쓰여질 때에 외로운 개인 마광수의 개인 독립 전쟁은 거기에서 대서특필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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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엄숙주의가 깨지는 날이 언제 올까요.

그나마 순결에 관한 관념들은 많이 깨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동성애자, 성 전환 수술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 현재 있는 가족 제도나 결혼 제도와 같은 것들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들은 너무나도 경직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성의 해방은 인간의 해방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그저 타락 내지 일탈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인간성을 추구하고 보호하기 위한 도덕이 오히려 인간성을 핍박하게 되는 일이 굉장히 많은데, 특히나 성 분야에서는 그것이 더욱 심하지 않은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