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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백)아직은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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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전까지만 해도, 난 짝사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도 모르고, 어떻게 좋아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로 마냥 좋아하기만 하다가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어느 늦은 밤 그
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연한 갈색 편지지 위에 바다색의 펜으로 끄적끄적... 나의 푸른빛 사랑을 열심히 적었드
랬죠. 하지만, 연애 편지같은 걸 써 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어떤 방식으로 내맘을 표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생각나는대로 적어내려갔습니다. 쓰
기 전에는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을 참 많이 했었는데, 막상 펜을 잡으니 하고 싶은 말이
술술 흘러나와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요.
편지를 다쓰고, 최대한 예쁘게 편지지를 접어서 봉투에 넣었습니다. 겉봉에는 내 이름과
나란히 그녀의 이름을 썼습니다. 혹시라도 글씨가 삐뚤어지지 않을까 펜을 부러뜨릴 것
같이 힘을 꽉 주고 말이에요.
그렇게, 어느날 새벽까지 전 즐거운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보내는 사랑을 썼습니다.
그런데 저런... 결국 그녀가 제 편지를 읽는 일은 없었습니다. 쭈뼛쭈뼛, 다가가 내 작
고 부끄러운 사랑 한통을 건네주기가 어찌나 힘들던지. 결국엔 건네보지도 못하고 그냥
봉투만 만지작, 만지작... 할 뿐이었습니다.
신은 정말 얄궃습니다. 마음대로 사랑할 마음을 내게 줘놓고, 마음대로 고백을 할 용기
는 주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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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인터넷이라는 넓은 공간이, 그를 응원하는 내게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 pgr bbs라는 작은 게시판이, 그를 응원하는 내게 정말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pgr bbs가 없었더라면, 내가 이토록 열심히 그를 응원할 수는 없
었을테니까요.
마음속으로만. 그저 마음속으로만 힘내라고 외치고. 잘하라고 말하고. 잘했다고 격려하
고. 언제나 응원하겠다고 천번도 만번도 되뇌이겠지만, 그를 응원하는 나의 마음은, 옅
은 갈색의 편지지 위에 작게 속삭여진 내 사랑처럼 결국 전해지지 못할테니까요. 앞에
만 서면 얼굴을 붉히며 인사조차 건네지 못할테니까요.
신은 어쩌면, 그다지 얄궃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내게 마음대로 누군가의 열렬한 팬이 될 마음을 주고, 나같이 용기없는 사람을 위해서
이런 멋진 공간을 주셨으니까요.
힘내라고. 잘하라고. 언제나 응원하겠다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선물해 주었으
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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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군가를 사랑하다보면 내 마음은 장작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를 향해 활활 타올라요. 그렇게 해서 나의 온기를 전하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나를 빛
나게 해보이고 싶어요. 그렇게 되려면 더 따뜻하고 환한 불을 밝혀야합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다보면 지쳐갑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지게 보이는 장작이 되려면,
제 몸을 더욱 힘차게 태우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바보같이... 그 사람에게 멋지게 보이
려고 불을 더욱 환하게 밝힐 수록 결국에는 멋대가리 없이 시커멓게 타버리고, 보잘 것
없는 못생긴 숯덩어리가 되어가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계속 불을 밝힙니다 장작은. 바보처럼.
어쩌겠어요, 이미 불이 제 몸에 붙어버렸는데. 이제 끄려도 해도, 끌 수도 없거든요.
그를 응원하는 내 맘도 점점 장작이 되어갑니다. 그를 더욱 좋아하고 좋아할 수록, 응
원하고 응원할 수록, 기대하고 기대할 수록, 그렇게 더욱 활활 타오를 수록 어제와 같
은 그의 모습에서는 큰 실망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정말이지 그럴때면, 내 가슴은 이미 힘이 다해 불이 꺼져버린, 시커멓게 변해버린 숯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져요.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걸요. 그를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이상합니다. 원망스러운데, 원
망 할 수가 없습니다.
좋아하면서, 원망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난 어렸을 때부터 바보라, 두가지 일 동시에
못하거든요. 그래서 원망할 수가 없습니다. 그를 좋아하니까, 좋아하면서 원망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제 몸을 활활 불태우는 일과,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는 일을, 장작이 동시에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아직 나는 그를 좋아합니다. 아직은 원망하기보단, 응원하고 싶습니다.
영원히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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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랜만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이 하얗고 텅빈 문서에 그를 향한 내 마음을 적습니다.
내가 여태껏 써온 모든 글들은 '혼잣말'입니다. 실제로 누군가의 얼굴을 앞에두고, 나
의 진심을 전할 수 없는 그런 용기없는 내가 적은 '혼잣말'.
제목에 '독백'이라고 쓴 이유이기도 하지요.
바로, 그에게만 보내는 혼잣말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쓸데없고도 긴 혼잣말을 지껄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혼잣말을 늘어놓
을 때면 언제나 바랍니다.
내가 그에게 힘이 될 수 있는 팬이기를. 내 혼잣말이 그에게 전해져서, 아주 조금이라
도 그가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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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그리고.
이 못난 녀석의 혼잣말을 군말없이 받아주는 pgr, 고맙다는 말 하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