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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6/05 06:52:36 |
Name |
요나 |
Subject |
pgr의 논쟁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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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를 보기 시작한지 이제 2년남짓 되는 저로서는 이 많은 사람들이 왜 이토록 게임방송에 대해 사소한 문제까지 짚어서 이야기 해 주고 나서서 야단법석인지 한참을 이해 못했더랬습니다. 시장의 법칙대로라면, 우리가 늘 해오던 공중파 3사에 대한 입장과 마찬가지로 '안보고 안 좋아해 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재미있지도 않은 드라마, 민망하기 짝이 없는 쇼 프로그램 혹은 미숙하게 월드컵 중계방송을 하는 방송국에게 우리는 이렇게까지 논의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네끼리 모여서 쑥덕거리기를 몇 번 하면 시청률이라는 무시무시한 덫에 걸려 스스로들 자멸하고 만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에 항의를 하고 더 낫게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그것도 모자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더 나은 방안을 (해당 방송사는 묵묵무답인데도 불구하고) 서로서로 제시하며 토론하고 격하게 다투기까지 하는 모습. 사뭇 묘해 보였습니다.
한참을 바라보고 의아해 하고 뒤적이며 고민해 봤습니다만, 아직까지도 확실히 납득을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매번 되풀이되는 리그 진행 방송의 질에 대한 논쟁, 호불호에 대한 논쟁, 선수들의 경기평에 대한 논쟁, 리그 기사에 대한 논쟁들을 되짚어 보면 간단하게 치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스타리그 자체가 매니아층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발전해 왔다는 데 동의한다면, 진정 이 판을 쟁기질로 경작하는 이는 팬이라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닌 듯 보입니다. 시장권력이 주체가 되어 수입하거나 자작한 스포츠를 널리 퍼뜨리고 많은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면 특수 팬덤이 형성되어 가는 여타 스포츠와 비교해 보면, 소수의 매니아층과 함께 시작해서 그 매니아가 게이머가 되거나 해설자가 되고 결국 팬이 되어 점점 시장을 키워온 스타문화는 분명 독특합니다. 이는 스타판과 여타 문화들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됩니다. 더불어 스타판을 경작하는 쟁기를 가진 이들의 마음가짐은 남다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쟁기를 가지고 땅을 경작하는 이는 생산된 벼를 받아먹는 자와는 틀리겠지요. 현실적인 정책을 수행하는 사람과는 더욱 틀립니다.
pgr에서의 스타관련 논쟁은 기본적으로 스타판(스타크래프트라는 경기 자체를 즐기고, 관련 팬덤을 즐기는, 모든 즐김이 어우러져 있는 '판')이라는 문화 자체를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사실 초보유저인 저마저도 동화되어 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뒤늦게 좋아해 생방에 재방에 vod까지 챙겨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황망히 따라가기 급급했던 오묘한 시선들이 차츰 정리가 되고, 맞아 맞아를 연발하던 마음들이 가끔은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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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진정한 팬이자 매니아라면 그들을 향해 어떤 입장을 강요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태도를 고수해야만 수많은 사람들이 아끼고 지켜온 스타판의 결백성과 정직성, 균형감 그리고 절대적인 무기인 <재미>를 지켜 나갈 수 있고, 무언가 선동을 해 혼란에 빠뜨리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사태에 대한 가치판단을 중지한 채로 그저 바라보는 입장을 옹호했습니다. 그런데 차츰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급기야는 게시판에 이런 글을 써 보게도 되는군요.(여기까지 와서야 글을 쓰는 목적을 밝히는군요. ^^)
가치중립의 입장에서 얻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객관성입니다.
문제는 제 삶의 태도였습니다. 객관성은 가치중립으로부터만 얻어진다고 믿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매일의 게임을 볼 수 있다는 데 만족하고 보여지는 판의 모습을 믿고 따르자, 열심히 리그를 시청하고 아낌없이 응원해 주자고 제안하는 것. 그 자체로는 흠잡을 데가 없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성실함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나의 성실한 시청과 응원이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쾌할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정지한 판단과 침묵 속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어떤 사람들은 참을 수 없이 고립되어 있기도 하다는 것. 가끔은 열심히 지켜보되 과연 얼마나 옳은 일을 하고 있는가,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가, 즉 가치판단을 하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이 되어버립니다. 아, 모순적입니다. (제가 인생이 모순덩어립니다, 흑.) 제 한계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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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저는 pgr의 다분히 소모성이 짙은 이 논쟁들이(어떤 논쟁인지는 아실겁니다.) 그다지 소모적이지만은 않다고 여깁니다. 아마도 pgr의 많은 사람들은 저와 똑같은 생각의 길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똑같은 결론은 아니더라도 이런 모순의 과정을 거쳐왔고 훨씬 오랜 고민의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온겜넷을 통해서 스타보기를 시작해 왔고 자신들의 '즐김'의 원천이 되었던 온겜넷의 좋지 않은 모습을 감히 참을 수 없어서 독한 마음으로 독한 발언들을 내뿜었을 겁니다. 그냥 보지 않고 말아 버릴 마음이라면 이렇게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없을테니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내버려두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친엠겜' '엠겜만 옹호' '온겜만 비판' 등의 단지 글의 겉껍질만을 보고 기분이 나빠 적는 글은 어느 누구에게도 소통하지 못합니다.
그 독한 글의 임자들은 보다 나은 앞날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으니까요. 임요환 선수가 30대에도 개인전 우승을 거머쥐고, 십년 후 내 아이들을 무등태워서 경기장을 찾고, 더 재미있는 리그 누구에게나 관심받는 리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 말입니다.
결국은 '옵저버 바꿔버려'와 '그럴려면 온겜 보지 말아버려'는 같은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싸우는 과정을 바라보다가 드디어는 저 앞의 '가치판단을 중지한 채로 그저 바라보는 입장'이었던 내 모습이 pgr의 논쟁 앞에서 다소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말은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네, 스타리그를 알게 되었을 때 보다도 pgr을 알게 되고 두달을 기다려 덧글을 달 수 있게 되었을 때가 훨씬 더 심장이 뛰었더랬습니다.
드러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스포츠라는 이름으로 체계화된 지는 이제 겨우 몇년째의 걸음.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기대되고, 그 기대로 인해 설렙니다.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e-세계의 가치를 보여주길 기대하지만 지금의 행보에 비추어 보면 어려운 살림이 될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그래도 기대합니다. 저 거대한 공룡 기업들이 베틀넷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솟구쳐 올라온 이 즐겁고 아름다운 스포츠를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 관중 동원과 대규모 스폰 잡기에만 급급해 정작 선수들과 우리들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재미있는 게임, 감동적인 게임을 홀대하는 방송과 협회가 되지 않기를 바래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겁니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이라도 언젠가는 다른 업적에 의해 극복될 운명에 처해 있기 마련이고 이는 한단계 발전을 위해서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는 것, 언제나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고 다른 작업에 의해 타파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기를 스스로 원하는 리그의 모습, 그것을 감수하고 승리를 위해 나아가는 게이머들. 제가 사랑하는 스타판의 지금 모습입니다. 게임에 임하는 게이머 뿐만 아니라 정책을 세우고 나가는 방송사의 모습, pgr의 모습 모두 그렇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pgr에는 이런 논쟁이 계속되기를 원합니다. 누군가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울화통이 터져 밤새 키보드를 잡고 끙끙거릴 수도 있으며 또 누군가는 지금의 저처럼 어찌저찌 해 보지도 못하고 그저 심란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 할퀴고 더 때리고 더더 상처받고 더더더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런 내용없이 지루하게 니가 낫네 내가 낫네의 논쟁이 아니라 가치있고 의미있는 논쟁이라고 생각하고 책임있게 발언하면 됩니다. 제가 훔쳐본 pgr은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의 힘으로 밀어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현실을 수긍하고(논쟁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진보해 온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규모있는 스타판의 모습이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까.(물론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들의 침묵은 여전히 모순으로 남아있습니다만.) 원칙적으로 이러한 논쟁은 무한히 계속되어야 하고 쟁기질을 하는 사람들은 이를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하는 말은 pgr의 누구나가 생각하는 상식인 걸 압니다. 제가 뭐 뛰어난 pgr유저도 아닐 뿐더러 말했다시피 아직 고민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이라고 변명해봅니다.
아직은 조심스러운 걸음이지만 저는 pgr에서 즐겁고 뜨겁게 논쟁하려고 합니다.
다소 격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포함되었더라도 굉장히 난해해 보이는 용어의 치장보다는 나으니 융통성 있게 이해해 주면서 내 할말 하기, 말장난으로 여겨질 수는 있지만 pgr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커지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 갖기, 극명한 표현은 은유의 차원에서 이해하기, 틀렸다면 겸손하게 대가를 치르기 등으로 마주하려고 합니다.
나홀로 tip)
'안보면 그만이지' '온겜은 옵저버를 바꿔야 한다'는 글의 앞머리에는 사실 이런 고민이 숨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번- (지금까지 온겜 잘 해 왔고 잘 하고 있는데 이렇게 사소한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다니 속이 상해서 못살겠는데 내가 백번 말해서 잘 먹히지도 않고 아휴... 에잇(자조하며)) 안보면 그만이지.(라고 말하는게 속시원하지)
이번- (오프닝 CG도 너무 잘 만들고 스타판도 이렇게나 키워냈는데다가 이때까지 온겜으로 계속 시청해 왔는데 이번에 또 옵저빙이 저렇게 되면, 사람들이 자꾸 온겜 옵저버 욕을 할 텐데, 그렇게 될 바에야 내가 나서서) 온겜은 옵저버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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