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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5/03 16:54:10 |
Name |
Neo |
Subject |
무한경쟁시대, Endless War, 그리고 잃어버린 꿈 |
지금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해보면, 이상하게 머리와 가슴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단 하나도... 아름다운 추억, 첫사랑의 아픔, 친구들과의 멋진 우정, 체육시간의 열정적인 축구, 고교 축제의 뒷담화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고, 단지 단편적인 사실들만 머리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드라마에서나 영화를 보면 유년시절의 아름다움을 많이 보여주는데, 왜 난 없을까... 10년지기 친구들과 자주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중학교 때 부터 친구들이죠) 고등학교 시절을 분명 공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이야기를 잘 안합니다. 어쩌다가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가끔 이야기할 뿐, 다른 것들은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시절에 그런 추억을 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예 그럴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할까요. 책상에 앉아서 오로지 공부를 하던 기억과, 공부에 지치면 쓰러져서 쉬었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고교 시절의 시간을 자기 발전(?)을 위해 투자를 하려면 그 끝은 없기에, 다들 무미건조한 기억밖에 없는 것이죠. 공부 or 휴식... 봄과 가을마다 찾아오는 슬럼프에 대한 기억도 어느 정도 있겠군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보면서 그들의 솜사탕 같은 사랑이야기에 대한 감동 보다는 똑같은 시기를 거쳤지만, 나는 가지지 못했던 감정을 겪은 그들에 대한 질투감이 생길 정도입니다.(물론 이는 개인적인 편차가 클 것입니다.)
힘든 수능을 11월에 끝내고, 대학 입학전까지 원없이 쉬었습니다. 그리고 원했던 대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전에는 이제 힘든 입시도 끝났으니 좀 놀아보자라고 생각을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대학생활 중 1학년 때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고, 열심히도 했고, 성적도 잘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때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여러 과목들-특히 철학-이 너무 재미있었고, 고교 수준보다 심화된 과목-미분방정식 etc-은 지적 흥미를 불러일으켜서 대학입시 모멘텀이 남아있던 저를 공부에 매진하게 했었죠.(1학년 중간고사때 Calculus셤 준비한다고 시험 전날 새벽 4시까지 공부를 하다가 시험이 지각할 뻔 했습니다. 전공공부도 아닌 단지 공통 과목인 Calculus인데...) 대학의 자유스러움, 공부를 안한다고 야단치는 사람도 없고, 자기가 스스로 원해서 하는 공부. 그것이 가장 재미있게 공부를 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전공과목이 들어가는 2학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2학년 첫 시작에 과발대식에 학과장님이 오시더니 단 한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학점 잘 받으십시오..."
대학원 입학, 취직을 위해선 좋은 학점이 필요했고, 많은 이들의 로망인 미국 Top School 유학을 위해선 "3.7/4.3"이라는 마지노 선까지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과탑이 3.7~4.0밖에 안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입니다.-_-;) 저도 남들처럼 유학에 대한 망상을 꿈꾸고 있던 터라 당연히 학점에 대한 압박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압박감은 공부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렸고, 그 구체적 모습조차 안개처럼 보이지 않았기에(인생의 목표가 없는 나에게 맞는 적절한 학점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기에) 좋은 학점을 잘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유년 시절에 대학입시 문제로 겪지 않았던 여러 문제들이 대학의 자유로움 속에 녹아들어와 사랑의 실패,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 꿈의 부재로 인한 미래 불안 등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그 시절에 겪어야 할 일은 피할 수가 없나 봅니다. 통과의례처럼 그 시절에 겪지 않으면 그 뒤에 반드시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학점을 잘받은 사람이나, 저처럼 못받은 사람이나 그 경쟁의 끝은 도대체 언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학점을 잘받고, GRE시험도 잘 치고, 저명한 교수의 추천을 받아서 유학을 가게 되면 이제 인생이 피는 것일까요? 물론 저는 그 길을 가지 않아서 자세히는 모르나 유학을 가는 사람들의 목표가 대부분 대학교수 임용이기에(그것도 좋은 대학교의) Top School Ph.D만 받아와서는 그것이 힘들다는 것이 알고, 또 열심히 노력하고 경쟁합니다. 또한 교수 임용에 성공했다고 해서 끝일까요? 정교수가 되기 위해 아니면 더 나은 학교의 교수로 부임하기 또다시 노력하고 경쟁합니다.
문제는 과연 그 일을 자기가 얼마나 원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기가 바라는 꿈을 향해 달리고, 노력하는 것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저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남들에게 좀더 잘 어필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사회에서 인정을 더 잘받는 일에 매진을 하고 경쟁을 합니다.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자신을 체찍질 하거나 지쳐서 쓰러집니다. 쉬고 싶다고 생각되지만 사회는 쉴 수 있는 기회를 잘 주지 않습니다.(또는 자기 자신이 그 기회를 잘 잡지를 못할 수도 있겠죠. 자기 발전에 시간을 또다시 투자를 해야하니까요...) 그리고 결혼을 통해 부양할 가족이 생긴다면 그들을 위해 쉴틈없이 또다시 달려야만 합니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로 노력만 계속하는 모습이지요.
꿈을 가지기도 쉽지가 않고(대학입학 전까지 쉴틈없이 달려오기만 한 사람들에게 원대한 꿈, 자신만의 꿈을 가지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 꿈을 지키기도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 않은 많은 학생분들. 힘들더라도 꿈(두루뭉실한 꿈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을 가지도록 노력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세요. 성취를 위해서도 노력은 해야겠지요. 물론 그것이 아주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노력은 하세요. 그리고 꿈을 가진 분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생각하시고, 그 꿈을 향해서 나아가시면서도 소중히 간직하세요. 무한 경쟁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꿈이 부서져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꿈이 밥먹여주냐?"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지만 꿈이 밥을 못먹여주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가꾸어주는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한번 잃어버리면 다시 되찾기까지 많은 세월이 필요하거나 영영 못찾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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