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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6/14 12:37:14
Name 그러려니
Subject 어느 부부이야기2



"끄아아아아아악~~~~~~~~~"

저 에일리언4에 출현했던 괴물과 인간 합체변종의 비명소리와도 같은 포효.
그림같은 이천수의 골을 보고 아내는 그렇게 내지르더니, 한참을 자리에 앉지를 못하고 계속 박수를 치며 "멋있었어, 멋있었어"를 연발한다.
첫골에 이어 파상공세를 퍼붓는 한국팀의 플레이를 보며 진정을 못하고 계속 서 있다가, 잠시 소강상태가 되자 그제서야 내 옆자리로 돌아온다.
"아 손바닥 아퍼......"
귀가 울리도록 박수를 쳐대더니 이제야 아픈게 느껴지나 보다.
그리고 두번째 골.
또 다시 그 포효와 박수를 곁들여 금방이라도 덤블링할 것 같은 점프로 전진, TV 화면에 코를 박을 태세다.

"음화하하하하하하하아악~~~~~~~~~~~~~~"

몇일전 유게에서 듣고 웃느라 거의 기절하는 줄 알았던 정소림캐스터의 늘어진 웃음소리와도 맞먹는 걸죽함까지 곁들인다.

이제 웬만큼 자란 두 아이의 엄마.
어쩌면 저렇게도 4년전과 달라진게 하나도 없을까.
그때 배속에서 자라고 있던 둘째 아이가 이제 유치원을 다니고 있고, 이탈리아전을 보느라 정신없는 엄마에게 재워달라 보채다 안정환의 골든골에 곁들여진 엄마의 비명소리에 울음을 뚝 그쳤던 큰 아이도 내년에 어엿한 초등학생이 된다.
아기를 가진 사람이 저렇게 뛰어도 될까 걱정이 됐던 가공할만한 점프도, 목이 쉬어라 내지르던 포효도, 손아 부서져라 사정없이 쳐대던 박수도, 단지가 떠나가라 토해냈던 웃음소리도.
4년전 그때 그대로다.

"야... 너 정말 왜 그러니..."
온 집안을 쩌렁 쩌렁 울려대는 모습에 한마디 건내도 그냥 힐끗 쳐다보고 말고는, 나몰라라 또 크하하 웃어대며 골난 순간의 흥분과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다.

.
.
.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컵 원정경기 첫승을 따냈던 어제는, 아내와 내가 7년전 처음 만났던 날이다.
워낙에 그 사람도 나도 기념일 같은 거 잘 챙기지 않는 성격이라 늘 '오늘이 그 날이네'라고 몇마디 나누며 잠시 추억에 젖기만 하기를 몇년, 이제 아이들도 다 컸겠다 적당한데 가서 함께 외식하고 돌아왔던 차였다.
7년전 그때,
오렌지주스를 쪽 빨아 마시며 '아 맛있다' 귀엽게 중얼거렸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깨에 닿을듯 말듯한 단정한 생머리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앉아, 적잖이 흥분하며 번지점프했던 얘기를 들려주던.

7년을 지나오면서,
늘 앳되 보이고 빈틈없어 보였던 생머리가 이제는 여유있어 보이는 웨이브로 변해 있고, 군살없이 날렵했던 몸에는 적당히 귀여워 보일 정도로 살이 붙어 있으며, 늘 저녁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고 절절 매던 초보주부는 이제 뭐든 재료만 웬만큼 있으면 뚝딱 한끼를 차려낼 수 있을 정도의 베테랑이 되어 있다.
4년이 지난 뒤의 우리 대표팀도,
깊게 패인 주름이 있는 선수들보다는 한창때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팽팽한 얼굴을 한 선수들이 적지 않고, 그 이름만으로도 믿음직했던 몇 선수들은 이제 은퇴해 해설자로 코치로 물러나 있으며, 우리 선수들을 격려하고 환호하는 저 감독도 이제는 다른 사람이지만..

경기 보며 더 할 수 없이 흥분하고 즐기는 내 아내란 사람의 저 열정만큼은 하나도 달라진게 없는듯 하다.


월드컵 원정경기 첫승과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의 절묘(?)한 조화는,
'그래. 월드컵때마다 늘 그렇게 아무 다른 걱정없이 기뻐할 수 있도록 내가 널 지켜줄게'라는 비장함을 불러 일으킨다(하핫^^;).
우리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월드컵이 앞으로 몇번이 더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먼 훗날 손자 손녀 울음도 뚝 그치게 하는 귀여운 할머니의 골 세레머니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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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6/14 12:44
수정 아이콘
부럽습니다...-_-;;;
06/06/14 12:45
수정 아이콘
아 너무 좋은글; 읽으면서 계속 부러움 가득한 미소가 나오게 만들어주시네요. 두분 행복하게 잘 사세요!!! ^^
카이레스
06/06/14 12:53
수정 아이콘
행복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앞으로도 계속 즐겁고 우렁찬(?) 월드컵 함성과 함께하시길
06/06/14 12:57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읽으면서 입가에 미소 짓게 되네요.
항상 행복하시길.. ^^
사라만다
06/06/14 13:02
수정 아이콘
'어깨에 닿을듯 말듯한 단정한 생머리에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적잖이 흥분하며 번지점프했던 얘기를 들려주던.'
원피스를 입고 번지점프했단 얘기는 아니겠지요???
그러려니
06/06/14 13:09
수정 아이콘
사라만다님//왜 아닙니까. 그 원피스가 바로 수영복이었..
태바리
06/06/14 13:16
수정 아이콘
켁... 제가 잘못이해했나 했더니 한번더넘어 수영복...
그나저나 부럽습니다.
그러려니
06/06/14 13:21
수정 아이콘
태바리님//농담이었습니다ㅡ_ㅡ;;; 바람막이 점퍼에 운동화 끈 꼭 묵고 완전무장하고 뛰어내렸다죠.
노파심에 본문 좀 고치겠습니다;;
호수청년
06/06/14 13:37
수정 아이콘
부럽워요 ㅠ.ㅠ
estrolls
06/06/14 13:49
수정 아이콘
이게 뭐하는겁니까~~~~~~~~~~~~~~~~~~!!!!!!!
부럽습니다...ㅠ_ㅠ...
루크레티아
06/06/14 13:57
수정 아이콘
한 폭의 그림이네요 ^^
이런 글 보고 있자면 세상 사는게 어렵다는 소리가 우습게 들립니다 정말. 너무 즐겁게 사시네요 ^^
그러려니
06/06/14 13:58
수정 아이콘
이 글은 절대~~~~~~~~~~~~!!! 염장글이 아닙니다.
월드컵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캠페인 글입니다~~~~~~~~~~~!!! 일종의 공익광고라고나 할까 쿨럭;
여자예비역
06/06/14 14:01
수정 아이콘
오와~ 너무 멋진 이야기네요~^^ 앞으로도 평생~ 행복하세요~^^
그러므로
06/06/14 14:23
수정 아이콘
흠...1탄에 이어서 결혼하고 싶은 총각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글이군요...아...
라비앙로즈
06/06/14 14:32
수정 아이콘
아름다운 염장이네요 ^^*
06/06/14 14:39
수정 아이콘
본문과는 별 상관없어보이지만 저는 왜 자꾸 연애시대가 생각이 날까요 하하-_-;
암튼 저도 나중에 꼭 님같은 결혼 생활을 하고 싶군요.ㅠ 정말 부럽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사세요^^
스팀팩 맞은 시
06/06/14 15:51
수정 아이콘
좋네요... 정말
06/06/14 15:54
수정 아이콘
음.. 1편은 어디있죠? 검색해도 없던데..
그리고 저도 더도말고 10년후에 이런글 쓸겁니다. pgr 자게에다 ^^;
후후.
그녀지킴이
06/06/14 16:05
수정 아이콘
이런글 월드컵게시판에도 많이 보였으면 합니다!!!!!!!!!
06/06/14 16:15
수정 아이콘
아..빨리 결혼해야 할텐데..ㅠ.ㅠ
스피넬
06/06/14 16:57
수정 아이콘
부러워요... 언제쯤 저도 그렇게 될지;;
전 아마도 철없는 엄마라는 소리를 듣게 되겠죠 ^^*
레지엔
06/06/14 17:31
수정 아이콘
재밌게 사시네요... 저도 10년쯤 후에 저런 모습으로 축구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나저나 그러려니님의 부인되시는 분은 한국판 영국 할머니가 되시는건가..(왜 있잖아요 흔들의자에 앉아서 뜨개질을 하며 손자에게 '내가 어렸을 때는 말이지...' 하다가 갑자기 축구 경기장으로 바뀌면서 '골 못 넣으면 니들 집에 못가!'를 외치는 열혈로 돌변하던... 콜라광고..)
sometimes
06/06/14 18:01
수정 아이콘
전 좋은글이라는 생각은 안들고
감동적이라는 생각이드네요...
사실 평범한 일상인데, 왜 그럴까요?
행복하세요^^
그러므로
06/06/14 18:30
수정 아이콘
비즈/1편은 유머게시판에 그러려니님의 이름으로 글을 검색하시면 나옵니다. 이분...말을 안할뿐 염장이 장난이 아니시죠..허허허허(좋아보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려니님^-^)
hyun5280
06/06/14 19:20
수정 아이콘
아.. 부럽워요..
waterbrood
06/06/14 21:50
수정 아이콘
저도 날씨 좋은 날 와이프랑 마을버스타고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갈때 무지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역시 행복은 일상속에 있는거죠~~
가람휘
06/06/15 00:56
수정 아이콘
부러워요~ 정말...
행복하게 사세요^^
재스민
06/06/15 10:39
수정 아이콘
와..좋은 글..^^ 마냥 부럽습니다~~
그러려니
06/06/16 16:23
수정 아이콘
좋은 말씀 남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들 행복한 하루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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